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향기는 긴 여운을 남긴다. 여덟 명의 사람이 자신의 뇌리에 깊이 담긴 향의 추억을 꺼내놓았다. 글에서 이토록 진하게 향기가 난 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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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꽃에 붙여
제주에 다녀왔다. 봄이 늦게 찾아온 제주에는 벚꽃이 간신히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나 하얀 꽃 사이에서 간간이 귤나무를 만나기는 했다. 여기는 귤꽃이 피고 귤이 열리는 남쪽의 섬이었다.

감귤꽃이라 하면 생각나는 시가 한 수 있다. 일본의 옛 단가를 모은 <이세 모노가타리>의 60단이다. ‘5월 기다려/ 피어나는 감귤꽃/향기 맡으니/예전 그리운 사람/소매향 나는구나.’ 이 시의 배경은 이러하다. 과거에 나랏일에 몰두하여 가정을 돌보지 않은 남자가 있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무심함에 지쳐서 더 사랑해주겠다는 다른 사람을 따라갔다. 남자는 후에 천황의 칙사로 지방을 돌다 이제 지방 관리의 아내가 된 옛사람의 집을 찾아간다. 안주인에게 술시중을 해달라고 청한 그는 발 뒤에 가려진 아내의 술잔을 받는다. 아내를 너머에 둔 남자는 술상에 놓인 귤을 집으며 이 시를 읊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소매에 각각 다른 향기 주머니를 지니고 다니던 때라, 아내의 향기가 감귤 향이었던 것이다. 아내는 이 사람이 옛 남편인 걸 알고 결국 출가했다고 한다.

애틋하고도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자신을 떠난 아내의 향기를 찾아온 남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자신의 향기를 기억해주는 옛 남자를 다시 만난 여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어찌해도 돌릴 수 없는 사랑, 그에 대한 미련은 향기의 기억으로 남았다. 지만지의 <이세 모노가타리>(민병훈 옮김)에서는 이 60단이 칙사로 찾아온 전남편의 위세와 현재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 전처의 처지를 대조적으로 그렸다고 설명한다. ‘일반적으로는 다른 남자에게 가버린 여자의 비극을 그렸다’고 하지만, 애정을 주지 못한 남자의 책임도 있다고. 그러나 나는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이렇게 생각했었다. 남편은 아내에게 자신이 살뜰히 사랑해주지 못했던 미안함을 담아 애정을 이제야 고백한 것이 아닐까? 당신을 돌보지 못했으나 이처럼 오래 향조차 기억할 만큼 사랑했었다고. 그리하여 그 사랑을 알게 된 여자는 결국 그 누구의 곁에도 머물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이는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순진한 해석일지도 모른다.

엇갈린 마음에 대한 진실은 누구도 잘 알 수 없으니까. 남편은 어쩌면 찾아오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말하지 않은 마음에 향이 더 짙었을지도 모른다. 감귤꽃은 늦봄, 오월 중순에 만개하고 그 향기는 멀리까지 퍼져간다고 한다. 그런 감귤 향처럼 언젠가 바람에 실려 온 어떤 향기를 맡으면 우리 모두에게 그리운 사람이 떠오를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를 찾지 않으리라, 시를 보내지 않으리라. 옛사람의 향은 내 마음속에만 미련처럼 떠돌면 그뿐, 그들이 행복하길 바라기에, 그들이 나의 소매 향을 기억하지 못함을 쓸쓸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박현주(번역가, 에세이스트)

 

안개로부터
어릴 적, 어머니는 뷰티 업계에서 일하셨는데 그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늘 ‘향’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초등학생 때에는 파우더 향이 강한 어머니의 향수를 몰래 뿌리고 소풍을 갔다. 갓 스무 살이 되던 때에는 향이 무언가 내 자신에게 보이지 않는 옷을 입혀주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독립을 시작할 때에 향초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작은 불빛과 은은한 향이 나의 작은 집을 고급스럽게 만들어주는 걸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독학을 했다. 지금 함께 사업을 하고 있는 강주현 대표도 유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즐겼던 그 공간의 향을 조향하고 있었다. 서로 더 많은 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방법을 찾고 찾다 ‘꽁티드툴레아’를 열게 되었다. 처음에는 정말 무식하게 공부를 했다. 어렵게 구한 프랑스어로 된 조향 서적을 글자 하나하나 번역해가며 그 책을 다 읽었다. PDF파일로 변환하면 쉽게 번역이 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인데, 그때의 그 노력으로 인하여 향에 대한 지식이 더 많이 기억에 남은 것 같다. 처음 만든 향수는 추억이 담긴 공간의 향을 조향한 것이었다. 내가 살던 집 근처에는 등산을 할 수 있는 산이 많았다. 등교를 하던 새벽 시간에 내 방에서 창문을 보면 항상 산에는 깊게 안개가 깔려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안개가 ‘운무’라는 것이었다. 그때 맡았던 그 상쾌한 숲 내음을 내 방식대로 조향을 해보았다. 고등학생 때의 패기와 함께, 숲들이 주는 그린 계열의 프레시한 향을 조향하고 새벽이라는 차가운 이슬 같은 향을 조향하며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만든 향이 ‘165’로 현재 꽁티드툴레아의 시그니처 향이다. 또 다른 ‘375’향은 강주현 대표의 유학시절 추억을 담은 것으로 장작 타는 향을 모티브로 삼았다. 눈이 오던 시절 다 같이 모여 장작을 태우던 추억을 담았다.

