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이자 힘을 상징하는 나만의 공간을 갖는 일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저마다의 이유로 독립적인 공간을 꾸린 여섯 명의 여자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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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가정집을 연상케 하는 아뜰리에 전경. 자매의 취향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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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공수해온 유리 오브제와 빈티지 소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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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정&최지민

프렌치 쿠킹 스튜디오 ‘아뜰리에 15구’ | @15ent

요리하는 언니와 꽃을 좋아하는 동생. 홍대에서 레스토랑 르끌로를 운영하던 두 자매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게에 매여 있느라 일은 버겁고 몸은 갈수록 축났다. 이건 아니지 싶었다. 그래서 둘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찾았다. 이를테면 프랑스 파리의 가정집을 연상케 하면서, 두 자매의 취향과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곳. 다행히 볕이 잘 드는 이곳을 만나 소원하던 아지트 겸 쿠킹 스튜디오를 만들게 됐다. 덕분에 요새는 늘 행복하다. 다시 요리와 사람 만나는 일도 즐거워졌다. 공간이 개인의 퍼스널리티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유행하는 핫플레이스는 가지 않는다. 그 대신 자신들의 아지트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좋아하는 영화나 책을 탐독하면서 완전한 자기만의 시간을 보낸다.

내 공간을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버터 냄새. 프렌치 요리를 할 때 나는 향긋한 냄새.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는 오후 3~4시.
나의 취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스팟은 석고상과 식물, 유리병 오브제들이 모여 있는 책상.
공간에 꼭 있어야 하는 물건은 초록색 식물과 꽃. 어느 공간이나 식물이 없으면 죽은 공간 같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이탈리아 정물 화가 모란 디. 그리고 미술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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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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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리모델링으로 완성한 집 전경. 최대한 옛 모습을 자연스럽게 살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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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교 많은 반려묘 타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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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요

공간디자인 회사 ‘텐크리에이티브’,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저자 | @koyoch

‘하루를 살아도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최고요는 셀프 인테리어 과정을 연재한 개인 블로그가 주목을 받으면서 공간 디렉터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직업적 이유 외에도 나만의 취향과 스토리가 깃든 공간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나만의 공간을 가꾼다는 건 생활을 돌본다는 이야기고, 삶을 대하는 중요한 방식이자 행복을 찾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이 잘 꾸며진 카페나 호텔을 찾아 다닐 때도,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나만의 공간 꾸미기다. 작업실이 따로 있지만 서재(가장 좋아하는 공간)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사색을 한다. 이곳에서 가장 즐겨하는 일은 고양이들과 놀거나 멍 때리기. 자기 자신과 잘 지내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내 공간을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고요의 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말끔하게 청소를 마쳤을 때. 공간은 꾸미는 것만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나의 취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스팟은 책장. 직접 디자인하고 주문 제작해서 만들었다.
공간에 꼭 있어야 하는 물건은 엄마의 손편지, 좋아하는 향수, 여행지에서 사 온 기념품, 고양이들에게 음악을 들려줄 스피커.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낯선 공간, 처음 가는 여행지의 풍경, 낡고 손때 묻은 옛날 물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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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지처럼 하얀 공간. 이곳에서 와인을 매개로 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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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에 늘 놓아두는 아끼는 책과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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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지

와인&콘텐츠 스튜디오 ‘어반 텍스트’ | @wickedwifesee

경리단 언덕길 한복판, 유리 통창 너머로 남산타워와 인근 일대가 그림처럼 내려다보이는 G컨템포러리 갤러리. 공간에 들어서자 어반 텍스트의 이영지가 향긋한 소비뇽 블랑 화이트 와인을 준비해놓고 환한 미소로 맞이한다. 그녀는 와인 스타일리스트 겸 콘텐츠 기획자다. 와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감각적인 라이프스타일 관련 정보를 SNS에 공유하면서 많은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작년에 집에서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와인 클래스를 진행하다가, 더 많은 사람과 재미있는 일에 도전해보고 싶어 갤러리 한켠에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하게 됐다. 도화지처럼 하얀 이 공간에 있으면 아이디어가 마구 샘솟는다.

