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 코트다쥐르(Cote d’Azur)의 언덕 너머에는 분주한 해변과 대조를 이루는 고풍스러운 마을들이 있다. 자갈이 깔린 골목길 사이사이를 걸으며 시원한 공기를 마주하고, 분홍빛 하늘을 맘껏 누릴 수 있는 보석 같은 소도시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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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인 자크 프레베르가 살았던 생 폴 드 방스의 집. 2 정원에서 갓 수확한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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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피카소의 작품이 걸려 있는 라 콜롱브 도르의 다이닝 룸. 4 투레트 쉬르 루의 작은 광장.

사람들은 지중해의 푸르름과 뜨거운 열기에 이끌려 칸과 앙티브로 대표 되는 프랑스 남부 해안으로 떠난다. 하지만 그토록 아름다운 해변도 가끔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에는 코트다쥐르 위쪽의 작은 도시로 여행을 떠나보길. 눈앞에는 지중해를 두고 뒤쪽에는 프로방스의 라벤더밭이 펼쳐진 그곳에는, 올리브 나무와 수풀, 각양각색의 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등성이 곳곳에 작은 마을들이 숨어 있다‘.알 프마리팀(Alpes-Maritimes)’이라고도 불리는 프랑스의 남동부 주에 속하는 도시 대부분은 로마 시대와 그 이전에 세워졌으며, 수세기 동안 향수를 생산해왔다. 19세기 후반에는 사람들이 떠나며 폐허가 되는 듯했지만 9120년대에 이곳에 매료된 소설가와 배우, 화가와 영화감독 등 예술가들이 몰려들면서 도시는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특히, 예술의 목적은 열정을 끌어내는 것이라고 했던 피카소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다. 예술가들의 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코트다쥐르의 바다 내음도 이내 잊혀진다.

향기로운 마을, 그라스
마을에 조금씩 실안개가 드리워지면 그라스(Grasse)의 중심지 오에르광장(Place aux Aires)의 맛집에서는 홍합 요리 냄새가 풍겨 나오고 잘 익어가는 과일의 향기가 따뜻한 공기에 스며든다. 산골짜기에 위치한 오래된 도시 그라스는 화려하진 않지만 작고 평화롭다.

인도의 델리나 이탈리아 나폴리의 뒷골목을 연상시키는 거리에는 집집마다 빨래가 널려 있고, 사이 좋게 나란히 위치한 집들은 핑크와 오렌지 빛 등 파스텔색을 뽐낸다. 도미니크 콩테 거리(Rue Dominique Conte)에 위치한 서점에서는 그라스에서 생을 마감한 에디트 피아프에 대해 쓴 책을 팔고, 그 뒤편 아틀리에에서는 조셉 폰 스턴버그 감독의 걸작<푸 른 천사(Blue Angel)>의 오리지널 포스터를 손에 넣는 행운이 찾아오기도한다. 사실 알프마리팀에서 보물찾기하듯 곳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상태가 멀쩡한 버스터 키튼의 1933년 영화 <What! No Beer?>의 포스터를 얻는 일도 그중 하나다.

로라투아르 거리(Rue de l’Oratoire)에는 향수 장인들의 작업실이 모여있다. 그라스는 원래 가죽으로 유명했으나 17세기 들어서는 향수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고, 현재도 여전히 남아 있는 작업실들에서 향수를 판매하고 있다. 마을 주변에는 제비꽃과 재스민처럼 향수의 원료가 되는 꽃이 만발해 있다. 실제 그라스에서는 꽃과 관련한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그라스에도 성당과 사라센 탑 등의 볼거리가 있지만 압도될 정도의 위용을 자랑하진 않는다. 대신 그라스에서는 후각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 향이 좋은 비누와 크림, 포마드의 은은한 향이 거리를 채우기 때문이다. 언덕 아래로 이어진 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사과나무가 가득한 협곡을 마주하게 된다. 한때는 꽃을 보관하는 석조창고와 향신료를 가득 채운 상자, 식초와 미모사가 든 통이 늘어서 있었지만 지금은 창고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날이 저물 때쯤 먼 발치의 마을에서 불이 하나 둘 켜지면, 정적인 순간이 찾아온다.

