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의 주인공 리브 무어.

미드 <아이 좀비>의 주인공 리브 무어.

이타적 좀비
미드 <아이 좀비> 속 캐릭터, 다정하고 성실한 리브 무어는 의예과 레지던트 마지막 해에, 기분 전환을 위해 선상 파티에 갔다가 좀비에게 물려 좀비가 되고 만다. 특정한 종류의 마약과 에너지 드링크의 화학 반응으로 일어난 사고였다. 그래서인지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 흔히 나오는 어기적거리며 부패해가는 괴물은 아니다. 그저 무척 창백하고, 심장이 뛰지 않고, 다른 사람의 뇌를 먹어야 할 뿐.
아무도 해치지 않고 뇌를 구하기 위해, 리브는 전도유망한 미래 대신 경찰 소속 법의학자의 길을 택한다. 몰래 안치소에 들어온 시신의 뇌를 요리해서 먹는데, 매회 요리 실력이 점점 는다. 보다 보면 침을 꿀꺽 삼키게 된달까. 뇌를 먹으면 부작용이 있다. 범죄 피해자들이 마지막 며칠 경험한 일들이, 조각 난 이미지로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다. 괴로운 기억과 우스운 기억이 섞여 찾아온다. 경찰 소속이 된 김에, 리브는 그 이미지들로 사건의 전말을 알아내 범인을 잡는다. 그러니까, 좀비 탐정이 된 것이다. 코믹하고 산뜻한 주인공이다.
좋은 사람들에게도 나쁜 일은 일어난다. 갑자기 맞닥뜨린 불행 앞에서 변하지 않는 것, 스스로의 본질을 잃지 않는 것이 궁극의 쿨함이 아닐까? 뜻밖의 길을 가게 되었고, 전염 위험 때문에 사랑하는 약혼자와도 헤어져야 했지만 리브는 끝까지 이타적으로 행동한다. 좀비지만 좀비 아포칼립스가 오지 않도록 애쓰며, 이 사태를 불러온 비윤리적인 에너지 드링크 회사와도 맞붙어 싸운다. 좌절에 빠진 다른 좀비들을 돕기도 한다. 가족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힘겨워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자기 불안을 던지지 않고 의연하고 사랑스럽게 삶을 이어나간다. 죽었지만 가장 살아 있는 희한한 상태에서 울고 웃는다. 오싹할 정도로 체온이 낮은 리브는, 체온과 상관없이 이제껏 본 중 가장 쿨한 여성이다.
이 작품의 작가들은 주체적이고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쓰는데 멋지게 성공해냈다. 주요 인물 중에 흑인과 아시아인이 있고, 그들이 스테레오 타입이 아닌 것도 근사하다. 리브와 로맨스에 빠지는 상대방들도 흥미롭고 건강해서 호감이 간다. 이야기를 쓰는 사람으로서, ‘아, 나도 이런 남성 캐릭터들을 쓰고 싶다’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기야 쿨한 여성을 쓸 수 있으면 쿨한 남성도 쓸 수 있는 게 당연한가? – 정세랑(소설가)

 

영화 의 주인공 나탈리.

영화 <다가오는 것들>의 주인공 나탈리.

