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재활용 화장품 박스에 익숙해졌고, 압축 비닐팩 포장이 되지 않은 화장품에 대한 거부감도 사라졌다. 화려한 장식과 포장으로 우리를 압도하던 럭셔리 브랜드 역시 불필요한 포장을 줄이기 시작했다. 화장품 브랜드들의 친환경 노력들이 이렇게 우리의 삶에 보다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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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려한 보틀과 박스 그리고 제품 설명서 하나도 누가누가 더 고급스럽고 화려한지 경쟁이라도 하듯 포장에 공을 들이던 럭셔리 뷰티 시장이 변화하고 있다. 고급스러운 가치는 잃지 않되, 포장을 줄이고 포장재를 바꿔가며 친환경적인 포장을 시도하는 것. 그 대표적인 예가 겔랑의 오키드 임페리얼 크림이다. 제품 용량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유리 용기를 좀 더 컴팩트하게 만들고 포장재 역시 재생 원료로 만든 종이를 코팅 처리하지 않은 채 사용했다. 럭셔리에 ‘지속 가능한 뷰티’라는 키워드를 접목한 것이다. 실제 이번 오키드 크림은 기존 제품에 비해 제품 용기와 박스의 부피가 약 40~60% 감소했고, 포장의 부품 개수 역시 절반 가까이 줄었다. 탄소 발자국, 즉 제품 생산 및 운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는지를 표시한 지표 역시 60% 감소시켰다. 그간 친환경주의가 자연주의 브랜드, 더마 브랜드 등에 한정되는 이야기처럼 여겨져 왔던 것을 감안하면, 럭셔리 브랜드의 대명사인 겔랑의 이런 움직임은 꽤나 의미 있는 시도임이 틀림없다. 우선, 뷰티 브랜드의 친환경 행보가 제조 공정에서의 오염 성분 무배출, 자연 친화적 원료 사용 등 직접적인 환경 보호 행보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포장을 줄이고, 친환경적인 포장재를 고민하는 것 역시 포괄적인 의미의 에코 활동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또한, 공정무역, 생물다양성 보전 활동 등 ‘지속 가능한’이라는 키워드를 줄곧 내세워온 럭셔리 시장이 보다 가시적인 산출물을 내놓기 시작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이는 곧 화장품 업계의 친환경 행보가 보다 많은 브랜드로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친환경적인 화장품 포장의 사례
제품 제작에 필요한 여러 비용 중 포장 비율을 최소화하는 것은, 화장품 브랜드 입장에서 보자면 가장 합리적인 환경 정책일 것이다. 화장품 제조 자체, 즉 성분을 가공하고 만드는 공정보다는 포장 자체에 친환경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화장품 포장과 운반 등에는 생각보다 많은 자원이 소요될 뿐 아니라, 이는 곧바로 탄소 배출로 이어진다. 포장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 제품 보호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외 (필수적이지 않은) 포장의 요소를 제거하는 것은 어찌 보면 가장 간편한 환경 보호 방법이다. 하지만 이 역시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클라란스의 콘셉트 매니저인 제나 쿠르탱 클라란스는 “우리는 제품 패키지가 환경에 주는 악영향을 줄이면서도 제품 보호 기능은 충실히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항상 고민한다”라고 말했다. 박스에 담지 않고, 압축 비닐 팩을 씌우지 않은 제품의 경우 운반 과정에서 제품이 손상될 수 있고, 이 때문에 소비자에게 제품에 대한 신뢰나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 상상을 해보라. 지금 눈앞에, 단단하게 박스로 포장된 화장품과 포장이 전혀 없는 화장품이 있다면, 어떤 제품에 더 마음이 갈 것 같나? 아마도 대부분 포장이 잘된 제품을 선택할 것이다. 표백이나 화학 처리를 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종이 상자는 또 어떠한가. 지금이야 아베다, 이솝 등 누런 재활용 박스를 활용하는 브랜드들이 널리 알려지며, 이에 대한 저항감이 많이 줄었지만, 감성 소비재인 화장품에 무광택의 거친 종이 박스를 사용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시도였을 것이다. 친환경적인 포장재를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일반 용기를 제조하는 것보다 재활용 용기를 사용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원 재활용 및 용기 생산 과정에서의 물 절약 등 환경 보호의 의미가 크다. 경제적으로 손해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브랜드가 재활용 용기를 고집하는 이유다. 