독서가들은 휴가지에서 책을 읽는 즐거움을 잊지 못한다. 느릿하게 흘러가게, 여행의 시간에 맞춰 책장을 넘긴다. 열 명이 말하는 열 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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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
작가는 이 소설을 두고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다’고 말한다. 쾌감이라니, 여름휴가와 썩 잘 어울리는 추상 명사 아닌가. <보건교사 안은영>은 이렇게 손에 잡히지 않는 ‘쾌감’이라는 추상어를 손에 잡히는 사각형 책으로 성공적으로 주조한 소설이다. 새로운 타입의 여성 퇴마사 안은영이 귀신이며 이무기며 하는 것들을 물리치는 장면에서의 쾌감은 여름휴가지의 당신을 더욱 짜릿하게 할 것이다. -서효인(시인)

2 <어른의 의무> 야마다 레이지
여행지에서 읽기에 제목이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어른의 의무는 결코 무겁지 않다. 단, 간단치는 않다. ‘불평하지 않는다’, ‘잘난 척하지 않는다’,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한다’. 이 세 가지가 작가가 말하는 어른의 의무. 실천은 어려운 이 세 가지를 만화가 출신 작가답게 재밌게 풀어나간다. 여행 중 사색의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 책이다. -한보연 (그랜드앰배서더 서울 풀만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팀장)

3 <여행의 공간> 우라 가즈야
여행할 때 머무는 공간을 기록하는 게 취미다. 그래서 이 책이 흥미로웠다.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글쓴이가 여행을 떠나 머문 숙소에 대한 이야기와 그 공간의 평면도를 모은 값진 기록의 책이다. 세계의 다양한 호텔에서 지내며 줄자로 방을 실측하고, 1/50 비율로 축척해 직접 그린 그림과 글을 감상할 수 있다. 그동안 접해왔던 여행 에세이들과는 다른 새로운 감흥을 느낄 수 있다. -이석민(재활의학과 전문의)

4 <분노의 날들 > 실비 제르맹
사랑하되, 올바르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 거부당한 사랑은 분노가 되었다. 해결되지 못한 분노는 역병처럼 퍼져간다. 분노가 거듭 분노를 낳아 모두 파멸을 향해 간다. 오직 사랑하는 자들만이 살아남을까? 분노가 사랑마저도 집어삼킬까? 책을 읽다 보면 어둡고 서늘하고 안개 낀 검은 숲을 혼자 걷는 기분이 된다. 분노를 다루지만 황홀하다.지독할 정도로 아름다운 소설이다. -정현주(서점 리스본 대표, 작가)

5 <이해 없이 당분간> 김금희 외
여행지에 가져갈 책을 고르는 일은 펍에서 마지막으로 마실 맥주를 결정하는 것과 같다. 입맛에 맞지 않으면 꽤 씁쓸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안이 있으니, 여러 가지 맥주를 맛볼 수 있는 샘플러가 그것. <이해 없이 당분간>은 중견.원로 작가는 물론, 문단에서 가장 핫한 신진작가 등 22명의 엽편소설을 모았다. 맥주 샘플러를 마시듯 취향에 맞는 작가를 찾아 스르륵 읽기 좋다. – 최종인(<에이비로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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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마케터의 일> 장인성
일이 왜 안 되는지 지적하길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여러 제약 속에서도 해내는 이가 있다. 책을 쓴 배달의 민족 이사 장인성은 분명 두 번째 부류로 보인다. 이 책은 좋은 것을 경험하고 나누고 싶어 하는 태생적 마케터가, 흥겹게 기획하고 신이 나서 실행하는 방법론이다. 다른 직무에 있더라도 휴가가 끝나면 일로 돌아가야 할 누구나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눠받을 만하다. 문장도 깔끔해 쉬이 읽힌다. – 황선우(젠틀몬스터 브랜딩 본부) 

7 <마티네의 끝에서> 히라노 게이치로
독서도 타이밍이다. 나는 이 책을 주중 새벽에 읽었다. 쫓기듯 문장을 발췌하고 매력을 요약하며 떠오르는 해와 경주했다. 그 와중에 탄식했다. 이건 휴가지에서 읽어야 되는데! 지금이 아닌데! 한낮의 마티네처럼 오후의 선물 같은 이야기를, 뜨겁게 타오르지 않지만 차갑게 식지 않는 상온의 러브스토리를 휴가지에서 읽을 수 있는 당신이 부럽다. – 박혜진(문학평론가) 

8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휴가와 함께할 단 한 권의 책을 고르자면? 찰나의 머뭇거림도 없이 이 책이 떠오른다.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사과는 잘해요>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넘치는 재기발랄함으로 유쾌하면서도 짜릿한 독서의 맛을 선사해준 작가의 신작 단편집이니 재미야 당연하다. 각각의 단편 제목만 봐도 이미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 장선정(출판사 비채 편집장) 

9 <이게 다예요> 마르그리트 뒤라스
요즘 이 책의 모든 페이지를 외우고 싶다. 잠들기 전 좋아하는 부분을 읽을 때, 페이지를 찢어서 씹어 먹으면 정말 외울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만큼 강렬하고 뜨겁고 아름답기 때문일까. 당신이 부디 사랑하는 그 사람과 휴가를 떠났길 바라며. 그리고 그렇지 않더라도 여름 햇살보다 더 뜨거운 한 여인의 마음을 느껴보길. – 정유선(출판사 아르테 문학마케팅 팀장)

10 <적지지련> 장아이링
우리나라에서는 <색계>의 원작자로 유명한 장아이링의 진가는 세밀한 묘사와 문장에 있다. 탐미적인 우아함 속의 그 날카로움은 숨이 막힐 정도다. 급변하는 중국에서도 개인의 삶과 사랑에 집중했던 장아이링. 절판된 책이 대부분이라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은 <적지지련>과 <첫 번째 향로>뿐이지만, 그녀의 문장을 만난다면 곧 나처럼 헌책방을 뒤지게 될 것이다. – 허윤선(<얼루어 코리아> 피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