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문화와 예술은 여전히 우리 가까이에서, 그래도 살 만한 세상임을 말한다. 2017년, 우리가 누린 문화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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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나야 나!
많은 사람이 실패할 것이라고 내다봤고, 소문은 뒤숭숭했다. <프로듀스 101 시즌 2> 이야기다. 어디 한번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나온 시즌 1의 여자 연습생과 달리, 첫 회에 비춰진 남자 연습생들은 허술하고, 부족했다. 그러나 거꾸로 바로 그 점이 드라마가 되었다. 서로 좋아하고 격려하며, 부족함을 인정하고 노력하는 연습생의 풋풋한 모습에 시청자들은 어느덧 ‘국민 프로듀서’가 되었다. 투표용 앱을 까는 것은 물론 주변 포섭에 나선 그들에게는 ‘데뷔시켜주고 싶은 남자’가 있었던 것. 이 뜨거운 열기는 매번 롤러코스터 같은 순위 변화를 만들어내며 ‘국민 프로듀서’를 신경쇠약 직전으로 몰아갔다. 모두 알다시피 시즌 2는 시즌 1을 뛰어넘는 초대박으로 막을 내렸다. 시즌 1에서 1위를 차지한 전소미보다 시즌 2에서 9위를 차지한 황민현의 득표수가 더 높을 정도다. 최종 1위로 선발된 강다니엘의 득표수는 무려 157만 표. 그렇게 11명이 선발되어 그룹 워너원이 탄생한다. 화제의 프로그램과 국프가 만들어낸 워너원의 팬덤은 그야말로 강력했다. 데뷔 앨범 <To be One>은 총판 52만 장을 기록했고, 이후 리패키지 앨범을 발매하며 데뷔 앨범으로는 이례적으로 100만 장을 넘겼다. 해피엔딩은 워너원의 몫만은 아니었다. 아쉽게 탈락한 연습생들은 사무엘처럼 개인 활동에 나서거나, MXM, JBJ, 레인즈, 뉴이스트w 등 새로운 그룹 또는 유닛을 결성해 활동 중이다. 결과적으로 시즌 2에 출연한 연습생들의 절반은 어떤 형태로든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명실상부 올해의 문화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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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 있는 흥행 공식
현실을 반영한 스릴 넘치는 드라마가 많았다. tvN <비밀의 숲>은 방영 전부터 배두나, 조승우 등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검사, 정의롭고 따뜻한 형사가 검찰 스폰서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는 내용. 건조한 무드와 짜임새 있는 스토리, 안정감 있는 주조연의 연기로 좋은 평을 받았다. 범죄 스릴러물을 연달아 편성했던 OCN의 흥행도 멈추지 않았다. 90년대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다시 해결해나가는 범죄 수사물 <터널>, 범죄 현장의 골든 타임을 사수하는 112 신고센터 대원들의 기록을 그린 <보이스>, 사이비 종교 집단에 빠진 피해자를 구하기 위한 고군분투를 담은 <구해줘> 등이다. 이 밖에도 SBS <피고인>, <귓속말>, KBS <추리의 여왕> 등이 있었다.

 

예능의 순간 5
SBS 미운 우리 새끼 39회 | 22.9%
MBC 무한도전 – 너의 이름은 1부 515회 | 15.4%
MBC 라디오스타 – 안재욱 외 461회 | 9.1%
KBS 해피투게더3 – 조인성 501회 | 7.9%
JTBC 아는 형님 – 싸이 75회 |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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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유행어
열 마디 말보다 강렬한 한마디의 힘을 보여준, 올해의 유행어.

