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은 무엇이든 다 하겠다는 무모한 초심을 잃었다. 대신 잘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하겠다는 선명한 초점을 얻었다. 배우 김민석의 자리는 무한 증식되고 있다.

재킷은 에트로(Etro).

재킷은 에트로(Etro).

 

이른바 시청률 대박이 난 드라마에는 시청자들의 눈길을 끄는 조연이 있다. 김민석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KBS <태양의 후예>의 ‘아기병사’라는 별칭을 얻으며 얼굴을 알렸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이유가 결코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여야 할 때, 배우 김민석은 영민한 선택을 했다. 성급하게 주연이 되기보단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조연이 되는 편을 택했다. SBS <닥터스>와 <피고인>에 출연하며, 명장면 하나씩을 꼭 남긴 신스틸러가 된 것. 최근 종영한 TJBC <청춘시대2>에서도 그는 어김없이 조연이었다. 키 큰 여자 조은(최아라)과 로맨스를 벌이는 키 작은 남자 서장훈. 이 둘은 그 어느 드라마에서도 보기 힘든 ‘키 큰 사랑’을 보여주었다. <청춘시대>가 끝나자마자 tvN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심원석이 되어 나타났다. 7년 동안 한 여자만 바라보고 연애한 순정남이다. 김민석은 쉼 없이 스스로를 입증한 배우다. 그런 그의 자신감은 근거가 충분하다.

 

어제 <이번 생은 처음이라>가 첫 방송을 했어요. 본방 사수했어요?
네. 대본보다 더 재미있게 나온 것 같아요.

출연한 드라마 첫 방송을 보면 긴장하는 편인가요?
연기할 때 신경 많이 쓴 장면 빼고는 시청자의 입장으로 즐겁게 봐요. 평소에도 긴장은 잘 안 해요.

<청춘시대2>, <닥터스>, <피고인>, <태양의 후예> 등 흥행 드라마에 자주 출연하면서 ‘흥행 요정’이 됐어요.
<태양의 후예> 전까지는 오디션을 봤는데, 그 이후로는 일이 많이 들어왔어요. 작품 하면서 시청률을 신경 쓰진 않았어요. 대본을 봤을 때, 흐름이 안 끊기고 재미있으면, 방송에서도 더 재미있게 나오더라고요.

평소에 드라마를 많이 보는 편인가요?
지금은 덜 봐요. 드라마, 영화를 보는 게 일이 돼버렸거든요. 작품을 전체적으로 보지 않고, 카메라 각도가 이렇게 들어오면 어떻게 표정을 지어야 할까 등을 계산하면서 보니까 스트레스 받아요. 그래서 요즘엔 시간 나면 책이나 만화책을 봐요. 최근에는 <칼의 노래>를 읽었어요.

좋아하는 장르가 있어요?
딱히 없어요. 저는 오늘 눈 떴을 때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이에요. 책이나 만화책도 그때마다 보고 싶은 걸 봐요.

최근에 즉흥적으로 한 행동은 무엇인가요?
늘 즉흥적이에요.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카페에 가서 커피를 사 마신 것부터 오늘 이 인터뷰를 하겠다고 한 것까지 모두 다요. 사실 요즘엔 일만 하니까 즉흥적으로 저지른 일이 없어요. 이번 드라마가 끝나면 여행을 가든 뭐라도 하겠죠?

한 인터뷰에서 얼굴이 알려지면서 술버릇이 바뀌었다고 말했어요. 유명해지면서 인간 김민석이 가지고 있던 야생적인 매력이 사라진다는 점이 아쉽지 않아요?
데뷔 전, 고향에 있을 때는 그런 날것의 매력이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연예계 데뷔를 하고 나서도 그걸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점점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친구들과 있을 때만 진짜 김민석이 되는 것 같아요. 특별히 의도한 건 아닌데 자동 스위치처럼 그렇게 돼요.

