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봄/ 여름과 2016년 가을/ 겨울이 혼재했던 컬렉션은 즐거움과 밝은 에너지로 가득했다. 긍정의 기운, 여성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시대를 향한 찬양이 울려 퍼졌다.

 

07
MULTI CULTURALISM
미지근하던 밀라노 컬렉션의 온도는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강풍으로 변화를 맞이했다. 성공적인 기운은 계속 이어져 예술성과 패션성이 접목된 패션 판타지가 또다시 꽃을 피웠다. 이번 시즌 밀라노 패션을 관통한 키워드는 문화주의. 동서양의 요소에서 영감을 얻은 런웨이가 밀라노의 장인 정신 아래 다양하게 펼쳐졌다.  그 시작은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한 구찌가 열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중국을 향한 애정이 남달라 이번 시즌, 극강의 화려함 속에 승천하는 용을 불러들였다. 이 속에 일본의 정서도 혼재되어 있는데 모델들이 손에 들고 있던 일본의 우치와 형태의 부채가 그 증거다. 미우치아 프라다도 중국으로 눈을 돌려 여성의 섹시함을 표현하기 위해 중국의 치파오를 응용한 파자마 룩을 선보였다. 대놓고 드러낸 노출보다 감춰진 섹시함을 담길 원했던 디자이너는 부드러운 실켓 소재와 펄럭이는 타조 깃털 장식을 더해 프라다식 여성성을 표현했다. 반면 펜디는 구찌나 프라다와 달리 서양의 복식사를 들여다봤다. 그 결과 2017년 버전으로 환생한 스타일은 호화로운 마리 앙투아네트의 로코코 룩! 곡선적인 실루엣과 3D 플라워 장식, 시스루 소재 등으로 펜디는 로맨틱한 여성성을 표현했고, 쿨한 감도를 살리기 위해 스포티한 감각까지 불어넣었다.

 

08
신고식
2017 봄/여름 컬렉션에서 유례없는 코리안 모델들의 활약이 이어졌다. 모델 수주나 최소라의 뒤를 이어 패션 월드를 매료할 만한 넥스트 코리안 톱 모델의 탄생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배윤영과 정호연! 두 모델 사이에는 두 가지의 연결 고리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4대 컬렉션 도전과 함께 시티 익스클루시브 모델이라는 매력적인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 배윤영은 프라다, 정호연은 루이 비통 익스클루시브 모델 자격으로 런웨이를 걸었다. 두 번째는 굵직한 쇼를 두루 섭렵하며 패션 월드에 확실한 눈도장을 남겼다는 것. 배윤영은 파리에서 디올, 끌로에, 로에베 등의 러브콜을 받았고, 정호연은 밀라노에서 막스마라, 펜디, 알베르타 페레티의 런웨이에서 신선한 매력을 어필했다.

 


09
1 움직이는 종이 인형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종이 인형의 실물화! 모스키노 쇼에 종이 인형처럼 보이도록 2D 효과를 살린 룩과 액세서리가 대거 등장했다. 제레미 스콧의 위트가 다시 발동한 것. 실용성을 따져 묻는다면 혹평을 피할 수 없지만 패션에 대한 상상을 200% 충족해준 것만은 분명한 사실.

2 겹경사 창립 50주년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토마스 마이어의 부임 15주년의 해를 맞이한 보테가 베네타. 겹경사를 기념하기 위해 72세의 여배우 로렌 허튼을 클로징 무대로 초대했다. 트렌치 코트의 클래식한 차림으로 등장한 그녀를 에스코트한 건 톱 모델 지지 하디드.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들의 조우였다.

3 밀라노의 별 밀라노 쇼장의 프런트로에는 스타들로 빛을 발했는데, 그 속에는 한국의 스타들도 한몫했다. 제레미 스콧의 절친인 산다라 박은 모스키노 쇼에 걸맞게 위트 있는 차림을 하고 앉아 있었고, 배우 이민정은 여배우의 우아함을 드러낸 채 살바토레 페라가모 쇼를 관람했으며, 가죽 코트 옷차림의 크리스탈은 토즈 쇼장에서 포착되었다.

4 작별인사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차고 넘치는 쇼를 준비한 필립 플레인. 놀이동산을 쇼장으로 옮겼고, 컨버터블카를 탄 페기가 컬렉션의 시작을 알렸다. 펫조의 라이브가 흐르는 가운데 모델들이 회전 기구를 타며 피날레 무대를 선보였다.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았던 이유는 다음 시즌부터 뉴욕으로 무대를 옮기는 그의 작별무대였기 때문.

