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매장마다 얼굴 마담 역할을 하는  쇼윈도. 브랜드들은 여기에 소비자를 유혹할 ‘한 방’을 담아놓는다. 새로운 시즌을 시작하며 이들은 어떤 단장을 하고서 저 문을 열고 들어올 고객을 기다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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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컬러 그래픽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프라다의 패턴 플레이, 곡선 집기들로만 이루어진 매장을 쇼윈도를 통해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한 마르니의 형태 미학, 창의력 끝판왕 모스키노의 범접할 수 없는 위트. 스토어를 매력적으로 구성하는 시각적 효과에 힘을 쏟는 비주얼 머천다이징(Visual Merchandising)은 상품을 돋보이게 하고 판매로 이어지게 하는 것은 물론이며, 브랜드의 철학을 전달하는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다. 시카고 대학 비즈니스 학회의 지난 연구 <An Analysis of Retail Display Space: Theory and Methods>에 따르면 매장에 들어오는 고객 대부분은 쇼윈도에 끌려 매장 문을 연다고 한다.(그 다음은 지인의 추천, 광고 비주얼, 가격 정보 순이었다) 또한 80.8%의 고객이 오른쪽 쇼윈도부터 왼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상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에도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매장을 훑는다고 한다. 이것은 미국 포틀랜드의 디스플레이 컨설턴트 린다카 한이 이야기한 0.9초 법칙에도 부합하는데, 고객은 쇼윈도를 보고 0.9초 만에, 매장 문을 열고서는 0.7초 만에 그 상점의 첫인상을 느끼며, 이 짧은 시간에 구매 여부가 결정된다. 쇼윈도를 포함한 매장은 제품을 보여주고 판매하기 위한 상업적인 공간인 동시에 교감을 나누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공간이며 브랜드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시 공간이기도 하다. 브랜드들이 일년에 몇 차례씩이나 큰 비용을 들여 디스플레이를 바꾸고,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하며 색다른 아이디어로 무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올봄, 침체된 경기 속에 소비자의 지갑을 열 비장의 무기인 매장 디스플레이를 위해 브랜드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맛있는 음식도 예쁜 그릇에 내놓아야 시너지를 얻는 법. 한땀한땀 제대로 만들어 패션쇼에서 성공적으로 선보인 옷들이 ‘상품’이 되어 본격적으로 소비자의 평가를 기다리는 지금, 패션 하우스의 매장 디스플레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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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의 옷을 갈아입히다
주얼리 브랜드는 일년 매출의 상당 부분을 결정짓는 연말 시즌에 비주얼 머천다이징에 총력을 기울인다.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 까르띠에는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 건물 전체를 빨간 포장 박스로 꾸몄을 정도. 그렇다면 일년에 두 번 컬렉션을 하고, 그 사이사이 캡슐 컬렉션도 선보이며 주얼리보다는 훨씬 자주 신상품을 쏟아내는 의류 브랜드들은 특별한 시즌을 위해 어떻게 움직일까? 프라다는 전 세계가 공통으로 같은 콘셉트를 가지고 봄/여름, 리조트, 프리폴(Pre-Fall), 가을/겨울 컬렉션 등 시즌마다 윈도를 바꾼다. 매장을 구성하는 작은 집기까지 모두 이탈리아 본사의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본국에서 직접 공수하기도 한다. 이러한 규칙을 따라 전 세계의 매장이 통일된 이미지를 전달한다. 그러나 밸런타인데이나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시즌이나 프로젝트를 위한 디스플레이를 기획할 때는 예외다. 지난 2월 컬렉션 기간 동안 프라다는 런던 올드 본드 스트리트, 밀라노 몬테나폴레오네, 파리 애비뉴 몽테뉴의 프라다 매장을 ‘그래픽 룸’이라는 콘셉트로 바꿨다. 18세기 중국의 전통 스크린 페인팅에서 영감을 받은 스텐실 기법을 사용했는데 그린 컬러를 중심으로 블랙, 화이트 컬러에 플로럴 디자인을 더한 것이 특징이었다. 안 들어가고는 못 배기게 만든 화려한 동양적인 백그라운드는 컬렉션 피스들과 잘 어우러지며 매장 문을 쉴 새 없이 열고 닫히게 만들었다.디올 하우스는 메종 역사의 새로운 시작을 팝업 스토어로 알렸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디자인한 첫 번째 디올 컬렉션을 기념하기 위해 엄선된 세계 주요 도시에 다양한 팝업 스토어를 오픈한 것. 이벤트의 서막을 연 첫 도시 파리의 몽테뉴가 44번지에는 유서 깊은 화이트와 그레이 컬러, 메종의 시그니처 의상 등이 다양한 현대적인 디자인 가구를 비롯해 우드와 메탈, 콘크리트로 구성한 집기들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영국 출신의 아티스트 트레이시 에민과의 협업으로 사랑과 남녀관계를 테마로 한 네온 아트 작품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울에서는 특별히 디자인된 디올의 인스토어 팝업 매장을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 2층에서 4월 초까지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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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션의 영감을 이어가다