<청춘시대2>의 서장훈은 매력적이지만 당신의 키를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줘야 하는 인물이기도 해요. 그 점 때문에 망설여지지 않았나요?
서장훈이라는 인물이 작은 키를 콤플렉스로 느꼈다면 안 했을 텐데 그렇지 않았어요. 저 역시 키에 대한 아쉬움은 없거든요. 무엇보다 대사가 흥미롭고 신선했어요. <청춘시대>가 남자 캐릭터의 롤이 큰 건 아니지만 나와 서장훈이 만나면 어마어마한 걸 보여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물론 시즌1을 좋아해주셨던 분들이 새로 투입된 인물을 보며 실망하실까봐 걱정은 했죠. 조은 역을 맡은 최아라 씨보다 먼저 캐스팅돼서 저는 은이를 기다렸어요. 결정된 이후론 툭하면 전화해서 수다 떨다가 호흡 맞춰보고, 같이 카페 가서 대본 연습도 했어요. 이 작품은 여러모로 저에게 의미가 있어요.

어떤 점이요?
일단 이전에는 제 이상형의 범주에 키 큰 여자가 없었어요. 한국은 유독 남녀 키 차이에 민감하잖아요. 나란히 섰을 때 남자의 입이 여자의 이마에 닿아야 한다는 둥 그런 말 하잖아요. 이제 그런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이성 배우와 연기 호흡을 맞추며 케미스트리를 발산할 수 있다는 걸 인정받은 것 같아 자신감도 많이 생겼죠.

키 때문에 신발에 깔창을 넣거나, 굽 높은 신발을 신어본 적 있어요?
많죠. 그런데 이 작품을 통해 다 털어냈어요. 극에서도 샌들, 슬리퍼만 신었어요. 일부러 옷도 후줄근하게 입었죠. 서장훈을 동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청년이자 유쾌한 동네 오빠로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이 친구는 절대 옷을 잘 입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누더기 같은 옷을 준비했어요. 가끔 너무 심한 옷차림도 있었지만요.(웃음) 실제 저와 많이 닮았는데, 제가 서장훈보다는 옷을 잘 입는 것 같아요.

 

스웨이드 셔츠는 오디디너리 피플(Ordinary People). 팬츠는 힐러쉬(Healush).

스웨이드 셔츠는 오디디너리 피플(Ordinary People). 팬츠는 힐러쉬(Healush).

“시켜만 주시면 뭐든 다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던 시절은 지났죠.

이제는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잘 골라 보여드려야 하는 시기니까 이전보다 고민을

더 많이 해요. 하지만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진 게 없어요.”

 

셔츠는 SWBD.

셔츠는 SWBD.

 

코트는 에트로.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슈즈는 유니페어(Unipair).

코트는 에트로.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슈즈는 유니페어(Unipair).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심원석이라는 인물은 어떻게 접근했어요?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인물과 저의 공통점을 먼저 찾는 편이에요. 심원석은 7년 동안 양호랑(김가은)이라는 여자와 연애를 했어요. 실제로 저는 3년 반이라는 시간을 한 여자와 연애한 적이 있는데, 서로를 너무 잘 안다는 생각에 익숙해지는 지점이 있잖아요. 대본을 보면서 그때 생각이 나면서 갑자기 너무 하고 싶어졌죠. 여자친구에게 늘 지는 남자라는 점도 저와 비슷했고요. 촬영 기간이< 청춘시대>와 맞물려서 부담스러웠지만 남 주기 싫은 역할이었어요. 자신감 30%, 욕심 70%로 하게 된 거죠.

원래 욕심이 많은 편이에요?
물욕은 없는데 이상한 것에 욕심이 있어요. 안 해본 건 무조건 해봐야 하고, 나쁜 일만 아니면 겪을 일은 다 겪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예인 같다’ ‘연예인 같지 않다’라는 말을 많이 하던데, 연예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정형화된 연예인은 말을 아끼고, 사람들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려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평소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담을 쌓는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들고 있는 패를 상대에게 다 보여주는 게 더 편해요.

주변에서 변했다는 소리 들어본 적 있어요?
친구들에게 밥이나 술 사 줄 때 들어요. 저는 돈은 버는 만큼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난한 시절에도 항상 저를 더 가난하게 만들었죠. 백만원 벌면 백만원 쓰고, 만원 있으면 그걸 다 썼어요. 대신 최대한 빚은 지지 않았죠. 미래를 걱정하며 살고 싶지 않아요. 사람이 재산이라고 생각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좋아요. 제가 번 걸로 사람들과 나눠 쓰고 행복하면 된 거죠. 그런데 누가 보면 되게 부자인 줄 알겠어요. 과거에 비해 여유로워졌을 뿐이에요.(웃음)

유명해졌으니 친구들에게 술을 마음껏 사 줄 수 있겠네요?
그렇죠. 그동안 사람들에게 베풀 기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 친구들에게 밥을 사 주고, 술을 사 주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당신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사람들이 당신에게 보고싶은 모습 사이에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건가요?
중간 지점을 찾겠죠. 제가 가져가고 싶은 것과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이 겹쳐진 작품이 <피고인>의 성규였던 것 같아요.

