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동물과 식물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며 사는 멋진 왕국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자연주의 사상가  데이비드 소로의 말이다. 그 왕국의 수도는 습지다. 오랜 시간 습지의 생태계를 관찰해온 젊은 예술가들이 이 아름답고 사연 많은 젖은 땅의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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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과 예천군을 흐르는 강 내성천. 상류의 영주댐 건설에 따른 생태 변화를 기록해온 ‘리슨투더시티’의 작업을 통해 아름다웠던 금빛 모래밭과 버드나무 군락, 그리고 멸종위기에 놓인 습지 동식물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내성천 생태도감
큰달맞이꽃에 앉은 수컷 늦반딧불이, 원앙, 먹황새, 버들군락을 이룬 키버들과 산버들, 개나리보다 먼저 봄의 시작을 알려주는 부지런한 갯버들. 맑은 강 습지에서 만날 수 있는 정겨운 이름들이다. 환경과 도시 재생 문제에 집중해온 시각예술디자인그룹 ‘리슨투더시티(Listen to the City)’는 정부의 4대강 사업이 발표된 직후인 2009년 처음 낙동강을 찾으며 내성천과 인연을 맺었다. “너무 맑고 아름다워서 그냥 이대로 파헤치게 내버려둬선 안 되겠다 싶었어요.” 내성천 상류에 텐트를 치고 내성천 살리기에 나선 지율 스님을 만난 리슨투더시티는 그때부터 스님과 함께 동호강변에 모래 갤러리를 열고 본격적으로 전시와 기록 활동을 전개해나갔다. 지율 스님은 천성산 터널 공사에 대항해 ‘도롱뇽 소송’에 나섰던 환경운동가다.

이들은 영주댐 건설로 수몰될 지역과 공사 현장을 답사하는 ‘텐트 학교’를 운영하고, ‘내성천 한 평 사기’ 운동을 벌였다. 강 주변 습지에 서식하는 동식물을 예쁜 일러스트에 담은 <내성천 생태도감>도 만들었다. 한낮에도 수달이나 삵이 나타나곤 했던 내성천 하류 삼강습지의 선버들 군락, 그리고 영주댐 건설 공사로 경작이 금지되면서 습지화가 시작된 묵정논의 생태 변화 과정을 담은 책이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진행된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기록한 이 책 속의 풍경은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4대강 사업은 중단되었지만 영주댐이 완공되고, 그에 따른 지천 정비사업들이 진행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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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김해에서 소금을 실은 배가 드나들던 나루터였던 삼강은 700리 낙동강 물줄기와 내성천, 금천이 만나는 지점으로 금빛 모래밭과 ‘뱃가할매’로 불린 낙동강의 마지막 주모 유옥련의 삼강주막으로 유명하다. 과거부터 숱한 사람들이 모여들던 이 길목은 내성천 전체 구간을 통틀어 가장 많은 개체의 새와 야생동물이 관찰되는 지역이기도 했다. 강변 습지 가장자리의 엉겅퀴 군락에선 멸종 위기의 나비가 날아다녔고, 천연기념물인 흰꼬리수리도 출몰하곤 했다. 반짝이는 너른 모래밭 강변엔 일찌감치 버드나무 군락이 자리 잡았다. 버드나무는 물을 맑게 하는 정화 작용이 뛰어나 예부터 우물이나 강변에 많이 심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왕버들은 홍수와 가뭄을 예방하는 역할을 해 옛 사람들은 풍수지리적으로 지세가 허한 곳에 이 나무를 심어 마을의 길목을 가꾸기도 했다. 이 버드나무들의 뿌리는 습지에 살아가는 여러 생물의 보금자리이자 쉼터다.

