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유로운 밀레니얼식 사고는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성별을 구분하는 틀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옷을 입는 방식이 우리의 옷장을 변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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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본, 자수, 꽃무늬 등으로 성별에 따른 옷입기를 파괴시킨 구찌의 남성복 컬렉션.

요즘 패션에는 경계가 없다. 계절과 계절 사이, 하이와 로우 사이, 현실과 가상 사이 그리고 남성복과 여성복의 선마저 흐려진 덕분에 그 어느 시대보다 개인의 기호와 취향이 존중받고 있다. 패션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중에서도 남자와 여자를 구분 짓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진정 반가운 일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사회에서 성공할 기회가 적고, 같은 일을 하지만 적은 임금을 받는 건 물론이거니와 여전히 여성을 하나의 대상으로 보는 문화가 당연시 여겨지고, 남자보다 월등하게 높은 비율로 여자들이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세상에서 여자로 살고 있는 나로서는 이러한 경계의 사라짐이 매우 고맙게 여겨질 정도다.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금의 현상이 남자와 여자의 겉모습이 똑같아져야 함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은 다르다. 타고난 신체적 특징과 기질은 개인의 행동 방식, 습관, 취향까지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고, 그로부터 생겨나는 남녀의 차이는 분명히 인정되어야 한다. 그 차이가 여성스러운 것과 남성스러운 것을 나누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여자의 몸은 굴곡적이기 때문에 X 실루엣이 보다 육감적이고, 남자의 옷은 가슴에 절개를 넣어 입체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는 것들 말이다. 평등하기 위해 특정한 성을 기준으로 삼아 굳이 외양이나 취향을 바꿀 필요는 없다. 봉긋한 가슴과 아름다운 엉덩이 라인을 굳이 숨겨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신체적인 조건에 포함되지 않는 그 밖의 것들을 과연 여성스럽다는 것, 혹은 남성스럽다는 기준으로 구분 지을 수 있는걸까? 분홍은? 화장은? 하이힐은? 꽃무늬와 러플은? 무엇보다 보편이라 부르는 기준에서 벗어난 취향을 지닌 수많은 사람은 어떠한가? 우리는 파스텔 컬러의 하늘거리는 꽃무늬 드레스를 여성스럽다고 표현하고, 네이비 컬러의 직선적이고 견고한 형태의 슈트를 남성스럽다고 수식하고 있지만 이제 그런 구속적인 정의가 구시대적으로 느껴진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무엇이 남성다운 것이고 무엇이 여성다운 것인가의 틀에 박힌 사고에 맞춰 자신을 규정 짓길 원하지 않는다. ‘성에 구애받지 않고 두 개의 영역을 넘나들어도 괜찮다’ 라고 여기는 다양성이야말로 우리가 21세기에 갖추어야 할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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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별의 구분을 무너뜨린 J.W. 앤더슨의 ‘공유하는 옷장’ 컬렉션. 3 남성복과 여성복을 통합하여 장식적인 의상을 선보인 버버리의 셉템버 컬렉션. 4 전통적인 남성상에서 벗어난 웨일스 보너의 모델. 5 치마를 입고 루이 비통 여성복 광고 캠페인에 등장한 제이든 스미스.

