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본을 선보이는 쏜살문고.

문고본을 선보이는 쏜살문고.

여행가방에 책을 가득 챙기면서 속으로 되뇐다. 읽으면 두고 와야지. 하지만 어쩐지 돌아올 때에도 책은 함께다. 책이 너무 좋아서, 꼼꼼하게 만든 책의 만듦새가 아까워서. 이유는 여럿이지만 두툼한 하드커버의 책은 그렇게 무게감을 과시하며 나와 항상 함께다. 그때 번개처럼 등장한 쏜살문고! 이 책은 그동안 기세 좋은 소장용 하드커버가 장악한 출판계의 이단아처럼 보인다. 손바닥만큼 작고 얇아서 가방에 한두 권쯤 넣어 다녀도 부담이 전혀 없다. 지금껏 문고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작품의 선택과 기획, 디자인 면에서 쏜살문고는 새롭다.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책은 ‘할인’으로는 팔 수 없는 상품이 됐죠. 독자들의 가벼워진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문고본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쏜살문고를 맡고 있는 민음사 유상훈 편집자의 말이다. 쏜살문고의 분량은 150~300쪽 정도, 가격은 5천8백원부터다. 출간 리스트도 재미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유리문 안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오스카리아나>, 스콧 피츠제럴드의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등 문학의 원류에 충실하다가도 한쪽에는 이지원, 무라카미 류 등 동시대 작가들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은 가장 반응이 좋은 책 중 하나였다. 가장 흥미로운 건 ‘쏜살문고×동네서점 에디션’으로, 이 에디션으로 나온 김승옥의 <무진기행>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대형 서점이 아닌 동네서점에서만 판매한다. “우리나라의 시장은 일부 대형 유통 업체를 통해 돌아갑니다. 출판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네 서점 그리고 독자들과 유대를 형성하고, 상생하고자 시작했습니다.” 유상훈 편집자의 설명처럼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각각 4천 부 이상의 주문이 들어온 것.

장시간 책에 집중하지 못하는 스마트폰 세대, 불황을 겪는 세대, 취향이 무엇보다 강조되는 세대. 어쩌면 두툼한 책을 쌓아둘 만큼 넉넉한 공간이 없는 세대. 쏜살문고에는 달라지고 있는 독자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고, 그 고민은 다시 독자에게 전달되고 있다. 쏜살문고는 현재 25권의 책을 출간했으며,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의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새로운 페미니즘 에세이 <엄마는 페미니스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소설 작품 <걸어도 걸어도>와 <태풍이 지나가고> 등 다양한 신작이 출간 예정이다. 여성 작가, 제3세계 작가, 성 소수자 작가 등 이제껏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았던 다양한 작품을 엄선해서 선보일 계획이다. “각오는 ‘계속해보겠습니다’입니다. 아직 독자들에게 소개해드리지 못한 좋은 작품이 너무 많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