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음이 가는 풀 냄새
유칼립투스의 향에 반한 건 그러니까 정확히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오래전의 일이다. 어쩌다 받은 꽃다발에서 너무 좋은 향기가 나길래 꽃의 향을 하나씩 맡아보기 시작했는데, 그 향의 출처가 바로 유칼립투스였다. 우아한 튤립도 아니고, 이름마저 고상한 아네모네나 양귀비도 아니고, 한낱 풀 따위에서 그런 향이 난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유칼립투스의 그 요상한 모양새까지도 사랑하게 됐다. 꽃집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꽃 대신 유칼립투스를 샀다. 그러다 조 말론 런던에서 유칼립투스 향의 룸 스프레이를 발견했을 땐 거의 심봤다고 외칠 뻔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내내 그 스프레이를 온 집에 뿌려댔다. 벌써 몇 년이 훌쩍 지난 이야기다.

그동안 나는 서울에서 패션 에디터로 일한 10년을 별안간 정리한 후 런던에서 꽃을 배웠고, 독일에서 한동안 지내다 다시 서울로 와서 플로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참 많은 것이 변했다. 그래도 단정하고 무구한 풀 향기가 좋은 건 여태 그대로다. 작약이나 장미처럼 왈칵 쏟아져 나오는 화려한 향보다는 오히려 덤덤한 풀의 향이 언제나 더 마음에 남는다. 풀 향기에는 제발 날 좀 봐달라고 칭얼대는 게 아니라 혼자만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고 있는 것 같은, 뭐 그런 자연스럽고, 자유롭고, 담백한 매력이 있다. 아, 이건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다. 향수를 뿌리기 시작한 20대 초반, 다른 여자애들이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향에 열광할 때에도 나는 나무나 숲의 향이 나는 향수를 사 모으느라 바빴다. 관심이 향초와 차로 옮겨간 후에도 뭐, 상황은 비슷했다. 매드에렌(Mad et Len)의 스피리츄얼 베르떼 (Spirituelle Berte), 바이레도의 언네임드(Unnamed), 조 말론 런던의 우드세이지 앤 시솔트(Wood Sage and Sea Salt) 같은 것들. ‘띠링’ 메시지가 와서 휴대폰을 봤다. 지난여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베를린의 집 앞 공원 사진이 배경에 깔려 있다. 비가 내린 후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풀 숲을 걸으면서 맡았던 그 향이 기억난다. 해가 질 때쯤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끼치던 따뜻한 향기도. 신선하고 정갈한 풀 냄새가 저절로 떠오르는 그 시간들은 쉽게 잊히지가 않는다. -이윤주(플라워플리즈 플로리스트)

 

내가 사랑한 향수
피 튀는 혁명기가 끝나고 평화가 도래해 예술과 문화가 꽃피었던 1890년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파리, 그 아름다운 시절은 특별히 ‘벨 에포크’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모네, 르누아르, 세잔 등 인상파 화가들의 명성이 드높았고 에밀 졸라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을 썼으며, 에펠탑과 그랑 팔레가 혁신적 양식으로 세워진 시기.

세월이 흐르며 어느덧 벨 에포크는 어디든, 누구든 좋았던 시절을 대변하는 보통명사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내 벨 에포크는 유례없이 자유분방하고 풍요로운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 IMF 외환위기 직전까지 이어진 90년대 초가 아니었나 싶다. 운 좋게도 당시 ‘X세대’로 불린 청년 중 하나였고 마지막 사복 세대로서 <베티 블루 37.2>, <블루 벨벳> 같은 프랑스 영화와 록, 레게, R&B 음악,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에 영혼을 휘둘리고 있었다. 한국판 <엘르>, <마리끌레르> 등 ‘라이선스지’가 속속 창간됐고, 배꼽티에 직접 찢은 청바지를 입고 웰링턴 테 선글라스를 썼으며 크리스챤 디올, 지방시 등에서 나온 라이터로 버지니아 슬림 등 여성용 양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때 향수는 남녀 누구에게나 일종의 예의이자 개성의 표현으로서 꼭 써야만 하는 것이었다. “너, 스펠바운드네?” “응, 난 항상 이거 뿌려. 강렬해서 마음에 들거든.” “난 듄. 은은하고 따뜻한 게 좋더라.” 따위가 친구들 사이에 주요 화제였다.

