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미디어의 발달, 드라마 PPL의 활성화는 화장품 모델의 판도까지 뒤흔들었다. 달라진 화장품 모델의 선정 기준, 그리고 그 흥미진진한 뒷이야기.

 

모델 열전

스타 뷰티 화보 촬영을 진행할 때마다 에디터는 섭외에 애를 먹는다. 드라마에 출연 중인 배우, 활동 중인 아이돌 혹은 인지도가 조금이라도 있다 싶은 여자 연예인들은 이미 화장품 브랜드 모델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머릿속으로 떠올릴 수 있는 여자 연예인의 90% 이상이 화장품 모델이라고 봐도 무관할 것이다. 브랜드들은 대부분 자신의 브랜드에서 추구하는 이미지와 같은 화보가 아니라면, 해당 연예인이 뷰티 화보를 찍어서 새로운 이미지로 변신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직 브랜드 모델이 아니더라도, 이미 화장품 브랜드와 계약을 조율 중인 경우가 많아 뷰티 화보 촬영을 망설이는 스타도 많다. 적당한 모델을 고르기 힘든 것은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백화점 유통 브랜드 외에도, 드럭 스토어 전용 브랜드, 온라인 전용 브랜드 등 케이뷰티 열풍에 힘입어 화장품 브랜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에 비해 화장품 모델로 섭외할 만한 스타는 제한된 숫자에 머무른다. 결국 브랜드 입장에서는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와 딱 맞는 모델을 찾기 힘들 뿐 아니라, 특정 브랜드의 이미지가 강한 연예인일지라도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모델 계약을 하는 경우도 많다. 브랜드만 바꿔가며 화장품 모델로 계속해서 활동하는 연예인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더구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용 바이럴 영상 제작이 늘어나면서 코미디언이나 예능인 화장품 모델의 영역은 더욱 넓어졌다. 화장품 모델이 예쁘고 잘나가는 여자 연예인의 특권이던 시대는 지난 것이다.

짧아진 모델 계약 기간
소셜 미디어의 발달은 셀럽, 즉 연예인의 파워를 직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들의 족쇄가 되기도 했다. 일단 화장품 모델 계약 기간이 짧아졌다. 요즘은 3개월이나 6개월 단위의 단발성 계약이나 1년 계약이 일반적이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배우는 2년, 아이돌은 6개월~1년 계약이 정설이었다. 이미지 변화가 크지 않은 여배우는 장기간, 새로운 곡이 나올 때마다 이미지가 변화하는 아이돌이나 예능인의 경우는 단기간 계약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의 영향으로 연예인의 사생활이 쉽게 노출되고 그에 따라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이제 여배우라 하더라도 계약 기간은 1년이 보편화되었다. “화장품 모델 계약 직전, 해당 연예인이 SNS에 말실수를 해서 질타를 받은 사건이 터지면서 급하게 다른 연예인과 계약한 브랜드도 있었어요. 이런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브랜드들이 모델의 계약 기간을 단축하고, 사고를 칠 위험이 적은 연예인을 선호하게 된 거예요 . 구설수에 따른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요. 따라서 화장품 모델을 구할 때 브랜드에서 암암리에 해당 연예인뿐 아니라 주변 인물까지 조사하는 경우도 많아졌어요. 열애설 및 인간 관계, 가족들의 직업, 성향까지도 알아보는 거죠.” 모 브랜드 광고 담당자는 설명했다. 또 다른 담당자는 모델 계약 기간이 1년으로 짧아진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요즘은 연예인의 경우, 보통 활동 계획이 향후 1년 정도까지 잡혀있는 경우가 많아요. 연예인의 활동을 예측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이 1년인 셈인 거죠. 모 브랜드의 경우, 해당 모델이 계약 후 결혼과 출산을 연이어하면서 전혀 활동을 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해요. 모델인 연예인이 자체적으로 노출되는 기회가 거의 없으니, 브랜드 광고 외에 해당 연예인으로 인한 광고 효과를 전혀 거둘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요즘은 모델 계약시 향후 활동 계획을 체크하는 것이 필수예요. 막상 모델로 기용했는데, 해당 연예인이 전혀 활동을 하지 않는 등의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노력인 거죠.”