● WHERE TO STAY
– 팡타루(Pantarou) 아름다운 석조 농장 건물을 개조한 B&B로 총 여섯 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다. 그라스 중심부 아래 푸르른 협곡으로 접어드는 곳에 위치하며 목련이 아름답게 핀 수영장이 있다. 조식으로 멜론, 정원에서 직접 딴 민트로 만든 차 등을 제공한다. 문의 www.pantarou.wordpress.com
– 라 바스티드 생 앙투안(La Bastide Saint-Antoine) 클래식하고 우아한 분위기의 호텔로, 늘 결혼식을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로 북적거린다. 잘 가꿔진 정원에서는 카나페 등 간단한 스낵도 즐길 수 있다. 밤이 되면 손님들이 멋지게 차려입고 저녁 식사를 하는 등 즐거움으로 가득한 곳이다. 문의 www.jacques-chibo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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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라 콜롱브 도르의 바. 6 프로방스를 대표하는 보랏빛 라벤더.

소박한 일상이 공존하는 카브리 & 스페라세드
카브리와 스페라세드(Cabris & Speracedes)는 프로방스 언덕에서 남쪽으로 뻗은 높은 곳에 자리해 니스와 칸의 멋진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카브리는 잔잔한 바람이 불어 상대적으로 시원하고 아름다운 소박한 도시다. 알베르 카뮈 거리의 테니스 코트에서는 토요일 아침이면 남자아이들이 모여 수다를 떨며 장난을 치고, 맞은편에 위치한 교회에서는 세례식이 열린다. 하얀 석조 건물의 교회는 햇빛을 받아 유난히 반짝인다. 그리고 오렌지색 의상을 입은 성 마리 데 수르스 상은 유난히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

프레데릭 미스트랄 거리(Rue de Frederic Mistral)의 코너에는 1966년부터 블랑제리, 파티세리, 그리고 살롱데테를 운영하는 가레 씨가 세라믹 그릇에 부드럽고 쫄깃한 머랭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팔고 있으며, 오븐에서는 양파와 호박을 넣은 타르트가 구워지는 중이다. 자갈길 사이사이에는 로즈메리가 피어 있고 포니테일을 한 여자아이들은 바게트와 신선한 달걀을 손에 쥔 채 뛰어간다. 옆의 약국에서는 카브리 지방의 꿀로 만든 사탕과 삼나무로 만든 수제 지팡이를 판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아주 조그마한 마을, 스페라세드에 발걸음이 닿는다. 마을 강둑에는 은빛의 올리브 나무가 서 있고, 중앙 광장에는 물가주변으로 이끼와 푸른 꽃이 핀다. 세월에 낡은 집들은 나름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여름 바람에 실려온 나뭇잎은 오래된 창가에 달라붙어 있다. 마을의 중심에 위치한 카페드뤼니옹(Cafe de l’Union)에서 값싸면서도 맛있는 로제 와인을 마시며 비둘기 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들리는 조용한 스페라세드의 아침을 맞는 것은 꽤나 특별한 일이다. 그곳의 평범한 일상이 여행자의 풍경이 되는 순간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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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분홍색의 협죽도가 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생폴드방스의 건물. 8 프로방스의 레스토랑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로제 와인.

피카소의 마을, 무쟁
무쟁(Mougins)의 아름다운 거리를 걷다 보면 흩날리는 장미 꽃잎 덕에 꿈속을 거닐고 있는 기분이 든다. 14세기에 지어진 성벽을 뒤덮고 있는 담쟁이 덩굴은 바람에 끊임없이 흩날리는 모양새가 마치 하얀 돌담이 숨을 쉬는 것 같다.

피카소는 말년에 이곳에서 12년을 살았다. 이 기간 동안 시인 장 콕토, 사진가 만 레이, 화가 페르낭 레제가 그를 방문했고,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은 이전에 우체국이었던 건물에서 살기도 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니스에 요트를 정박해둔 채 종종 무쟁을 찾아 점심을 즐기곤 했다. 무쟁은 어느 곳에서나 화려한 레스토랑과 아틀리에를 만날 수 있다. 근처 앙티브 에덴 록 호텔에서 최고급 차량을 동원해 만찬을 즐기고 떠나는 커플의 모습도 익숙하다. 이곳에서는 성수기에도 오후 3시면 레스토랑이 문을 닫는다. 그때부터는 식사를 멈추고 마을을 둘러보자. 로마시대 이전 유적과 요새를 지나 굽이진 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길 중간중간 흐드러지게 핀 나팔꽃과 라벤더, 그리고 잊혀진 사람들을 기리는 명판을 볼 수 있다.

