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주를 이루는 TV 화면이 너무나 익숙한 시대. 여성 방송인을 하나의 장식처럼 활용하려고만 하는 요즘의 방송 문법에 아쉬움을 느낀 지는 오래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럼에도 확고하게 자신만의 색깔로 TV 화면을 가득 채우는 아나운서가 있다. 정은아, 박혜진, 강지영. 20대부터 50대까지 각 세대를 대표하는 방송인의 과거와 지금, 그리고 미래를 보았다.

 

셔츠는 조셉(Joseph). 목걸이는 미네타니(Minetani).

셔츠는 조셉(Joseph). 목걸이는 미네타니(Minetani).

30년 동안 쉬지 않고 대중을 만난 사람. 특유의 친숙한 목소리, 다정한 말투를 가지고 있는 사람. 그리고 정은아라는 이름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는 사람‘. 천생 방송인’ 정은아는 지금도 날마다 마이크 앞에 있다.

직장인들이 퇴근 준비에 여념 없는 저녁 5시 25분. KBS 라디오 FM97.3MHz를 켜면 익숙한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정은아는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로 청취자를 만난다. 1990년 KBS 공채 아나운서 17기인 그녀의 데뷔 시절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건 새삼스럽고 어색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정은아는 방송 일을 시작한 지 30년, 그동안 한 번도 쉬지 않았다. 데뷔 이후 KBS <아침마당>, <TV는 사랑을 싣고> 등 간판 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이후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늘 방송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일에 대한 욕심도, 좋은 기회도 많았다. 정은아가 오랫동안 마이크를 잡을 수 있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균형 감각 때문이었다. 일과 삶, 몸과 마음등에 대한 균형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것. 치열한 방송가에서 그녀가 지치지 않고 살아남은 비결이기도 하다.

진행자로서 지켜야 할 선과 정도, 그리고 친근함과 따뜻함을 두루 갖추고 있는 그녀만의 미덕은 다른 누군가로 대체할 수 없다. 그녀는 현재 더 큰 욕심을 내기보다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동안 쌓아 올린 정은아라는 이름의 가치와 그 쓰임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1990년 KBS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했으니, 방송 활동한 지 햇수로 28년이네요.
입사하기 전에도 리포터로 방송을 했으니 30년 정도 됐네요. 문득문득 저도 깜짝 놀라요. 학교도 재수를 하지 않았는데 회사 들어갈 때 삼수를 했으니 시작은 어려웠지만, 허투루 보낸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참 잘 보냈어요.

생각해보면 공백기를 가진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1991년에 KBS <아침마당>을 시작으로 매일 방송을 했어요. 보통 여성분들에게 커리어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상황은 결혼, 출산, 육아 등인데 저는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경력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오랫동안 방송을 했는데, 지친 적은 없었나요?
아뇨. 돌아보면 많은 일을 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도 에너지가 넘쳤어요. 더 많은 일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일과 나의 생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조절을 많이 했죠. 많은 직장인이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지 못해 고민을 많이 하죠 .

어떻게 방법을 찾았나요?
제가 천칭자리여서 그런지 몰라도 천성적으로 무엇이든 균형을 빨리 잡으려고 해요. 일을 하는 나와 일을 하지 않는 나, 공과 사, 정신과 육체 등을 어느 한 곳으로 쏠리지 않게 하죠. 회사 다닐 때에도 집에 오면 일 생각을 전혀 안했어요. 모드 전환이 굉장히 잘되는 사람인 거죠.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인들과의 토크도 자연스럽게 잘하는 친근한 방송인으로 꼽혀요.
스물다섯 살 때부터 <아침마당>을 진행했어요. 어른들을 위한 방송 프로그램이었는데, 저에겐 굉장히 일찍 기회가 왔던 셈이죠. 돌이켜보면 제가 중요한 일을 한다는 무게감이나 책임감을 많이 느끼지 않았어요. 그저 주어진 일에 하루하루를 다했던 것뿐이죠.

아나운서끼리의 경쟁이 치열하다고 하죠. KBS 다니던 시절에는 어땠나요?
입사를 하고 비교적 일찍 방송을 해서 그런지 동기 아나운서들과 경쟁한다고 느끼지 못했어요. 저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시장이 있었거든요. 저는 예능도 할 수 있고, 토크도 진행할 수 있고, 대통령과의 대화와 같은 대형 특집도 진행할 수 있었어요. 한창 활동할 당시 교양과 예능이 결합된 인포테인먼트라는 게 처음 생겨났어요. MBC <칭찬합시다>를 진행하면서 저의 역할이 더 확고해졌는데, 제가 개그맨들과 방송한 최초의 아나운서였죠. 방송의 흐름을 잘 탔던 것 같아요. 저는 일찍이 언어 훈련을 받았고, 균형 감각의 필요성도 알았으니까요.

