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마사지만 받으면서 푹 쉬는 여행이라면 어떨까? 럭셔리 스파는 물론 저렴한 발마사지까지, 1일 1마사지에 도전하며 한 달을 보낸 에디터의 방콕 마사지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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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얻은 한 달간의 리프레시 휴가. 예전부터 고민한 여행지는 런던이나 파리, 헬싱키였지만 대상포진 후유증을 안고 있던 터라 주치의는 따뜻한 곳에서의 휴양을 권했다. 이럴 수가, 폐병 걸린 작가도 아니고 휴양이라니. 그런데 어쩐지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향한 곳은 방콕. 방콕의 매력은 무엇인가. 찾으려면 많고 많지만 저렴한 마사지를 마음껏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주치의도 스파와 마사지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부추겼다. 그렇게 한 달간의 스파와 마사지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서울보다 저렴한

스파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방콕이지만 궁극의 럭셔리를 즐기고 싶다면 역시 호텔 스파만 한 게 없다. 테라피스트들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고, 손짓과 몸짓 하나도 우아하게 움직인다. 각기 자신의 콘셉트에 맞게 아름답고 사치스럽게 꾸민 스파 룸은 호사스러움의 극치. 고급 호텔일수록 마사지 베드 아래로 보이는 수반에 담긴 꽃도 늘어난다. 모든 것이 너무 좋아서 마음까지 경건해질지경. 황동으로 만든 욕조라거나, 집보다 큰 파빌리온에서 홀로 스파를 받는 것도 가능하다. 페닌슐라 방콕 호텔의 스파는 태국 전통 가옥 스타일로 만든 거대한 스파룸에서 진행되는데 잠깐 동안 태국 ‘하이소’가 된 기분이다. 반얀트리 방콕의 스파는 반얀트리 체인답게 완벽한 테크닉을 구사한다. 아바니 리조트의 스파는 10가지 질문을 통해 내 현재 상황에 꼭 맞는 테라피를 추천해주는데, 그 때문인지 모르지만 완전히 릴랙스할 수 있었다. 호텔 스파를 방문했다면 ‘아로마테라피 마사지’니, ‘스웨디시 마사지’니 이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마사지는 뛰어넘고 ‘시그니처’라고 이름 붙은 테라피를 선택할 것. 자신들만의 테크닉을 넣은, 어디에도 없는 테라피를 제공하기에 같은 비용과 시간이라면 훨씬 가치가 있다. 페이셜 트리트먼트를 받고 싶은 사람에게도 검증된 제품만 사용하는 호텔 스파를 추천한다. 호텔 스파를 즐기고 싶다면 테라피 앞과 뒤에 넉넉히 시간을 두고 럭셔리한 데다 사람이 거의 없어 쾌적한 스파 시설을 마음껏 즐겨보길 바란다. 단, 방콕이라고 해서 럭셔리 호텔의 스파가 저렴하지는 않다. 호텔 스파의 가격은 사실 세계적으로 비슷한 편이다. 또한 호텔은 세금과 봉사료가 별도로 붙기에 최종 요금은 메뉴에 적힌 것보다 훨씬 비싸서, 자주 갈수록 지갑이 얇아진다.

다만 현지 여행사를 통하면 훨씬 저렴한 요금으로 예약이 가능한 프로모션이 있을 수 있으니 검색해보는 수고를 아끼지 말 것.

딱 좋을 만큼의 스파

꼭 호텔이 아니더라도 방콕 곳곳에는 호텔 못지 않은 고급 스파가 많다. 바와 스파, 오아시스 스파, 디바나 스파, 탄 생추어리, 판퓨리 스파 등 이미 한국에서도 유명한 스파숍이 여기에 해당된다. 10년 전 취재로 처음 들른 오아시스 스파는 추억 때문에라도 들르는 곳이지만 여전히 인기가 높다. 이런 스파를 방문했다면 3~4시간짜리 스파 패키지를 한 번쯤 이용해보길. 천연 입욕제와 꽃을 둥둥 띄운 사치스러운 입욕으로 시작해 스크럽, 보디랩, 마사지 등으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이다. 바와 스파의 ‘더 고저너스 오브 골든 타이 실크’ 패키지를 보자. 4시간짜리 이 패키지는 아로마 족욕, 타이 실크 고치를 이용한 보디 마사지와 스크럽, 보디 머드, 헤어 트리트먼트(를 한 후 잠깐 티타임을 가지고), 주얼 스톤과 로열 젤리를 이용한 아로마테라피 오일 마사지, 페이셜 트리트먼트, 따뜻한 목욕을 한 뒤 스파에서 준비한 식사로 마무리된다. 이러한 스파 패키지는 스파를 제대로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이다. 다만, 자주 받다 보면 어쩐지 지루하고 좀이 쑤셔서 스파룸을 나가고 싶으니 스파 마니아가 아니라면 한두 번이면 충분하다. 이들 스파는 인기가 높아 미리 예약해야 원하는 시간에 스파를 받을 수 있다.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이용하고 싶다면 모닝 프로그램을 이용해볼 것. 상대적으로 예약이 적은 오후 2시 이전 고객에게 할인을 해주는 스파가 많다.