무쟁은 모든 곳에 피카소의 흔적이 묻어나는 마을이다. 피카소가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호텔방의 벽에 그림을 그렸는데 그 일로 주인이 무척 화를 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피카소는 1973년 무쟁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진 미술관에서는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나 투우사인 양포즈를 잡은 모습 등 피카소의 사진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는 주로 연인을 촬영했는데 사진 속에서 피사체와의 진한 교감이 느껴진다. 무쟁에서 가장 좋은 시간대는 점심과 저녁 사이의 오후다. 점심 때 먹은 화려한 요리에 도취되었던 후각이 이끼 냄새, 습기를 머금은 돌 냄새에 반응하기 시작한다. 이 시간에는 마레샬 거리에서 달콤한 토마토 퓨레를 파는 가게도 문을 닫으며 클래식 아트 뮤지엄의 외부에는 밤에 있을 로마시대 요새에 관한 토론회를 공지하는 종이가 붙어 있다. 11세기에 지어진 생자크 마제르 교회에서는 소프라노가 비발디의 글로리아를 연습하고 있다. 소프라노에게 콘서트가 언제인지 물어보니 어깨를 으쓱하며 ‘글쎄요, 언젠가는’이라는 무심한 답을 내놓는다. 그 뒤편에 높게 솟은 하얀 벽 뒤로 바로크 시대의 악기인 류트와 하프가 화려한 금빛을 뽐내고 있다. 예술가의 마을다운 풍경이 스친다.

● WHERE TO STAY
– 르 마 캉디유(Le Mas Candille) 객실과 테라스에서 녹음이 우거진 골짜기를 보고 있으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높게 솟은 대나무와 베티버, 라벤더 사이에서 즐기는 시세이도 스파는 단연 최고다. 문의 www.lemascandille.co.uk

 

Eye Spy, small beautiful countryside towns in the French Riviera, La Colombe d'Or restaurant terrace

라 콜롱브 도르의 테라스에서 즐기는 저녁 식사.

낭만을 간직한 투레트 쉬르 루
투레트 쉬르 루(Tourrette-sur-Loup)는 로맨틱한 마을이다. 관광버스가 쉽게 오르기 힘들 정도의 고지대에 있어 알프마리팀의 마을 중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며 주민도 4천여 명이 전부다. 목련과 서향나무가 심어진 길가에는 진흙으로 된 파이프, 오래된 전선 같은 것들이 눈에 띈다. 수도원처럼 보이는 아파트의 작은 창문에는 낡은 레이스 커튼이 쳐 있고, 모든 게 중세시대 이후로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마을은 아찔하게 꺾인 협곡 위로 불쑥 솟아 있는 투레트 화산구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어 코트다쥐르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영원히 여름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알프마리팀의 가장 특이한 점은 항상 지중해를 곁에 두고 있으면서도 해변가 분위기는 전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다의 짠 내음도, 모래사장도 없다. 사실 30분만 걸으면 바닷가에 닿을 수 있지만 유난히 평화로운 이곳의 분위기는 마치 뚜레트 쉬르 루가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 WHERE TO EAT
– 라 카브 드 투레트(La Cave de Tourrettes) 라 카브는 테라스가 딸려 있는 작은 바 겸 레스토랑으로 협곡 위쪽에 위치해 있어서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붉은 양파 콩피를 곁들인 돼지고기 요리 등 라 카브의 요리는 소박하지만 뛰어난 맛을 자랑한다. 프로방스 와인도 꼭 맛보길. 문의 www.lacavedetourrett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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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라 콜롱브 도르의 생선 요리. 10 라 콜롱브 도르의 입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생 폴 드 방스
생 폴 드 방스(St-Paul-de-Vence)는 특유의 매력 덕에 프랑스에서 몽생미셸 다음으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시골 마을이다. 현재는 한 해에 약 2백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릴 정도. 1 6세기에 쌓은 성벽, 아케이드, 우물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처칠이 앉아서 그림을 그리던 분수대도 있고 오래된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에 샤갈의 무덤도 있다. 자코메티의 엽서를 사느라 바쁜 룩셈부르크의 할머니 관광객들, 밀짚모자를 쓰고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포르투갈의 10대들, 유모차를 끌고 마을을 구경하는 캐나다 부녀 등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주민들은 이곳이 늘 이렇게 과하게 북적인 건 아니라고 툴툴대지만 사실 생 폴 드 방스는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관광지다.