1 “내 마음속에 저~장”_박지훈 워너원 박지훈이 유행시킨 말로 양손의 검지와 엄지로 네모 모양을 만들며 윙크하는 게 포인트다. 마음속에 저장하고 싶을 만큼 좋아한다는 의미로, 연예인들의 단골 포즈가 됐다.
2 “스튜핏!” “그뤠잇!” _김생민 데뷔 25년 만에 전성기를 누릴 수 있게 해준 말이다. <김생민의 영수증>에서 김생민은 어리석은 소비를 하는 사람에게는 “스튜핏”, 현명한 소비를 하는 사람에게는 “그뤠잇”이라고 외친다. 혀를 굴리며 과장되게 발음하는 것이 포인트다.
3 “슈어, 와이 낫?”_배정남 대표적인 패셔니스타이자 모델인 배정남은 <무한도전> 등에 출연하며 순박한 면모를 보였다. 사투리 억양까지 가미되면 더욱 차지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의욕적으로 내뱉은 한마디가 그를 설명하는 말이 됐다.
4 “아주 칭찬해~”, “이런 얘기, 저런 얘기”_강호동 바쁜 한 해를 보낸 만큼 다양한 유행어를 탄생시켰다. “아주 칭찬해”는 <아는 형님>에서 이수근의 재미있는 멘트를 칭찬하며 시작한 말. “이런 얘기, 저런 얘기”는 <한끼 줍쇼>에서 한 끼를 얻어 먹기 위해 시민들을 설득하면서 반복적으로 사용한 말이 유행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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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순위 5
1 S BS 피고인 | 27 %
2 TVN 도깨비 | 20.5%
3 K BS 2T V 김과장 | 17.2%
4 K BS 2T V 쌈마이웨이 | 13.8%
5 J T BC 품위있는 그녀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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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관찰 예능을 넘어서, 연예인들의 일상을 더욱 소상히 엿볼 수 있는 생활 예능이 대세였다. 배우 윤여정과 정유미 그리고 이서진이 발리의 한 섬에서 식당을 운영한 tvN <윤식당>은 화제성과 흥행성을 두루 갖춘 예능이었다. 4년 만에 가수로 컴백하며 소탈한 소길댁의 면모를 보여준 이효리와 그의 남편 이상순이 출연하며 화제를 모은 JTBC <효리네 민박>은 실제 이들 부부가 사는 공간을 보여주며 설득력을 더했다. 추자현과 그의 남편 우효광의 알콩달콩한 결혼 생활을 담은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 신혼 부부의 일상을 보여주는 tvN <신혼일기>, 시즌제로 방송되고 있는 <삼시세끼>도 꾸준하다. SBS <내 방 안내서>, <살짝 미쳐도 좋아> 등 생활을 담은 예능의 인기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나, 이제 진부하고 지겹다는 시선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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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심 있는 드라마
끝을 향해 갈수록 시청자들의 눈길을 끈 드라마가 있다. 김희선, 김선아가 주연을 맡은 JTBC <품위 있는 그녀>가 본격적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은 건 8회부터였다. 박복자(김선아)가 상류층에 입성하면서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며 시청률 6.3%대(닐슨 코리아 기준)를 기록했고, 시청률(12.1%) 정점을 찍으며 마무리했다. 막장 드라마라는 논란을 뒤로하고 마지막 회 시청률 24%를 기록한 68부작 SBS <언니는 살아 있다> 역시 유종의 미를 거두며 김순옥 작가의 진가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시청률 8%대로 무난하게 출발했지만, 종방을 향해 갈수록 시청자들의 눈을 붙잡은 MBC <역적>도 빼놓을 수 없다. 시청자를 만족시키는 연출과 대본,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웰메이드 사극의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높은 기대감으로 시작해 주춤하다 마침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도 있다. SBS <귓속말>이다. <추적자>, <펀치> 등을 쓴 박경수 작가의 작품으로 기대가 컸다. 그에 비해 초반 시청률은 저조한 편이었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멜로까지 가미되며 최고 시청률 20.3%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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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논란과 화제 사이에 여전히 뜨겁고, 강렬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명과 암.

