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를 둘러싼 외교 갈등으로 중국에 진출한 화장품 브랜드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미국 시장이 K- 뷰티의 새로운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다. 과연 K- 뷰티는 미국 주류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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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겨울, 컬렉션 취재를 위해 뉴욕을 방문한 뒤 2년 만에 다시 뉴욕을 찾았다. 이번 출장 역시 뉴욕 컬렉션 취재가 목적이었지만, 뉴욕 K-뷰티의 현주소 역시 직접 목격하고 싶었다. 미국판 <얼루어> 웹사이트에는 언젠가부터 K-뷰티에 관한 기사가 일주일에 한두 번꼴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미국판 <얼루어> 뷰티 에디터로부터 한국판 <얼루어>에서 매년 진행하는 ‘베스트 오브 뷰티 어워드’ 수상 제품들에 대해 알고 싶다는 메일을 받기도 했다. 여기에 한국에 전해진 미국 내 K-뷰티의 활약상이 사실인지, 2년 만에 찾은 뉴욕 현지의 분위기는 어떠한지 궁금해 패션쇼와 백스테이지를 취재하는 틈틈이 뉴욕 뷰티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뷰티 매장을 찾아 나섰다.

 

뉴욕 패션위크에서 목격한 K-뷰티 파워
뉴욕 컬렉션 백스테이지에서 가장 활발하게 코리안 뷰티 파워를 전파하고 있는 사람은 네일 아티스트 진순최와 박은경이다. 뉴욕 패션위크 기간 동안 마크 제이콥스, 마이클 코어스, 델포조 등 주요 쇼의 네일을 담당하는 진순최가 뉴욕 네일 아티스트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면, 박은경은 라이징 스타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글래스 네일’, ‘와이어 네일’ 등을 히트시키며 네일 트렌드를 이끌어가고 있는 그녀는 이번에 세 개 쇼를 담당했다. “지난 시즌에 이어 두 번째로 뉴욕 컬렉션에 참여했어요. 뉴욕에 오기 전 인스타그램에 뉴욕으로 출장을 간다는 짧은 메시지를 남겼는데, 뉴욕에 오면 네일 서비스를 받고 싶다는 DM이 100통 넘게 왔어요. 어떻게 알았는지 뉴욕 현지 매거진과 방송사에서도 섭외 요청이 와서 컬렉션을 준비하는 틈틈이 인터뷰를 하러 다니느라 바빴어요.” 그녀는 SNS의 놀라운 파급력과 K-뷰티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체험하면서 이러한 변화가 신기할 정도라고 이야기한다.

뉴욕에 진출한 K-뷰티 브랜드의 백스테이지 스폰서 활동도 활발했다. 오프닝 세레모니 쇼 백스테이지에서는 닥터자르트의 하늘색 러버마스크를 붙인 모델들을 만날 수 있었다. 2011년 뉴욕 세포라에 처음 입점한 뒤 이듬해 한국 브랜드로는 최초로 뉴욕 패션위크 스킨케어 분야를 후원한 닥터자르트의 사례는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꼽힌다. 이후 빌리프와 투쿨포스쿨이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도 비슷한 전략을 구사해 미디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며 미국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 이번 시즌 프라발 구룽 쇼 백스테이지에서는 빌리프의 대표 제품인 클렌징 허브 워터와 아쿠아 밤 시트 마스크, 더 트루 크림-아쿠아 밤을 이용해 스킨케어를 하는 장면을 목격했고,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투쿨포스쿨 역시 리버틴 쇼 백스테이지에 참여해 에그 크림 시트 마스크와 다양한 메이크업 제품을 선보였다. 모델들과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시트 마스크를 비롯한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대단했다.

 