성을 넘나드는 유연한 사고
젠더리스 혹은 앤드로지너스 스타일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1920년대 샤넬은 남자의 속옷으로 쓰였던 저지를 드레스로 이끌어냈고 남자의 테일러드 슈트, 커프스 단추로 여미는 셔츠 등 남자들의 옷을 차용해 여자의 몸을 해방시켰다. 1930년대 마를렌 디트리히는 남자의 옷을 입고 성을 넘나드는 관능을 보여주었고, 1966년 이브 생 로랑이 르 스모킹을 발표하면서 여자들은 팬츠 슈트를 획득했다. 여자들의 사회적 진출이 본격화된 1980년대 역시 여자들은 남자들처럼 각이 진 어깨의 재킷을 입고 남자들과 똑같은 무게의 권리를 주장했다. 현시대의 여자들이 남성복 매장에서 거리낌 없이 작은 사이즈의 남자 옷을 입을 수 있게 된 것은 과거의 여자들이 이룩해놓은 평등의 열매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반대로 여자들의 옷을 입는 남자들도 있었다. 60~70년대의 시퀸 기모노를 입은 지미 헨드릭스나 반짝이는 플랫폼 슈즈를 신은 데이비드 보위 같은 록의 황제들은 자유롭게 여성성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21세기의 양성성은?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 윌 스미스의 아들이며 배우이자, 뮤지션, 그리고 패션 아이콘으로 성장하고 있는 제이든스미스는 지금 패션계에 만연한 탈젠더 현상이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명징하게 보여준다. 평소에도 치마를 입고 학교에 가고, 톱숍에서 여성복을 쇼핑하는 열여덟 살 소년이 루이 비통의 2016년 봄/여름 여성복 광고 캠페인에 모델들과 함께 치마를 입고 등장하자 NSS 속 대중들은 ‘좋아요’를 마음껏 눌러주었다. “난 남성복과 여성복을 나눠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그걸 두려워하는 이와 편안해하는 이들이 보일 뿐이죠”. J.W. 앤더슨의 조나단 앤더슨은 남성복 컬렉션에서 허벅지를 다 드러낸 미니드레스, 오프숄더 톱, 프릴이 달린 사이하이 부츠 등을 선보이고 칸예 웨스트도 세린느의 실크 파자마 슈트를 입거나 지방시의 가죽 치마를 입고 공연을 한다. 이는 전통적으로 남자의 것과 여자의 것을 나누었던 이분법적 인사고가 유연해졌음을 의미한다. 이것이야말로 사회가 정해놓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완전하게 자유로이 생각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쿨한 태도이다.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 역시 남성들을 위해 리본 장식 블라우스를 만들고 꽃무늬 슈트에 코르사주를 달고 레이스가 달린 시폰 셔츠를 입히며 남성을 여자처럼 만드는 데 열중했고, 2015년 가을/겨울 남성복 컬렉션에서는 트랜스젠더 모델인 하리 네프를 남성복 쇼 무대에 세웠다. 여자가 된 남자에게 다시 남자의 옷을 입히는 것이다. 구찌뿐 아니라 샤넬, 프로엔자 스쿨러, 베트멍 등이 여성복 컬렉션에 남성 모델을 세웠고 반대로 라프 시몬스, 생로랑, 모스키노 등은 남성복 쇼에 여자 모델을 세웠다. <뉴욕 타임스>는 전통적으로 여성적이고 남성적인 옷을 나누는 딱딱한 경계를 무너뜨리는 이런 태도를 두고 ‘젠더 플루이드(Gender-Fluid)’(혹은 젠더 뉴트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라고 명했다. 남녀가 현실적인 의상들의 범주 안에서 옷을 공유하는 유니섹스 스타일은 8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진보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젠더 플루이드 현상은 유니섹스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여자가 남자다움을 입는 것이 아니라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마음대로 오가는 유연성이 핵심인 것.

성의 해방을 위한 거창한 결의를 담은 퍼포먼스는 더더욱 아니다. 현상의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새로운 세대는 내가 좋아한다면, 내가 원한다면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결정할 수 있는 ‘내 선택의 자유’를 가장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로에베의 조나단 앤더슨은 2015년 봄/여름 남성 컬렉션의 테마를 ‘공유하는 옷장(Shared Wardrobe)’이라고 명명한 뒤 이렇게 말했다.“ 기존의 유니섹스 아이템이 남녀모두를 위해 디자인한 것이라면 이는 누가 입든 아름다워질 수 있는 아이템이죠. 그리고 기존의 젠더리스는 남자에서 여자로, 여자가 남자의 아이템을 차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공유하는 옷장’의 방향은 남자가 입고 싶은 여자 옷, 여자가 들고 싶은남자의 백을 의미해요.” 조나단 앤더슨의 의견에 동의하는 디자이너들은 더 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점점 더 두 성별에 대해 똑같은 생각을 번역해야 하는 것이 본능적이고 직관적으로 옳다고 느껴져요.” 프로엔자 스쿨러의 라자로 헤르난데즈 역시 미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고 디자이너는 이러한 문화를 반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현시대의 흐름을 빨리 이해하는 디자이너들일수록 젠더의 유동성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여섯 살인 나의 아들은 최근 여자와 남자를 구분 짓고자 노력한다. 분홍은 여자 색이라 싫고 남자는 머리가 짧아야 하고, 자신은 남자이기 때문에 토끼가 그려진 티셔츠는 입지 않겠다고 말한다.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답한다. “남자와 여자가 다른 건 딱 한 가지 뿐이야. 네가 분홍이 싫으면 입지 않아도 된단다. 하지만 분홍은 여자의 색이 아니야 . 분홍을 좋아하는 남자도 있고 머리가 긴 남자도 있지. 치마를 입는 남자도 있어. 그리고 사람들마다 좋아하는 것은 다 다르단다.” 이 대답이 성별에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선택할 수 있는 세상에 어울리는 말이길! 최소한 옷을 입을 때만이라도 갇혀진 틀과 정해진 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임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