가는 것 잡지 않고, 오는 것 막지 않기
‘인류 최초의 여성’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성경 속 이브를 떠올린다. 그리스 신화에도 ‘최초의 여성’이 등장한다. 그 이름은 판도라. 그렇다, 제우스가 절대 열지 말라던 그 상자를 부주의하게 열어 세상에 온갖 나쁜 것을 퍼뜨린 그 여자 말이다. 뒤늦게 닫은 그 상자 안에 희망이 남아 있어, 인간은 온갖 나쁜 일을 겪으면서도 희망만은 잃지 않고 살게 되었다는 유명한 이야기의 주인공. 여기에, ‘최초의 여성’이라는 상징적 지위는커녕 남편 하나 자식 둘 평범한 가정생활과 고등학교 철학 교사로서의 사회 생활을 병행하는 프랑스 여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나탈리.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영화 <다가오는 것들>은 나탈리의 삶을 담담히 펼쳐놓는다.
그녀가 삶에서 잃지 않는 것이라고는 없어 보인다. 자식들은 성인이 되어 품을 떠났고, 남편은 결혼생활 25년 끝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별거를 선언했으며, 신경쇠약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병고 끝에 세상을 떠난다. 그뿐이랴, 집필진으로 참여했던 철학 책이 개정을 거치면서 저자에서 제외되고 만다. 하루가 지날수록 멀어지는 젊음처럼, 세상은 그녀에게 자꾸만 작별을 고한다. 그러나 나탈리는 상실을 자유로 맞는다. 남편이 외도를 고백했을 때 그녀는 애제자에게 별 일 아니라고, 삶이 끝난 것도 아니니 동정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그녀는 오히려 홀가분해 보이는데, 남편도 자식도 철학 책도 이제 더 이상 책임질 것이 남아 있지 않으니 태어나서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온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라며 웃는다. 멀어지는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애도하고, 그 빈자리에 ‘다가오는 것들’을 의연하게 맞이하는 그 자세. 이것이 ‘쿨함’의 정의라고 생각한다. 나탈리는 그녀의 어머니처럼 탱탱하고 너끈했던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자기연민에 빠져 있지도 않고, 그저 현재와 미래를 온몸으로 긍정하고 수용한다. 젊음만을 아름다움의 동의어로 사용하는 이 미디어 지옥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참고할 법한 진짜 ‘쿨한 여자’다.
사실 그녀가 홀가분한 순간에도 책임질 것이 하나 남아 있었는데, 엄마가 10년 동안 함께 지내다가 남긴 고양이 ‘판도라’다.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판도라는 숲 속으로 도망친다. 판도라는 집고양이라 본능이 죽어 생존하지 못할 거라는 나탈리의 예상을 깨고 남아 있는 본능을 증명하듯 쥐를 사냥해 물고 돌아온다. 이런 판도라의 행동은 나탈리의 훌륭한 은유처럼 보인다. 갑작스레 얻은 자유, 그 안에서 방황하지 않고 아직 상자 안에 남은 희망을 바라보며 사냥하듯 의연하게 본능을 누리는 것이 ‘쿨한 여자’ 나탈리의 선택이다. 그녀는 희망 자체가 주는 행복을 알고 있다. 영화의 결말에 나탈리가 인용하여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장 자크 루소의 <신엘로이즈>의 구절이 그녀의 태도를 대변한다.
“원할 게 없는 자에게 화 있으라. 그는 가진 것을 모두 잃는다.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덜 기쁜 법, 행복해지기 전까지만 행복할 뿐.” – 마고(프로듀서)

 

영화 의 샘.

영화 <월플라워>의 샘.

자유로운 청춘의 초상
쿨한 여자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다. 여기서 ‘쿨하다’는 단어에 정답은 없다. 그러니 쿨한 여자라는 건, 각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멋진 사람으로 형상화되기 마련이지만 내게 쿨함은 자유로움으로 대변되는 가치를 상징한다. 그리고 그 자유로움 덕에 우리는 온전히 살아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며 바로 그 지점에 인간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불량품의 섬에 온 걸 환영해.’’ 영화 <월플라워>의 샘이 새롭게 친구가 될 주인공 찰리에게 건네는 말이다. 이 영화는 흔한 성장 영화이면서 흔하지 않은 청춘 영화로, 말 못할 트라우마를 가진 주인공 찰리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샘과 패트릭 남매를 만나 자신만의 세계를 깨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은 모두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데, 샘 역시도 어린 시절의 안 좋은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자존감이 낮다. 그로 인해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남자와 사랑하고 또 상처 받기를 반복한다. 어릴 때 누구나 겪었을 법한 그 길고 긴 터널 같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함께 지나오면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성장하는 게 <월플라워>의 기본 서사지만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런 내면의 상처를 감히 짐작할 수도 없을 만큼 밝은 모습으로 자유분방하게 삶을 즐기는 샘의 태도였다. 홈커밍 파티에서 패트릭과 함께 세상에서 제일 해맑은 웃음을 띤 채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 장면도 그렇지만, 파티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지프 트럭 위에 서서 두 팔을 양옆으로 벌린 채 온몸으로 바람을 맞을 때 샘은 자신을 가두는 모든 장애물로부터 해방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 해방감에서 말미암은 자유로움이 스크린을 통해 오롯이 전달되었을 때, 묘한 쾌감이 온몸을 감쌌다. 여느 청춘 영화의 행복한 결말처럼 샘은 졸업을 하고 대학에 들어간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극단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샘을 지배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당당히 세상을 마주하고 멋지게 살아낸다. 그건 그 자체로 꽤나 쿨하다.
“지금, 우린 살아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린 무한한 자유를 느낀다.” 영화만큼이나 유명한 마지막 대사다. 지금 여기 우리가 살아 있는 순간에 신경 써야 하는 건 오로지 우리 자신뿐이다. 편견으로 가득한 시선에도 개의치 않는, 그렇기에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쿨한 청춘 그 자체이기를 꿈꾼다. 이 순간만큼은 추억이 아닌 살아 있는 순간이므로. – 정지원(<얼루어> 피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