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시대의 변화가 온몸으로 느껴진 적이 있었나? 주 소비계층인 10대와 20대 사이에서 불어오는 작은 변화의 바람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지금의 청춘이 가진 생각과 가치관은 사회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되어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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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 그 이상의 가치

2017년은 ‘단 한 번뿐인 인생을 후회 없이 살자’는 욜로(YOLO)의 전성시대였다. 그리고 20대를 주축으로 ‘저축’보다는 ‘소비’를, ‘열심히’ 살기보단 ‘즐겁게’ 사는 삶을 지향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이와 동시에 조금은 대조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합리적 가격’과 ‘품질’을 중시하는 이른바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태도도 공존한 한 해였다. 2018년에는 어떨까? <2018 대한민국 트렌드>에서는 가격 대비 성능을 넘어 심리적 만족을 중요시하는 소비 태도가 뚜렷해질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만족도를 높일 기준은 개인의 취향이나 가치관, 기업의 도덕성이나 윤리관, 사회적 기여도 등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단순히 유행하는 제품, 퀄리티 있는 제품이 아니라 소비를 통해 정신적인 위안(만족감, 자긍심 등)을 얻을 수 있는 이른바 ‘부가 가치’를 추구하는 소비 성향이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 나 혼자 산다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혼영(혼자 영화 보기), 혼행(혼자 여행 가기) 등 최근 몇 년간 개인이 일상을 ‘나 홀로’ 보내는 것을 ‘선호’하는 현상이 한국 사회에 두드러지고 있다. 심지어 ‘나 홀로 방송’, ‘나 홀로 재판’, ‘나 홀로 소송’ 등의 전문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이러한 움직임은 2018년, ‘1인 체제’의 모습으로 보다 강화될 전망이다. 이제는 ‘막연한 교류나 친목’보다는 ‘뚜렷한 목적과 개인의 관심사’ 위주로 인간관계를 재편성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전보다는 좀 더 뾰족하고 심플한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내가 원치 않는 인간관계, 즉 감정을 쏟아야 하는 인간관계는 가능하면 피하고 ‘쿨한 인간관계’를 지향하는 것이다.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비혼 트렌드와 함께 ‘계약결혼’, ‘동거’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 조건적 보수 성향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부정입학 논란에 분노했던 젊은 세대. 2017년 12월 촛불혁명은 이들에게 ‘공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언제나 여론의 중심에 서서 현 정부에 강력한 지지로 힘을 보탰던 그들이지만, 의외로 이들 중 상당수가 평창동계올림픽의 남북한 이슈에 보수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나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전 세대 중 가장 두드러질 정도다. 북한 팀의 합류로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한 한국 선수들의 노력이 외면당할지도 모른다는 ‘부당함’ 때문이다. 즉. ‘공정성이라는 가치 훼손’을 문제 삼고 있는 것. 언제나 ‘진보적’이라 평가받았던 2018년의 젊은 세대는 공정하지 못한 상황, 이슈, 문제에 더 보수적 성향을 띨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나 그것이 그들의 생존, 기회 균등, 삶의 질과 직결된 문제일수록 더 그렇다.

: 보통의 존재

작년 jtbc <한끼줍쇼>에 출연한 이효리가 건넨 한마디 말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대중을 열광하게 했다. 동네를 지나가던 한 꼬마와 이야기를 하던 중 이경규가 ‘훌륭한 사람이 돼야지’라는 말을 건네자 옆에서 듣던 이효리가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라고 말한 것. 이처럼 노멀 크러시(Normal Crush)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에 질린 요즘 애들이 보통의 존재에 눈을 돌리게 된 현상을 말한다. 더 이상 돈, 명예, 권력 등으로 대변되는 세상의 기준에 연연하지 않고 평범하지만 소소하게 자신을 위한 삶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흐름은 대중 문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스타들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모습을 보여주는 <나 혼자 산다>, <효리네 민박>, <신혼일기>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였고 드라마 역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며 공감을 이끈 <청춘시대>, <쌈, 마이웨이> 등이 사랑을 받았다. 이처럼 일상의 소소함을 담은 프로그램이 1020 시청자들의 마음을 샀다.

