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캠핑을, 아웃도어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자연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자연 속에서 모든 걸 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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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라는 책이 있다. 언뜻 요가 가이드북 같은 냄새를 풍기지만, 뛰어난 작가인 제프 다이어의 폐허 전문 에세이다. 그에 따르면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을 위한 요가라는 것은 도저히 게을러서 쓰지 못할 자기계발서와 같다. 이걸 캠핑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캠핑을 싫어하는 사람을 위한 고 아웃처럼 말이다.

원래부터 캠핑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분명히 밝히고 싶다. 어린 시절, 나이 터울이 많은 삼남매를 가장 효과적으로 돌보며 동시에 부모님 당신들도 숨을 돌릴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은 자연에 풀어놓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휴일이면 차에 텐트며 버너며 코펠을 가득 싣고 우리 가족은 산으로 들로 바다로 갔다. 어느 밤, 갑자기 불어난 물에 자다 깨어 텐트를 상류로 옮긴 적도 있고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도 모래무지며 다슬기를 씨가 마르도록 잡아서 먹었다. 갑자기 충동구매한 텐트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혼나던 장면도 선하다. 지금처럼 아웃도어 용품이 발달한 때는 아니었지만 커다란 텐트와 가림막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캠핑을 가자면? 멀리 도망부터 갈 생각을 한다. “자연은 좋지만, 자연에서 꼭 자고 먹고 다 할 필요는 없잖아?” 다음은 이렇게 외치는 사람을 위해 내가 찾은 훌륭한 대체재이다.

캠핑이 싫은 사람을 위한 글램핑

캠핑을 거부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점점 떨어지는 체력일 것이다. 체력과 불편함은 정확히 반비례해서, 체력이 떨어질수록 불편함이 많아진다. 잠자리가 바뀌어서 하루 잠을 설치면, 사흘 낮이 피곤한 삼십대 중반이 된 것이다. 때로는 고급 호텔도 불편하게 느껴지는데, 텐트에서 자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화장실은 또 어떻고! 그러나 굳이 자연 속에서 자고 싶다면 우리는 대체재를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글램핑이다.

글램핑은 아무런 준비 없이 몸만 가면 되는 캠핑이다. 진정한 캠핑러들은 캠핑 취급도 안 하는 게 바로 글램핑이지만 그래서 좋다. 자연 속에서 트레킹, 수영, 승마, 사냥 등의 고급 레저를 체험하고 야외 바비큐를 즐긴 후 모든 것이 갖춰진 럭셔리한 텐트형 숙소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사막의 모랫바람, 전장의 피비린내를 뚫고 텐트를 걷으면 무엇보다 아늑하고 호화로운 숙소가 나타나는 장면, 바로 그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제주 신라호텔의 글램핑은 신라호텔답게 고급스럽고 아늑하다. 켄싱턴 플로라 호텔 평창은 마치 아빠가 쳐준 어린 시절 텐트처럼 자연 속에 포근하게 들어앉은 것이 장점이다.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태국 치앙라이에 위치한 포시즌스 텐티드 캠프를 권한다. 포시즌스 텐티드 캠프 골든 트라이앵글(Four Seasons Tented Camp Golden Triangle)은 25만 평 부지에 단 15채의 텐트만 존재하며 그저 흉내 낸 글램핑이 아닌 정글 속에 들어앉은 진정한 글램핑을 보여준다. 아프리카 리조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다. 배를 타고 접근하는 것부터가 모험의 시작. 대신 이 완벽한 글램핑을 즐길 수 있는 대가는 아주 비싸다. 포시즌스 리조트 체인에서도 가장 숙박비가 비싼 리조트 중 하나다.

