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읽기 좋은 이상한 사랑에 대한 책 세 권.

 

218-1

사랑을 말하는 세 권의 소설.

줄거리나 연기보다는 비틀즈의 음악 그 자체로 이미 훌륭했던 줄리 테이머 감독의 영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Across the Universe)>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All You Need is Love’가 울려 퍼지던 게릴라 공연이었다. 우리에게 사랑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최근 몇 달 우리는 더욱 그렇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사랑과 관용을 끌어 모아 우리는 촛불을 밝혔고, 최고 권력자를 자리에서 몰아낼 수 있었다. 그것을 뮤지컬의 낭만성을 빌려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사랑,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 범박하게 말해도 아주 나쁘진 않을 것이다. 이제 완연한 봄 4월이 되었으니까. 봄은 역시 사랑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사랑을 나누기에 근사한 사회를 만드는 데 몇 걸음 정도는 움직인 것 같아 뿌듯하다. 여기 소설 세 권이 있다. 모두 사랑을 말한다. 많은 소설이 그렇듯 사랑이 전부인 소설은 아니지만, 봄날이니까 사랑을 중심으로 약간은 말랑하게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엘레나 페란테는 베일에 감춰진 이탈리아 작가이다. 2016년 <나의 눈부신 친구>로 먼저 소개되었는데, 이 감각적인 소설은 나폴리 4부작의 1부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우리에겐 마저 읽어야 할 소설이 세 권이나 남은 셈. 그 2부가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이다. 유년시절부터 이어진 릴라와 레누의 청년 시절 이야기다.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주고받은 두 여자가, 결혼을 하고 자아를 찾으며 자신 본연의 목소리를 내는 이야기다. 남성 우월주의를 당연시하는 세계에서 두 여성의 내적인 주고받음과 그로 인한 주저 없는 선택이 인상적이다. 두 여성은 불행하게도 각자의 남편을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

여성의 사랑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던 시절, 둘의 우정이 진짜 사랑에 가깝게 느껴진다. 둘의 영혼에 드리워진 친구의 빛과 그림자가 경계선을 그리며 인물의 성장을 따라간다. 젊은 작가 황현진의 신작 <두 번 사는 사람들>이 출간되었다. 전작 <죽을 만큼 아프지 않아>에서 청춘의 성장담을 위트와 패기가 넘치는 문장으로 보여준 작가이다. 이번 소설에서는 그의 세계가 더욱 넓고 깊어진 것으로 보인다. 소설가의 촉일까, 집필 시기에는 알 수 없었겠지만, 박정희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소설은 지금 이 시국과 맞물려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박정희가 죽고 주인공 구구가 대통령의 동명이인인 어머니 박정희의 몸에서 태어난다. 구구는 박정희의 배 속에 있었던 때의 기억을 선명하게 호출할 수 있고, 그 기억은 상처로 혹은 삶으로의 의지로 작용한다. 여러 번 살고 죽는 생인데, 한 번만 사는 것처럼 아등바등이라 억울하다는 듯이, 소설의 인물은 다채롭고 입체적이다. 소설에서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거의 없다. 다만 관계가 있을 뿐이다. 삶이라는 광장에 각자의 촛불을 하나씩 들고 서 있던 우리처럼, 인물의 얼굴과 얼굴은 서로의 그것을 비추며, 성장한다. 중견 작가 이승우도 오랜만에 신작 장편 <사랑의 생애>를 냈다. 소설의 미덕이 흡입력 있는 이야기, 매력적인 캐릭터 같은 것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래된 오해에 가깝다. 인물의 입을 빌려 풀어놓는 작가의 사변과 사유,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이야기가 움켜쥐고 있는 삶의 진실 같은 것은, 흔히 소설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지만, 소설을 소설답게 하는 문학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사랑에 대한 갖가지 생각을 가진 인물의 중첩과 분류는 소설의 대가다운 작가의 필체에 의해 유려하게 자리한다. 불같은 사랑, 순백의 사랑, 산뜻한 사랑 따위는 없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현실 위에 발붙인 사랑이며, 곧 독자의 사랑이리라. 사랑에 대한 증명,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에 혼자 힘으로 벅찬 사람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