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들은 남성성을 다시 화두에 올렸다. 이는 결코 강인한 여성을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남성의 아름다움 둘을 모두 합친 현대 여성에게 필요한 새로운 워킹웨어를 이야기한다.

 

 

스텔라 맥카트니

 

젠더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는 21세기의 패션 신에 남성성이 다시 유행의 궤도에 들어섰다. 핀스트라이프와 플레이드 체크 패턴, 각진 어깨와 무심하게 툭 떨어지는 팬츠 실루엣, 깃이 빳빳한 셔츠, 투박한 옥스퍼드 슈즈 등 흔히 남성적이라고 규정하는 것들이 올 시즌 거의 모든 컬렉션에 포진하고 있다. 성의 혁명 시대인 1 960년대 이브생로랑이 선보인 르스모킹은 여성을 전통적 사고방식에서 구원해줄, 유익한 경계의 파괴였다. 이후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슈트가 여성복의 새로운 장르로 정착했고, ‘파워 슈트’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섹스 어필한, 일하는 여자를 가리키는 은유와도 같았다. 하지만 더 이상 슈트를 입은 여자는 진보와 진취를, 레이스를 입은 여자는 보수와 수동을 칭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덕분에 몇 시즌 동안 우리는 성을 구분 짓는 소모적인 일에서 벗어나 마음껏 꽃과 자수, 레이스와 시폰을 입을 수 있는 시기를 보냈다.

디자이너들이 올가을 슈트를 트렌드의 일선에 내세웠지만 다양한 역할과 생활 방식을 가진 여성을 위한 형태로 재가공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여성과 남성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두 가지를 절묘하게 섞어 새로운 옷 입는 방식을 제안한다. 이는 전투적으로 일하고 우아하게 휴식하는 여자들을 위한 새로운 워킹웨어! 스텔라 맥카트니는 각지게 어깨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원더브라처럼 가슴을 도드라지게 재단한 올인원 슈트, 한 치수 더 크게 입는 낙낙한 실루엣의 체크 코트와 더불어어깨를 잘록하게 만들고 소매에 곡선을 더한 재킷 형태 의 미니 드레스를 선보였다. 과감하고 직선적인 실루엣 과 부드럽고 섬세한 곡선을 하나의 옷 안에 모두 담은 것 이다. 이렇듯 재킷을 미니 드레스처럼 입는 방식은 올가 을 필히 숙지해야 할 스타일링이다. 양성의 장점만 취한 스타일링을 보다 실용적으로 보여준 것은 이자벨 마랑 이다. 이자벨 마랑이 내세운 21세기 파리지엔은 ‘어깨 깡패’의 재킷과 셔츠를 입고, 팬츠 대신 비대칭 헴라인의 풀 스커트를 선택했다.

 

1 벨벳 소재 슈즈는 1백36만원, 펜디(Fendi).

1 벨벳 소재 슈즈는 1백36만원, 펜디(Fendi).

 

섹시함을 더하는 사이하이 부츠와 반짝이는 크리스털 귀고리는 남성성이라는 억눌린 무게 를 거둬내고 룩에 숨통을 틔어준다. 이는 지금이라도 당 장 시도할 수 있는 노련하고 세련된 믹스매치다. 어깨를 과장하되 둥그렇게 굴려 우아한 소매의 재킷과 허리까 지 올라오는 마타도르 팬츠(투우사 팬츠)를 매치한 자크 뮈스는 어떠한가? 매스큘린 슈트에 커다란 라펠을 더하 고, 플리츠 스커트, 연한 분홍색과 물방울 무늬 등을 조 화하였는데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취향을 지닌 여자들이 슈트를 입는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 다. 세린느의 피비 파일로는 간결한 실루엣의 블랙 슈트 를 어떻게 하면 유연하게 입을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제 시했다. 넉넉한 재킷에는 갸냘픈 다리를 드러내는 팬츠 를 입고, 오버사이즈 트렌치 코트를 더하고 포인티드 슈즈를 신는 것은 다소 식상하다.

셔츠의 스트라이프는 엷 게 물들어 회화적으로 표현하고, 팬츠 위에는 스커트를 덧입어 여성성을 부각시키거나 어깨를 드러내는 소매가 스텔라 맥카트니 세린느 긴 톱을 입는 것이 피비 파일로식의 뉴 워킹웨어다. 슈트 는 테일러링 실력을 과시하는데 가장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쿠튀르 테일러링으로 패션 판을 단번에 휘어잡은 뎀나 바잘리아는 발렌시아가의 가을/겨울 컬렉션에도 대담한 테일러링을 위해 포멀한 재킷을 활용했다 . 허리를 잘록하게 하고 엉덩이를 둥그렇게 강 조한 지난 시즌의 슈트가 클래식한 쪽에 가 까웠다면 올 시즌은 보다 파격적인 노선을 택했다. 글렌플레이드 체크, 태터솔 체크 등 의 슈퍼 오버사이즈 재킷의 여밈을 비대칭 적으로 뒤틀었는데 이는 마치 재킷의 여 밈 한쪽을 잡아당겨 올라간 모습을 하고 있다. 이렇게 전위적인 형태에 큼지막한 조 형적인 귀고리를 더하고 비비드한 컬러의 실키한 블라우스나 드레스, 형광빛의 스타 킹 부츠를 매치해 젠더의 경계를 허물었다. 이제 슈트는 강인하고 남성적이라는 생 각은 말끔하게 지워야 한다. 우리는 어디 에 살며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일을 잘하 기 위해 신뢰를 주고 전문적으로 보일 필요 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활동하기 편하게 옷 을 입고, 나의 취향을 세련되게 포장하며 더불 어 여자가 지닌 부드러움과 유연한 기질을 매력 적으로 표현할 수 있으면 더욱 좋을 테다. 그래서 우리는 슈트를 입는다.

 

 

2 울 혼방 소재 재킷은 92만원대, 김해김(Kimhekim). 3 메탈 소재 목걸이는 가격미정, 샤넬(Chanel). 4 송아지 가죽 소재 가방은 2백만원대, 세린느(Celine).  5 폴리아미드 혼방 소재 부츠는 1백33만원, 스튜어트 와이츠먼(Stuart Weitzman).

2 울 혼방 소재 재킷은 92만원대, 김해김(Kimhekim). 3 메탈 소재 목걸이는 가격미정, 샤넬(Chanel). 4 송아지 가죽 소재 가방은 2백만원대, 세린느(Celine). 5 폴리아미드 혼방 소재 부츠는 1백33만원, 스튜어트 와이츠먼(Stuart Weitz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