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패션계를 점령한 쿠튀르적인 장식미와 스트리트 무드의 의상이 만나 거리의 패션 신을 더욱 화려하게 물들이고 있다. 그 변화를 이끌고 있는 패션 피플들의 스타일 해부.

 

Patricia Manfield seen at Etro SS2017 Women show in Milan during Fashion Week

너도나도 놈코어를 외치던 때가 있었다. 벌써 케케묵은 단어가 됐지만, 패션 공작새와 정반대의 노선을 취하는 놈코어는 평범함 속에서 ‘쿨내’ 풍기는 스타일이었다. 90년대 풍의 미니멀리즘과 맞물려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런웨이와 스트리트를 접수했던 빅 트렌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패션의 판도를 바꾼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등장한 후로 런웨이에서 밀려난 지 한참이다.

지금 하이패션계는 의도하지 않은 듯한 멋보다 의도된 화려한 멋에 매료됐다. 구찌가 선보인 로맨티즘과 맥시멀리즘 마법에 환호성과 박수로 답하고 있지 않나. 이 덕에 놈코어 뒤에 가려져 있던 화려한 기교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놈코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다. 놈코어의 근간이 된 항공점퍼, 스웨트 셔츠, 트랙 팬츠처럼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아이템에 디자이너들은 여전한 애정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단, 스트리트적인 아이템에 돋보이는 장식이 더해져 호화스러운 모습으로 탈바꿈했을 뿐! 이러한 변화의 조짐은 스트리트 패션에서도 감지됐다.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대표작인 스카잔 점퍼의 히트가 그중 하나. 승천하는 용의 자태와 대담한 꽃무늬 자수의 동양적인 스카잔 점퍼가 스트리트 패션에서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더니 트렌디 아이템으로 급부상했다. 수주는 스카잔 점퍼에 사이하이 부츠를 매치하고, 리한나는 브라톱과 마이크로미니 데님 쇼츠 위에 스카잔 점퍼를 걸쳐 섹슈얼한 아이템으로 활용했으며, 케이트 모스는 스카잔 점퍼에 플라워 팬츠를 입어 매력을 더했다. 스트리트 패션에 한 폭의 동양화가 물들기 시작한 것이다. 스트리트 패션의 휘황찬란한 변화를 예고하듯이!

2017년 봄/여름 컬렉션 쇼장 앞. 사진가 군단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들의 노고에 답하듯 포즈를 취하는 패션 피플들의 옷차림은 로맨티즘의 전성기가 찾아온 듯 화려하고 장식적이었다. 키아라 페라그니는 밀라노 컬렉션장에서 알베르타 페레티의 튜브톱 드레스에 아크네의 항공점퍼를 걸치고 지안비토 로시 앵클 부츠를 매치해 여성스러운 스트리트풍을 완성했다. 파리 컬렉션장에서는 슬립 톱과 데님 스커트의 캐주얼 룩에 미우미우의 고급스러운 자카드 코트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테일러 토마시힐은 카디건 위에 뷔스티에를 레이어드한 후 데님 재킷을 걸쳐 스타일리시한 여성미를 뽐내고, 파리에서 만난 아이린은 자카드 점퍼로 빈티지풍의 로맨틱 룩을 완성했으며, 베로니카 헤일브루너는 티셔츠와 데님 팬츠 차림에 벌룬 소매의 실켓 드레스로 믹스매치 룩을 연출했다. 물론 놈코어가 유행하던 때에도 대담한 스트리트 룩은 존재했었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의도된 스타일을 공작새로 여기며 촌스럽다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현재 패션 트렌드는 맥시멀리즘과 바로크, 로코코 등 미적 유산이 혼재된 장식주의의 아름다움을 전하며, 2016년의 쿨한 태도는 강렬한 멋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호화롭게 탈바꿈한 스트리트풍의 아이템을 활용한 스타일링 노하우가 담겨 있다.

스트리트 패션의 변화는 쿠튀르를 방불케 하는 미켈레 효과도 한몫했지만, 또 다른 이슈 메이커인 뎀나 바잘리아의 역할도 크다. 뎀나 바잘리아는 패션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등 대담한 시도로 생경한 여성성을 완성했다. 그는 베트멍에 대해 “아름답지 않은 것.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이유이다(It’s ugly. That’s why we like it)”라고 인터뷰에서 종종 말한다. 동시대의 미학으로 꼽히는 뎀나식 아름다움은 미적 가치에 대한 탐닉보다는 그가 격동의 러시아에서 경험한 감수성에서 기인한 것들. 이런 그가 베트멍과 발렌시아가의 수장으로서 고수하는 철학은 ‘쿠튀르적 태도’로, 그는 정형화된 디자인을 탈피하기 위해 건축적인 실루엣, 과장된 길이로 쿠튀르적인 요소를 불어넣었다. 허리 라인을 볼록하게 부각시킨 발렌시아가의 트위드 스커트 슈트나 어깨에 힘을 잔뜩 불어넣은 베트멍의 후디와 체크 셔츠 등이 그 흔적이다. 여기에 후디, 스웨트 셔츠, 아노락 점퍼, 패딩 점퍼, 트랙 팬츠처럼 스트리트적인 아이템을 적극 활용해 쿨한 분위기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스트리트 패션에서는 그의 스타일을 복사한 듯한 스타일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패트리샤 맨필드는 2017 봄/여름 밀라노 컬렉션장에 페이턴트 가죽 미니스커트에 베트멍의 후디룩을 연출해 등장했고, 스텔라 맥스웰은 트랙 팬츠에 구찌 하이힐을 매치한 룩으로 파리 패션위크를 종횡무진했으며, 지지 하디드는 레드 컬러의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강렬함을 남겼다. 이러한 스트리트 패션의 고급화된 장면을 시사하듯 <인터뷰> 매거진은 9월호에 ‘Street Couture’ 화보를 담았다. 베트멍의 후디 스타일링에 크리스털 장식의 화려한 스틸레토 하이힐과 이브닝 드레스에 어울릴 법한 미니백을 매치하여!

평범함이 비범해 보이는 시대는 완전히 저물었다. 스트리트를 지배하는 자들의 옷차림이 이를 증명한다. 여성성을 극대화하거나 쿠튀르식 터치로 고급스럽게 변신한 스트리트 아이템을 응용해서! 그러니 정제된 스타일에 대한 집요함은 잠시 내려놓는 것이 어떨까? 지금 런웨이부터 스트리트 영역까지 ‘화려해도 좋다!’라는 신호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