미국 주류 시장으로 이동 중인 K-뷰티
소호 중심가에 자리한 세포라 매장에서는 다양한 한국 브랜드가 소비자를 만나고 있었다. 세포라는 2015년 가을, K-뷰티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며 K-뷰티에 대한 미국의 관심에 불을 지폈다. 당시 가채를 두르고 한복을 입은 모델 박지혜를 등장시킨 광고 캠페인 비주얼은 ‘촉촉하고 윤기 있는 피부’를 K-뷰티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2년 만에 찾은 세포라 매장에서 목격한 가장 큰 변화는 아예 K-뷰티 섹션이 들어섰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닥터자르트를 비롯해 빌리프, 투쿨포스쿨, 아모레퍼시픽, 네오젠 등의 대표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2011년, 세포라에 BB크림 2종을 선보이며 미국 시장에 처음 진출한 닥터자르트는 현재 단독 코너에서 50여 개의 제품을 선보이고 있고, 미국 내 세포라 750개 매장에 입점해 있다. “2011년, 세포라 입점을 시작으로, 뉴욕 패션위크 백스테이지를 후원하며 트렌디하고 개성 있는 브랜드로 입지를 다져왔어요. 2014년 가을, <뉴욕타임스>에 K-뷰티를 소개하는 기사가 실리면서 본격적으로 K-뷰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그해 11월 뉴욕에서 팝업스토어를 진행하기도 했죠.” 닥터자르트 홍보팀 장영환 과장의 말이다. 투쿨포스쿨 역시 2015년 세포라에 첫 입점한 이후 현재 미국 내 세포라 매장 70여 개에 입점해 있으며, 지난해 10월에는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단독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기도 했다. 2015년 3월, 미국 내 35개 세포라 매장에 입점한 빌리프 역시 현재는 뉴욕과 보스턴, LA,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동서부 주요 도시에 자리한 100여 개 세포라 매장에 단독 코너로 입점해 있다.

세포라뿐 아니라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자리한 주요 백화점에서도 K-뷰티의 달라진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5년 뉴욕 퀸즈 플러싱에 위치한 메이시 백화점에 다양한 한국 화장품 브랜드를 모아놓은 피치 앤 릴리 편집숍이 들어선 뒤로 9개월 만에 또 다른 지점에 2호점을 오픈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한 엘리샤 윤 대표가 지난 2012년 설립한 피치 앤 릴리는 미국에서 K-뷰티를 소개하고 엄선한 한국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편집숍으로 시작해 현재는 홈쇼핑, 오프라인 편집숍 등 다양한 채널로 확대하고 있다. 올 1월에는 미국 대형마트인 타깃에 엘리샤 윤 대표가 선별한 13가지 제품을 판매하는 큐레이팅 섹션이 들어서기도 했다. “타깃은 인플루언서와 활발하게 협업을 진행해왔어요. 그런 면에서 타깃 입점은 미국 시장에서 K-뷰티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죠. 얼마 전에는 뉴욕 고급 백화점 중 하나인 바니스 뉴욕의 메디슨 애비뉴점과 다운타운점에 한국 브랜드의 마스크 제품을 소개하는 마스크 바가 문을 열었어요. 이미 뉴욕 최고급 백화점인 버그도프굿맨에 아모레퍼시픽과 설화수가 입점해 있지만, 마스크 바는 상대적으로 저가인 마스크 제품들 위주로, 소규모 화장품 브랜드들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커요.” 알약 같은 패키지로 화제를 모은 렛미스킨의 모델링 팩과 세련된 패키지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쉽고 재미있는 메이크업 제품으로 유명한 슈퍼페이스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마스크 바에 자리를 잡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노드스트롬 백화점 역시 미국에 진출한 K-뷰티 브랜드의 디자인과 브랜딩 관련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크로스포인트와 협업해 지난 2월부터 3월 말까지 K-뷰티 팝업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팝업 스토어는 미국 시애틀과 LA, 댈러 스, 시카고, 캐나다 밴쿠버, 토론토 등 일곱 개 지점에서 운영되며, 한국의 하이엔드 메이크업 브랜드와 스킨케어, 헤어케어 브랜드의 500개 이상의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피치 앤 릴리와 더불어 미국 내 K-뷰티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글로우 레시피는 로레알 코리아와 로레알 뉴욕 본사에서 미국 소비자 조사와 제품 개발, 리테일러 트레이드 마케팅 등을 담당했던 사라 리와 키엘 글로벌 마케팅 전략을 담당한 크리스틴 장이 지난 2014년 공동 설립한 회사다. 한국 브랜드를 큐레이팅해서 소개하는 온라인 편집숍에서 시작해 현재는 세포라와 미국 최대 규모의 홈쇼핑 채널인 QVC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미국 내 K-뷰티를 널리 알리는 동시에 K-뷰티 브랜드의 판매 채널을 다각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올해 3월에는 뉴욕 소호 중심가에 글로우 레시피 팝업 스토어를 열기도 했다. 한 달간 운영되는 팝업 스토어에서는 한국 브랜드와 제품 소개뿐 아니라 K-뷰티 루틴과 트렌드를 소개하는 뷰티 클래스와 K-뷰티 인플루언서들과의 만남, 무료 스킨케어 컨설팅 서비스 등을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다.