처음 향을 만들었을 때에는, 정말 거침없었다. 쓸 수 있는 모든 재료를 다 넣어보고, 제조하면서 검은 연기가 나 화재경고음이 울린 적도 있다. 향 만드는 게 좋고 향초를 만드는 게 좋아서 아무 이유 없이 초를 하루에 100개씩, 주말에는 아무 곳에도 나가지 않고 500개를 만들기도 했다. 그 향초는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곤 했는데, 구매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을 때의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향이라는 것은 결국 추억을 통해 느껴지는 것 같다. 화려한 향이 아닌, 무언가를 기억하고 그로 인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향을 꿈꾼다. -김영완(꽁티드툴레아 조향사) 

 

 

2

향기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신은 내게 침침한 눈과 먹먹한 귀를 준 대신 그 보상으로 예민한 코를 내렸다. 그리하여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발달한 후각은…이라고 자랑해봤자 그걸 대체 어디에 쓴단 말인가. 저녁 반찬이 뭔지 미리 눈치 채 무엇하며, 남들은 감지 못하는 미세한 하수구 냄새를 맡거나 변기 뚜껑이 내려져 있는지 올려져 있는지를 냄새로 알아채봤자 좋을 게 무엇인가. 백만불짜리 시력과 청력을 가진 자는 멋진 히어로가 될 수 있으나 킁킁거리는 영웅은 그저 웃기는 자일 뿐이다. 조향사나 요리사로 일찌감치 들어서지 않을 바에야 냄새에 민감한 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도움은커녕 누군가에겐 괴로움에 가깝다. 엄마는 향을 좋아했다. 어려서부터 집 안에는 늘 꽃꽂이가, 마당에는 라일락이나 장미처럼 향이 진한 꽃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엄마의 향 취미는 꽃과 나무에 그치지 않고 향수에도 닿았다. 향수라는 것 자체가 드물뿐더러 구하기 힘들었던 그때 엄마는 무리를 해서라도 향수 미니어처를 모았다. 향수는 집 안에 귀히 모시는 장식품이자 엄마의 자랑거리였다. 집에 향수 냄새가 풍기면 엄마가 외출을 한다는 뜻이었고(이렇게 써놓으니 자식을 내팽개치고 바깥으로 도는 비정한 엄마처럼 보이는데, 그런 건 절대 아니다), 엄마의 외출이 싫었던 건 아니지만 그 향은 이상하게도 싫었다. 들척지근한 샴푸 냄새가 싫어 비누로 머리를 감겠다고 유난을 떨던 내게 향수 냄새는 독의 향 같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선배들이 당시 한창 잘나가던 디올의 뿌아종을 뿌려댈 때도 정말이지 너무 괴로워 ‘차라리 최루가스 맡으며 학교 다닐 때가 낫다’고 느낀 적도 있다. 어리고 미숙했기에, 짙은 향을 풍기는 여자는 무능하다는 그릇된 판단도 내렸다. 어쩌면 엄마에 대한 반항이 길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다 점점 나이가 들고 주량이 늘어서인지 후각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체취보다는 향수가 낫겠다 싶었을 수도 있다. 미국에 살기 시작하면서, 아침에 먹고 나온 김치찌개 냄새가 혹여 인종차별을 유발하는 냄새로 이용될까 싶어서였을 수도 있다. 예전과 달리 정말 좋은 향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진 덕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향수에 열광한다 말할 순 없지만 좋아하는 향이라는 게 생기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향수를 선물하고 나를 위해 사기도 하는, 과거의 나로서는 믿을 수 없는 일도 생겼다. 그런데 세상사는 참으로 이상해서, 내가 비로소 향수를 쓰기 시작하던 그 무렵 엄마는 암 수술 후유증으로 모든 향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향수를 쓸 수 없는 건 물론이고, 모든 화장품, 샴푸 등을 무향으로 바꿔야 할 만큼 알레르기가 심해졌다. 내가 맡지 못하는 하수구 냄새에 괴로워하고 밤에 자기 전 변기 뚜껑을 꼭 닫아달라고 당부하신다. 이제 엄마가 좋아할 만한 향을 알지만, 어제 뿌린 내 향수 냄새에도 진저리 치는 엄마에게 그걸 선물할 수는 없다.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말의 회한도 때론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다. 향을 탓할 수밖에. -이현수(미디어2.0 편집장, <뉴욕 쇼핑 프로젝트> 저자)