내 공간을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어반 텍스트. 도시의 텍스트는 글자만을 의미하는 게 아닌 사람, 문화를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는 제 공간과 닮은 단어다.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석양빛으로 공간이 붉게 물드는 오후 5시 즈음.
나의 취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스팟은 공간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
공간에 꼭 있어야 하는 물건은 차 도구, 와인.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차 선생님. 마음이 어두울 때 마음이 맑아지는 이야기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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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따스하게 들어오는 정오의 아뜰리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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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그린 그림과 아들의 레고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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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을 주는 책과 꽃을 진열하는 선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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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홈 아뜰리에 ‘앤드로잉’ | @anddrawing_

매거진 패션 에디터로 일하다 남편과 함께 지난 2년간 프랑스, 싱가포르에서 생활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홈 아뜰리에를 열었다. “원래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어요. 정신없이 살다 보니 그림은 손에서 놓고 지내다가 우연히 친구의 권유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간 잊고 지냈던 순수한 열정과 행복이 되살아났어요. 외국에서는 그림 그리는 사람을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데 그런 풍경이 신기하고 자극이 됐죠. 한국에도 그런 문화를 전하고 싶어서 앤드로잉을 구상하게 됐어요.” 매일 그림만 그리는 건 아니다. 그림을 그리다 배가 고프면 빵을 굽고, 와인을 마시거나 책을 읽기도 한다. 그림을 통해 사람들과 서로의 삶과 생각을 공유하는 것, 그녀가 이 공간을 만든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내 공간을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나앤드로잉. 육아와 일을 벗어나 이지은이라는 사람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조용히 그림에 집중한 사람들의 모습을 멀찌감치서 감상할 때.
나의 취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스팟은 선반. 그림을 전시하기도 하고, 도서관처럼 아뜰리에에 모이는 사람들끼리 서로 좋아하는 책을 꽂아두며 돌려 읽는다.
공간에 꼭 있어야 하는 물건은 꽃, 식물.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아들. 아들이 설명서를 보지 않고 자기 맘대로 조립한 레고 조립을 사진으로 찍어뒀다가 그림으로 그린다. 나중에 연작시리즈로 완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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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모아온 아끼는 물건들로 공간을 채웠다. 가구는 파리 방브 마켓에서 공수해온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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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시절부터 모아온 인비테이션과 패션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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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쇼룸 겸 카페 ‘유어네임히얼’ | @minj_0727

유어네임히얼의 디렉터 김민정은 매거진 패션 에디터로 일하면서 늘 자신만의 공간을 꿈꿨다. 그 옛날 명품 하우스 브랜드들이 쇼룸 겸 아지트로 부티크를 운영했던 것처럼 옷만 사는 게 아니라 고민 상담도 하고, 삶의 방향도 모색하는 사랑방 같은 살롱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쇼룸 겸 카페 공간인 유어네임히얼을 꾸렸다. 이전에는 매체의 이름 뒤에서 일을 했다면 지금은 내 이름을 전면에 걸고 ‘월간 김민정’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공간 구석구석을 자신의 취향과 아이덴티티로 채우고 있다. 그래서 이곳을 둘러볼 때마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을 얻은 기분이라고. “진짜 제 이름을 찾은 것 같아요. 덕분에 요즘 사는 게 행복해요.”

내 공간을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감성. 이곳에 놓인 모든 물건들이 내 감성을 대변한다.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새벽. 주변 모든 불이 꺼지고 이 공간에서만 빛이 날 때.
나의 취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스팟은 핑크색 월과 에디터 시절 받았던 초대장, 시계, 램프를 올려놓은 선반.
공간에 꼭 있어야 하는 물건은 꽃, 향초, 성냥. 특히 향초의 불이 주는 아늑함을 사랑한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내 공간을 찾는 사람들. 사람들의 옷차림부터 대화 소리까지 모든 게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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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조기와 위빙 작품이 걸린 스튜디오 전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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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위빙&도자기 스튜디오 ‘블루아워’ | @blue_hour_

회사를 다니다가 퇴사와 이직을 반복할 즈음 친한 선배로부터 “너는 진짜 너를 모르는 것 같아”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이 도화선이 되었다. 진짜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브루클린에서 위빙 공방을 하는 여자애들의 기사를 봤다. 예쁜 걸 좋아하는 내 마음을 단숨에 빼앗았다. 단순한 작업 과정이지만 아름답게 완성된 직물과 도자기를 볼 때 마음이 뿌듯하다. 완성품을 개인 SNS에 올렸는데, 신기하게도 사진을 보고 위빙을 배우고 싶다는 사람들의 연락이 꾸준히 늘었다. “수강생이 늘어나서 작년 봄에 이태원 가구거리에 이 공간을 꾸리게 됐어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서 일도 하고 놀기도 하면서 보내요. 전에는 친구들과 만나도 술이나 밥 먹는 게 다였는데, 나만의 공간이 생긴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이곳에 모여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 같아요.”

내 공간을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평온함. 올해 생일에는 혼자 낮에 직조기를 짜며 라디오를 들었는데,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초여름 오전 11시 즈음, 창밖으로 초록색 나뭇잎이 보일 때.
나의 취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스팟은 현관 입구에 놓은 테이블. 아무런 기능 없이 예쁜 물건이나 오브제를 올려놓는다.
공간에 꼭 있어야 하는 물건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스피커, 커피 머신, 스마트폰.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에릭 로메르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