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만큼이나 흔해진 파스타지만, 여전히 이탈리아의 파스타와는 거리가 있다. 우리가 지금 먹는 파스타의 유행과 경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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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어다이닝의 타야린 파스타.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의 지역별 음식 문화를 600여 페이지에 걸쳐 지적이고도 집요하게 파고든 인문서인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는 이탈리아 음식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정석’이나 다름없다. 지금은 절판된 이 책에는 물론 파스타가 한 장을 차지하며 존재감을 빛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아무렇게나 만들고 남은 걸 데워 먹기도 편한 리조토에 비해 파스타는 삶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 시간에 맞춰서 냄비에 소스를 끓여야 하고 남은 음식은 버려야 하는 파스타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도 까다로운 음식이다. 그리고 이 파스타라는 존재는 이탈리아인에게 큰 숙제를 주었는데, 바로 다양한 파스타와 재료를 어떻게 결합하느냐는 것. 그렇게 해서 지역에서 나는 재료와 문화를 발판으로 제각기 지역별로 특색 있는 파스타를 발전시켜나게 된다.

20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파스타는 ‘스파게티’를 의미했지만 지금은 이러한 타국의 음식 문화서가 나올 만큼 달라졌다. 지금은 스파게티 취급도 받지 못할 퉁퉁 불은 국수가락이 인스턴트 스파게티 소스에 버무려 나오곤 했고, 분명 파스타의 일종인 마카로니는 마요네즈에 범벅이 되어 돈가스 옆에 놓이곤 했다. 그것만으로도 이국적인 음식이었던 때가 있긴 있었다. 이제는 누구나 스파게티니나 링귀니는 파스타의 종류일 뿐이며 파스타가 1천여 종이 넘는다는 걸 상식으로 안다. <파스타의 기하학>처럼 100가지 파스타를 유머러스하게 그래픽으로 담은 책이 출간되어 한동안 인기를 끌기도 했으며, 이탈리아 할머니들의 손맛을 담은 요리책도 다수 나왔다. 소개팅의 주요 장소 역시 ‘파스타 맛집’이 되곤 하니 이쯤 되면 파스타라는 음식은 우리나라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여전히 파스타를 주문할 때면 조금은 아쉽다. 1천여 종이 넘는다고 하지만 한국에서 그 다양한 파스타를 맛보기란 쉽지 않다. 파스타는 스파게티니, 링귀니, 탈리아텔레 등 친숙한 ‘면’의 형태를 띤 종류가 대부분이다(같은 면 형태여도 부가티니나 피치 파스타는 인기가 없다). 이탈리아에서는 레스토랑 창가에서 라비올리를 말리는 모습을 보거나, 토르텔리나 카넬로니처럼 속을 채운 형태의 파스타를 쉽게 맛볼 수 있지만 이탈리아 대표 파스타 중 하나인 이들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들다. 한 셰프는 칼국수에 익숙한 기호 때문인지 파스타 역시 면 형태에 훨씬 호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반면 파스타는 점점 고급화되고 있는데 건면보다 손품이 많이 드는 생면을 선호하고, 성게알과 어란(보타르가), 트러플, 해산물 등 고급 재료를 넣는 식이다. 셰프와 음식평론가들은 파스타의 고급화 전략이 코스 요리 대신 한 그릇 음식을 선호하는 외식 경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 이탈리아 셰프의 말이다. “저녁 시간에 두 명이 한 테이블을 예약한다면 파스타 두 접시에 전채나 샐러드 요리 하나를 나누어 먹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파스타의 가격이 2만원대를 상회하는 것은 그런 이유일 가능성이 높다. 파스타가 메인 디시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는 이탈리아에서 먹는 것처럼 소스에 버무린 단순한 형태는 손님도 납득하지 못한다. 그래서 차별화된 고급 재료를 사용해 신선함을 주려 노력한다.” 또 오랫동안 생면 파스타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외식 전문가의 설명은 이렇다. “초기에는 이탈리아에서 즐겨 먹던 맛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파스타를 갖추고, 손이 많이 가는 뇨키 같은 메뉴도 내놓았다. 그러나 손님이 잘 찾지 않는 이상 메뉴에서 뺄 수밖에 없었다. 호텔처럼 규모 있는 곳이 아니라면 소수의 취향을 맞추긴 어렵다. 대중을 상대로 레스토랑을 하는 것이기에 대다수 손님의 선택을 따라가게 되었다.” 결국 다양한 선택을 만드는 건 소비자의 기호라는 것.

해마다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는 있다. 작년 하반기 인기 있는 레스토랑으로 등극한 아우어다이닝은 달걀 노른자로 반죽한 생면인 타야린을 폭넓게 알리는 공을 세웠다. 기존 레스토랑에도 타야린 면을 사용한 파스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우어다이닝은 모든 파스타 메뉴를 타야린으로 짜서 이곳에 방문해서 파스타를 먹는 사람들은 모두가 타야린을 먹어야만 했다. 강석현 셰프의 과감함이 아우어다이닝의 컬러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크하얏트 서울의 메인 레스토랑인 코너스톤은 작년 리뉴얼을 거쳐 홈 스타일의 이탤리언 레스토랑으로 거듭났는데, 이탈리아의 제철 식재료를 사용해 이탈리아 남부 지역 메초조르노에서 영감을 받은 요리를 선보인다. 바질 페스토 소스를 곁들인 감자뇨키는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하는 대표 파스타. 또 닭고기와 함께 직접 만든 반죽으로 감싸 만든 카넬로니는 이탈리아 골목에서 만났던 맛 그대로다. 언젠가 함께 카넬로니를 먹은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도 파스타야?” 물론, 그것도 파스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