지금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옷은 6개월 앞선 지난가을 시즌 런웨이에서 선보인 옷들이다. 요즘은 몇몇 브랜드가 컬렉션 직후에 구매를 유도하는 ‘시 나우 바이 나우(See Now, Buy Now)’를 실행하고 있지만 보통은 6개월간 같은 콘셉트를 유지하며 소비자가 컬렉션 의상을 현실적으로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을 수정하고, 수량을 늘려 커머셜 피스를 선보인다. 이 때문에 시즌 의상의 콘셉트를 디스플레이에 반영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브랜드가 많다.루이 비통은 비주얼 머천다이징이라는 개념을 개척해온 브랜드 중 하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쇼윈도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데, 이는 고객에게 브랜드의 DNA를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지금 전 세계 루이 비통 매장에서 일제히 선보이고 있는 ‘스테어(Stairs)’ 윈도는 브라질 출신의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가 미확인 비행물체가 내려앉은 모습으로 디자인한 니테로이 현대미술관에서 열려 이슈가 된 리우데자네이루 크루즈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았다. 니마이어가 ‘한 송이의 꽃’이라 묘사한 이 미술관은 원형으로 건축물을 둘러싸고 있는 현대적 구조물로 루이 비통은 이를 더욱 부각시킨 형태를 쇼윈도에도 고스란히 녹였다. 정직하게 컬렉션의 콘셉트를 따르는 또 다른 브랜드는 버버리다. 지난 2월에 열린 버버리의 ‘페브러리’ 컬렉션은 영국 아티스트 헨리 무어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매장의 구성 역시 헨리 무어의 작품에서 착안했다. 헨리 무어가 작품을 만들 때 사용한 소재가 고스란히 윈도 오브제로 탈바꿈했다. 헨리 무어는 모든 소재는 고유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그의 역할이라 믿으며 ‘소재의 사실성’으로 작품의 정통성을 추구했다. 버버리는 그가 즐겨 사용하던 돌, 나무, 청동 등의 소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자연의 소재인 나무, 청동, 돌(콘크리트)을 매장 디스플레이에 적극 활용했다. 윈도 전체에 사용한 컬러와 마네킹이 입은 룩은 헨리 무어의 프린트와 어울리도록 화이트, 블랙, 누드톤으로 골랐다. 몽클레르의 매장도 기가 막히다. 최근 파리에서 아이웨어를 론칭한 몽클레르 파리 팝업 스토어는 인상적이다. 몽클레르의 앰배서더를 담당하는 가상의 커플 미스터 앤 미세스 몽클레르(Mr. & Mrs. Moncler)가 문을 지키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깔끔한 집기들 안에 몽클레르의 클래식, 스포티, 빈티지, 타임리스 그리고 도시적인 라이프스타일 콘셉트에 맞는 선글라스가 줄지어 진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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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공간이 되다
다양한 콘셉트의 브랜드 제품을 모아 소개하는 편집매장의 비주얼 머천다이징은 어떨까? 편집매장이 가지고 있는 DNA를 유지하면서 수많은 브랜드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최근 매장 전체를 리뉴얼한 분더샵이 좋은 예이다. ‘더 뉴(The New)’ 분더샵 청담으로 새롭게 탄생한 이 공간은 2014년 10월 확장 오픈 이래로 첫 리뉴얼을 시도했다. 젊은 고객 확보와 동시에 기존의 고객들에게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이번 리뉴얼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점은 바로 ‘새로운 경험(New Experience)’이다. ‘케이스스터디(Casestudy)’에서는 쉽게 만나기 힘든 레어 스니커즈 컬렉션을, ‘분 뮤직(Boon Music)’에서는 각 장르의 명반부터 아티스트가 큐레이션한 선곡 리스트까지 만나볼 수 있다. ‘북&큐리어시티(Book & Curiosity)’에서는 분더샵 감성으로 셀렉트한 오브제와 시즌별 테마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북을 접할 수 있으며 편집매장 최초로 뷰티에 대한 모든 것을 만나볼 수 있는 ‘뷰티 엠포리엄 바이 라 페르바(Beauty Emporium by La Perva)’도 갖췄다. 지하에서는 국내외 실력 있는 뮤지션과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영화뿐 아니라 예술, 패션계에서도 독보적 영역을 구축한 배우 틸다 스윈튼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또 한번 뜨거운 감자가 된 젠틀 몬스터는 새로운 경험을 전하는 매장 디스플레이를 선보인다. 비주얼 머천다이저 하예진의 말에 따르면 젠틀 몬스터의 비주얼 머천다이징의 콘셉트는 제품을 보여주기보다는 소비자들이 느끼는 감정을 담는 것에 주력한다고 한다.  고객들에게 색다른 설렘을 주기 위한 공간을 디자인하고, 그 안에서 오브제가 하나의 예술품처럼 보이도록 매장을 연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가치를 소비하는 소비자를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지난 1월에 리뉴얼 오픈한 홍대 플래그십 스토어 ‘더 센트(The Scent)’는 젠틀 몬스터가 깊이 있게 향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공간이다. 조향사와 향에 관한 전문가와 함께 다양한 소재를 선별하여 증류, 숙성, 조향 등의 과정을 통해 매주 테마에 맞는 향을 소개한다.

