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한 주말 도심을 벗어나 외곽 지역으로 향하면 안장 위에서의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즐기는 승마, 지금은 승마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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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얼굴을 마주하고 교감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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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말의 등을 솔질하는 모습. (우)다양한 크기와 디자인의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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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5월의 어느 날, 남양주행 2000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승마를 함께 하는 친구와 갑작스럽게 잡은 약속이었다. 목적지는 시즌파이브 승마장. 살아 있는 동물과 교감하는 예술적인 스포츠 승마는 육체적 운동이기도 하지만, 정신적 운동이기도 하다. 말을 탄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말과 함께 달린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인 것. 귀족 스포츠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6~7만원이면 한 타임을 넉넉하게 탈 수 있으니, 골프보다 훨씬 저렴하다. 말과 친해진 건 대학 시절, 우연히 들은 승마 수업 덕분이었다. 숨막히는 시간표에 1학점이라도 우겨 넣기 위해 선택한 교양 수업. 따분하기 짝이 없던 이론 수업과 달리 거대한 형상을 한 말 앞에 선다는 건 정말이지 짜릿하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때부터 승마는 내 취미가 되었다.

승마 준비물

승마를 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은 헬멧과 승마바지, 긴 양말, 장갑이다. 여느 스포츠가 그렇듯 승마도 전용 용품이 따로 있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용품을 일일이 구매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나도 처음부터 승마바지를 입은 건 아니다. 승마복 대신 편한 (긴)면바지를 그리고 부츠 대신 운동화를 신으면 된다. 기승자가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헬멧이나 안전 조끼, 장갑은 승마장에 구비되어 있으니 대여해 사용할 수 있다. 단, 승마를 자주 할 예정이라면 바지 하나쯤은 구비하는 것이 좋다. 엉덩이와 허벅지 부분에 스웨이드 소재를 덧대 안장과의 마찰력을 최소화시키고, 피부 쓸림과 같은 부상을 방지한다.

그 다음으로는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 준비가 끝났다면, 말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온전히 말에게 집중한다. 승마장의 모든 말은 일정 운동량이 정해져 있다. 때문에 본인 소유의 말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가는 시간과 날짜에 따라 탈 수 있는 말도 달라진다. 내가 탈 말은 진갈색으로 머리 부분의 하얗고 작은 마킹이 특징인 ‘노벨’이었다. 이곳에 오면 항상 커다란 몸집에 윤기 나는 검은 털을 자랑하는 ‘히카리’를 타곤 했는데, <SBS 동물농장>에서 마방을 탈출하는 천재 말로 알려져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중이다. 누군가가 다음 타임에 벌써 예약을 한 모양이었다. 말의 허리를 감싼 복대가 충분히 조여져 있는지, 등자(발걸이)의 길이가 적당한지 확인하고, 말의 왼쪽 어깨에 서 눈을 맞췄다. 기승 전에 일종의 신호를 주는 것이다. 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왼발을 등자에 얹은 뒤, 몸과 오른쪽 다리를 충분히 올려 무게중심을 잡으면서 안장에 부드럽게 앉았다. 이때, 말의 엉덩이를 차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바야흐로 말의 움직임을 느끼고 몸을 맡길 차례다. 오랜만이라 긴장했는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말과 호흡을 같이 해야 속도를 더 많이 낼 수 있는데 리듬감이 자꾸 어긋나다 보니 경속보를 위해 박차를 가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 둘! 하나, 둘!’ 마음속으로 박자를 외치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경직된 몸이 풀리고, 균형을 찾으면서 호흡이 자연스러워진다. 살랑이는 바람이 코끝을 스칠 때, ‘말 위에서 빌리는 자유’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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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이야기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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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방에 있는 포니. 2 말등의 안장. 3 승마용 헬멧, 바지, 장갑 그리고 부츠. 4 말굽을 뒤로 꺾어 이물질을 제거하고 있다.

말과의 호흡

말의 운동은 크게 평보, 속보, 구보로 나뉜다. 평보는 말이 네 박자로 걷는 보법으로 승마의 기초여서 가장 처음에 배우게 된다. 말의 걸음에 맞추어 안장 위에서 가볍게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는 행위인 경속보는 속보의 일종으로, 상체의 힘을 빼고 온전히 안쪽 허벅지와 종아리로 하는 운동이다. 언젠가 사극에서 말을 달리는 배우들을 보고 고삐를 잡는 아귀 힘으로 하는 운동이라 착각한 적이 있었다. 안장 위에서 평화로운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했듯 다리 힘이 제일 중요하다. 마치 고고한 자태의 백조가 물 위에 떠 있기 위해 열심히 물갈퀴를 움직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두 박자 리듬으로 통통 튀는 반동을 온몸으로 받는 경속보는 제일 선이 예뻐 보이는 걸음이라고 생각하는데, 처음 승마를 시작할 때에도, 경속보로 말을 달리는 교관을 보며 내심 얼마나 타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구보는 세 박자 운동으로 말의 보법 중 가장 빠르다. 보기만 해도 경쾌함과 율동감이 느껴지는데 교관이 타는 것을 보았을 뿐, 시도할 엄두도 못 냈다. 올해 안에 달려보는 것이 목표다.

20분간 평보와 경속보를 번갈아 하다 보니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안쪽 허벅다리와 사타구니도 아파왔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 쪽으로 고삐를 살짝 당겨 신호를 주니 노벨이 알아듣고, 멈춘다. 하마는 기승 순서와 반대다. 몸을 숙이고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려 말등 위로 넘겼다. 그리고 두 다리를 나란히 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이때도 말의 등을 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말을 타고 나서 느끼는 즐거움이 또 따로 있는데, 칭찬과 고마움을 표시하는 거다. 다시 한번 눈빛을 교환하고, 태워줘서 ‘고맙다’고 목덜미를 가볍게 두드렸다. 보상의 뜻으로 각설탕이나 당근을 주는 것도 좋다. 나는 준비해간 각설탕을 손바닥에 얹어 노벨 입 근처에 가져갔는데 노벨에게 각설탕 주는 것을 다른 말들이 본 모양이다. 서로 달라고 ‘히히힝’ 울고 난리가 났다. 마방 앞쪽으로 가 차례대로 각설탕을 나눠주고, 새로 온 포니, 당나귀와 인사를 나눴다. 유독 흰색 당나귀가 관심을 보였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지 시선을 떼지 않길래 함께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체력과 시간이 허락한다면 오후 시간에 한 번 더 탈 수 있다.

승마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스포츠지만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스포츠다. 전신 운동으로 여성의 틀어진 골반 등 자세 교정에 좋고, 유연성과 리듬감도 길러준다. 당신의 말이 귀를 앞쪽으로 젖혀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뜻을 전해올지도 모른다. 노벨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수많은 말 중, 소울메이트를 만나 주말마다 승마장으로 향할지도 모르겠다. 승마는 대체 불가능한 매력적인 운동이다. 아니, 말은 대단히 매력적인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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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방의 말들이 얼굴을 내밀고 한곳을 응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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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타는 모습.


승마 안전수칙

1 자칫하다간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교관의 지시를 따른다.
2 말 뒤로 접근하지 않는다.
3 말은 예민하고 겁이 많은 동물이다. 큰 소리를 내면 놀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4 고삐는 말의 재갈과 연결돼 있어 세게 당기면 말에게 스트레스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