원래는 아나운서보다는 기자가 되고 싶어 했다고 하던데, 진로를 바꾼 이유가 있었나요?
너무 오래전 얘기네요.(웃음) 중학생 때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읽기를 시키셔서 했는데, 갑자기 저 때문에 방송반을 만드셨어요. 방송반에 아나운서는 저뿐이고 학교에서 마이크 잡고 하는 일은 모두 저의 몫이었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아나운서를 꿈꾸지 않았어요. 대학에 가서 언론고시 시험반에 들어가서 기자 시험을 봤는데 최종에서 떨어진 거예요. 그러던 중 아무 준비 없이 아나운서 시험을 보고 카메라 테스트를 보는데 그 상황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면접인데도 면접관들과 대화를 한다는게 너무 신기했죠.

방송국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를 보면 뉴스 앵커 자리를 두고 경쟁하잖아요. 당신은 어땠나요?
경쟁이 아예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동기 6~8명 중에 방송인으로 살아남는 건 한두 명에 불과해요. 기본적으로 아나운서들은 회사원이기 때문에 조직 안에서 처리해야 할 많은 것이 있는데, 방송 외에 다른 걸 잘하는 사람은 조직에서 살아남는 거죠. 그때와 달리 지금이 훨씬 경쟁이 치열하다는 건 확실히 느껴요.

프리랜서를 선언한 1세대 아나운서이기도 하죠. 무엇을 시작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 아닌가요?
KBS에서 7년 일하고 프리랜서가 된 지 20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프리랜스 아나운서를 말할 때 저를 빼놓지 않아요. 저보다 먼저 프리랜서를 선언한 이수경 선배도 있는데, TV 진행자로는 제가 첫 세대인 것 같아요. KBS 아나운서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프로그램들이 대개 비슷한 성격의교양밖에 없었어요. 다른 것도 하고 싶었고, 나의 경쟁력이 어느 정도인 지도 알고 싶었어요. 겁이 없었던 거죠.(웃음)

 

블라우스는 제이백쿠튀르(Jaybaek Couture). 팬츠는 프리마돈나(Freamadonna). 페도라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라우스는 제이백쿠튀르(Jaybaek Couture). 팬츠는 프리마돈나(Freamadonna). 페도라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시간이 흐르면서 아나운서의 성격이 ‘연예인화’되었죠. 방송에서 연 예인과 아나운서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있는 나라가 일본과 한국 정도예요. 앵커나 DJ, 토 크쇼 호스트 등은 방송국과 계약을 체결해서 활동하지, 한국처럼 조직에 소속되고, 그 안에서만 활동하는 개념이 아니에요. 그건 매우 부자연스 러운 거고, 지금처럼 아나운서가 프리랜서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 이라고 생각해요. 방송인이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특화된 것을 만들 어서 능력을 발휘하는 건 좋은 일이에요. 예전에는 선배들이 아나운서는 어디에 가서 함부로 말하지 말고, 중국집 가서도 ‘자장면’ 발음도 신경 써 서 해야 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자연스러워요. 일반인도 방송을 하는 세상이잖아요. 아나운서만이 누릴 수 있는 무엇을 위해서는 더 많 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시청자들에게 잊혀질 수 있다는 불안감은 없나요?
리얼리티나 야외 촬영이 많아지면서 방송 환경도 바뀌었어요. 저는 스튜 디오 촬영이나 토크, 정보가 있는 오락 프로그램에 특화된 사람인데 지금 은 사람들이 정보를 얻는 루트가 무척 많아요. 이 시대에 방송인은 무엇 을 해야 할까요? 아나운서가 아닌, 방송을 진행하는 MC로서 고민을 해 요. 사실 잊혀진다는 건 저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영원히 기억되는 사람도 없잖아요.

방송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매순간이 즐거워요. 사실 방송에서 진행자가 하는 많은 것은 휘발돼요 . 그러니 방송을 하는 그 순간에 100명 정도 되는 출연진, 스태프들과 함께 녹화를 잘 끝내면 임무를 완수했다는 기쁨을 느껴요. 특히 요즘에는 저 를 알아보고 칭찬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엄마가 좋아하세요.” “덕분에 방송 일을 꿈꾸게 됐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 저의 활동이 헛되지 않았다 는 생각이 들어요.

