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쓱쓱 그린 듯한 색색의 눈매와 가방의 패턴이 고스란히 옮겨진 눈가. 주얼리를 부러뜨려 눈가를 장식하고, 얼굴에 온갖 추상적인 라인을 그린 모델들이 가을/겨울 컬렉션에 등장했다. 순식간에 화제를 모을 만큼 독특한 아이디어의 향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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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파워 인스타그래머들의 게시물을 볼 때마다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남자 블로거인 루 플로레스는 거의 분장에 가까운 메이크업 손기술로 여자보다 더 예쁜 얼굴로 변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미국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조던 리버티의 인스타그램에는 온통 진주로 장식한 눈썹, 아이라이너로 그린 해골 분장 등 드라마틱한 메이크업이 가득하다. 그리고 이렇게 감탄이 나올 만큼 독특한 게시물에는 늘 엄청난 개수의 ‘좋아요’가 달린다. 한마디로, SNS 세상에서는 ‘눈에 확 띄는’ 메이크업이 사랑받는다. 화제성을 추구하는 이런 SNS 문화가 컬렉션에도 영향을 미친 것일까. 이번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는 유독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를 끌 만한 위트 있고 드라마틱한 메이크업이 많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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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스파클링 아이 앤 페이스 팔레트. 24g 16만원대. 2 베네피트의 데아 리얼 컬러 라이너 카키 그린. 1.4g 3만3천원대. 3 디올의 디올쇼 모노 러스트러스 스모키 794 피버. 1.8g 4만4천원.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파워 인플루언서인 모델 켄달 제너가 쇼의 오프닝을 장식하고, 실물 사이즈의 펜디 몬스터를 쇼장에 등장시킨 펜디 쇼는 그런 의미에서 소셜 미디어의 생리를 가장 잘 활용한 쇼라고 할 수 있다. 굳이 따로 홍보를 하지 않아도 쇼의 이모저모가 스냅챗,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을 통해 폭발적으로 확산되었으니까. 메이크업도 남달랐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피터 필립스는 보라색과 형광 귤색, 짙은 초록, 하늘색 등 수채물감 같은 색깔들을 눈꺼풀 위에 소용돌이 모양으로 그렸다. 그것도 모델마다 모두 각기 다른 디자인으로! 어떻게 모든 모델에게 이렇게 별난 아이 메이크업을 할 수 있었는지 누군가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버닝 맨 축제에 가보세요. 이런 독특한 메이크업을 한 소녀들을 수없이 보게 될 테니까요. 요즘 소녀들은 메이크업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런 룩이 자신에게 어울릴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죠. 아름다움에 대한 접근법이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그들은 메이크업으로 즐거움을 추구하는 세대예요.” 샤넬 쇼의 독특한 아이 메이크업도 각종 소셜 미디어를 뜨겁게 달궜다. 켄달 제너나 하디드 자매처럼 화제 만발한 모델들이 쇼에 섰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의 눈가가 샤넬의 아이콘인 2.55 퀼트백의 다이아몬드 패턴으로 정교하게 장식되었기 때문이다. 멀리서 걸어나올 때에는 그저 단순한 스모키 아이 메이크업처럼 보였던 눈가가 점점 그래픽 패턴의 눈매로 변하는 반전의 매력은 화제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톰 페슈가 블랙과 브라운 아이섀도를 이용해 스텐실 작업을 한 것으로, 톰은 속눈썹에 마스카라를 여러 번 덧칠해 아이 메이크업을 보다 투박하게 마무리했다. 안소니 바카렐로 쇼에는 화려한 큐빅 귀고리를 부러뜨려 눈꼬리에 뿔처럼 얹은 아이 메이크업이 등장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톰 페슈가 소위 ‘미녀와 야수’ 룩이라고 정의하기도 한 이 아이 메이크업은 귀고리를 분해해서 붙인 것으로 흡사 반짝이는 작은 날개처럼 보인다. 톰 페슈는 검은 아이라이너로 날렵한 캐츠아이를 그린 다음 귀고리 조각을 눈꼬리에 붙였다. “당신의 오래된 주얼리를 리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어쨌든, 이건 새로운 립스틱을 사는 것보다 더 저렴한 방법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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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맥의 스펠바인더 섀도우 블루카르마. 8g 3만2천원. 2 클리오의 프로 싱글 섀도우 1호 샐렙브라운. 1.5g 1만원. 3 보브의 아이래쉬. 4천원.

레이디 가가가 생애 처음 런웨이에 모델로 등장해 화제가 되었던 마크 제이콥스 쇼도 예외는 아니다. 오버사이즈 코트와 19020년대 풍의 핑거 웨이브, 검은 입술, 탈색해서 색을 뺀 눈썹과 겹겹이 그린 진한 아이라이너가 고딕 느낌을 극대화한 레이디 가가의 사진이 각종 SNS 및 뉴스를 도배했다. “엘리스 쿠퍼의 펑크와 뉴욕의 지하철로부터 영감을 받았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프랑수아나스는 검은 아이라이너로 가로, 세로를 넘나들며 모델들의 눈매에 거칠게 라인을 그려 드라마틱하면서도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게 했다. 블랙 피그먼트를 아이홀 바깥에 넓게 얹어 할로윈 파티에 어울릴 법한 무시무시하면서도 로맨틱한 고딕 룩을 연출한 드리스 반 노튼 쇼, 피카소의 조각품에서 영감을 받아 추상적인 아이라인을 눈가에 얹은 알투자라 쇼, 미래에서 온 게이샤처럼 작은 블랙 입술과 극단적인 아이라인으로 차가운 느낌을 더한 요지 야마모토 쇼 등 SNS에 올리면 금세 화제에 오를만한 아이 메이크업이 줄을 이었다.

디지털 문화는 이제 컬렉션에도 ‘See Now, Buy Now’ 라는 새로운 풍조를 만들어냈다. 바로 소비가 가능한 옷을 만들어내는 이런 기조 덕에 런웨이 위 의상이 좀 더 웨어러블해진 것이 사실이다. 단조로워진 룩에 독특한 메이크업이나 헤어로라도 창의적인 입김을 더하고 싶은 디자이너의 염원을 담은 것일까, 혹은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를 모으고 싶은 욕심 때문일까. 노메이크업 트렌드로 일관되던 백스테이지의 메이크업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더해지고 있다. 물론, 쇼를 보는 재미가 한층 배가된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