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디가 신나서 눈치채지 못했을 뿐 김건모의 데뷔곡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는 꽤 우울한 가사입니다. 잠도 오지 않는 밤에 울적함 돋는 빗소리, 문득문득 떠오르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들. 노래는 헤어진 연인을 향한 로맨틱한 고백으로 마무리되지만 현실에서 잠 못 이루며 뒤척이는 이들의 밤은 그리 로맨틱하지만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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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을 보면 비는 오는데 괜시리 마음만 울적해~ 울적한 마음을 달랠 수가 없네 잠도 오지 않는 밤에

2017년의 우리들, 잠 못 들고 있지는 않나요?
어젯밤, 안녕히 주무셨나요? 아침에 눈을 뜨면 ‘푹 자고 일어났다’는 개운한 기분이 드시나요? 잠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경우는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겪을 법한 흔한 증상입니다. 한두 번 잠을 설친다고 해서 ‘불면증’이라고 부르진 않지만, 잠들지 못하는 밤이 야금야금 늘어난다면 그 다음날의 하루는 엉망이 되고 말겠죠. 이렇게 ‘원래의 일상 생활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정도로 수면이 방해되는 증상’이 모이고 모이면 ‘불면증’이라는 질환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를 ‘피로사회’라고 하지만, 우리나라만큼 노동인구의 피로가 누적된 나라도 드물다고들 하죠. 국내에서도 불면 증상을 치료하러 병원을 찾는 사람은 점점 늘고 있다는 통계가 발표된 적이 있답니다. 이 통계로 우리는 두 가지를 알 수 있는데요.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누구나 병원을 찾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통계가 파악한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불면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하나, 그리고 그저 푹 쉬며 견디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되어 전문적인 치료를 요할 만큼 심각한 불면증이 늘고 있다는 것이 둘입니다. 불면증 환자의 성별로는 여자가 남자보다 16%정도 많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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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 진단 기준과 원인을 알아볼까요
불면증의 진단 기준을 제시하는 여러 척도가 있습니다. 그 중 널리 사용되는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 분류(DSM-5)’에 따라 간단히 자가 진단을 해볼 수 있어요.

 

[불면증 자가 진단법]
1. 다음의 세 가지 증상 중에 하나라도 겪고 있나요?
1) 잠이 드는 것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렵다.
2) 밤에 자다가 자주 깨고 한번 깨면 다시 잠드는 것이 어렵다.
3) 너무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다시 잠들지 못한다.

2. 세 가지 증상 중 하나 이상을 일주일에 3번 이상 경험하고 있나요?
3. 1번과 2번에 해당하는 증상을 겪은 지 3개월 이상 되었나요?

3번까지 충족했다면 당신의 불면증은 일시적인 증상이라고 보기 어렵답니다. 병원에서 ‘질환’이라고 진단을 받을 수 있어요.

 

개개인이 불면의 밤을 겪는 까닭은 실로 다양합니다. 계속되는 야근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이 있는가 하면 커피나 술과 같은 생활 습관 때문도 있고,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나 고민거리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DSM-5의 진단으로는 야근이나 커피의 과음용으로 인한 불면은 증상이 있더라도 질환으로 인정되진 않아요. 생활의 교정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경우죠. 충분한 수면의 기회가 주어지고, 약물 등의 요인이 작용하지 않는데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에는 의사의 상담이나 약물치료 등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여자들은 정서가 섬세하고 심리적으로 스트레스가 쉽게 쌓입니다. 월경이나 출산, 갱년기와 같이 생애주기 중에 호르몬의 격변을 반복해서 겪어야 하는 것도 정서적인 방어를 취약하게 만들죠. 때문에 정신의학적인 문제에 상대적으로 노출되기 쉽습니다. 수면장애 이외에도 여자는 ‘우울증’과 같은 기분장애에도 남자에 비해 2.2배 잘 노출된다는 통계가 있는데(2009년~2014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우울증에 가장 흔하게 수반되는 증상 중 하나가 불면증이에요. 불면증 자체로도, 다른 질환에 속발되는 증상으로도 이래저래 고통 받기 쉬운 구조에 처해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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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는 잠꾸러기라지만 저는 일단 일해야 해서요
증상이든 질환이든 잠이 부족한 상황은 치명적입니다. 수면이란 핸드폰을 충전하듯 생체에너지를 다시 채우는 시간인데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배터리 표시등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에서 달리는 것과 같아요. 스트레스를 감당하려고 쏟아진 체내물질들은 노화를 촉진하고, 꼭 필요한 호르몬은 제때 분비되지 않는데다, 체액이 부족해져서 피부는 버석버석하게 말라버리죠. 정서적으로도 예민해져서 스트레스에 한층 취약해집니다. 우울증 때문에 생긴 불면증의 경우도 불면을 먼저 치료했더니 우울증이 함께 치유되었다는 연구결과가 있어요. 잠은 몸과 마음에 함께 듣는 보약인 셈이죠.

그러나 우리는 어떤 이유로든 잠들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해 잠들지 못하는 것이든 일에 쫓겨 스스로 버티는 것이든 매한가지죠. 미녀는 잠꾸러기란 말도 있지만 그 전에 일과 생활의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짧은 시간에 숙면하는 스킬이 필요합니다. 숙면의 기술을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이 전하는 이야기, 다음 편에 이어서 들려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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