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낳은 아기가 아닌데, 제3의 사람이 “이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맞다!”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거기다 어미가 자기 자식도 못 알아본다는 비난과 함께라면?

fe-미인도 유감2

고 천경자 화백.

지난 2015년에 고인이 된 천경자 화백은 죽기 직전까지도 이 논란의 한복판에 있었다. 작가가 그리지 않았다고 하는 그림을 두고 진위 여부에 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길고 긴 논란이 종결되는 듯했다. 검찰이 고 천경자 화백의 작품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 그러나 곧 유족 측의 반박이 이어졌다. 프랑스 감정업체 뤼미에르 감정팀은 급기야 한국에 와 검찰의 결론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도대체 이 작품의 진위 논란이 25년 동안이나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 사안은 왜 중요한 것일까? 검찰에서는 전문기관의 과학감정, 전문가의 안목감정, 미술계의 자문 등을 토대로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천경자 화백 특유의 작품 제작 방법인 압인선(날카로운 기구로 사물의 외곽선을 그린 자국)이 ‘미인도’에서도 발견됐다는 점, 덧칠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다른 밑그림이 나타난다는 점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검찰이 작품을 의뢰한 미술계 전문가들의 감정은 대부분 안목감정(감정사의 주관적 판단에 따른 감정법)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혹을 산다. 실제로 ‘미인도’의 진위 여부를 감정한 사람의 실체와 그 근거 역시 자세히 공개되지 않았다. 검찰의 조사 결과에 대해 뤼미에르 감정팀이 반박하고, 유가족들이 반발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fe-미인도 유감1

위작 논란이 되고 있는 ‘미인도’

이 작품은 한국 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한 김재규의 집에서 이 그림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는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주 장하는 사람들에게는 근거가 되기도 하고, 반박의 사유가 되기도 한다. 당시 수사를 한 전두환이 김재규가 부정축재자임을 부각시키기 위해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사실을 강력히 밀어붙여 수사에 이용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감정위원회가 ‘미인도’를 진품이라고 평가한것은 국내외 미술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상류층에게는 유명 화가의 작품이 재산의 한 형태가 된다. 만약 감정위원회에서 내린 결론이 맞지 않으면, 그동안 진품인 줄 알고 사 모은 작품들에 대한 기본 신뢰가 무너진다. 해외 그림 경매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그림 감정 시스템을 의심할 것이고, 결국 작품에 대한 가치는 적절하게 매겨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는 한국의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적절하게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시사한다. “진품 가능성은 0.0002%에 불과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모나리자’ 속 숨은 그림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세를 얻은 뤼미에르 감정팀은 자외선에서 적외선에 이르는 13개의 스펙트럼 필터와 특수 카메라 렌즈 등을 통해 ‘미인도’를 검색한 결과 위작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점차 이 이슈는 한국 최고 수사기관과 프랑스 감정업체의 자존심 대결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중요한 것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각자의 이해 관계만을 따져 의혹을 덮는 것은 생전에 ‘고령의 나이로 자신의 작품마저 헷갈려 한다’는 모욕적인 언사를 들어야 했던 예술가를 다시금 모욕하는 일이 된다. 미인도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고인이 된 천경자 화백의 명예를 되돌려주는 일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