1 Mnet <고등래퍼> LIGHT 잠재력 있는 청소년 래퍼들의 사연과 출중한 실력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DARK 출연자들의 인성과 과거 행실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다.
2 JTBC <믹스나인> LIGHT YG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한 한동철 PD의 첫 작품이자, 양현석 대표가 직접 찾아가 스타를 발굴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모았다. DARK 양현석 대표가 20대 후반의 출연자에게 나이를 두고 독설을 퍼붓는 장면으로 논란이 됐다.
3 KBS2 <더 유닛> LIGHT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라는 프로그램 취지를 제대로 살린 방송으로 시작이 좋다. DARK 심사위원이 출연자들에게 칭찬, 독설 등을 하는 뻔한 포맷이 식상하다는 평이 있다.
4 JTBC <팬텀싱어2> LIGHT 시즌 1에 이어 참가자들의 실력에 부응하는 시청률로 시즌 3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DARK 출연자들을 향한 시청자와 심사위원의 불일치한 의견과 출중한 실력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는 무대 음향 시설에 대한 불만이 표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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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우리 안의 김지영
<82년생 김지영>을 보자. 조남주 작가가 쓴 작품의 주인공은 딸 하나를 둔 서른네 살 여성 김지영이다. 한국에서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경험했고 한국 회사를 다니다 한국 남자와 결혼한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 그녀에게 죄다 일어난다. 그런데 그 삶이 꽤나 고단하다. 이 땅에서 ‘평범한 여성’으로 사는 것의 괴로움을 써 내려간 이 소설은 억눌린 여성들의 가슴을 두드렸고 종이책만 39만 부가 판매되며 명실상부한 올해의 책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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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의 행방
일본에서 태어나 6세 때 영국으로 이주한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올해 노벨문학상의 수상자가 되었다. 1989년 <남아 있는 나날>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스타덤에 오른 그는 이후에도 왕성하게 활동했으며, 이 작품은 머천트 아이보리 사가 영화화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나를 보내지 마> 역시 영화화되었다. 노벨상위원회는 ‘감정에 강하게 호소하는 소설로,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우리의 환상 뒤에 숨겨진 어둠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밝혔다. 또한 가즈오 이시구로는 수상 기자회견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보다 먼저 문학상을 받게 되어 미안하다”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이로써 아름다운 작품이 대중에게 더 가까이 가게 되었다.

상복이 넝쿨째
올해도 마땅한 작품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문학상인 <대산문학상>. 시/소설/희곡 부문 수상작은 외국어로 번역 출판해 해외에 소개하며,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공헌한다는 취지다. 올해는 시 부문은 서효인의 <여수>, 소설 부문은 손보미의 <디어 랄프로렌>이 상을 차지했다. <제41회 이상 문학상>은 구효서 <풍경소리>에 대상을 안겼고, <제17회 황순원 문학상>은 이기호 <한정희와 나>에게, <제11회 김유정문학상>은 황정은의 <웃는 남자>에 돌아갔다.

소설의 귀환
‘판권 전쟁’을 일으키곤 하는 하루키가 오랜만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표했다. 김영하 역시 <오직 두 사람>을 발표하며 소설의 힘을 보여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이후 7년 동안 집필한 작품으로 모두 일곱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오직 두 사람> 속 주인공들은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그 사이 세월호가 있었다. 예컨대 이 책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잃어버린 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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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끝나지 않은 미인도 유감
25년 동안 이어진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은 올해에도 끝나지 않았다. <미인도>는 진품이라고 주장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이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지만 지난 11월 3일, 1심 무죄판결을 받으며 논란은 재점화될 예정이다. 천경자 화백의 유족은 프랑스 르미에르 감정단이 낸 보고서를 근거로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생전 천 화백은 “작품은 내 혼이 담겨 있는 핏줄이나 다름없다.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나? 나는 결코 그 그림을 그린 적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 화랑협회 감정위원회에서는 진품이라고 판결했다. 이 작품이 유독 위작 논란에 휩싸인 이유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집에서 압류된 물품 중 하나로, 그를 부정축재자로 몰아야 했던 역사적 사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예술을 예술적 접근이 아닌, 기득권 싸움의 희생자로 치부했다는 점에서 논란은 쉽게 끝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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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2 <하이라이트> 3 <오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구나>

패션과 아트
패션 하우스 루이 비통, 까르띠에, 에르메스, 샤넬 등은 패션과 예술이 한 끗 차이라는 것을 보여준 전시를 선보였다. 루이 비통은 지난 6월<오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구나>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라는 제목의 전시를 열었다. 2015년 파리부터 순회 중인 전시로 여행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제품의 아카이브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1854년부터 ‘여행 예술’을 표방해온 브랜드답게 규모와 기획력이 돋보였다. 론뮤익, 이불, 차이 구어치앙 등 세계적인 작가 25명이 참가한 까르띠에 <하이라이트> 전시도 빼놓을 수 없다. 아시아 최대 규모로 선보인 까르띠에 현대미술 재단의 컬렉션은 브랜드와 예술이 얼마나 밀접한지를 단번에 보여주었다. 리모델링 후 다시 오픈한 메종에르메스 도산파크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열린 전시에 경의를 표하는 젊은 예술가들이 전시 <오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구나>를 선보였다.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칼 라거펠트의 감성과 개성을 볼 수 있는 <마드모아젤 프리베>도 있었다. 샤넬을 대표하는 ‘넘버5’ 향수부터 우아한 옷, 주얼리 등 브랜드의 역사를 둘러볼 수 있는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