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과 혼밥이 유행처럼 번져도, 혼자보다는 둘이 좋고 둘보다는 셋이 낫다. 서로 다른 시선과 능력이 집결해 새로운 시각을 선사하니까. 지금 뜨겁게 주목받고 있는 패션계의 창작 집단 이야기.

 

ALR_1611110805_R1STUDIO CONCRETE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공식 사이트(www.studio-ccrt.com)에 접속해 지금까지의 행적을 둘러보다가 ‘예술과 창작이 포괄하는 모든 활동에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는다’라는 문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말 그대로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다방면의 이슈를 생산해내고 있다. 2014년 출범한 이후로 갤러리 및 작업실이며 숍인 동시에 카페인 오픈형 종합 창작 스튜디오에서 사진, 일러스트, 드로잉 등의 전시로 예술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열심이다. 최근에는 런던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출신의 아티스트인 장 줄리앙의 <Concrétisation> 개인전을 소개하며, 그의 드로잉을 스크린이 아닌 캔버스를 통해 세상 밖으로 초대했다. 전시 오픈 당일에는 장 줄리앙이 라이브 페인팅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그의 드로잉과 패션을 접목해 작가 특유의 위트를 담아내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창작 활동은 외부에서도 계속된다. 가시적인 결과물은 <톰 페이퍼> 발간이다. 본능적인 패션 감각과 재능을 확인시킨 콘텐츠로, 기획력과 비주얼, 편집의 완벽한 삼박자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들의 포부는 미술, 사진, 그래픽, 패션 등의 아트 워크를 전개하는 아트 레이블, 씨씨알티 에어로스페이스(Ccrt Aerospace)로 이어졌다. 이번에도 유아인의 디렉팅 아래 여러 아티스트가 힘을 모아 새로운 프로젝트를 탄생시켰는데, 수하물에 부착된 취급 주의 경고문 ‘Fragile Tag’를 통해 ‘위기의 지구’를 표현한 뉴 컬렉션이 그것이다. 티셔츠와 스웨트셔츠 중심으로 전개됐던 ‘Series 1 to 10’ 이후 오랜만에 선보이는 패션 프로젝트로 보머 점퍼, 스웨트셔츠, 조거 팬츠와 모자 등 스포티한 아이템으로 탄생한 스튜디오 콘크리트 표 우주복은 이번 프로젝트의 프롤로그 에피소드를 의미한다. 이 뒤를 이을 씨씨알티 에어로스페이스의 콘텐츠는 11월 17일부터 한남동 스튜디오 콘크리트에 공개될 예정이다. 무엇을 보여줄지 짐작할 수 없지만 배우 유아인에만 집중됐던 시선이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이야기로 확대됐으니, 이들의 재능과 감각에 대중들이 다시 한 번 긍정의 기운을 보낼 거라는 것은 예측 가능한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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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BEL
루이 비통, 펜디, 막스 마라 등의 2017년 봄/여름 컬렉션을 통해 성공적인 신고식을 마친 모델 정호연은 스트리트 패션 신에서도 활약을 드러냈다. 실크 트렌치 코트를 입고 루이 비통 백을 멘 채 걸어가는 모습이 포착된 것. 시선을 사로잡은 트렌치 코트는 ‘더 라벨(The Label)’의 첫 번째 옷이었다. 최근 패션 피플들 사이에서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는 더 라벨은 모델 송경아와 스타일리스트 김윤미, 패션 에디터가 의기투합해 만든 디자인 그룹이다. 패션과 밀접하게 닿아 있으며, 트렌드를 일상처럼 접하는 패션 전문가들이 뭉쳤으니 그 결과물이 멋진 건 당연한 결과. 이들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The Label : Project + T’로 ‘T’는 트렌치 코트의 첫 번째 알파벳을 의미한다. 프로젝트를 아우르는 전제 조건은 제한을 두지 않고 각자의 취향과 스타일을 반영해 자유롭게 디자인하는 것이다. 그 결과 야상 트렌치 코트부터 실크 소재의 트렌치 코트, 양가죽 라펠 트렌치 코트 등 트렌치 코트의 변주가 발현되었다. “평소에 즐겨 입는 야상 점퍼의 특징을 접목해 야상 트렌치 코트를 만들었어요. 남성적인 디자인을 선호하기 때문에 오버사이즈 실루엣도 살렸죠.” 스타일리스트 김윤미의 이야기처럼 팀원들은 자신만의 패션 내공을 디자인으로 풀어냈다. 지금은 트렌치 코트에 이어 다음 프로젝트의 주인공인 코트 시리즈를 선보이기 위해 한창이다.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대량 생산하는 게 아니라, 소량 생산으로 꼼꼼하게 작업해 퀄리티를 높여 오래 입을 수 있는 코트를 만드는 게 목표. 여성복 브랜드 아보아보는 더 라벨의 숨은 조력자로서 제작부터 유통, 판매 등을 진두지휘하며 디자인이 구체화되고 현실화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퀄리티를 좌지우지하는 원단을 공수해오는 것도 아보아보 한아름 대표의 손에서 이루어진다. 이 모든 제품은 현재 아보아보의 홈페이지와 매장,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GDS 매장, 위즈위드 등에서 판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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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A SPACE