 

미국에 진출한 K-뷰티 브랜드의 고민
뉴욕을 여행하다 보면 수시로 들르게 되는 세포라 매장을 비롯해 뉴욕 중심가에 자리 잡은 고급 백화점에서도 익숙한 한국 화장품 브랜드를 만나는 경험을 하면서 10년 전, 국제 마케팅 수업에서 아모레퍼시픽의 뉴욕 진출 사례를 발표하던 때가 떠올랐다. 할리우드 여배우가 아모레퍼시픽 쇼핑백을 들고 있는 장면이 찍힌 파파라치 사진 한 장에도 감탄하던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의 변화가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미국 시장에서 K-뷰티의 성공을 자축하기는 아직 이르다. 한국 여성들의 뷰티 루틴과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구매로 이어지고 있긴 하지만 전체 판매량 중 재미교포나 중국계 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까지 매우 큰 상황이다. 피치 앤 릴리나 글로우 레시피가 국내 소규모 브랜드에 미국 진출의 길을 열어주긴 했지만 여전히 수익 면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브랜드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대미 한국 화장품 수출액과 미국 내 시장점유율은 중국 시장에 비하면 아직까지 미미한 실정이다. 코트라(KOTRA)에서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집계한 대미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약 368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85% 증가했고, 미국 내 시장 점유율도 2014년 1.27%에서 2016년에는 2.84%로 확대됐지만 2015년 대중국 한국 화장품 수출액인 2조9300억원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치다. 또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직진출이 아닌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편집숍을 통해 진출하다 보니 브랜드만의 특징이나 콘셉트, 스토리를 전달하기도 쉽지 않아 제품이 입소문을 타도, 정작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는 전무한 경우도 많다.

미국의 영토가 워낙 넓다 보니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고 미국 시장에 직진출해 오프라인 매장을 여는 데에는 많은 위험이 따른다. 미국 시장에 호기롭게 도전해 오프라인 매장을 냈다가 쓰디쓴 실패를 맞보고 철수한 브랜드의 사례가 많다 보니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 같은 대기업도 미국 시장 진출에 신중을 기하는 상황이다.

한국보다 훨씬 다양한 인종과 취향이 존재하는 미국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도 어려운 과제다. 대표적인 K-뷰티 화장품으로 꼽히는 쿠션 팩트만 해도 국내에서는 대부분 동양인 피부에 맞는 2~3개 셰이드를 출시하고 있지만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훨씬 다양한 셰이드를 출시해야 한다. 규모가 작은 브랜드들 입장에서는 미국 현지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는 데 충분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브랜드가 앞다퉈 미국 시장 진출을 고집하는 이유는 미국 시장 진출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유럽과 더불어 화장품 종주국으로 꼽히는 미국 시장에서 인정받았다는 ‘타이틀’ 말이다. 또한 현재 전체 화장품 수출액 가운데 홍콩을 비롯한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기준 67.3%에 달할 만큼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국내 화장품 시장 구조를 개선하는 데에도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최근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는 정치, 외교 문제가 국민 정서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해 화장품 산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면, 미국과 유럽 시장은 그러한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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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미국 시장 안착을 위한 전략
미국 시장에서 K-뷰티는 단순한 유행이 아닌 새로운 카테고리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 시장의 반응은 낙관론이 우세하다. “불과 2015년 초만 하더라도 K-뷰티라는 단어조차 생소했지만 이제는 미국에서 만나는 뷰티 업계 사람들은 물론이고 소비자들도 ‘K’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압니다. 한국 화장품 하면 뛰어난 기술력과 효능을 떠올리기도 하고요.” 닥터자르트 홍보팀 장영환 과장의 말이다.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과 이너 뷰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과거에 비해 스킨케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이러한 낙관론을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빌리프 미국 본사 마케팅팀의 유세라 파트장은 피부에 자극이 적은 화장품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식물 성분이나 유기농 식물 성분을 담은 화장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는 성분에 대해 따져보고, 수분크림이나 시트 마스크, 필링 젤처럼 즉각적인 효과를 줄 수 있는 제품을 선호해요. 한국에 비해 스킨케어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하기 때문에 제품을 구매할 때 직관적인 설명과 이미지, 구체적인 효과를 중요시하죠. 이러한 점을 반영해 미국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패키지와 제품 설명, 비주얼 자료를 기획할 때는 한국 시장과는 다른 마케팅 전략을 펴고 있어요.” 글로우 레시피의 사라 리 대표는 바쁘고 지친 일상에 즐거움을 주고 여기에 눈에 보이는 효과까지 주는 ‘위트 있는 뷰티’를 선호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성향도 K-뷰티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K-뷰티 제품이 가진 독창적인 패키지와 제형, 여기에 제품력까지 더해진다면 미국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봐요.”