 


10
MODERN ETHNIC
자유로운 감성이 깃든 모던한 에스닉 무드가 파리를 은은하게 물들였다. 파리의 디자이너들이 제안한 것은 세련되면서도 자연스럽고, 우아하면서도 자유분방한 21세기 에스닉 우먼이었다. 포문을 연 것은 J.W. 앤더슨의 로에베. 네덜란드의 아티스트 마할리 뢰스가 만든

[Offshore] 라는 영상을 배경으로 플리츠 드레스, 레더 코르셋 같은 범상치 않은 액세서리가 조화를 이룬 의상을 선보였다. 지난 시즌에 비해 장식적인 요소는 줄었고 소재와 실루엣에 집중하며 정제된 에스닉 룩을 완성했다. 아크네 스튜디오의 조니 요한슨은 오래된 스카프와 담요에서 영감을 얻었다. 페이즐리 패턴의 튜닉, 와이드 팬츠, 흩날리는 체크 패턴 스카프와 유목민이 입을 법한 낡고 해진 느낌의 롱 니트 스웨트까지 빈티지한 감성과 모던한 실루엣이 결합된 아크네식 에스닉 룩은 지극히 동시대적이었다. 스텔라 맥카트니는 그녀의 자연 친화적인 신념을 담은 오가닉 우븐과 리넨으로 다양한 컬러와 낙낙한 실루엣으로 쿨 내 나는 에코 에스닉 룩을 펼쳐 보였다. 세린느 컬렉션에도 보헤미안의 기운이 아른거렸다. 피비 필로는 에스닉과 1980년대를 절묘하게 버무렸다. 프린지 디테일이 돋보이는 슬립 드레스를 입은 모델이 아티스트 댄 그레이엄이 설계한 메탈과 유리로 이루어진 구조물 사이를 누비며, 21세기 보헤미안의 모습을 근사하게 그려냈다.

 


12
런웨이에서 춤을
긍정의 기운을 전파하기 위해 디자이너들이 선택한 요소는 바로 ‘춤’! 많은 디자이너들이 댄스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런던 디자이너 몰리 고다드의 쇼에서는 시어한 시스루 드레스를 입은 모델들이 런웨이에 모여 흥겹게 춤을 추었고, 안토니오 마라스는 1960년대 말리의 독립 기념일 축제에서 트위스트를 추던 장면을 재현했다. 돌체앤가바나는 트로피컬 이탤리언이라는 주제로 런웨이 시작과 피날레 때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무대를 연출했다. 댄스 퍼포먼스의 대미는 스텔라 맥카트니가 맡았다. 모델들은 부족춤을 연상시키는 손동작 춤으로 피날레를 연출해 춤이 가진 유쾌한 에너지를 전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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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시작 생 로랑과 디올에 둥지를 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의 첫 컬렉션. 생 로랑의 안토니 바카렐로는 1980년대 스타일의 파워숄더 드레스와 르 스모킹을 재해석한 룩으로 무난한 시작을 알렸고, 디올의 마리아 그라지아 치우리는 펜싱과 발레리나에서 영감 받은 의상을 제안했다. 디올의 첫 시작은 로맨틱! 성공적!

2 파격 그 이상 겐조의 쇼에서의상만큼 시선을 강탈한 것은 쇼장 백그라운드에서 펼쳐진 파격적인 누드 퍼포먼스로, 하얗게 분장한 다양한 인종과 연령의 사람들이 나체로 서 있었다. 인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했던 의도였다는 이 파격적인 퍼포먼스 덕분에 쇼는 오래도록 회자될 듯하다.

3 니트의 여왕을 위하여 소니아 리키엘 쇼에서는 지난 8월 타계한 고 소니아 리키엘을 추모하는 이벤트가 펼쳐졌다. 그녀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비디오 아트처럼 상영했고, ‘Rykiel Forever’의 스펠링을 한자씩 적은 스웨터와 브랜드를 대표하는 멀티 스트라이프 스웨터로 피날레를 장식하며 그녀가 만들어낸 유산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4 샤넬의 데이터 센터 칼 라거펠트는 그랑팔레에 복잡한 케이블 선과 캐비닛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샤넬 데이터 센터를 지었다. 런웨이에 제일 먼저 등장한 것은 트위드 슈트를 입은 로봇(실은 로봇처럼 연출한 모델이었다)! 시대를 초월하는 것은 여성성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란제리, 트위드 스트리트풍 액세서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