지금은 모두 클래식 향수가 되어버린 그 향의 퍼레이드 중 내 애착은 기 라로시의 피지(Fidji)였다. 피지는 1966년, 디자이너 기 라로시가 휴양지로 종종 찾던 남태평양 피지 섬의 꿈결 같은 낭만과 아름다움을 표현한 향수다. 이후 꾸준히 이국적 광고를 선보였지만 극적인 유명세를 맞이한 건 90년 슈퍼모델 린다 에반젤리스타를 캠페인 모델로 영입하면서다. 나 역시 열대 해변에서 꿈꾸는 표정으로 퍼퓸 병을 안고 있는 짧은 곱슬머리 그녀를 보고 피지에 빠져들었다. 린다 에반젤리스타는 1980년대 미국의 과장된 글래머러스함을 따라가려던 캐나다 출신 무명 모델이었는데 1988년 사진작가 피터 린드버그의 제안으로 머리를 싹둑 자르면서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했다. 금발로 염색한 억지스러운 긴 머리보다 본래 머리색인 짙은 브라운에 소년처럼 중성적인 쇼트 헤어가 마법처럼 잘 어울렸고, 1989년에는 패션계의 판도를 바꿀 만큼 스타일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 헤어 스타일은 곧 ’더 린다(The Linda)’라고 불렸고 데미 무어가 스타가 된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 참고했으며 ‘에반젤리스타(Evangelista)’라는 가발을 메가 히트 상품 반열에 올렸다. 1990년 1월, 크리스티 털링턴, 신디 크로포드, 나오미 캠벨, 타티아나 파티츠와 함께 영국판 <보그> 표지를 장식하며 그 어떤 배우, 가수보다 유명하고 부유한 슈퍼모델들의 시대를 열었다.

피지 향수 광고는 린다 에반젤리스타가 슈퍼모델로서 절정에 올랐던 스물다섯에 촬영했다. 그것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여성상, 자신감과 강인함, 개성, 새로이 정의한 이국적 아름다움이었다. 지면으로 만나는 환상이 현실보다 중요했던 시기에 린다 에반젤리스타와 피지라는 신비의 섬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향수 피지는 히아신스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듯 청량한 느낌으로 시작한다. 연이어 베르가모트, 레몬, 재스민, 바이올렛, 장미, 일랑일랑, 카네이션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신비로운 꽃잎이 비처럼 쏟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짧은 환상처럼 곧 흐려지고 샌들우드, 앰버, 머스크, 이끼, 베티버 등 깊이 있는 우디 향이 오래도록 남는, 과히 사근사근하지 않은 향이다. 당시 대학가 유명 카페들은 한쪽 벽면을 채운 스크린에 빔 프로젝터로 팝 음악 뮤직 비디오와 패션 쇼 영상을 끊임없이 비춰줬다. 체리 코크나 파르페를 마시며 어떤 사이인지 굳이 구별하지 않는 이들과 음악과 영화, 향수에 대해 얘기하던 시절, 기 라로시 피지는 언제나 나와 진하게 함께했다. -이선배(칼럼니스트)

 

2

서로 익숙해지는 향
가까운 일본으로 패키지 여행을 다녀오신 부모님은 면세점에 들러 일본 브랜드 화장품을 몽땅 산 모양이었다. 그중 아내 것으로 립스틱이, 내 것으로 로션과 스킨이 배분되었다. 로션 냄새를 맡아본다. 많은 일본 제품이 그러하듯이 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이었다. 아내가 일러준 대로 손등에 하얀 그것을 짜서, 얼굴에 펴서 바른다. 로션 향은 이내 피부로 스며들고, 코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좋았던 향에 이내 적응해버린 것이다. 인간의 감각 중 후각은 가장 예민하고 가장 게으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빠르게 주위의 변화를 감각하고 그 변화에 또한 빠르게 적응해버리는 것이다. 상념에 젖어 있는 동안 둘째가 뛰어와 화장품을 들고 거실 저편으로 뛰어간다. 아냐, 아니야, 그거 마시는 거 아냐!

아이를 낳고, 이른바 아기 냄새라 칭해지는 모든 것이 작은 집에 평화로운 자세로 내려앉았다. 베이비파우더, 아기 로션, 아기 세제, 분유, 기저귀… 심지어 아기 똥까지. 아기 냄새가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향에는 육아의 괴로움과 고독이 묻어 있기 마련이다. 로션은 아이를 씻기는 손이 필요하고, 기저귀에는 그것을 가는 기민함이 요구된다. 분유는 밤새 잠 못 이루는 이의 아픈 팔목으로 인해 그 냄새를 풍기는 것이다. 지금 립스틱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내는 그 요구됨의 거의 대부분을 홀로 해냈다. 나는 직장으로, 또는 내 안에 숨어 있는 한국의 남성성으로 종종 도망쳤을 것이다. 퇴근해서는 현관을 열자마자 퍼지는 아기 냄새를 흠뻑 맡으며 아, 우리 예쁜 아이들, 볼을 비비며 이 정도로 훌륭한 남편이자 아빠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는 사이에 코는 아기 냄새에 적응하고 만다. 이제 아기 냄새는 잊었다. 아이들은 어느덧 아기가 아닌 어린이가 되어간다. 아빠 로션을 마셔볼까, 하는 장난에 골몰하는 아이로.