점점 더 커지는 연예인 모델 효과
모델의 영향력은 더 커졌다. 지난해 2월 공효진을 모델로 기용한 클리오의 경우 드라마 <프로듀사>, <질투의 화신> 등의 PPL이 연이어 성공하면서, 메이크업 파트에 있어서 매출의 정점을 찍었다는 분석이다. 라네즈의 송혜교 효과는 실로 엄청난 수준이다.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 이어 올해는 <태양의 후예>로, 송혜교 출연 드라마가 인기를 모을 때마다 신드롬에 가까울 정도로 매출이 치솟았다. 송중기 화장품으로 유명한 포렌코즈는 요일마다 각기 다른 송중기의 얼굴을 담은 시트 마스크 출시 하루 만에 100만 장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이영애가 11년째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더히스토리오브후는 이영애 효과를 톡톡히 보며 면세점 매출 1위로 공고히 자리 잡았다. 곧 드라마< 사임당>으로 복귀할 예정이라 이영애 효과는 앞으로도 더 커질 전망이다. 잘 고른 화장품 모델이 브랜드 매출을 좌지우지하는 셈이다. 덕분에 소위 잘나가는 연예인의 몸값도 치솟고 있다. 케이스마다 다르지만 모델료가 1 년에 10억이 넘는 경우도 많아졌으며, 해외에 진출하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의 경우, 진출 국가마다 모델료를 따로 계산해서 총 모델료가 20~30억이 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특히 브랜드의 매출에 극단적인 영향을 미치는 연예인 모델의 경우, 계약금을 현금으로 한번에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나의 브랜드, 다모델의 시대
하나의 브랜드에서 모델을 한 명이 아니라, 두세 명 이상 기용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도 특징이다. 예를 들어 라네즈의 모델은 송혜교와 이성경 그리고 모델 황세온과 정채율 등 총 네명이다. 바닐라코는 소녀시대 태연과 모델 한으뜸이, 헤라는 전지현과 신인 배우 이선빈이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브랜드가 이렇게 다수의 모델과 계약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연예인과 브랜드가 모델 계약 시 보통 지면 촬영 O회, 광고 촬영 O회, 행사 참석 O회 등 활동 횟수를 미리 협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소셜미디어 채널의 브랜드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필요한 광고 영상 및 이미지가 점점 더 많아졌다. 해당 연예인의 활동 횟수만으로는 모든 촬영을 다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인 배우나 모델 등 서브 모델이 필요해진 것이다. 한류 등의 영향으로 남자 모델이 많아진 것도 서브 모델 기용을 부추긴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인기가 많은 남자 연예인을 모델로 선정했지만, 그들이 색조 등 화장품의 이미지를 모두 다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여자 모델을 함께 기용하는 것이다. 박보검이 메인 모델인 비프루브에서 배우 진기주를, 송승헌이 메인 모델인 SNP 화장품에서 배우 엄현경을, 현빈이 메인 모델인 메디힐에서 가수 페이를, 황치열이 메인 모델인 시에로 코스메틱에서 가수 서인영을 함께 모델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소셜 미디어 채널을 대상으로 한 급B 마케팅이 인기를 끌면서 에뛰드하우스의 마동석, 바닐라코의 조세호 등 화제가 되는 셀럽을 2~3개월 단발성 모델로 계약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뿐만아니다. 중국 내 한류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 연예인이 한국과 중국에서 각기 다른 브랜드 모델로 활동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예를 들어 송중기는 한국에서는 포렌코즈의 모델이지만, 중국에서는 중국 브랜드인 프로야의 모델이다. 헤라의 모델인 전지현의 경우 중국에서 스킨케어 부문은 일본 브랜드 하라다보, 메이크업 부문은 헤라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제, 브랜드의 이미지를 한 명의 연예인이 대표하던 시대도, 한 명의 연예인이 하나의 브랜드를 대표하던 시대도 지났다.

PPL이 가능한 배우를 찾아라
드라마나 영화 내 화장품 브랜드의 제품 지원, 즉 PPL(Product Placement)이 재미를 보면서, PPL 문화가 화장품 모델 선정 패턴을 바꿔놓기도 했다. “PPL에 적극적이라고 알려진 모 기업의 브랜드 모델의 경우, 좋은 작품에 우선적으로 캐스팅된다는 설이 있어요. 최근 화장품 브랜드의 PPL이 제작비 충당에 꽤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연출자 역시 제작비를 무시할 수 없으니 PPL 지원에 후한 브랜드의 모델을 더욱 선호하게 된다는 거죠. 물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일 거예요. 톱 배우이기 때문에 그 기업 브랜드의 모델이 되었겠지만, 또 그 반대로 그 브랜드의 모델이기 때문에 더 좋은 배역을 따낸다는 거죠. 특히 색조 제품의 경우, 드라마 속 PPL이 매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브랜드에서도 드라마 PPL이 가능한 여배우, 즉 쉬지 않고 드라마 출연을 할 뿐 아니라 시청률 성적이 좋은 흥행 배우를 선호하게 되는 거고요.” 모 광고 기획회사의 AE는 말했다. 덕분에 소위 뜰 만한 드라마나 영화에 PPL 지원을 하고, 후에 그 작품이 흥행할 경우, 주연이나 조연급 여배우를 브랜드 모델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드라마<운빨 로맨스>의 황정음과 <애인 있어요>의 김현주를, 랑콤이 드라마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전혜빈을 모델로 활용한 것이 그 예다. 올여름 최고의 히트작으로 꼽히는 드라마에 PPL을 했던 모 브랜드의 경우, 주연 여배우를 다른 브랜드에서 발빠르게 모델로 채용하면서 어쩔 수 없이 조연 여배우를 PPL 및 브랜드 모델로 활용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덕분에 최근 화장품 브랜드 홍보 담당자들은 연예계 종사자들 못지않게 새로운 드라마, 영화의 라인업에 촉각을 세운다.

한 뉴스 보도에 따르면 국내 신고된 화장품 제조 업체 및 브랜드만 9천개에 이른다고 한다. 브랜드가 많아진 만큼 화장품 모델의 형태도 다양해졌다. 연예인들이 이미지보다 실리를 쫓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톱스타 = 대기업 화장품 모델’의 공식도 깨진 지 오래다. 브랜드 역시 변화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모델 선정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계약 기간을 줄이고, 한 명의 모델이 아니라 여러 명의 모델을 활용하기도 한다. 짧아진 계약 기간 탓에 연예인들의 브랜드 이동도 빈번하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화장품 모델의 풍속도,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화장품 모델 관련 뉴스를 보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