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들꽃도 누구의 손에서 키워지느냐에 따라 다른 향과 빛깔을 낸다. 식물을 곁에 두고 사는 가드너, 플로리스트, 세밀화 작가 등이 ‘나의 식물’이라 이야기할 만한 특별한 인연을 가진 식물을 예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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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가지 색의 선인장, 파티오레 】
식물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자연의 파릇파릇한 생동감 때문이 아니었다. 식물 줄기가 가지고 있는 모양과 에너지에 끌렸기 때문이다. 식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오브제가 된다고 생각하기에 되레 텁텁한 녹색을 띠거나 기괴한 모양을 가진 식물에 매력을 느꼈다. 농장에서 파티오레를 처음 봤을 때는 핑크색이었는데 햇빛의 양에 따라 노랑, 핑크, 녹색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햇빛이 많이 들지 않는 실내에서 식물을 기른다고 하면 파티오레를 추천한다. 기르기에도 까다롭지 않아서 게으른 사람에게 매우 적합하다. 한 달에 한 번씩 안부를 묻듯 물을 줘도 잘 자란다. 나는 사람들이 식물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가까운 것부터 흥미를 가져야 주변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처음엔 내가 기르는 식물이 보이고, 점차 가로수가 보이며, 공원이 보인다. 시각이 넓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 곧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 윤숙경(베리띵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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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명의 접란 】
프랑스 영화 <녹색광선>의 한 장면에는 흰색 테이블 위에 올려둔 접란이 나온다. 그 장면이 아름다워서 알아보고 구하게 됐다. 그러나 정확한 품종은 알 수가 없다. 나처럼 식물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생식기관을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품종을 쉽게 단정짓지 않는다. 워낙 다양한 종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6년 전에 처음으로 나에게 온 이 접란은 햇볕이 많이 드는 나의 옥탑방 작업실의 혜택을 모두 누리고 있다. 벌써 몇 번의 번식을 했고, 화분에 옮겨 심기도 많이 했다. 접란은 꽃이 피고 지면 잎에서 뿌리가 난다. 그러면 러너(새끼접란)를 말끔하게 자르고, 화분에 심을 수 있을 만큼 뿌리가 더 자라도록 수경재배를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크기가 되면 화분에 심는다. 사람들이 흔히 잡초라고 부르는 식물도 봄과 여름이 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자연이 아닌 실내에서 기르는 대부분의 식물은 품종 개량을 한 것들이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품종 개량된 반려 동물을 대하듯 실내에서 기르는 식물에게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내가 직접 기르기보다는 식물이 살고 있는 자연을 자주 찾는 이유다. – 이소영(식물세밀화가)

 

3

【 재즈를 사랑하는 두들레아 】
스튜디오를 오픈한 이후로 6년 동안 줄곧 나와 함께 한 식물이다. 처음 가져왔을 때 이 식물의 나이가 이미 서른 살이었으니 지금은 나이가 제법 된다. 다육식물인 두들레아는 뿌리가 많이 크지 않아서 굳이 화분에 옮겨 심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난 이 식물을 심을 때 일부러 지금처럼 몸체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자랄 수 있도록 뿌리 모양을 잡았다. 나의 공간과 식물의 조화를 생각했을 때 독특한 지금의 모양이 잘 어울린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난 하루에도 몇 번씩 줄기를 쓰다듬는다. 마치 나의 반려견처럼 말이다. 스튜디오에 사람이 없을 때는 음악, 특히 재즈를 틀어주고, 종종 말을 걸기도 한다. 다육식물은 수명이 굉장히 긴 데다가 쉽게 죽지 않는다. 대신 매우 천천히 자란다. – 제나 제임스(스튜디오제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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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계 생물체, 틸란드시아 세로그라피카 】
22년 전 일본으로 출장 갔다가 발견한 식물이다. 식물 모양이 지구의 생물처럼 생기지 않아 나중에 혹시라도 가드닝을 하게 되면 한 번 꼭 다뤄보고 싶은 식물이었다. 그리고 2007년에 아내와 창업하면서 제일 먼저 강의에서 다룬 게 틸란드시아 세로그라피카다. 다른 틸란드시아 종은 1~2년 정도만 살다가 새끼그루가 나오면 죽는다. 자기 몸을 내줘서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내는 셈인데, 이 세로그라피카만큼은 예외다. 번식을 잘 하지 않고, 독야청청하다. 홀로 오래 살면서도 점점 크기가 커지고, 개화를 하고 나면 장렬하게 전사한다. 정확한 나이는 알기 힘들고 8년생 정도로 추측한다. 길쭉한 이파리 표면에는 트라이콤(돌기)이 있는데 인간의 몸에 있는 소장의 털처럼 물과 양분을 잡는 기능을 한다. 옅은 녹색이라 조화로 오해하는 사람도 무척 많다. – 강세종(가드너스와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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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지에서 만난 시서스 】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면서 머물던 호텔 로비 천장에서 시서스를 처음 보았다. 천장을 모두 덮을 만큼 풍성하게 자라는 모습에 반했다. 꼭 한 번 키우고 싶었는데 한국 농장에서는 잘 판매하지 않아서 어렵사리 작은 묘목을 사다가 기르고 있다(하지만 지금은 무척 흔한 식물이 됐다). 시서스는 기르기가 굉장히 쉬운 식물이다. 물을 많이 주면 흡수를 잘하고, 적게 줘도 꿋꿋하게 잘 살아남는다. 또한 햇볕이 강하지 않은 곳에 두어도 잘 자라기 때문에 방치하듯 기르고 있다. 사람들에게 “어떤 식물이 가장 좋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질문에 답하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 사람마다 식물을 대하는 방식이나 매력을 느끼는 지점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나의 작업실에는 있는 힘을 다해 연명하는 식물이 여럿이다. 겉으로 보기엔 잎이 다 떨어져 수명이 다한 것처럼 보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관리를 하면 어느 순간 푸른 잎으로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조금 웃자라고, 잎이 풍성하지 않아도 뭐 어떤가. 그게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인 것을.– 주례민(정원사의 작업실 오랑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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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년 만에 다시 만난 선인장 】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어버이날 아버지께 드린 선물이 선인장이었다. 카네이션도 아니고 왜 선인장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선인장이 ‘장수’를 의미하는 줄도 몰랐을 때다. 그리고 난 선인장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36년이 지나 아버지의 이삿짐을 옮기면서 아내가 이 선인장을 발견했다. 선인장을 자칫 잘못 키우면 정상적으로 크지 않기 마련인데 굉장히 예쁘게 잘 자랐다. 지금은 더 큰 화분에 옮겨 심어서 내가 관리를 하고 있는데, 이 선인장의 품종이 뭔지 아무리 찾아봐도 모르겠다. 36년 전만 해도 선인장 원종이 많았던 시기인지라 이 역시 원종일 거라 추측할 뿐이다. 사막이 자생지인 선인장은 더운 곳에서 하루 종일 햇볕을 받아야 하는 식물이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선인장을 남향에 둔다고 해도 사막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웃자라기 쉽다. 또한 반응 속도가 느려서 뿌리가 끊어져도, 계속 자라는 경우가 많고, 보통 식물과 달리 죽어가는 시간도 매우 길다. 그래서 선인장이 이미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치 채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이 선인장은 판매하지는 않지만, 매장에서 여느 식물들처럼 관리를 하고 있다. 식물들은 보통 관리만 잘하면 사람보다 더 살기도 하니, 이 선인장 역시 처음 아버지께 선물했던 그 시간만큼 앞으로 더 자라지 않을까? – 오주원(틸테이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