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사느냐의 단순한 기호를 넘어 인생의 방향과 태도를 결정짓는 채집과도 같다. 각자의 색과 무게로 삶을 사랑하는 여섯 여자의 취향과 패션 이야기.

 

1,2 도시 서민들의 피크닉 장면을 찍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을 본 이후부터 동네 공원을 찾아가는 소박한 사치를 좋아한다. 4 작가의 스타일에 관한 책을 써보려 했는데, 영문판으로 나와 있는 걸 서점에서 찾았다.3 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메모들.

1, 2 도시 서민들의 피크닉 장면을 찍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을 본 이후부터 동네 공원을 찾아가는 소박한 사치를 좋아한다. 3 <연인>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메모들.  4 작가의 스타일에 관한 책을 써보려 했는데, 영문판으로 나와 있는 걸 서점에서 찾았다.

 

5 비트 세대의 문학, 에드 루샤와 호크니, 그리고 사막 모더니즘 건축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존 로트너의 주택 디자인 등 20세기 캘리포니아에 영감을 받은 크리에이터를 탐닉한다.6 내게 에너지를 주는 노란색 화장품들. 7 콜레트의 스타일은 파격적이고 아방가르드하다. 그녀의 삶, 그녀의 글 역시 그러했다.

5 비트 세대의 문학, 에드 루샤와 호크니, 그리고 사막 모더니즘 건축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존 로트너의 주택 디자인 등 20세기 캘리포니아에 영감을 받은 크리에이터를 탐닉한다. 6 내게 에너지를 주는 노란색 화장품들. 7 콜레트의 스타일은 파격적이고 아방가르드하다. 그녀의 삶, 그녀의 글 역시 그러했다.

 

작가들에게서 배운 미적 세계
조유리(패션 칼럼니스트)

그 남자의 집에 처음 초대되었을 때, 다른 무엇보다 책상앞에 붙은 흑백사진 한 장에 먼저 눈길이 갔다. 깊이 파인 주름에 하얗게 센 머리, 목을 절반쯤 덮은 터틀넥에 형형한 눈빛으로 정면을 쏘아보는 그 사진의 주인공은 새뮤얼 베케트였다. 그리고 사진 뒤에는 이런 메모가 적혀 있었다. ‘다이어트 모델.’ 굉장히 지적인 남자인가 싶어 긴장하던 난 피식 웃고 말았다. 저 위대한 작가의 사진을 찾아서 붙여놓은 이유가 겨우 살 빼기 위한 자극이 필요해서였다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작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게 <고도를기다리며> 때문이었다 해도, 종국에 그를 매료시킨 것은 베케트의 글보다는 베케트의 외모나 스타일, 그리고 분위기 쪽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런 엉뚱한 면이 나와 다르지 않아서, 우리는 결국 결혼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읽기 전에 우선 작가의 사진부터 찾아보는 좀 고약한 습성을 갖고 있었다. 누군가의 풍모에서 느껴지는 품성을 그 사람의 글에 대입해야만 비로소 몰입이 잘됐기 때문이다. 유년의 사진이든 여권사진이든, 작가 외모가 마음에 들면 글을 읽고, 글을 읽다 감동을 받으면 다시 사진을 찾아 닳아 없어질 만큼 구석구석 관찰하곤 했다. 작가들에 대한 나의 사랑과 동경은 그런 이상한 방식으로 맺어졌고 깊어졌다. 김채원의 화장기 없는 얼굴과 헝클어진 긴 머리를, 생 텍쥐페리의 멋진 애비에이터 스타일을, 아나이스 닌의 가늘게 휜 관능적인 눈썹을, 수전 손탁의 수수하고 남성적인 셔츠를,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파격적인 턱시도를, 프랑수아즈 사강의 진주목걸이를 나는 얼마나 깊이 탐닉했었던가. 오랜 시간을 거치며 어떤 것은 자주 모방되었고, 그러다 어떤 것은 진짜 내 개성으로도 자리 잡았다. 만약 내게 세상사람들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특유의 스타일이 조금이라도 발견된다면, 그 팔할은 아마 좋아했던 여러 작가의 공로가 될 것이다. 나는 근현대의 많은 스타일리시한 작가들로부터 옷 입는 법, 화장하는 법, 인상적인 표정과 말투, 그리고 그런 스타일 뒤에 함축되어 있는 삶의 태도까지를 배웠다. 다만, 세상의 유행은 나의 관심사에서 점점 멀어져 이젠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자존감이 뚜렷하고 스타일이 뛰어난 작가일수록 패션의 거센 흐름과는 상관없이 자기만의 미학세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아한 영국 시인 시트웰이 말했던 것처럼, 대체 ‘어떻게 사람이 삼개월에 한 번씩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 있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