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향수를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향을 경험하고 즐길 수 있는 진짜 근사한 향수 가게가 늘고 있다. 꼭 가봐야 할 향수 가게 다섯 곳의 주인장들을 만났다. 모두 향수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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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제드파팡 & GN퍼퓸 | 대표이사 정미순
뮤제드파팡은 향수 박물관이고, GN퍼퓸은 향수 제작부터 조향 스쿨, 향수 공방까지 향수에 대한 포괄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회사다. 패션 디자이너 맥앤로건의 향수들과 쌩끄엘레망(Cinq Elements) 등이 GN퍼퓸의 대표 브랜드다. 특히 국내의 향초, 향수 공방이나 국내 조향사의 경우, 대부분 GN퍼퓸의 조향 스쿨을 거쳐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국내 향수 문화 확산에 기여한 바가 크다.

ㅡ뮤제드파팡은 국내 최초의 향수 박물관이다. 이런 공간을 기획하게 된 이유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빈티지 향수들, 향수의 기본 원료가 되는 향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향수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는데, 향수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보여주고 교육하는 공간은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이곳은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라, 복합 향 갤러리이기도 하다. 국내 예술가들과의 협업 작품을 함께 전시하고 있는데, 예술 작품의 시각적인 면과 향수의 후각적인 면이 함께 어우러질 때의 감동을 전하고 싶었다.

ㅡ조향 학원을 2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한국 향수 문화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다.
25년 전인 1990년대 초반에 일본에서 조향 공부를 하고 돌아왔는데, 그때만 해도 국내에 수입 향수가 없었다. 90년대 중반 이후 찰스 주르당, 비버리 힐즈 등의 향수가 수입되기 시작했고, 당시에는 향수를 조금씩 덜어서 파는 체인점인 체러티라는 숍이 유행하기도 했다. 이후 남대문 수입상가를 중심으로 국외 유명 향수가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소량씩 판매되기 시작했다. 9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겐조, 이세이 미야케, CK, 안나 수이, 랑방 등 브랜드 향수들이 국내에 들어왔고, 2000년대 초반에는 입생로랑의 베이비돌, 랑방의 에끌라주 등 플로럴 프루티 향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향수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향수 역사는 30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ㅡ지난 20여년 동안, 한국인의 향 취향은 어떻게 변화했나?
한국에 처음 소개된 향수인 찰스 주르당, 비버리 힐즈 등은 클래식하고 무거운 향기다. 90년대 초반에는 겐조, 이세이 미야케 등 시원한 마린 계열의 향이 유행했고, 2000년대 들어 꽤 오랫동안 플로럴 프루티 향이 사랑받았다.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많은 향수 브랜드가 국내에 소개되었으니, 향수란 플로럴 프루티 향이 정석이라고 인식하게 된 것 같다. 그 뒤를 이어 바디샵의 화이트 머스크나 겐조의 플라워 바이 겐조 등과 같이 머스크가 들어 있어 잔향이 오래 남는 향수들이 인기를 끌었다. 크리드, 프란시스 커정 등 프리미엄 향수들이 국내에 선보이기 시작한 2010년대 즈음부터는 우디 계열의 향이 인기였다. 니치 향수 브랜드가 등장하면서, 한국인의 향 취향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것은 가볍고 산뜻한 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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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파팡은 빈티지 향수들을 연대별로 정리해놓았다. 향수, 향료 등 향에 관한 전시 외에도 아티스트들과의 협업 작품들이 전시된다. 예술품을 보다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정미순 대표가 매장 내 향기를 스타일링한다.

ㅡ유럽에서는 보통 무겁고 짙은 향조의 향수가 베스트셀러에 속한다.
우리나라는 잘 씻는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향에 예민하고 무거운 향을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시트러스나 플로럴 등 가벼운 향을 선호한다. 반면, 상하수도 시설이 안 좋고 잘 씻지 않는 문화를 가진 유럽에서는 몸에서 나는 냄새를 가리기 위해 오래전부터 진한 향수를 뿌려왔다. 덕분에, 무거운 향기에 더 익숙하다. 앰버나 오리엔탈 향조가 전통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ㅡ최근 한국에서는 어떤 향수가 인기인가?
2000년대부터는 특정 향조의 유행과 상관없이 ‘머스크’가 늘 사랑받는 것 같다. 한국인은 향 자체가 강하지 않으면서도 잔향은 오래 남는 향수를 선호하는데 이에 딱 부합하는 것이 바로 머스크다. 머스크는 플로럴, 우디, 시트러스 등 어떤 향과 매치해도 조화가 잘되어 두루두루 사용된다.

ㅡ최근 홍대나 삼청동 등에 향수 공방이 많이 생기고 있다. 이런 문화가 유행하는 이유는 뭘까?
향에 대한 문화가 성숙해지는 것도 있지만, DIY가 트렌드인 이유도 있다. 이 둘이 맞물려 스스로 향수를 만들 수 있는 향수 공방이 인기인 것 같다. 향이란 매우 개인적인 것인데, 이를 스스로 선택해서 만들 수 있다면 더욱 매력적이지 않나? 15년째 향수 공방을 운영해오고 있는데, 이러한 커스트마이즈드 향수의 경우 재구매율이 매우 높다.

ㅡ흔히 향수를 만드는 과정이 책을 한 권 쓰는 것과 같은 어렵고도 복잡한 작업이라고들 한다. 그렇게 쉽고 빠른 조향이 가능한 노하우는 무엇인가?
예전에는 수십, 수백 개의 향료를 시향한 다음 톱, 미들, 베이스 노트를 각각 결정해서 향수를 만들었다. 수많은 향을 시향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각각의 향들이 섞여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예측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당연히 향의 만족도도 떨어졌다. 그래서 향수의 베이스를 4~7개 정도 미리 완성해놓고, 여기에 본인이 추가하고 싶은 향을 섞는 방식으로 보완했다. 베이스 자체가 90% 가까이 완성된 향수와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이 만들 향을 예측할 수 있고, 원하는 향료를 추가하면서 그 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바로 감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41 맥앤로건의 블랙골드. 50ml 6만9천원.