이 중요한 강변습지는 영주댐 공사와 둑 높이기, 자전거 도로사업 등으로 파괴되었다. 수만 그루의 아름드리 나무가 잘려나갔고, 버들군락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해할 수가 없죠. 영주댐을 만든 목적이 수질 정화라는데, 당시 내성천은 2급수로 낙동강 지류 중 가장 깨끗했어요. 오히려 댐이 완공되고 난 후 수질이 급격히 악화되었죠. 잘못된 사업인 데다 멸종 위기종이 서식하는 환경을 파괴했기 때문에 현재 국가와 삼성물산을 상대로 댐 철거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리슨투더시티의 디렉터 박은선이 말했다. 댐뿐만 아니라 인공둑방도 문제였다. 생태통로였던 자연둑방과 버드나무 군락을 대신해 거대한 콘크리트 둑방이 들어서면서 풍요로웠던 둑방의 식생은 급속히 쇠락해갔다. 메마른 둑방에는 식물계의 황소개구리라는 가시박이만이 무성하게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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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풍경도 달라졌다. 현재 댐이 세워진 내성천 상류의 운포구곡과 430년 전통의 금강마을은 물속 깊이 잠긴 상태다. 용이 날아오르는 것처럼 물길이 땅을 휘감아 돌아간다 하여 회룡포라 불리던 내성천 하류의 육지 속 섬마을과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는 뜻의 수도리라는 별명처럼 아름답던 무섬마을 역시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다. 원래 모래강은 주기적으로 범람하면서 그 모양을 변화시켜 강바닥의 수평을 맞춘다. 건강한 강은 그래서 늘 물이 맑고 얕다. 그래서 조그마한 외나무다리나 바위 몇 개만 놓아도 쉽게 강을 건널 수 있었다. 흰목물때새나 흰수마자, 먹황새 같은 조류 역시 먹이를 잡기 위해 물가를 찾았다. 그런데 잘못된 댐 공사로 인해 모래가 유실되자 강 한쪽에 뻘이 쌓였다. 땅이 단단해지면서 엉뚱한 풀이 나기 시작했다. 고인물에 서식하는 물달팽이류가 현저히 늘었고, 습한 논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인 돌피 군락도 생겼다. 변화의 속도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다. 논이 아예 습지로 변한 경우도 있었다. 수몰지구 내의 휴농지들은 농약을 치지 않고 버려두자 불과 3년 만에 습지로 변했다. 리슨투더시티의 조사에 따르면 첫해엔 주로 골풀과 돼지풀, 망초, 사초 등이 자랐으나, 휴한 세 해째부터는 논에서 부들과 버들이 일시에 자리 잡았다. 특히 금광 3리, 이산서원 주변이 그랬다. “원래 습지였던 강을 농지로 개간했던 것 같아요. 묵정논이 습지화되어가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강변의 땅을 습지화했을 때의 효과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죠.” 뜻밖의 희망이었다. 초가을 강둑엔 달맞이꽃이 피었고, 해질녘이면 늦반딧불이가 불을 밝혔다. 촉촉하게 젖은 땅 위로는 꼬리명주나비와 왕은점표범나비가 날아다녔다. 기분 좋은 변화였다. 리슨투더시티는 이를 지키기 위해 ‘내성천 한 평 사기 운동’을 지속해나갔다. 만약 영주댐 건설이 중단되었다면 이 지역은 또 하나의 중요한 강변 습지가 될 터였다. 그게 3년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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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의 작업실에서 만난 박은선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생태계를 예술가의 감성과 운동가의 열정으로 부지런히 기록해나가고 있다. “내성천 활동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한국인의 삶이 자연과 너무 멀리 있다는 거예요. 강에 갈 일이 없기 때문에 강이 파괴되는 것에 대해 무감각한 거죠. 그래서 예술을 통해 접근하고자 한 부분도 있어요. 전시를 하고, 생태도감을 만들었죠. 영상 작업도 있고요. 사람들의 노동시간이 줄어 보다 많은 시간을 자연과 함께하고, 이를 통해 교감 능력을 키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리슨투더시티는 도시와 환경, 예술에 대해 고민해온 아시아 작가들의 <아시아 로컬리티>라는 포럼과 전시를 기획했다. 식민지 지배와 급속한 근대화를 경험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이 우리나라와 유사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공동 작업을 계획 중인 태국 빅트리그룹도 전시 참여 작가 중 하나였다. 지난 2월 리슨투더시티는 이들과 함께 태국 북부의 치앙다오 숲과 방카차오를 방문했다. 방콕의 습지인 방카차오는 태국판 4대강 사업이 예정된 곳이다. 한국수자원공사의 수출상품이다. “우리의 경험이 태국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가 되었으면 해요. 너무 아름다운 나라거든요. 앞으로도 계속 그러길 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