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봄/여름 시즌, 실루엣은 엄청나게 커졌고 무엇보다 소매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하늘을 향해 가지각색으로 솟아오른 ‘슈퍼사이즈 숄더’. 지금은 어깨에 잔뜩 힘을 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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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멍의 뎀나 바잘리아가 기괴하게 거대한 후디로 상업적인 성공을 이루자, 많은 디자이너는 몇 년에 걸쳐 과장된 실루엣에 집중했다. 그렇게 점점 몸집을 키운 옷은 2017년 봄/여름 시즌 ‘거대함’을 트렌드의 제1순위로 올려놓았다. 과장된 구조적인 형태는 트렌드의 주도권을 거머쥔 모든 컬렉션에서 등장했다. 발렌시아가, 스텔라 맥카트니, 세린느, 구찌, 질 샌더, 생 로랑, 자크뮈스까지! 그리고 시선을 압도하는 실루엣을 완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은 바로 어깨이다. 올봄은 사각형 어깨의 쿼터백 재킷을 입고 다리를 가늘게 강조하는 것이 가장 멋진 스타일로 추종받을 예정. 이는 80년대 ‘파워 숄더’의 귀환처럼 보인다. 파워 숄더는 으레 1980년대로 정의되기 마련이니, 올봄에 등장한 쿼터백 재킷이나 구찌와 돌체앤가바나 컬렉션에서 선보인 주름 잡아 어깨를 봉긋하게 부풀린 ‘퍼프 볼 숄더’ 등은 시대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마르니, 이자벨 마랑, 질 샌더 등에서 선보인 부드럽게 둥굴린 ‘라운드 숄더’나, 어깨 부분이 부풀고 소맷부리가 좁아지는 양 다리 형태의 ‘레그 오 무튼(Leg O Mutton) 슬리브’ 등 과장된 소매가 유행인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우리가 과장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호화로운 궁정 생활을 연상시켰던 화려한 금박, 수려한 무늬의 태피스트리, 번쩍이는 주얼 장식의 옷들이 우리의 옷장을 차지했다. 그리고 새로운 시즌이 시작됨과 동시에 장식이 자취를 감추고 옷이 단순해지자, 거대한 크기가 그자리를 대신했다. 마치 극도로 절제되어 있지만 크기로 관객을 압도한 추상 표현주의 작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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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면 소재 셔츠는 5만9천원, H&M. 2 골드 소재 목걸이는 1백70만원대, 루이 비통(Louis Vuitton). 3 양가죽 소재 토트백은 5백99만원, 펜디(Fendi).

고래 수염을 사용하여 만든 광활하게 넓은 어깨의 쿼터백 재킷 위에 강렬한 주황, 빨강, 분홍, 보라를 칠해놓은 발렌시아가는 그렇게 장식의 시간이 끝나고 형태의 차례가 왔음을 알렸다. 이브 클랭의 파랑을 컬렉션에 차용하고 건축적인 형태에 부드러움을 드리워 소프트 모더니즘을 완성한 세린느의 피비 파일로 역시 이 대열에 합류한 디자이너이다. 세린느의 힘이 들어간 소매가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것은 하늘거리는 소재를 사용하고 허리를 편안하게 했기 때문이다. 세린느와 마찬가지로 질 샌더 역시 과장된 형태에 우아함이 깃들길 원했고, 이세미미야케의 플리츠플리즈를 재해석한 것처럼 보이는 주름을 이용하여 이를 가능케 했다. 둥그런 어깨의 플리츠 드레스는 과감했지만 유연했고, 두툼한 패트를 넣어 만든 재킷은 허리를 과도하게 조이지 않고 낙낙한 실루엣을 유지한 뒤, H 라인의 스커트를 매치해 레이디라이크 룩으로 변모시켰다. 스텔라 맥카트니 역시 곡선의 과장된 소매 의상으로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룩을 선보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허리의 위치를 높이고 마치 코르셋을 한 것처럼 잘록하게 조여 모래시계 보디 실루엣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팬츠의 품을 낙낙하게 하여 자연스럽고 쿨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자크뮈스는 스텔라 맥카트니와 같은 맥락으로 조형적인 실루엣에 여성성을 불어넣었다. 그가 선보인 핏앤플레어 실루엣이 세린느이를 가능케 했다. 1980년대 크리스찬 라크루와의 오트쿠튀르 컬렉션을 떠올리게 하는 복고풍 소매단과 럭비유니폼처럼 전위적으로 뻗은 대형 어깨를 강조하는 동시에 여성의 숨겨진 라인을 부각시켰다. 더불어 챙이 넓은 모자, 리넨 소재, 전원풍의 레이스 블라우스와 프릴 장식등 남부 프랑스 시골 소녀의 사랑스러움을 접목해 새로운 로맨티시즘을 완성했고, 베트멍과 함께 형태에 대한 고찰이라는 현상을 이끌어가는 주역이지만 그와는다른 노선을 걷고 있음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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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탈 소재 브로치는 가격미정, 크리스토퍼 케인 바이 마이 분(Christopher Kane by My Boon).2 폴리에스테르 소재 재킷은 46만8천원, 럭키슈에뜨(Lucky Chouette).3 양가죽 소재 사이하이 부츠는 가격미정, 발렌시아가(Balenciaga).

허리의 라인, 길이, 어깨의 폭 등 형태의 각기 다른 요소들의 관계가 룩 전반에 흐르는 공기를 형성한다. 허리선이 올라가면 우아한 분위기가 나고 내려가면 쿨한 느낌이 난다. 어깨가 올라가면 강인해 보이고 어깨가 내려가면 가냘퍼 보이게 마련이다. 과장된 소매가 유행이라는 것은 무덤덤해 보이지만 실은 대담하게 주목받고 싶은 과장의 시대의 욕구를 대변한다. 디자이너들은 이구동성으로 올봄에는 장식을 버리고 형태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잔뜩 부푼 소매의 오버사이즈 블레이저나 셔츠를 입을 때에도 여성성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한다. 어깨를 과장한 채 허리를 조이거나 다리를 길고 가늘게 강조하는 방식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무방하다. 당신의 체형에 맞는 걸 선택하면 된다. 단 한 가지 몸의 한 부분에 볼륨이 생기면 다른 어딘가는 반드시 가늘고 얇아 보이게 해야 한다는 사실만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