2 GN퍼퓸의 향수 공방에서 직접 조향해볼 수 있는 DIY 향수. 미리 예약해야 한다. 50ml로 비용은 5만원.

3 맥앤로건의 화이트. 30ml 4만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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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르푸뭄 | 대표이사 장은영
호텔리어, 레스토랑 컨설팅 등 다양한 경력을 지닌 장은영 대표가 프랑스 생퀴엠상스(Cinquieme Sens)에서 조향을 공부한 뒤 론칭한 프리미엄 니치 브랜드. 국내의 유일무이한 니치 브랜드라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조향을 공부하며 쌓은 인맥을 바탕으로 수급한 최고급 향료로 조향부터 패키징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낸다.

ㅡ최근 몇 년 사이 향수 가게가 늘고 있다.
이렇게 향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향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고무적이다.

ㅡ뻬르푸뭄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니치 향수 브랜드다.
국내에 니치 퍼퓸으로 소개되는 브랜드 중 엄밀히 말하면 니치 향수라고 말할 수 없는 브랜드가 많다. 니치가 ‘새롭다, 고급스럽다’는 의미와 동격은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명확하다는 의미에 가깝다. 니치 향수도 커머셜 니치, 아티스틱 퍼퓸, 오트 퍼퓸으로 나눌 수 있는데, 국내에는 모두 니치 향수로 두루뭉술하게 불리는 상태다. 국내의 니치 퍼퓸은 중저가의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인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커머셜 니치에 해당되는 브랜드들이다. 향의 문화가 발달한 유럽에서는 향 자체가 중요하지 굳이 브랜드를 따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향에 대한 내공이 없기 때문에 브랜드 인지도나 마케팅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국내에 진정한 의미의 니치 향수를 소개하고, 보다 쉽게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그래서 매장도 향수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프라이빗 살롱 콘셉트로 만들었다.

ㅡ향수 종주국인 유럽 니치 향수의 트렌드는 무엇인가?
사실 중동이 유럽보다 향수의 역사가 더 깊다. 또한 향수에서 쓰이는 고귀한 원료도 중동에서 온 것이 많다. 고가의 향수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이 중동이기도 하다. 따라서 최근 유럽의 퍼퓸 하우스에도 중동의 색채가 많이 입혀지는 것이 특징이다. 중동의 향수 브랜드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 해로드 백화점에 입점한 하우스 오브 우드(House of Oud) 등이 대표적인 브랜드다. 패션계에서 작은 부티크 디자이너 숍이 인기를 얻으면 거대 패션 하우스에 합병되어가는 수순을 거치듯, 일부 니치 향수도 같은 과정을 겪으며 커머셜 니치가 되고 있는 것도 트렌드 중 하나다. 반면, 아티스트 퍼퓸이나 오트 퍼퓸은 차별성을 더하기 위해 패키지에 장식적인 요소를 더하는 것도 특징이다. 5년 전만 해도 향 자체에만 초점을 두되 패키지는 심플하게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최근 밀라노에서 열리는 향수 박람회인 엑상스에서도 패키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로자 도브(Roja Dove), 엠.미칼레프 (M.Micalleff), 하우스 오브 실라주(House oif Sillage) 등이 모두 화려한 패키지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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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파리의 오래된 부티크에 와 있는 듯,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향수에 대해 편안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프라이빗 살롱 콘셉트다. 매장 한켠에는, 장은영 대표가 직접 조향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국내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희귀한 향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ㅡ뻬르푸뭄만의 차별화된 조향의 특징이 있다면?
국내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고급스러운 향료를 투박하고 순수하게 표현해낸다. 흔히 맡아보지 못한 향, 혹은 이미 익숙한 향이라도 거기에 뻬르푸뭄만의 독특한 변주가 더해진 향을 만들어낸다. 이브 클라인의 파란색 그림을 떠올려보라. 그건 그저 단순한 파랑이 아니다. 그림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색에 대한 치열한 연구 끝에 나온 색이다. 프란시스 커정이나 르라보 모두 향수의 기본에 충실하되 여기에 개성 있는 변주를 더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모던 클래식이라 생각한다. 뻬르푸뭄 역시 그런 향수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ㅡ주로 어떤 사람들이 뻬르푸뭄을 많이 찾나?
향이 묘하다고 평가해주는 사람이 많다. 향을 탐구하기를 즐기는 향수 마니아들, 자기만의 향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 향수 관련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많이 온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오트 퍼퓸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어필하는 것 같다.

ㅡ자신에게 맞는 향을 찾는 노하우를 알려달라.
어떤 향취인지 향을 분석하기 위해 날을 세우기보다는, 마음을 울리는 향을 찾아야 한다. 그림이 말을 걸어온다는 표현도 있지 않나.

ㅡ추천하고 싶은 셀렉트 숍이 있다면?
파리의 조부아. 셀렉트 숍 자체가 브랜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경쟁적으로 새로운 향수 브랜드를 발굴한다. 이러는 과정에서 아이덴티티가 더욱 확실해지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향수 브랜드를 내기도 한다. 그리고 일단 그 역사가 깊다. 한국의 향수 셀렉트 숍도 이런 과정들로 발전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71, 3 뻬르푸뭄의 드 레거시 엑스트레 & 공병 세트. 50ml 42만5천원.

2 뻬르푸뭄의 오되흐 드 뽀 오 드 파르펭. 50ml 31만5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