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은은 대중의 기대와 아티스트의 욕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이 마치 수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조금만 몸에 힘이 들어가도 물속에 가라앉을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유영하고 있는 예은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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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드롭 이어링은 스타일난다(Stylenanda). 하트 모양의 초커는 빈티지 헐리우드(Vintage Holly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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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시폰 소재 톱은 손정완(Son Jung Wan). 스팽글 슬립 원피스는 더 애쉴린(The Ashlynn). 레이스업 벨티드 슈즈는 렉켄(Rekken). 귀고리는 케이트엔켈리(Katenkelly).

“요즘에 관심과 주목받는 친구들을 보면 ‘저 시기를 견디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고, ‘와, 나도 저렇게 살았었구나’ 하면서 놀랄 때도 있어요. 지금은 체력도 안 되고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아요.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다 있지만 지금은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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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로고 티셔츠는 DKNY. 데님 팬츠는 이자벨 마랑(Isabelmarant), 레이스 소재 글러브는 더 퀸 라운지(The Queen Lounge). 글리터 앵클 부츠는 지미 추(Jimmy Choo). 흰색 레이스 초커는 더 퀸 라운지. 파란색 초커는 빈티지 헐리우드. 붉은색 벨트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우리가 기억하는 원더걸스의 예은은 이제 ‘핫펠트’로 불린다. 평소 좋아하던 영어 단어 ‘heartfelt’에서 착안한 이 이름은 음악을 통해 진심 어린 이야기를 건네고 싶은 예은의 마음을 대변한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앨범 준비하면서 미팅하고, 또 뮤직비디오나 안무 같은 것을 계속 수정하면서 녹음도 하고 있어요.

평범한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낮 12시에서 2시 사이에 일어나 밥을 먹고 운동을 갔다 와요. 그러고 작업실에서 유튜브 보고, 음악도 듣고, 뮤직비디오도 봐요. 작업, 연습, 그리고 저녁을 먹어요. 가끔 친구들이랑 만나서 음악 얘기, 영화 얘기 하다가 영화 한 편을 보고 자요. 자는 시간은 그때그때 다르긴 한데, 새벽 대여섯 시에 자는 것 같아요. 자기 전에 반신욕도 하고 시집도 읽죠.

4월에 새로운 싱글이 나와요. 직접 소개해줄래요?
작년에 발표한 <MEiNE>에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았다면 총 두 곡이 수록된 이번 앨범에는 상대방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어요. 타이틀곡에는 사랑할 때 느끼는 행복하고 설레는 감정을 담았어요.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가 얼마나 비슷한지에 대한 것이요. 제가 좋아하는 책 <해리포터>, 영화 <이터널선샤인>, 강아지 등을 가사의 소재로 썼고, 제가 말랑한 과일을 좋아해서 ‘말랑 자두 좋아해요’라는 가사도 넣었어요. 반면, 수록곡에는 좀 더 공허하고 외로운 감정을 녹여냈어요.

이번 앨범을 통해 어떤 반응을 얻고 싶어요?
제가 이 곡을 만들었을 때 느낀 감정을 공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타이틀곡을 작업할 땐 진짜 막 핑크빛의 에너지가 나왔거든요. 이 노래를 현아한테 들려준 적이 있는데 현아가 기분이 좋아지는 곡이라고, 그 설렘이 모두 전해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반응이 오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두 곡 다 여자들만 느끼는 감성을 담았다고 생각해요.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자의 음악 말고, 여자가 좋아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동시대를 살고 있는 또래의 여자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나요?
여자를 흔히 꽃에 비유하는데 저는 자신을 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여자의 모습은 꽃이지만 우리는 새니까 자유롭게 날아가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여자들은 조금만 목소리를 내면 기가 세다는 말을 듣고, 외모에 대한 지적도 들어요. 여자들이 느끼는 압박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나이에 대한 압박도 그렇고요. 주변 오빠들은 서른대여섯 살인데도 마흔 살쯤 결혼할 거라고 하는데, 전 이제 서른인데도 벌써 ‘이러다 평생 혼자 사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저부터도 그런 압박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요. 세상의 반이 여자인데,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사회적인 인식도 바뀌지 않을까요?