현재 방송을 활발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남자가 대다수인데, 이런 흐 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전에는 늘 스무 살 많은 남자 선배와 여자 후배가 진행하는 게 일상적 이었어요. 그게 역전된 게 저희 기수가 처음이었죠. 프리랜서가 됐을 때 저와 비슷한 연배나 어린 후배들과 방송했어요. 지금은 방송의 중심을 캐릭터가 분명한 사람들로 구성하고, 어린 여성 방송인이 객이 되는 것 같아요. 나름 저는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이렇게 바뀐 관계를 보면 불편 한 마음이 들곤 하죠.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되는 선배로서 책임감을 느낄 때도 있나요?
예전에는 여자 선배들 중에 35세를 넘긴 나이로 활동하는 걸 거의 못 봤 어요. 그런데 저희 세대가 마흔을 넘겼죠. 우리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에 대한 생각이나 목표 자체가 없었어요. 저는 스스로 여성 아나운서라 는 틀 안에서 생각하면서 활동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불합리한 일 을 덜 겪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여자 MC는 말을 적게 해야 하고, “남자보다 키가 더 크면 안 된다”며 굽 낮은 신발을 신으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요.(웃음) 어느 순간 후배들이 저를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됐 어요. 한 명의 방송인이 무한 책임감을 다 질 수는 없기 때문에 저는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죠.

‘어린 꼰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문화가 많은 데요, 후배를 대할 때 고민한 적은 없나요?
저는 이상한 선배를 본 적이 없어서 나쁜 걸 배운 게 없어요. 사실 우리 일이 그래요. 전체적으로 말하기 훈련을 배우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말 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채용해요. 조성이나 발음이 잘되어 있는 사람을 뽑아서 약간의 훈련을 하는 거죠. 방송은 개인차가 커요. 입사 년6 차라 고 입사 1년 차보다 무조건 잘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 면에서 매우 냉정 한 세계예요. 조직에 몸담고 있지만 시청자들에게 선택을 받아야 하죠 . 호감도와 재능 이 모든 게 그 사람의 자질이라고 생각해요. 선배가 후배 에게 할 수 있는 건 칭찬과 격려이지 가르침이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나이를 먹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나요?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고, 재미있게 살까를 생각해요.직업병일 수 있는데 방송 일을 하면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방송에서는 평정 심을 유지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방송인 정은아라는 이름에 대한 무게도 덜어내고, 조심스러운 마음도 많이 없어졌어요. 점점 더 가볍고, 재미있 게 삶을 완수하는 게 꿈인데, 거기까지 가려면 몸과 마음도 건강해야 하 고 뇌의 탄력도 유지해야 하니 계속 공부하며 자기 계발을 해요. 결과물 이 뚜렷이 나타나는 공부는 아니지만 저는 무척 재미있어요. 뒤늦게 중 국어, 일본어를 공부했어요. 6개월에 한 번씩 다른 운동을 해보기도 하고 요. 다양하게 나를 자극하며 가볍게 잘 늙어가자는 생각을 해요. 그동안 에는 나 중심으로 살았어요. 사실 저는 가족을 희생하는 일도 별로 없었 고, 나의 성취나 만족이 중요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저에게 애정과 관심을 준 선배들에게 더 낮추고 많은 걸 배우지 못한 게 아쉽고 반성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도모하며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해요.

당신이 생각하는 멋진 사람은 어떤 모습인가요?
어리더라도 진심으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제 마음 이 움직여요. 그게 진심일 것이기 때문에 감동적이고, 존경스러운 거죠. 방송 시작하면서 이런 다짐을 한 적이 있어요. 서른다섯 살 때쯤, 가장 좋 은 시절에 일을 그만두겠다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좋은 시절은 너무 길 었고, 또 잘 누렸죠.(웃음) 지금은 그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나에게 온 기회가 누군가에게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이라는 걸 몰랐어요 . 지금 매일 1시간 30분씩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굉장히 소중해요. 방송인으로서 주어진 시간과 마이크 앞이라는 공간을 소중히 여기고 최 선을 다하자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까, 재미있게 살까를 생각해요. 지금은 정은아라는 이름의 무게도 덜어내고 조심스러운 마음도 많이 없어졌어요. 점점 더 가볍고 재미있게 삶을 완수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