작품마다 변신하고 싶어요?
아뇨. 특별히 변신하지 않아도 저는 아직 보여드리지 못한 게 너무 많아요. 2015년부터 드라마를 계속하고 있어서 가끔 메모리가 꽉 찼다고 느껴지긴 하지만요. 제 그릇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시청자들에게 외면받거나 질타 받으면 그런 마음이 들 것 같아요.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어요?
“시켜만 주시면 뭐든 다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던 시절은 지났죠. 이제는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잘 골라 보여드려야 하는 시기니까 이전보다 고민을 더 많이 해요. 하지만 제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진 게 없어요.

사교성이 좋은 배우로도 통하죠?
촬영 현장에서 친해지지 않으면 연기하는 게 무척 피곤하고 힘들게 느껴지잖아요. 저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메소드과’ 연기자는 아닌 것 같아요. 함께 일하는 사람과 항상 소통해야 해요. 선배님들과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배운 것 같아요.

<슈퍼스타K 시즌3>에 출연했었죠. 가수에 대한 꿈은 접은 건가요?

네. 동네 노래방 가면 노래 잘한다는 말을 듣는 편이지만, 본격적으로 가수가 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드라마 OST 작업 정도는 할 수 있겠죠.

주변에 당신을 귀엽다며 좋아하는 여자가 많아요.
실제로 보면 정 떨어질걸요?(웃음) 드라마에서나 귀엽죠. 낯도 많이 가려서 이미지와 다르다는 말 많이 들어요. 항상 열심히 살고, 밝게 웃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그런 모습은 제가 맡은 캐릭터로 풀었어요. 촬영장에서는 말을 많이 하는데, 집에서는 말을 안 해요.

개그맨들은 밖에서는 사람들을 웃기지만, 정작 집에 들어 와서는 말이 없다던데 비슷한 건가요?
맞아요. 그분들 정말 대단한 거예요.

갑자기 든 생각인데, 일찍 결혼할 것 같아요.
그런 말 많이 들어요. 스물두 살 때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다 포기하고, 모은 돈이랑 대출받아서 결혼하고 싶었어요. 그때의 정신연령과 지금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지금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할 수 있어요?
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일단 그런 사람이 있어야 확실히 알것 같아요.

본인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해요?
솔직함? 서장훈과 저의 접점이 그런 거였어요. 오글거리긴 하지만 “나는 너 좋아하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라고 말하고 밀당하지 않는 거요. 문자하는 것보단 통화가 좋고, 통화보단 만나는 게 더 좋아요.

<청춘시대>의 조은은 군대 간 서장훈이 제대할 때까지 기다릴까요?
은이라면 그랬을 것 같아요. <청춘시대>를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게 서장훈이 마당에서 늘 의자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감독님과 대화를 하며 그 의자가 완성되는 단계가 곧 서장훈과 조은의 관계를 보여주는 거란 걸 알았죠. 완성된 의자에 ‘나의 조은’이라고 새겼을 때 이상하게 울컥했어요.

촬영장에서 감독님과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현장에 있는 것도 좋아하고,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보는 것도 좋아해요. 좋은 배우는 누구와 연기를 해도 잘 섞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어요?
최근에 느낀 건데 <낭만 닥터 김사부>, <골든 타임>의 모티브가 된 아주대학교 외과의사 이국종 선생님을 보며 알았어요. 그분은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다른 사람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주시잖아요. 저 역시 그런 사람, 그런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배우가 아닌 의사가 당신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 의외네요.
촬영 대기하면서 유명한 사람들이 했던 좋은 말이나 문구를 많이 찾아보는데, 배우라는 직업은 정확한 목적과 방향을 갖지 않으면 위험한 직업인것 같아요. 자기만의 소신과 원칙을 갖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기자가 얼마나 될까요? 내면의 소리를 연기로 완벽하게 보여주는 사람 말이에요. 아마 송강호 선배님 정도겠죠?

 

니트는 솔리드 옴므(Solid Homme). 반지는 저스틴 데이비스(Justin Dav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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