버츠비의 유리병 제품, 이솝의 유리병과 플라스틱, 알루미늄 제품과 닥터 브로너스의 모든 플라스틱 용기 제품, 르라보의 배쓰& 보디 라인 제품 등이 재활용 용기를 활용하고 있다. 아베다는 매해 4월 지구의 달을 맞아 100% 재활용된 유리병으로 제작되는 라이트 어 웨이 캔들을 출시한다. 재활용이 가능한 용기 개발을 고민하는 경우도 많다. 이니스프리는 재생지로 제품 상자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데, 펄프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감귤 껍질을 사용하여 만든 종이인 ‘이니스프리 제주 감귤지’를 개발했다. 유기농 화장품 편집숍인 온뜨레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품은 에코서트에서 허가한 재활용 가능한 용기만으로 제작된다. 클라란스 역시 전 제품의 포장을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로 만들고 있다. 화학 연료의 사용을 최소화한 식물 기반의 바이오플라스틱 소재를 제품 용기로 사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P&G의 경우, 팬틴과 맥스 팩터의 일부 제품에 사탕수수로 만든 폴리에틸렌 용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시어테라 오가닉스는 옥수수 성분으로 만들어 땅에 묻으면 100% 생분해되는 인지오(Ingeo) 용기를 사용한다. 이런 바이오플라스틱의 경우, 일반 플라스틱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80%나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인쇄와 라벨부터, 용기에 자연을 더하다
프리메라는 재활용 나무를 활용하여,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 인증인 FCS 마크를 받은 포장재지로 상자를 만들고, 제품 설명 역시 상자 안쪽에 인쇄하여 불필요한 포장을 최소화했다. 또한 라벨의 인쇄에도 천연 콩기름을 사용하는 등 에코 패키지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콩기름, 즉 소이 잉크는 식물유라서 폐기 시 자연 분해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프리메라 외에도 버츠비, 이네이처 등이 콩기름을 이용해 인쇄를 하고 있다. 이솝과 버츠비는 제품 설명서를 빼는 대신, 이를 라벨에 모두 담아내고 있기도 하다. 혹은 아예 포장을 없애려는 움직임도 있다. 대표주자는 바로 러쉬다. 물에 녹는 옥수수 전분으로 만들어진 충전재 사용 등 러쉬의 친환경 행보는 이미 유명하지만, 더 나아가 “포장은 쓰레기다”라는 모토 아래 포장을 없애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제품 상자나 비닐 포장 대신 영구 활용 가능한 낫랩(Not Wrap)이라는 천 보자기로 제품을 싸서 판매하는가 하면, 용기를 대체하는 식물성 코팅제인 롤랑드를 개발하기도 했다. 롤랑드란 과일 성분으로 만든 일종의 종이 비누로 용기를 대신해서 제품의 형태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포장이면서 동시에 비누처럼 사용이 가능하다. 제품의 일부로 포장을 대신한 것이다. 이 얼마나 참신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인가!

아모레퍼시픽은 기업 차원에서 제품의 생산부터 유통, 사용, 폐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제품에 표기하는 탄소성적표지 인증 제품뿐 아니라, 자원 재활용 및 리필 제품 등 환경 친화적 제품 개발을 활발히 하고 있다. 저탄소 제품으로 국내 화장품 중에서는 최초로 환경산업기술원의 탄소성적표지 인증을 받은 해피바스의 쿨링 바디워시 등이 그 예다. LG 생활건강은 ‘그린경영 2020전략’을 기반으로, 매해 온실가스 감축, 에너지 사용 절감, 폐기물 배출량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화장품의 포장뿐 아니라 제조 전반에 따른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려는 기업들의 노력이 다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코팅을 하지 않은 재생종이 박스가 멋스러워 보이고, 종이 설명서 대신 라벨을 빽빽이 채운 제품 설명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다. 화려했던 기존 용기보다 한층 작고 납작해진 겔랑 오키드 크림이 더 예뻐 보이는 것은, 바로 그 속에 환경을 생각하는 브랜드의 배려가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필요한 포장을 줄이고 친환경적인 포장재를 사용하는 것, 이야말로 이 시대에 딱 맞는 가장 현실적인 지속 가능한 뷰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