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처럼 뿔뿔이 흩어져 있는 기억을 모아 작품을 완성하는 작가 이진주. 한국에서 6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 <불분명한 대답>에서 작가를 만났다. 그녀의 모호하고 불분명한 답변이 묘하게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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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전시 제목인 ‘불분명한 대답’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술가는 작품에 자신이 바라보는 삶이나 세계에 대한 해석을 담는다. 세부적이면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 편린처럼 떠오르는 기억이 꿈처럼 느껴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내가 알았다고 여겼던 것 자체에 대한 회의와 괴로움, 불확실성을 담으려고 했다. 어떤 것의 의미를 찾고, 정의를 내리던 세계가 전복되는 과정과 명료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것들을 모호하게 담았다.

ㅡ작품에서 기억에 대한 작가의 강한 집착이 보인다.
기억은 과거의 사건과 감정뿐 아니라 정신적인 근간이 된다. 극단적으로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사람은 특정한 기억만 없어진 게 아니라 아예 현재를 살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일상을 살다가도 불편한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라 무척 궁금하다. ‘이게 뭘까? 왜 이러는 걸까?’

ㅡ그 질문에 대한 답은 찾았나?
아니, 늘 궁금하다. 그리고 그런 나를 관찰한다. 기억과 관련된 것에 워낙 관심이 많다 보니 신경과학 관련 서적도 많이 찾아봤다. 언젠가 정신과를 찾아가볼까도 생각했지만 아직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정신과에서는 특별한 처방이나 치료를 하는 게 아니라 방어기제로 억누르고 있던 것을 발화의 형태로 드러내는 것 자체가 치유라고 하지 않나. 나는 그걸 말이 아닌 이미지로 발화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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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작품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정서가 매우 차갑다. 작가의 기억은 대부분 비극적인 것인가?
힘들고 불편했던 기억이 오래 남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경험일수록 더 강렬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처연하고, 고약하며 지독한 상처를 입은 것에서 묘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ㅡ화분, 팬티스타킹, 돼지 등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오브제가 있다.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사건이나 분위기, 감정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사이에 의미와 논리가 있는 건 아니다. 내가 그린 그림이지만 이미지가 먼저 떠올라 일단 그린 후, 뒤늦게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팬티스타킹 역시, 나의 심리적인 자아상과 잘 부합한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처음 스타킹을 입었을 때의 감촉을 잊을 수 없다. 아주 어릴 때, 몹시 추운 날 나가서 놀겠다는 나에게 엄마가 입혀준 스타킹은 굉장히 부드러웠고, 생각보다 따뜻했다. 얇고, 투명한데 옥죄는 느낌도 들고, 아주 작은 상처가 나도 올이 나가버린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물건 같다.

ㅡ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길 바라나?
나의 작품이 늘 기억으로부터 출발하는 건 아니다. 일상의 장면과 풍경을 마주하다 보면 객관적인 이미지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앞에서 여러 생각을 한다. 현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매우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물건들이 태연하게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물건들의 이상한 배치가 말이 안 되는 사건 속에 슬그머니 끼어 들어 있는 방식이다. 나의 작품 속에 담겨 있는 간극이 있는 단서들을 보며 사람들 각자의 감각이나 기억, 경험을 주고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