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더 이상 비누를 쓰지 않고 얼굴에 세균덩어리를 바른다면 어떨까? 광채 나는 피부를 얻기 위해 에디터가 직접 박테리아 가 가득한 크림, 미스트, 세럼을 사용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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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수많은 박테리아로 이루어진 미생물의 집합체이고 이 체내 박테리아들이 인간의 소화와 건강 유지를 돕는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늘 1만여 가지의 박테리아에게 몸을 빌려주는 셈이다. 또한 박테리아는 피부가 깨끗하고 광채가 나도록 돕는다고 한다.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그래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박테리아가 피부를 아름답게 가꿔준다면 이 친구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건 어떨까라고. 그렇게 나는 익숙하지 않은 미생물 화장품을 2주간 써보기로 결정했다. 꼬질꼬질하던 과거의 우리 선조들에겐 피부를 자율적으로 관리하고 평화 상태를 유지해주는 박테리아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너무 자주 씻느라 필요한 유분이나 박테리아마저 모두 씻어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피부 생태계의 평화는 깨지고, 그 결과 건조함, 가려움, 홍조, 여드름 같은 혼란스러운 무정부 상태가 도래하게 된다. 2주간 실험해보기로 마음먹었으니 박테리아가 조금 들어 있는 화장품을 쓰면서 대충 하기는 싫었다. 제대로 실험해보기 위해 실제 박테리아가 포함된 제품을 선택했는데 일부는 살아 있는 유산균을 포함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비누도 없고 후퇴도 없다!’는 각오였다. 아침마다 라플로레(LaFlore)의 프로바이오틱 데일리 디펜스 모이스처라이저를 사용했다. 효모 추출액과 발효 원료를 사용한 제품으로 가벼웠고 유분감이 강하지 않았다. 빠르게 피부에 흡수되는 점도 좋았다. 내용물은 핑크빛을 띠었는데 색소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적갈색을 띠는 피크노제놀이라는 항산화제가 들어 있어 장밋빛이 된 것이었다.
또 이틀에 한 번씩은 마더 더트(Mother Dirts)의 에이오플러스 미스트(AO+ Mist)를 사용했다. 애써 뿌린 박테리아 친구들이 사라질까 거품이 많은 기존의 보디 클렌저 대신 마더 더트의 무향 보디 클렌저를 쓰기 시작했다. 제품 설명에 따르면 미스트 속 암모니아 산화 박테리아가 땀 속의 암모니아를 유익한 산화질소와 아질산염으로 산화시킨다고 돼 있다. 화장품 회사에서는 괜찮다고 했지만 과연 박테리아 친구들에게 나의 은밀한 부위까지 맡겨도 될지 내심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화장품 용기에서 바로 거품 형태로 나오는 클렌저나 미스트는 모두 순해 보이기 그지없었지만 독한 비소도 겉으로는 무해해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결의를 다지며 사용해본 결과, 다행스럽게도 비뇨기 감염이나 그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심지어 제품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훌륭했다. 미스트는 쿨링감이 좋고 산뜻했으며 보디 클렌저도 가볍고 거품이 잘 났다. 아무 향도 나지 않아 샤워의 즐거움은 줄어들었지만 그 외의 불만은 거의 없었다.
가장 중요한 나이트 케어를 위해 선택한 제품은 라플로레의 프로바이오틱 클렌저, 프로바이오틱 세럼 컨센트레이트. 두 제품 모두 사용감이 산뜻하고 편안해서 매우 놀랐다.
하지만 첫 요가 수업 후 문제가 생겼다. 그렇다. 냄새가 났다. 땀이 많이 나는 편도 아니고 땀이 송골송골 맺히더라도 겨드랑이 냄새가 신경 쓰인 적은 많지 않았다. 계속해서 미스트를 뿌리며 마법같이 냄새가 사라지길 바랐지만 내 바람이 무색하게 고약한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후 한 주 동안은 내가 겨드랑이 냄새가 나는 향수를 뿌린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미스트는 계획보다 며칠 일찍 그만두었다. 이유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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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사람 피부마다 지닌 박테리아가 다 다를 텐데 모두를 충족할 수 있는 하나의 박테리아 제품이 있을 수 있는가? 과학자들이 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연구를 진행 중이다. 뉴욕의 피부과 의사 덴디 엥겔만은 “어떤 박테리아 종류가 화장품에 들어가는지는 중요하다”고 밝혔다. 엥겔만 의사는 여드름 환자들을 대상으로 장내 박테리아를 정상화하기 위해 유산균 복용을 처방한다. 그녀는 “실제로 장, 뇌, 피부가 한 축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유산균은 단순히 마케팅 수법은 아니에요. 물론 장내 건강에 유익한 균이라고 해서 피부에도 좋다고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요”라고 덧붙였다. 또 하나 신경 쓰이는 문제가 있다. 아무리 엔테로코쿠스 페칼리스(E. Faecalis) 같은 유산균이 피부에 좋다고 한들 어느 누구도 얼굴에 바르고 싶진 않을 것이다. ‘페칼’이라는 글자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배변에서 나오는 유산균이기 때문이다.박테리아 화장품을 사용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좋은 피부를 위해서는 무엇을 하는가만큼이나 무엇을 하지 않는가도 중요하다. 각질 제거를 너무 자주 하거나 강한 클렌저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기존의 피부 관리 방법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개선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나의 경우는 그랬다. 물론 이것이 유산균의 효과일 수도 있고 아니라면 더 이상 피부를 박박 밀지 않았기에 좋아진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어쩌면 셀 수 없이 많은 신상화장품이 나오고 모두 사용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는 현대의 여자들에겐 이런 조언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조금 게을러도 약간 더러워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