위 스파보다는 저렴하지만 그럼에도 편안하고 깔끔한 스파들이 있다. 보통 한화로 3~4만원대로 아로마오일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주거지나 상업지구에 위치해 있고, 간단한 영어는 통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방콕에서 체류할 때 이런 스파가 가까이 있다면 여행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방콕에만 5개의 지점이 있는 아시아 허브 어소세이션이 대표적이다.

로컬의 진한 손맛 속으로

태국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로컬 마사지다. 방콕에만 해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마사지숍이 있고, 마사지사 역시 셀 수 없을 만큼 많다고 한다. 마사지숍은 방콕 골목 어디에나 있다. 호텔 앞에는 어김없이 있고, 시장에도 있다. 때로는 길거리에 이동식 의자 몇 개만 두고 영업을 하기도 한다. 가정집을 개조하고 간판을 단 곳은 아주 어엿한 마사지숍이다. 마사지사가 영어를 아예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생존을 위해서 간단한 태국어는 익혀두는 게 좋다. “아오 바오바오(살살 해주세요)” “아오 낙낙(세게 해주세요)” 급할 땐 “쨉!”이라고 외칠 것. 아프다는 뜻이다. 만약 당신이 태국어를 구사한다면 까르르 웃으면서 본격적으로 태국어로 말을 걸겠지만 그냥 미소만 지어도 괜찮다.

그러나 고수는 바로 이 로컬 마사지숍에 있다. 건성건성 대충대충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단 몇천원이 미안할 정도로 좋은 마사지를 받을 수도 있다. 한 달 동안 내가 스무 번 이상 방문한 로컬 마사지숍이 그랬다. 내가 빌려서 살고 있던 콘도 맞은편에 있던 작은 마사지숍은 소박했지만 늘 깨끗했고, 화이트보드에 예약자 이름이 빼곡히 차 있을 정도로 동네에서는 인기 가게였다. 콘도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과 동네 사람들이 다 같이 마사지를 받는 곳이었다. 타이 마사지는 약 8천원, 오일 마사지는 약 1만2천원이니 행복할 수밖에. 나는 방콕에서 매일 이곳에 마사지를 예약했고 어느덧 모두가 나의 예약자명 ‘윤’으로 불렀다. 이곳에서 나는 다섯 명의 테라피스트의 손을 거쳤는데 강남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한’ 여사는 한국 여자들의 어깨와 등은 나처럼 다 이렇게 나쁘다며 등과 어깨를 사정없이 눌렀다. 그 후로 센 마사지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한 여사 앞으로 예약을 해주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드러우면서도 꼼꼼히 마사지를 잘 하는 건 단연 ‘꿍’ 여사였다. 주말마다 서울에서 친구들이 올 때마다 고급 스파를 찾았지만 꿍 여사만큼 내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다. 꿍 여사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어서야 ‘배드’ 상태였던 내 몸이 이제 ‘굿’이 되었다며 흡족해했다. 다 꿍 여사 덕분이다. 태국어로 꿍은 새우라는 뜻인데…. 태국을 떠나는 날, 꿍 여사에게 K뷰티 아이템을 선물했다. 마사지숍의 이름을 밝힐 수 없어 유감이다. 다른 곳과 달리 간판이 태국어로만 되어 있는 터라, 나는 매일 가면서도 끝까지 이름을 몰랐다. 이렇듯 좋은 로컬 마사지를 만나는 건 여행에서의 큰 즐거움이다. 하지만 한번에 좋은 로컬 마사지를 만나긴 어렵다. 특히 위생이 신경 쓰이는 곳이라면 옷을 벗어야만 하는 오일 마사지 대신 타이 마사지나 발마사지를 받을 것. 많이 걸은 후의 발마사지는 최고니까. 좋은 마사지사를 만났다면 그의 이름을 알아두었다 지정하면 된다. 그렇게 페닌슐라 스파에서 시작된 나의 긴 스파 여행은 이름 모를 로컬 마사지에서 막을 내렸다. 몸 상태가 ‘배드’가 될 때마다 생각한다. 나의 꿍 여사는 아직 그곳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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