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컵’이라는 말에 솔깃했다면, 당신은 생리컵을 사용해봤거나 최소한 생리컵에 대해 아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탐폰도 안 써본 한 여성이 ‘골든컵’을 찾기 위해 분투한 생생한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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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뷰티 에디터 김지수는 ‘생리컵이라는 신세계<’(얼루어 코리아> 8월호) 기사를 쓰고 있었다. “생리컵 어때?”라는 질문 공세를 받은 그녀는 선배와 동료들에게 넉넉히 사둔 생리컵을 나눠주었는데, 그렇게 해서 나는 ‘디바컵’이라는 생리컵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지난여름 ‘엉덩이 발진’만 아니었다면 문제의 디바컵을 쓸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름이라는 계절과 8월 창간기념호의 만남은 뜻밖의 대재앙을 가져왔다. 자정이 넘도록 자리에 꼬박 앉아 있던 내 엉덩이 여기저기에 발진이 나기 시작했다. 열흘을 넘긴 야근과 마침 덮쳐온 대자연의 파도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내 엉덩이는 심한 발진으로 뒤덮이고 말았다. 여름이라 그런지 이 발진은 잘 낫지도 않았다. 그 고통스러운 기억은 다신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생리가 끝난 후에도 고통은 계속되었다. 기저귀 발진에 특효라 신생아 가정의 필수품이라는 비판텐 크림도 모자라 스테로이드 연고까지 바른 후에야 간신히 발진이 가라앉았다. 엉덩이에 생리대 테두리 모양으로 자국이 남았으니, 그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여름은 한창이었고 또다시 발진 참사를 겪을 순 없었던 나는 디바컵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생리컵에 도전하다
서랍 속에서 꺼내본 디바컵은 너무 커서, 과연 이게 몸속에 들어갈까 싶어 무서움이 앞섰다. 그러나 이 디바컵은 초보자용으로 매우 좋다는 평이 자자한 제품이다. 생리가 시작될 조짐이 느껴지자, 나는 다시 한번 ‘생리컵이라는 신세계’ 기사를 정독했다. 생리컵에 대한 기본 정보는 거기에 다 있었다. 그리고 끓는 물에 디바컵을 넣고 소독을 하면서, 열심히 되뇌었다. 생리컵이야말로 나를 구원할 거야. 누구나 그렇지만, 생리컵을 처음 착용하는 과정은 비명과 함께 시작된다. 처음에는 착용법을 제대로 모르는 데다 생리컵 자체가 두렵고 어렵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럽다. 처음 착용하는 데 30분쯤 걸렸다. 그런데 처음만 그랬다. 두 번째는 10분도 걸리지 않았고, 그 다음부터는 넣는 것은 그다지 문제가 아니었다. 생리컵은 몸속에서 잘 펴져 질 내벽에 안착하는 것이 중요한데, 디바컵은 탄성이 좋기 때문에 넣기만 하면 알아서 잘 고정된다. 초보자용으로 적합한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 아닐까 한다. 여러 생리컵 사용자와 마찬가지로 넣는 것보다 빼는 것이 더 큰일이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이 생리컵이 빠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있을 텐데,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화장실에서 30분간 동동거리면서 울먹였다. 자고 일어나면 생리컵이 잔뜩 올라가 손잡이가 잘 만져지지 않는다. 그런 경우엔 샤워를 하거나, 출근 준비를 하면서 움직이면 거짓말처럼 내려온다. 그리고 생리컵을 넣을 때나 뺄 때, 숨을 참지 말고 자연스럽게 호흡할 것! 긴장하면 잘 넣어지지도 않고, 잘 빠지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호흡하며, 릴랙스. 사실 사용법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한번 익히면 생리컵을 쓰는 건 일도 아니다. 생리컵은 대단히 만족스러운 물건이었다. 한여름의 이 뽀송뽀송한 엉덩이라니! 몇 번 시도해본 탐폰은 늘 실패로 끝났는데, 오히려 내겐 탐폰보다 생리컵이 쉬운 듯했다. 다만 디바컵은 이물감이 심해서 나와는 잘 맞지 않았다. 너무 단단하다는 것이 이유일까? 아쉽지만 디바컵은 내게 ‘생리컵’에 대한 유용성만 확인해주는 것으로 임무를 다한 듯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내게 꼭 맞는 생리컵, 일명 ‘골든컵’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생리컵 쇼핑에 나서다
틈틈이 생리컵을 판매하는 사이트를 오가며 다음 구입할 생리컵을 물색했다. 기준은 디바컵. 디바컵은 탄성이 좋지만 너무 딱딱했다. 디바컵보다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소재를 원했다. 크기는 그만하면 적당한 듯했다. 다음으로 구입한 것은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기로는 최고라는 슈퍼제니. 영국 사이트에서 주문한 슈퍼제니는 인천항에 물류창고가 있나 싶을 정도로 일찍 도착했다. 원더우먼 같은 여성 슈퍼히어로 일러스트가 그려진 박스는 아주 쿨했다. 여느 생리컵처럼 작은 파우치와 함께 문제의 슈퍼제니 생리컵이 등장했다. 슈퍼제니를 손으로 눌러보았다. 디바컵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정말이지 소프트했다! 그러나 골든컵은 그렇게 쉽게 만나지는 게 아닌 듯했다. 슈퍼제니의 부드러움은 너무나 대단했지만, 대신 단점이 있었으니 몸속에 딱 맞게 착용하기가 어렵다. 디바컵은 탄성이 좋아서 사용자가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팡’! 소리를 내면서 안착하는 경우가 많지만, 슈퍼제니는 대충 요령을 알고 있는 나도 쉽지 않았다. 일단 성공한다면, 전혀 이물감이 없으며 크기도 적당해 생리량이 보통인 사람이라면 12시간 정도 교체하지 않고 착용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출근을 해야 하는 회사원이기에 ‘펴져라 !펴져라!’를 외치며 슈퍼제니를 어르고 달랠 시간이 부족했다. 아깝지만 슈퍼제니는 실버컵으로 남겨둘 수밖에. 교체용으로 잘 보관해둬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다음 미션을 정했다. 슈퍼제니만큼 부드러울 것. 그러면서 윗부분은 탄력이 있을 것.