: 정의로운 예민함

‘화이트 불편러’는 정의로운 예민함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사회의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해 SNS를 통해 여론을 확산하는 청년들을 가리킨다. 2017년의 키워드 중 하나였던 ‘팬텀 세대’(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온라인 공간에서 사회적 어젠다에 대해 활발히 표현하고 의견을 공유하는 세대)와도 일맥상통한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 그 기업이 판매하는 제품 리스트를 공유하고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등에 #불매운동이라는 해시태그를 거는 방식으로 여론을 확산한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한번 시작되면 겉잡을 수 없이 파급력이 커진다는 게 특징이다. 특히,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이 기업의 ‘여혐’ 광고에 날카롭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최근 롯데푸드는 조남주 작가의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을 패러디한 ‘83년생 돼지 바’라는 카피와 함께 ‘사람들이 나보고 관종이래’라는 문구를 SNS에 게시하며 뭇매를 맞은 바 있다. 네티즌들로부터 여성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를 담고 있는 소설과 페미니즘 지지자를 조롱했다는 반발을 산 것. 이처럼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는 문제에서도 ‘옳지 않음’을 발견해내고 이를 지적하면서 공감을 이끌어내고, 여론을 형성해 직접적인 행동으로까지 연결해 옳은 방향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것 역시 이 세대의 큰 특징 중 하나다.

: 의미 없음의 의미

20대를 정의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무민 세대다. 물론, 핀란드의 작가 토베 얀손의 캐릭터 무민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민 세대는 한자 ‘없을 무(無)와’ 의미를 뜻하는 영단어 ‘Mean’, 그리고 ‘세대’가 합쳐진 말로, 무의미한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세태를 보여준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대신, 홀가분한 일상을 살면서 의미 없는 것에도 관심을 주자는 것. 김동영 작가는 신작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앞으로 특별히 어떻게 변하거나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이런 나로서 만족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온전한 내가 되고 싶다.’ 우리는 ‘훌륭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자라왔지만, 사회적 기준에서 의미 없다고 치부되어버리는 일도 나 자신을 위해서는 유의미한 것이 될 수 있다. 마치 ASMR을 듣는 것처럼. 누군가는 ‘종이에 글씨 쓰는 소리를 왜 듣고 있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그 소리를 들으며 불면의 밤을 견딜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의 20대는 의미 없는 것에서 위안을 얻는다. 친구들과 맥락 없는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저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공감 코드 하나로 소통하고, 그러면서도 관계에서 오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 날아갈 듯하지만 가치 있는

요즘 애들의 소비는 휘소가치에 기반하고 있다. 흔히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용어인 ‘희소가치’가 아닌 ‘휘소가치’인 이유는 휘발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 즉흥적이고 가벼운 형태로 이루어지지만 그 속에서도 가치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쓸모 없어 보이지만 사회적 의미가 담겨 있는 굿즈를 소비한다거나 ‘시발비용’이라고 명명되기는 하지만 자신에게 의미 있는 소비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곤 한다. 비록 그 방식은 휘발적일지라도 소비 방식에 있어서는 충분한 가치를 하는 셈이다. 언젠가부터 사무실 책상에 아기자기한 캐릭터 용품을 구비해놓곤 한다. 물론, 당장의 쓸모는 없지만 그 귀여움 자체로 충분히 존재 가치를 다하고 있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카카오프렌즈나 라인프렌즈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이유도 이런 세태를 잘 반영한다. 예전 같으면 이런 캐릭터 매장의 주요 고객들은 아이들과 그 부모였을 테지만, 요즘은 오히려 매장에 어른이 더 많다. 확실히 지금의 20대는 물건의 쓸모를 넘어 소비와 동시에 그 순간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주저 없이 지갑을 여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