지금 한창 변화 중인 에르메스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에르메스는 다른 브랜드들과는 다르게 전 세계 모든 매장의 윈도가 각기 다르다. 각 매장의 윈도는 그 매장과 그해 에르메스의 테마에 맞춰 아티스트들이 윈도 디스플레이를 디자인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11월 오픈하여 10년을 보낸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는 앞으로의 또 다른 10년을 위해 새 단장을 진행 중인데, 오는 5월 20일 공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보통 공사 중인 경우에는 가벽을 세우고 광고 비주얼이나 브랜드의 로고로 건물을 가려놓는 게 관례이지만, 에르메스 도산은 새로운 메종 도산 파크의 변화하는 모습을 프렌치 일러스트레이터 위고 가토니의 특별한 드로잉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현재, 메종 도산 파크의 여섯 개의 윈도에는 일하는 말의 다양한 모습이 공개되었는데, 이 말은 1837년부터 안장과 마구 용품을 시작으로 한 에르메스에 대한 오마주와도 같다. 마치 공사 중인 내부를 보여주듯 한쪽에서는 페인트통을 들고 작업을 하고, 한쪽에서는 해먹에 누워 쉬기도 하며, 다른 한쪽에서는 계단에 앉아 있다. 이 유머러스한 드로잉은 소비자로 하여금 앞으로 벌어질 메종 도산 파크의 변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자,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봄을 위해 새 단장을 마친 쇼윈도 구경을 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설 차례다. 윈도 쇼핑만으로도 눈이 즐거울 거다.

1 리우데자네이루 크루즈 컬렉션의 콘셉트로 전 세계 루이 비통 매장에서 일제히 선보이고 있는 ‘스테어(Stairs)’ 윈도.

2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디자인한 첫 번째 디올 컬렉션을 기념하기 위한 로스앤젤레스의 팝업 스토어 외부.

3 컬렉션 기간에 동양적인 그래픽으로 매장을 꾸민 밀라노 몬테나폴레오네의 프라다 매장.

4 아이웨어를 론칭한 몽클레르 파리 팝업 스토어.

5 영국 아티스트 헨리 무어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의 콘셉트를 따른 버버리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

6 고객이 느끼는 감성을 디스플레이 콘셉트로 잡은 젠틀 몬스터 홍대 플래스십 스토어.

7 총괄 비주얼 머천다이징 컨설턴트인 필립 존슨의 디렉팅 아래 피터 마리노 등 저명한 건축가가 참여해 리뉴얼한 ‘더 뉴’ 분더샵 외관.

8 리뉴얼 중인 에르메스 도산 메종의 쇼윈도를 장식한 일러스트레이터 위고 가토니의 드로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