 

쇼핑은 계속된다
이쯤 되니 다시는 패드를 사용하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사실 하루 두세 번 착용하는 과정만 아니라면, 생리컵은 생리를 한다는 자체를 잊게 해줄 만큼 편하다. 왜 학교에서는 탐폰과 생리컵의 사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왜 한 달에 1주일은 생리를 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을까? 한여름, 생리 이틀째날 10시간의 야외 촬영을 하던 기억. 장거리 비행기에서 끊임없이 화장실을 들락거리던 날들이 떠올라 억울해졌다. 생리컵을 판매하는 사이트에는 각국에서 제조한, 정말이지 다양한 생리컵이 있었다. 대체로 비슷한 형태지만 항아리처럼 생긴 페미사이클 같은 남다른 것도 많다. 또한 해면이나 생리팬티 같은 낯선 생리용품도 판매하며, 생리컵 전용 세정제를 판매하기도 한다. 늘 패드형 생리대만 사용해온 나는 몰랐던 세계다. 이번에는 두 개를 한꺼번에 주문하기로 했다. 대중적이면서도 다양한 모델을 구비한 독일 브랜드 메루나 소프트S와 덴마크 브랜드 오가니컵이 그것이었다. 오가니컵은 오가닉 코튼으로 만든 파우치가 딸려 있고, ‘오가닉 실리콘’으로 되어 있다는 설명. 실리콘이 ‘오가닉’이라니, 다소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주문. 메루나는 2주 넘게, 오가니컵은 한 달 후 배송되었다. 번갈아 착용한 이 컵들 중 내 골든컵은 있을 것인가? 메루나는 슈퍼제니를 통해 조정한 미션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었다. 오가니컵은 부드러운데, 길이가 맞지 않는지 약간의 이물감이 느껴졌다. 메루나의 몸통은 슈퍼제니만큼 부드럽지만, 맨 위 테두리는 약간의 탄력이 있었다. 그래서 펴지는 데 문제가 없었고, 착용 후에도 이물감이 없어서 안전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해피엔딩이었을까? 안타깝지만 골든컵이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자신 있게 스몰 사이즈를 선택했는데, 이 제품은 정말 작아서 길이가 다소 짧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게는 M사이즈가 맞았던 걸까? 메루나는 생리컵 중에서도 방대한 라인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길이만 해도 아주 짧은 쇼티, 스몰, 미디엄, 라지가 있고 단단함에 따라 소프트, 클래식, 스포트가 있다. 또한 손잡이가 아예 없는 것, 스탬형, 고리형, 볼형이 있다. 여기에 색깔의 조합까지 따로 있어 수십 종이나 된다. 때문에 다양한 조건을 가진 여성이라면 웬만하면 이곳에서 자신에게 맞는 생리컵을 조정해가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골든컵!
그렇게 해서 찾아낸 지금 나의 골든컵은 메루나 소프트M 볼타입이다. 각자의 몸은 너무나 다르기에, 직접 착용해보지 않으면 어떤 게 내 골든컵인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적어도 2~3개의 생리컵은 사용해봐야 자신에게 딱 맞는 생리컵을 찾을 수 있다. 몇 달이 지난 동안 생리컵은 꽤나 익숙해졌다. 그사이 일명 ‘생리대 파동’이 터졌다. 생리를 한다는 고통도 만만치 않은데, 이러한 외부 요인은 그 과정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나마 앞으로는 패드형과 생리컵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위안 삼아야 하는 걸까. 이렇게 패드형 생리대와는 더욱 멀어지면서, 나는 계속 탐색을 해보기로 했다. 세상엔 정말 많은 생리컵이 존재했다. 그러므로 오늘의 골든컵과 내일의 골든컵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지금도 다른 ‘컵’ 이 배송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