 

오래된 호텔의 향기
새로 지어 반들거리는 호텔은 매력 없다. 진짜 사치스러운 가치는 흐르는 시간과 함께 쌓인다. 시간은 가장 엄정한 심사위원인 동시에 어색한 새집 냄새를 날리는 가장 확실한 비결이다. 여기에 오래 공들인 건물 관리가 더해졌을 때 꽤 좋은 냄새가 난다. 나는 그를 일러 혼자 ‘호스피털리티의 냄새’라고 부른다. 그 향을 좋아한다.

최고급 호텔일수록 작은 부분까지 신경 쓴다. 연필의 방향까지 늘 똑같다. 눈에 안 보이는 향이라고 안 챙길 리 없다. 특급 호텔의 객실 문을 열 때, 복도의 코너를 돌 때 나는 은은한 향기는 세세한 호텔 이미지 전략의 일부다. 최고급 사치품에는 그게 뭐든 어느 정도의 강박이 들어 있다. 그 강박은 종종 피곤하다. 나는 그렇게까지는 바라진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건 적당한 정도다. 새것 특유의 광택이 빠져나간 대리석 타일 복도를 지나 리셉션 데스크에 선다. 직원은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허둥대지도 않는 수준(이 정도가 정말 중요하다)으로 나를 안내한다. 그에게 열쇠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올라간다. 카펫이 적당히 바랜 복도를 지나 방문을 열었을 때 나는 향기.

그 향기에도 적정선이 있다. 낡기만 하고 관리하지 않았다면 문을 열자마자 오래된 먼지 냄새가 난다. 노골적인 곰팡이 냄새도 맡아봤다. 청소가 모자라도 문제지만 과해도 문제다. 저렴한 섬유유연제를 리넨에 아낌없이 쏟아붓는 호텔도 있다. 이런 호텔이라면 모텔 특실 느낌을 벗어나기 어렵다. 모텔 특실이 나쁜 건 아니지만 아무튼 편안해지는 향은 아니니까. 적당히 좋은 냄새가 나려면 먼저 청결해야 한다. 적어도 치명적으로 더러운 부분은 없어야 한다. 악취를 없애는 게 가향의 기본이다. 여기까지가 숙박업소의 기본적인 정성이라면 그 위에 어떤 향을 끼얹느냐는 균형과 감각이다. 그냥 깨끗하게 세탁하고 잘 헹구기만 해도 리넨에서는 좋은 냄새가 난다. 그 냄새를 맡으며 누워 있으면 피로든 울분이든, 나쁜 징조처럼 끓고 있던 뭔가가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호스피털리티의 냄새’ 하면 떠오르는 호텔이 몇 군데 있다. 잘 관리된 대도시 중가 호텔이다. 그랜드워커힐 서울의 더글라스 하우스, 제주도 하와이 호텔, 홍콩의 YWCA 호텔 같은 곳들. 라인 강변 근처의 어떤 호텔은 빛바랜 정도는 완벽했는데 청소가 부실했다. 괌 바닷가의 어떤 호텔도 하드웨어는 좋았지만 청소가 엉망이었다. 부산의 어떤 곳은 청소가 너무 과했다.

사치품 구경을 직업 삼으며 값비싼 것보다 적당히 좋은 걸 찾기 더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게 호텔의 향기는 기본과 정성과 균형과 감각을 뜻한다. 늘 귀중하지만 요즘은 찾기 힘들어지는 것들. 지난겨울 나는 너무 지쳐 몇 번 혼자 호텔에 갔다. 호스피털리티의 냄새를 맡으면서 겨울잠처럼 깊은 잠을 잤다. 그때의 질 좋은 잠이 요즘도 가끔 생각난다. -박찬용 (<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