대학시절 연애하던 아내에게서 나던 화장품 냄새를 좋아했던 것 같다. 아내는 여느 학생처럼 저렴한 브랜드의 화장품을 주로 썼고, 나는 미샤니, 더페이스샵이니, 스킨푸드니 하는 곳들을 따라다니며 철없이 실실거렸던 것 같다. 코는 이때나 그때나 여전히 게으른 기관이어서, 곧 그 향에 익숙해버렸을 테지만, 감각은 사람의 기억에 영원한 흔적을 남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처럼, 면세점에서 온 아내의 새 화장품이 그렇다. 연애를 하고 처음 입을 맞출 때, 아내의 입술과 얼굴과 머리칼에서 나던 체취 그리고 화장품 향기. 그 향을 붙잡으려 그때 나는 한 번 더, 또 한번 키스하자 졸랐던 것 같다. 지금 아내와 나는 베이비파우더의 시절을 지나, 게을러진 코를 서로 맞대며 산다. 우리는 우리의 향기에 서로 익숙해졌구나. 추억에 젖어 있는 동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첫째가 새 립스틱을 만지작거린다. 아냐! 그거 색연필 아니야! -서효인(시인)

 

향기의 상영회
막히는 오후에, 간신히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다니다 보면 온갖 냄새를 마주하게 된다. 대형 마트에서 파는 저렴한 차량용 방향제, 노년의 남성에게서 나기 쉬운 큼큼한 냄새, 방금 피우고 끈 듯한 담배 냄새와 한번은 치킨 냄새까지. 그런데 그때에는 아주 따뜻하고 그리운 냄새가 났다. 달콤하기도 했지만 달지만은 않았고 빛바랜 듯한 냄새였다. 택시 문을 닫는 순간에서야 떠올랐다. 그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즐겨 드시던 인삼 캔디 냄새였다. 할아버지는 10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 후로 한 번도 맡아본 적도, 떠올린 적도 없었지만, 그 냄새는 나를 충주의 할아버지 집으로 옮겨놓았다. 마당에 가득한 꽃과 꽃나무와 한쪽에서 나른하게 커다란 잎사귀를 늘어뜨리고 있던 포도나무까지. 여름날, 부채질을 하며 인삼 캔디를 까서 드시는 할아버지 옆에서 하릴없이 마당을 바라보고 있던 어린 날의 나.

이렇듯 문득 마주치는 향기는 일상이 봉인해버린 기억을 단숨에 떠올려 눈앞에 상영한다. 후각은 인간의 감각 중 가장 빨리 지치는 감각이지만, 끝내는 가장 힘이 세다. 작년에는 병원을 다니며 일을 잠시 쉬었다. 꼭 해야 할 일이 없는 날들에 오히려 일상의 감각은 더욱 예민해지곤 했다. 바쁜 일이 없다 보니 오며 가며 마주치는 향과 그 향이 데려다주는 기억에 한동안 머물러 있을 수도 있었다. 배꽃이 가득 피던 대학생 시절이라거나, 비 오는 날 준비물을 잊어서 쉬는 시간에 우산도 없이 화단을 단숨에 가로질러 뛰어갔을 때 났던 풀 냄새라거나. 그때 분명 ‘잔디보호’ 팻말이 있었을 텐데.

그런데 향의 상영회는 꼭 자연에서 얻어지는 것만이 아니라는 걸 한여름의 백화점에서 알았다. 백화점 입구에서 매장 직원이 나눠준 시향지에 코를 내밀어 킁킁대는 순간 나는 휘리릭, 다시 시간 여행을 떠나 중학생이 되어 있었다.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의 중학교는 교정이 예뻐서 영화 <여고괴담2>의 배경이 되기도 했었는데, 운동장 구석의 벤치 위에는…그랬다. 등나무가 지붕처럼 얹혀 있었고, 5월이면 보랏빛의 꽃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주렁주렁 내려왔다. 벤치에 앉으면 아찔한 등나무꽃 향기가 났다. 그 아래 우리는 늘 보라색 선이 들어간 체육복 차림이었다. 교칙 때문에 귀 밑 4cm 단발머리였는데 그 머리면 누구나 못생겨 보였다(후배였던 가수 박지윤만 예외였다). 꽃에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벌 때문에 못생긴 애들이 꺅꺅거리며 뛰어다니기도 했다. 나는 신도시로 이사를 하면서 그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고, 그때를 추억할 졸업 앨범도 없다. 지금처럼 SNS가 있었던 시절도 아니라서 그 시절 그토록 사랑했던 친구들과도 결국 연락이 끊겼다. 그러므로 등나무꽃 아래의 친구들은 여전히 중학생이다. 이상하게도 전학을 간 이후에는 등나무꽃을 보지 못했다. 이제는 등나무를 심지 않는 걸까. 나는 그 향수를 샀다. 아카카파의 위스테리아 오드코롱. 등나무꽃의 영어 이름은 위스테리아였다. -허윤선(<얼루어> 피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