서른이 됐어요. 나이 드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편이에요?
평소에는 별로 생각을 안 하지만 문득문득 떠올라요. 스물아홉은 정말 불안했는데 지금은 앞으로 다가올 30대를 기대하게 됐어요. 30대가 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생각들이 분명해지고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좁아져서 좀 더 편해진다는 말을 들었어요. 저도 가지고 있던 욕심을 내려놓으면서 오는 편안함이 있어요. 어릴 때는 정말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심지어 오디션에 맨날 떨어질 때도 ‘나는 월드 투어하는 가수가 될 거야’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이렇게 큰 꿈을 아무렇지도 않게 꿨는데 이제 허무맹랑한 꿈을 꾸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점점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고요.

그 사실이 슬프지는 않아요?
작년까지는 그랬는데 지금은 꼭 그 지점까지 가지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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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체크 러플 포인트 원피스는 부부리(Bubulee). 블루 원석 이어링과 하트 모양의 초커는 모두 빈티지 헐리우드.

최근 자신이 가장 변했다고 느낀 건 언제예요?
저는 굉장히 안전한 선에서 스릴을 추구하는 사람이거든요. 예를 들면 오토바이는 안 타는데, 놀이기구는 타요. 안전장치가 다 있는 상황에서는 스릴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인데, 점점 생각하는 안전장치의 범위가 넓어져요. ‘이렇게도 해볼까? 저렇게도 해볼까?’ 하면서요. 타투도 그렇고, 피어싱도 그렇고 2년 전까지만 해도 없었거든요. 그때의 제가 지금의 저를 보면 깜짝 놀라겠죠. ‘너 몸이 왜 이래?’ 그럴 것 같아요.(웃음) 예전엔 ‘할까, 말까, 해도 될까’ 고민했다면 지금은 좀 ‘하자’라는 주의가 됐어요.

아이돌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면서 더 자유로워진 게 아닐까요?
주변 상황도 많이 바뀌었고 서른이 되면서 제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진짜 어른’인 것 같은 느낌이에요.

지난 20대를 돌이켜보면 어떤 감정이 가장 먼저 들어요?
재미있었다? 정말 놀이동산 같았어요.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으로 빠르게 살았고, 목표를 향해서 달려오기도 했죠. 화려했고.

그 기억에 원더걸스가 빠질 수 없겠네요.
그렇죠. 열아홉부터 스물아홉까지, 저의 한 시절을 함께했으니까.

멤버들 만나면 추억 얘기도 해요?
추억 얘기를 많이 하게 되는 멤버가 있고 그렇지 않은 멤버가 있어요. 기억을 잘하는 애들이 있거든요. 선미는 진짜 선명하게 기억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런 것도 기억나?’라고 할 정도로요. 유빈 언니나 혜림이는 기억을 많이 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저랑 소희는 ‘어, 그런 일이 있었어?’ 하는 타입이거든요. 그래서 만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얘기를 해요.

솔로로 활동하게 되면서 가장 두려웠던 부분은 뭐예요?
멤버들끼리는 결정을 다수결로 하거든요. 그래서 결정이 빨라요. 혼자 할 땐 제가 다 결정해야 하니까 그 부분이 제일 힘들어요. 또 스태프들을 대할 때도 역할 분담을 해서 만약에 누구 한 명이 기분이 가라앉아 있으면 다른 멤버들이 분위기를 띄울 수도 있는데 지금은 저 혼자 케어를 해야 하니까 제 감정을 더 컨트롤하려고 해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뭐예요?
진실된 걸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요즘은 좀 흔들리고 있어요. 세상은 약간의 거짓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제 자신에게 가장 솔직하게 살고 싶어요. 또 요즘은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아무리 잘되더라도 사람들과의 관계가 안 좋으면 힘들잖아요. 반대로 힘들 때는 의지할 수도 있고.

아티스트로서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어요?
제 이름으로 등록된 곡이 300곡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열일’, ‘열작’하려고요. 또 공연을 최대한 많이 하고 싶어요. 솔로 콘서트를 300회 정도는 해보고 싶어요.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것도 있어요?
이번 싱글 활동 끝나면 호신술 배우려고요.(웃음) 요즘 들어 혹시라도 어떤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스라엘의 여성 호신술 ‘크라브마가’를 제대로 배워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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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앗빛 실크 코트는 보테가 베네타. 주얼 장식의 벨트는 더 퀸 라운지. 붉은색 벨트는 보테가 베네타. 보디슈트는 라펠라(La Perla). 은색 뮬은 마놀로 블라닉(Manolo Blahnik). 드롭 이어링은 블랙뮤즈(Blackm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