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이루는 대표적인 풍경이 된 대단지 아파트. 낡은 아파트가 재건축이 되면서 사라지는 건 사람들의 추억만이 아니다. 아파트의 재건축을 둘러싼 이야기.

 

10층 높이를 훌쩍 넘긴 둔촌주공아파트의 메타세쿼이아.

10층 높이를 훌쩍 넘긴 둔촌주공아파트의 메타세쿼이아.

그곳은 한때 우리가 가진 세상의 전부였다. 그곳이 어디든, 아이들에게 동네가 가진 의미는 그랬다. 좁은 골목은 대로처럼 넓고, 하나의 아파트 단지 역시 한 개의 도시처럼 받아들여진다. 어른이 되어 어릴 적 살던 동네에 다시 가보면, 누구나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곳이 이렇게 작았었나? 서울이라는 도시는 아파트를 발판 삼아 확장되었다. 도시의 효율에 따라 아파트는 끝도 없이 지어졌고, 곳곳에 주공아파트가 지어졌다. 벌써 수십 년이 흐른 주공아파트들은 노후화를 이기지 못하고 재건축에 돌입했고, 많은 아파트가 이미 사라졌다. 아파트 단지는 도시에서 자란 아파트 키즈의 고향이다. 이제 어른이 된 아파트 세대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추억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안녕, 둔촌주공 아파트>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1979년 건축된 이곳은 아파트보다 나무가 더 높이 자라 있다. 아파트가 재건축이 되면서 사라지는 건 사람들의 추억만이 아니다. 아파트의 수많은 나무는 그 시간만큼 크고 푸르게 자랐다. 그 자연을 터전으로 삼은 많은 생명이 있다. 새, 나비, 곤충과 토양 속의 지렁이, 길고양이들…. 이들은 어떻게 될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편집장 이인규는 곧 재건축에 들어갈 둔촌주공아파트 단지의 풍경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아파트 생태계를 기록하고 있다. 둔촌주공아파트는 올해부터 이주가 시작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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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가까이 되는 긴 시간 동안 울창하게 자라나 하늘을 가득 메운 나무들.

 

ㅡ독립출판물인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를 처음 접한 게 벌써 4년 전입니다. 저 역시 둔촌주공아파트(이하 둔촌아파트)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터라 얼른 구입했죠.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둔촌아파트와 나무를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했었어요. 저는 아예 둔촌동에서 태어났어요. 몇 번 다른 동네에서 살기도 했는데, 둔촌아파트에서 살고 있던 이모네로 들어와 살다가 2009년에 다시 이곳을 떠나게 됐어요. 그때 이미 여기가 곧 재건축이 될 거라는 말이 있었어요. 내가 여길 떠나면 다시 못 돌아오겠구나 싶어서 사진으로 남겨놓은 게 있었거든요. 다행히 재건축 전이니까 나라도 해봐야겠다고 해서 시작했어요. 지금은 다시 3단지에 들어와서  살고 있어요. 근데 지금이 2017년인데 아직도 재건축이 안 되고 있잖아요?(웃음).

ㅡ정말 ‘둔촌 키즈’네요? 그 후로도 계속 프로젝트가 이어지고 있는데, 특히 아파트 내의 나무를 다룬 <아파트 숲>은 이 기사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떠나면 이 나무들은 어떻게 될까 저도 궁금했고요. 처음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를 냈을 때에는 제가 직접 사진을 찍었는데, 개인적으로 좀 아쉬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좀 더 잘하시는 분들과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특히 나무는 동네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해서 처음부터 꼭 따로 기록하고 싶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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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뀔 때마다 주민들에게 서로 다른 풍경을 선사한 둔촌주공아파트의 사계절을 한자리에서 담아냈다.

ㅡ상당히 장기 프로젝트였을 것 같은데요? 사계절이 가득 담겨 있으니 최소한 1년 이상이죠.
사진을 찍은 류준열 씨는 원래 동북고등학교 교지 편집부 학생으로 저를 인터뷰하러 와서 처음 만났어요. 그 후 상명대 사진과에 진학했는데 흑백사진 과제로 둔촌아파트의 나무를 찍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아예 연작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어요. 그렇게 사진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 친구는 둔촌아파트 주민은 아니었고, 단지 안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녀서 이 동네가 통학로였어요.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꼭 이곳에 살지 않아도 이곳을 동네로 느끼고 좋아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ㅡ눈이 내리는 사진도 있었는데요?
준열 씨가 그런 장면을 담으려다 보니 날씨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죠. 저는 이곳에 살고 있으니까 날씨에 따라 연락을 자주 주고받았죠. 꽃이 피었다, 눈이 온다. 그런데 연락 받고 오면 그 사이에 눈이 다 녹아 있기도 하고요. 책에는 사계절이 담겼지만 작업은 2년이 걸렸어요. 나무로 둘러 싸인 이 동네가 계절의 흐름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지를 담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