넓은 영토와 다양한 인종, 다양한 취향을 가진 소비자들이 미국에 존재한다는 점은 한국 브랜드에게는 거대한 장벽인 동시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슈퍼페이스의 손정 대표는 미국 시장이 작은 브랜드들에게는 더욱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말한다. “미국은 영토가 넓어 지역마다 니즈가 확연히 달라요.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뉴요커들은 보습에 관심이 많고,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메이크업도 좀 더 센 것을 원하죠. 반면 LA 사람들은 끈적임이 없는 제품을 선호하고,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럽고 건강해 보이는 메이크업을 좋아해요. 인종뿐 아니라 성적 취향도 다양해요. 바니스 뉴욕 마스크 바에서 남성용 마스크 팩이 한국보다 훨씬 반응이 뜨거워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더라고요. 미국에는 남성, 여성 말고 다양한 성이 존재한다고 하면서요. 하지만 K-뷰티와 한국 화장품 브랜드가 미국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으려면 중국 시장과는 전혀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단기적인 매출을 올리는 데 급급하기보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죠.” 손정 대표는 대표적인 예로 브랜딩을 꼽았다. “미국 내에서 K-뷰티와 한국 화장품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지만 아모레퍼시픽이나 설화수 같은 몇몇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한국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는 여전히 낮은 편이에요. 브랜드는 없고 제품만 있는 셈이죠. 미국 화장품 브랜드의 로고나 콘셉트, 제품 디자인 등을 그대로 베낀 브랜드가 많다는 점도 문제예요. 실제로 칸 국제광고제에 가보면 미국 화장품 브랜드를 모방한 한국 브랜드가 함께 후보에 오를 때도 있어요. 기술력과 제품력이 뛰어난 한국 화장품이 브랜딩이 약해 제값을 받지 못하고 팔리는 현실이 안타까울 때도 많아요. 이번에 바니스 뉴욕 담당자들을 미팅하면서도 느꼈지만 미국 주류 시장에서는 브랜드가 가진 색깔을 굉장히 중요시해요. 브랜드 스토리에도 관심이 많고요. 때문에 K-뷰티 브랜드가 재미있는 패키지나 저가의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높은 제품력을 바탕으로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 잡으려면 브랜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이를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브랜딩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해요.” 그녀는 미국에 진출한 K-뷰티 브랜드 중 성공적인 브랜딩 사례로 투쿨포스쿨을 꼽았다. “투쿨포스쿨은 굳이 ‘국적’을 밝히지 않아요. 브랜드만 보면 뉴욕 브랜드인지, 런던 브랜드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죠. 우리가 에스티 로더를 미국 브랜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요. 차별화된 브랜드 콘셉트와 제품 전략이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이 아닐까 싶어요.”

사라 리 대표 역시 브랜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희의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 시장에서 ‘K-뷰티’라는 말이 사라지게 하는 거예요. 현재 ‘프랑스 뷰티’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없는 것처럼 향후 한국 화장품이 미국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시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제품들로 인정받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브랜드와 제품에 적합한 유통 채널을 발굴하고, 그에 맞는 브랜딩 전략과 효과적인 디지털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 브랜드를 양성하는 것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한 미국의 주 소비계층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를 사로잡기 위한 전략도 반드시 필요하다. 사라 리 대표는 경험을 중요시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려면 그들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화장품 쇼핑 역시 경험 측면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흥미로운 스토리가 많고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브랜드를 선호해요. 때문에 K-뷰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죠.” 그녀는 미국 내 매거진과 언론을 통해 한국의 전통, 문화, 최신 뷰티 트렌드, 피부 관리 노하우, 브랜드 창립자 뒤에 숨은 이야기 등을 끊임없이 소개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피치 앤 릴리 역시 최근 피부과전문의와 전문 테라피스트의 피부 관리에 대한 조언을 소개하고 한국 뷰티와 트렌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피부(PIBUU)라는 웹사이트를 새로 오픈하기도 했다. 온라인상에서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과 더불어 오프라인 채널의 확장 역시 중요한 문제다. 모바일 쇼핑이 대중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소비자가 화장품은 직접 눈으로 보고, 발라보고 구매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피치 앤 릴리의 엘리샤 윤 대표는 새로운 브랜드와 제품을 미국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데는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미국 내 K-뷰티의 영향력을 키우려면 지금보다 다양한 오프라인 매장에서 한국 화장품을 만날 수 있고, 높은 품질과 기술력, 확고한 브랜드 콘셉트를 가진 더 많은 한국 화장품 브랜드가 미국 시장에 진출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