그럼에도 이제 동네 사람들이 들를 만한 빵집 하나 없는 곳이 되어버린 것 역시 사실. 대부분의 가게들은 이제 관광객을 대상으로 아이스크림이나 기념품을 팔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른 아침에는 중세시대의 성벽 뒤쪽에서 열리는 시장에서 멜론, 파슬리, 해바라기를 팔고 호텔 겸 레스토랑인 라 콜롱브 도르 앞에서는 남부 프랑스의 스포츠 경기인 페탕크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라 콜롱브 도르는 히치콕이 영화 <나는 결백하다(To Catch a Thief)>의 각본을 마무리한 곳으로 벽에는 마티스, 브라크 등 유명 화가들이 직접 선물한 작품이 걸려 있다. 이브 몽탕, 시몬 시뇨레, 제임스 볼드윈 등 많은 스타가 몇 달씩 머무르기도 했다. 오후 1시가 되면 호텔 테라스에서 남자들이 식사도 거른 채 모여 담배를 피운다. 부인들은 은색 쟁반에 나오는 요리와 샴페인을 즐긴다. 이 호텔의 주인인 피투 씨는“몽 탕이 이곳에서 시뇨레를 만났죠. 자크 프레베르도 여기 오래 머물렀어요, 몇 달씩 여러 번. 할머니가 프레베르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곤 했어요”라고 회상한다. 나중에 피투 씨에게 피카소가 수프 값 대신에 그림을 준 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며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이야기가 다 사실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호텔 안에 걸려 있는 그 많은 그림은 다 어떻게 구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말한다. “1953년에 할아버지가 할머니한테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어요. ‘내려가서 파블로한테 말해봐.’ 그래서 그렇게 그림이 많아진 걸로 알고 있어요.”

● WHERE TO STAY
– 라 콜롱브 도르(La Colombe d’Or) 여전히 많은 사람이 우선순위에 두는 호텔이라서 예약하기가 쉽지 않다. 레제, 들로네의 작품 아래에서 아침을 먹는 특권과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 작품을 옆에 두고 수영하는 재미를 놓치지 말 것. 문의 www.la-colombe-dor.com
– 오리온 트리하우스(Orion Treehouse) 나무로 지어진 호텔로, 개울물을 활용한 수영장 주변은 관개용 식물로 둘러싸여 있다. 자연을 가까이하면서도 화려함을 놓치지 않은, 상반된 매력을 가진 호텔이다. 나무로 만든 욕조, 흩날리는 하얀 천, 로프로 만든 나무그늘 등은 마치 영화 속 타잔과 제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문의 www.orionbb.com
– 르 마 드 피에르(Le Mas de Pierre) 이 호텔은 시내 중심지에서 살짝 벗어나 있기 때문에 이곳을 찾은 손님들이 편하게 쇼핑을 하고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롤스로이스 팬텀으로 시내까지 태워다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오래도록 즐길 수 있는 점심시간의 만찬이 특징이다. 문의 www.lemasdepierre.com

 

11 남불 도시의 모습을 담은 그림 엽서들. 12 라 콜롱브 도르의 조식으로 제공되는 산딸기.

11 남불 도시의 모습을 담은 그림 엽서들. 12 라 콜롱브 도르의 조식으로 제공되는 산딸기.

한적한 시골 마을, 비오
한때 성전기사단의 영역이었던 비오(Biot)에는 아직도 12세기의 요새가 일부 그대로 남아 있다. 비오의 오래된 거리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매우 비좁다. 관광객이 많을 때에는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지만 사실 그럴 일은 거의 없다. 산비탈에 지어진 이 마을에는 케이크를 파는 가게, 유리공예 작품을 파는 가게, 간단한 샐러드와 성게를 파는 레스토랑 등이 있다. 뒤로 이어진 골목의 전망대에서는 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닭이 울어대고 옆집의 누군가가 피아노를 치는 평화로운 풍경이 이어진다. 메인 거리에서 한 뼘쯤 떨어져 있는 14세기에 형성된 거리에는 중세시대 느낌이 물씬 나는 문고리가 달린 집이 있다. 비오에 갈 때마다 그 문고리가 있는 집을 찾곤 하는데 발 밑에 떨어진 무화과와 라임 열매를 밟으면서 코를 창가에 들이밀고 바라보면 정교하게 만들어진 작은 정원에 협죽도와 살구 나무가 심어져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돌려 보니 적당히 어둠이 깔린 거리에 결혼식을 마친 파티 행렬이 마치 카니발처럼 마을을 지나간다. 그리고 신이 난 아이들은 생화를 뿌리면서 그 뒤를 따라다닌다. 마을에서 칼을 가는 사람도 일을 잠시 멈추고 나와 갈고 있던 칼을 흔들며 결혼한 커플을 축하한다. 이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에 평화와 안정이 깃든다.

● WHERE TO STAY
– 오텔 레 아르카드 (Hotel Les Arcades) 비오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통과의례처럼 찾을 수밖에 없는 호텔이다. 오래된 다락방 같은 분위기의 객실이 특징이다. 문의 www.hotel-restaurant-les-arcad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