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 시즌, 오버사이즈 실루엣 트렌드를 견인한 것은 트렌치 코트다. 덕분에 클래식 룩의 대명사인 트렌치 코트가 한층 대담해진 실루엣으로 당신을 유혹하고 있다. 새로운 실루엣의 트렌치 코트를 장만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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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프랑스의 패션 아이콘은 누가 뭐래도 카트린 드뇌브였다. 그리고 그녀가 당대의 패션 아이콘으로 등극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 것으로 영화 <쉘부르의 우산>과 <세브린느>에서 입은 트렌치 코트 룩을 빼놓을 수 없다. “트렌치 코트의 파워풀한 이미지가 마음에 들어요. 남성적인 강인함에 여성스러운 섹시함을 자유롭게 가미할 수 있으니까요.” 카트린 드뇌브의 이 트렌치 코트 예찬론은 많은 여성에게, 그리고 패션 디자이너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듯하다. 트렌드를 초월하며 사랑받고 있으며, 매 시즌 꾸준히 디자이너들에게 좋은 디자인 테마를 제공하고 있으니까. “트렌치 코트만큼 클래식하면서 세대를 뛰어넘으며 사랑받는 아이템이 또 있을까요? 우리의 옷장에도, 우리 엄마와 아빠의 옷장에도 하나씩 있는 것이 바로 트렌치 코트죠. 트렌치 코트는 세대와 연령을 초월하죠. 그래서 끊임없이 트렌치 코트를 디자인할 수 있어요. 정말 무궁무진하게 변형을 더해 디자인할 수 있거든요.” 2017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트렌치 코트를 재해석한 의상을 선보인 YCH의 디자이너 윤춘호의 말처럼 트렌치 코트는 디자이너들에게 영원히 마르지 않는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이번 시즌에도 디자이너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실루엣, 길이, 소재를 달리한 트렌치 코트를 런웨이 위에 올렸다. 흥미로운 것은 전통적으로 트렌치 코트의 계절인 가을이 아닌 봄/여름 컬렉션에서 디자이너들이 트렌치 코트를 탐닉했다는 것이다. 장식을 최대한 배제하고 형태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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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고 담대하게
이번 시즌 트렌드의 큰 축을 이루는 과장된 형태와 실루엣을 보여주는 데 남성복, 특히 군복에서 기원한 트렌치 코트는 매우 적절한 아이템이다. 본래 남성복이란 여성복에 비해 실루엣이 낙낙하고 길이가 길기 때문이다. 그러니 디자이너들은 마치 신선한 최상품의 재료를 얻은 요리사처럼 신나게 트렌치 코트를 요리했을 것이다. 그들의 손에서 탄생한 트렌치 코트를 정의하는 대표적인 단어는 ‘오버사이즈’와 ‘맥시’로 요약할 수 있다. 오버 사이즈를 가장 신선한 방식으로 보여준 디자이너는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 지난 시즌 오프 숄더형 트렌치 코트로 반향을 일으키더니 이번에는 고래 수염을 넣은, 럭비선수 유니폼처럼 넓고 직선적인 어깨의 트렌치 코트로 단번에 이번 시즌 실루엣을 정의했다. 질 샌더와 마이클 코어스, 올리비에 데스킨스도 각진 어깨의 트렌치 코트를 선보이며 뎀나 바잘리아와 노선을 같이했다. 오버사이즈 카테고리에 1980년대 파워 숄더를 연상시키는 각진 어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르니와 에르메스 그리고 보테가 베네타는 어깨를 둥굴린 낙낙한 실루엣의 트렌치 코트를 제안했다. 마르니는 로프와 지퍼 디테일을 가미하여 스포티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에르메스는 분홍빛 셔츠에 칼라가 없는 트렌치 코트를 덧입어 부드러운 분위기를 녹여냈다. 맥시 길이는 어떤 아이템에서든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부여하고, 담백한 멋의 트렌치 코트라면 그 효과는 더욱 증폭된다. 스텔라 맥카트니는 스웨이드 소재의 라펠이 넓은 트렌치 코트를, 크리처 오브 더 윈드는 점프슈트를 연상시키는 포켓이 돋보이는 슬림하고 긴 트렌치 코트에 스포티한 톱과 청바지를 매치해 현실적인 룩을 제안했다. 트렌치 코트의 길이가 길어지고 실루엣이 넉넉해진 만큼 라펠과 칼라가 넓어진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 형태의 변형과 스타일링으로 변주를 보여준 디자이너들도 있다. 시몬 로샤는 러플 장식의 튤 소재 드레스에 트렌치 코트를 한쪽만 입히고 벨트로 고정해 로맨틱하면서 동시대적인 실루엣을 연출했고, 마틴 마르지엘라의 존 갈리아노는 마치 트렌치 코트로 앞을 감싼 듯한 디자인의 드레스로 해체주의의 멋을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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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의 트렌치 코트
런웨이에서 예습을 했다면, 이제 리얼웨이에 적용할 차례다. 박시한 트렌치 코트는 어떤 옷을 매치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극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스타일링의 묘미가 상당하다. 아직 겨울의 끝자락에 있기 때문일까? 에디터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건 가죽 소재의 트렌치 코트다. 발렌시아가, 엘러리, 로에베, 질 샌더 컬렉션에 등장한 가죽 소재의 트렌치 코트는 3월까지 이어지는 꽃샘 추위를 위한 아우터로 제격이다. 런웨이에서는 광택이 없는 엘러리의 붉은색 가죽 코트가 관능적으로 보였지만 현실에서는 로에베가 선보였던 칼라 없는 맥시 코트가 더 유용할 거다. 한편, 트렌치 코트는 벨트와 칼라를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실루엣에 큰 차이를 줄 수 있다. 이번 시즌에는 질 샌더, 마이클 코어스, 마르니처럼 벨트로 허리를 조여 여성적인 매력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쿨한 연출법이다. 리본으로 묶어도 좋지만 라코스테 컬렉션처럼 질끈 한번 묶어 무심하게 연출하거나, 마르니 컬렉션처럼 버클을 채운 뒤 벨트를 한번 감아 늘어뜨리길 권한다. 여기에 앞코가 뾰족한 포인티드 토 디자인의 슬링백 슈즈나 하이힐의 롱 부츠를 매치해 여성스러움을 더하는 게 올봄의 유행 코드. 스텔라 맥카트니, 질 샌더가 선보인 것처럼 조형적인 귀고리를 더하는 것도 좋다. 스트리트 신으로 눈을 돌려 스웨트 셔츠와 데님 팬츠의 일상적인 아이템에 앞코가 뾰족한 앵클 부츠를 신어 포인트를 더한 스타일리스트 린드라 메딘의 스타일링을 참고해봐도 좋겠다.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이 낙낙한 실루엣의 트렌치 코트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여유로운 옷에 걸맞은 여유로운 삶인 듯하다. 그러니 올봄에 단 하나의 아우터를 구입해야 한다면 주저 없이 트렌치 코트를 선택하길. 스타일도, 삶에 대한 태도도 달라질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