캠핑이 싫은 사람을 위한 바비큐

캠핑을 거부할 때 마지막까지 놓기 어려운 미련 한 조각은 바비큐. 숯불에 구운 건 시들어가는 감자 한 조각이라도 맛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때문에 바비큐의 유혹에 빠져 힘든 캠핑을 떠나고 다신 오지 말아야지 후회한 적이 몇 번인가. 캠핑 바비큐의 가장 싫은 점은 누군가는 장을 보고, 누군가는 도구와 재료를 챙겨야 하며, 누군가는 뒷정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나다. ‘힐링’한다고 가서 왠지 노동만 하고 온 기분이랄까. 그냥 사 먹었으면 좋겠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는 엄마가 피곤했는데 그걸 내가 하고 있다니. 그래서 홍콩의 바비큐장을 갔을 때 왜 우리나라에 이런 곳은 없는가 고민했다. 홍콩의 바비큐장은 바비큐 전용 존으로 돈을 내면 숯불부터 불판까지 바비큐장 바로 앞에서 살 수 있다. 집에서 이것저것 챙겨갈 수도 있지만 간단히 고기와 소시지 정도를 사서 구워 먹어도 기분이 난다. 물론 제대로 먹으려면 이고 지고 가는 걸 피할 수는 없다. 그렇게 바비큐의 대체재는 요원하기만 했던 어느 날. 날씨가 점점 좋아질수록 바비큐가 그리웠던 가운데 이곳을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 르 메르디앙 서울에서 론칭한 ‘셰프 더 그릴(Chef the Grill)’이다. 유럽풍으로 꾸민 테라스. 이곳의 테이블마다 놓인 것은 다름 아닌 그릴이다. 이곳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트레이에 고급스럽게 놓인 ‘재료’만 온다. 재료 외에 검은색 스트라이프의 앞치마, 빨간 고무를 덧댄 면장갑이 아닌 바비큐용 장갑, 가위와 집게, 맛있게 익은 고기와 해물을 자를 수 있는 나무 도마까지 모든 게 준비된다. 즉, 굽고 먹는 즐거움만 누리라는 것이다. 육류를 선택하면 소갈비살, 양고기, 훈제 삼겹살, LA갈비, 소시지, 베이컨이 제공되고, 해산물을 선택하면 바닷가재, 전복, 왕새우, 가리비, 문어 등이 제공된다. 와인과 크래프트 비어도 물론 있다. 신나게 바비큐를 구워 먹은 뒤 해야 할 일은? 계산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캠핑이 싫은 사람을 위한 휴식

캠핑이 싫다고, 싫다고 하면서도 매번 자연을 그리워하는 게 속마음이다. 그렇기에 차 트렁크에 항상 넣어두는 것이 있다. 귀여운 돗자리, 접이식 캠핑의자, 컵. 이것만 있으면 어디서든 캠핑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집 앞 공원도 마찬가지. 돗자리를 깔고 눕거나, 캠핑의자를 탁 펴면 비록 등 뒤로 차와 버스가 쌩쌩 달릴지언정 내 앞에 펼쳐진 건 초여름을 맞아 푸르고 푸른 자연이다. 30분이든, 한 시간이든 앉아서 책도 보고 SNS도 하다 보면 잠시나마 리프레시가 되고 체력도 보존 또는 충전이 되니 지금 내 수준에는 딱 맞는 야외 활동이다. 이 준비물은 지방 촬영을 갈 때 우연히 마주친 작은 개울에서도, 급하게 시작된 인터뷰에서도 유용하다. 이런 형태를 일컫는 캠핑도 있다. 아침에 출발해 밤에 돌아오는 캠핑을 ‘데이 캠핑’이라고 한다. 내가 즐기는 형태를 ‘데이 캠핑’에서 베어낸 일부분으로 치자. 데이 캠핑의 필수품은 텐트보다는 카프, 그늘막이다. 얼마 전 지나가다 본 풍경은, BMW MINI의 트렁크를 활짝 열어놓은 채로, 그 위에 대충 패브릭을 덮어 그늘을 만든 뒤 돗자리에 누워 낮잠을 자던 한 커플이었다. 아주 평화롭고 느긋한 풍경이었다. 너무 부러워서 슬며시 스노우피크 티탄 머그컵을 꺼냈다. 워낙 가볍고 보온과 보냉 효과가 좋아, 캠핑러들에게 명품으로 불리는 컵이다. 꺼내어 간 곳은 회사 주차장 뒤편의 작은 벤치다. 가장 잎이 무성한 나무를 보면서 마셨다. 이곳이 나의 캠핑장이라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