지난달, 모델 아이린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마크 제이콥스 옷을 입고 촬영한 영상을 더 피아 스페이스(@thefiaspace)라는 태그와 함께 업로드했다. 태그된 계정을 클릭해보니 ‘A Creative Space of Multidimensional fashion & beauty’ 문장과 함께 ‘FIA’라고 적혀 있는 사진이 프로필을 장식하고 있었다. 뉴스 피드를 채우고 있는 건 아이린이 모델로 등장한 발맹, 마크 제이콥스, 샤넬 등 패션 필름과 화보들뿐. “파워 인플루언서로서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에 노출됐던 경험을 살려 디지털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기로 했고, 그 매개체가 더 피아 스페이스 계정이에요. 지금은 프로젝트 초기 단계로 내년 봄에 웹 사이트를 따로 개설해 패션 화보뿐만 아니라 정보를 살린 디지털 기사도 담고 싶어요. 디지털 매거진을 만드는 거죠.” 아이린은 정사각형의 디지털 세상을 패션 플랫폼으로 적극 활용했다. 이미지에 반응하는 SNS의 특징을 명민하게 파악한 것. 파리에서 촬영한 발맹 화보와 영상은 패션의 화려함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샤넬 콘텐츠는 정지된 사진 속에 영상미를 더해 오묘함을 끌어낸다. 사진과 영상, 그래픽이 만났으니 창의적이고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이 모든 과정에는 파트너십을 맺은 ‘하이 스튜디오(Hi Studio)’가 함께한다. 기획부터 영상 및 사진 촬영, 편집까지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FIA가 ‘Fashion Is Art’의 이니셜을 따서 만든 명칭인 만큼 패션의 아티스틱한 면면을 포착하기 위해 실험 정신을 풀 가동하고 있다. 하이 스튜디오의 사진가 조훈제는 비공개인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이렇게 말했다. “콘셉트대로 아티스틱한 패션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요. 제한을 두지 않는 거죠. 그중 액자 시리즈가 가장 마음에 들어요. 100% 만족하는 건 아니지만 디지털적인 요소를 적절히 활용한 패션 비주얼 아트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보다 볼륨을 더 키울 생각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를 영입하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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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DAISM
포토그래퍼 한다솜과 비디오그래퍼 정다운은 사진과 영상을 종종 함께 작업한다. 그때마다 주변에서 둘의 이름을 줄여 ‘다다’라 불렀다. 이 둘은 친숙해진 애칭에 이념을 뜻하는 ‘이즘’을 더해 지금의 ‘다다이즘’을 탄생시켰다.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서 아티스트도 늘어났다. 모션 그래픽과 일러스트 아티스트인 엘렌킴, 비디오 그래퍼 김가영이 그들이다. “네 명의 아티스트가 모여 사진, 영상, 그래픽 등의 작업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멤버에 대해서는 선 그어 말하기 힘들어요. 혁오 밴드와 작업하면서 혁오의 스타일을 맡고 있는 김예영 스타일리스트와 호흡을 맞추고 있고, 모델 이혜승도 서브 촬영 및 기획과 연출 등을 점차 진행하고 있거든요.” 한다솜의 설명처럼 다다이즘은 여러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비주얼 아트 창작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중적으로 가장 큰 호응을 얻은 건 혁오와의 작업. 혁오 포스터 촬영부터 공연 사진, 6mm 캠코더로 찍은 비하인드 공연 영상, 멤버들과의 개인 작업까지 혁오와 쌓은 인연만큼 아카이브는 풍성하다. “혁오 밴드와의 만남은 혁오 밴드가 결성되기 전부터 시작됐어요. 얼마 전에는 연말에 열리는 혁오 콘서트 22.999999999(부제 : 올해는 글렀어) 포스터 촬영을 했어요. 팬들과 앨범을 올해 발표하기로 약속했는데 내년으로 미뤄지면서 ‘올해는 글렀어’라는 부제가 달렸죠.” 다다이즘은 혁오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덜 꾸며진 모습까지 포착하며, 생동감과 생경함을 담았고 이들의 시각으로 필터링된 혁오의 아티스틱한 면모가 더욱 부각되었다. 인공적인 멋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세팅된 구도보다는 순간을 포착하는 다다이즘은 카메라에 비유하자면 디지털 카메라보다는 필름 카메라에 가깝다. 이러한 감도는 미스치프의 룩북 작업에서도 드러난다. “추억의 90년대 브랜드, 292513 = 스톰의 룩북을 2016봄/여름 버전으로 선보였어요. 그대로 베꼈다고 해도 될 만큼 브랜드에 대한 향수를 살리기 위해 애를 썼죠. 2016 가을/겨울 시즌에는 여성의 파워를 보여주기 위해 여성 아티스트들을 집결시켰고요. 여러 개성이 어우러져 생각했던 그대로 강렬한 룩북이 완성됐어요.” 다다이즘은 이 시대를 사는 젊은 아티스트 집단인 만큼 스트리트적인 감성을 세련되게 소화할 줄 알고, 정형화된 작업 방식을 고수하기보다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움직인다. 앞으로의 과제는 예술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다다이즘의 취향과 개성은 이들만의 독창적인 무기임을 확인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