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 에센스가 출시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브랜드에서는 이 제품이 몇 개나 팔릴 것인지 어떻게 예상할까. 제품을 전량 수입해오는 수입 브랜드라면 이건 정말 치명적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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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들이 이렇게 새빨간 아이섀도에 열광할 줄 몰랐어요.” 미팅차 만난 샤넬 홍보 담당자의 이야기였다. 레드, 버건디 등 진한 빨간색으로 구성된 아이섀도 팔레트인 샤넬의 레 꺄트르 옹브르 268 깡되르 에 엑스빼리앙스가 출시 3일 만에 품절 사태를 빚은 것이다. 새빨간 아이섀도가 한국 여자들에게는 조금 생소할 뿐 아니라 메이크업하기 다소 어려운 컬러라 판단했기 때문에 국내에서 이렇게까지 날개 돋친 듯 팔릴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추가 입고 수량도 이미 품절되어 현재는 완불 예약만 받고 있는 상태다. 지난해 모 브랜드에서는 전혀 새로운 콘셉트의 시트 마스크를 내놓았지만 너무 비싼 가격 때문에 많이 팔리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여 초도 물량을 낮게 잡았다. 그런데 예상보다 너무 빨리, 너무 잘 팔린 것. 매장에는 품절 사태가 이어졌고 급하게 추가 물량을 주문했지만, 그사이 저렴한 가격의 국내 미투 제품이 시장에 쫙 깔렸다. 판매량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제품의 선점 효과를 놓친 것이다. 잘 안 팔려도 문제지만, 이렇게 예상 밖으로 너무 잘 팔려도 문제인 셈. 이런 사태를 지켜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수입 브랜드는 제품을 들여올 때 그 물량을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 것일까?

너무 잘 팔려도 문제, 안 팔려도 문제
통상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은 바로 유사 제품의 과거 판매 추이다. 여기에 제품이 판매될 곳, 즉 유통 채널별 시장 성장률을 고려하고 현재의 트렌드를 반영한다. 마지막으로 그 제품에 얼마나 많은 마케팅 비용을 투자할 것인지까지 감안해서 대략의 수입 물량을 결정하는 구조다. 예를 들면 신제품 크림이 출시될 경우, 비슷한 콘셉트의 크림이 작년 같은 시즌(보통 3개월 정도)에 얼마나 판매되었는지를 먼저 체크해본다. “기존 제품과 신제품 모두 3개월 판매치를 유의미한 숫자로 봅니다. 전년도 같은 시즌에 3개월간 판매된 수치를 모두 합해 발주 물량을 예상하는 거죠. 신제품 역시 첫 출시 후 3개월간 판매 추이를 지켜본 다음 향후 1 년간 판매 수량을 예측해요. 신제품이 첫 달 1800개, 둘째 달 1600개 그리고 셋째 달에 1500개가 팔렸다면, 이후에는 1400개, 1400개, 1300개 등 판매량이 차차 줄어들 거라 예상하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이후에는 상황별 이슈에 따라 판매 예상량을 변화시키는 거죠.” 비오템 프로덕트 매니저의 설명이다. 스킨케어 제품의 경우 계절적 영향이 뚜렷한 편이어서 이에 따라 판매량을 예측하기도 한다. 1~2월은 안티에이징 라인과 같은 리치한 제형의 제품, 3~4월은 자외선 차단제를 포함한 화이트닝 제품, 5~6월은 선물용 리미티드 에디션, 7~10월은 안티에이징 제품, 11~12월은 리미티드 에디션 제품이 통상적으로 많이 팔린다. 이 외에도 스킨케어 제품의 수입 물량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요건은 제형이다. 한국의 경우 점도가 높고(쫀쫀하고), 흐르는 정도가 낮은(크림 타입) 제형을 선호하는 편이다. 또한 수분감을 중요시 여기고 인위적인 향은 선호도가 낮다. 촉촉하면서도 끈적이지 않는 질감을 좋아하기 때문에 꼼꼼한 제형 체크가 필수다. 물론, 제형이 아무리 좋아도 클렌저와 같은 제품은 판매 물량이 적기 때문에 수입량을 줄인다. 같은 라인의 제품들이라 해도 소비율이 높은 크림이나 스킨류의 수입량을 더 늘리는 것이다.

색조 제품의 경우는 마케팅 담당자가 제품을 하나하나 테스트해본 후 그와 유사한 컬러의 과거 판매 추이를 뽑아보고 그에 맞춰 판매량을 예상한다. 요즘 유행하거나, 협업 제품이거나 혹은 광고 비주얼이 예쁘거나 유난히 재미있는 콘셉트여서 매장의 판매직원이 판매하기 쉬운 아이템일 경우 더욱 공격적으로 수입해온다. 같은 라인에서 컬러별로 수입량을 달리하는 것도 일반적이다. 메인 광고 비주얼에 등장하는 컬러이거나, 글로벌 본사에서 메인 컬러로 미는 컬러의 경우 수입량을 늘린다. 유행에 따라 그때그때 가장 잘 팔리는 톤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는 핑크 컬러가 가장 잘 팔린다. 과거에는 은은한 발색을 선호했다면 최근 십여 년 사이에는 눈에 보이는 색깔 그대로 발색되는 제품을 선호하는 것도 특징이다. “수입 물량을 결정할 때 또 다른 중요한 체크 사항은 바로 매출 목표액이에요. 브랜드 전체의 매출 목표도 중요하지만, 제품별 매출 목표액도 중요하거든요. 만약 작년에 이 비슷한 컬러가 1만 개 팔려서 1억의 매출을 올렸다고 해도, 만약 올해 매출 목표액이 2억이라면 이에 맞춰 수입 물량을 결정하고 그 제품의 마케팅 비용을 늘려서 판매를 유도하는 거죠.” 모 색조 브랜드 담당자에 의하면, 이럴 경우 드라마 PPL이나 잡지, TV 광고 등으로 제품 홍보에 집중해서 제품 유입도를 높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전체 주문량이 10만 개라면 초도 물량은 보통 2~3만 개로 소량만 들여와요. 판매 추이를 지켜본다음 이후 입고 물량을 조절하는 거죠. 예를 들어 한 달에 8100개가 판매될 거라 생각했는데, 출시 첫 주에 600개가 팔렸다면 한 달에 2800개 정도는 팔 수 있을 거라 예상할 수 있어요. 그러면 그 주에 바로 본사 생산 공장에서 재고를 할당받아서 비행기로 급하게 제품을 받아요. 주변 아시아 국가에서 제품을 공수해오기도 하고요. 이럴 경우, 추가 물류 비용이 발생할 뿐 아니라, 제품 판매량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한국 지사의 실책이기 때문에 본사의 컴플레인을 받을 때가 많죠.” 한 브랜드의 마케팅 담당자는 판매량을 제대로 예측하는 것이 마케터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물론 그 제품이 어디에서 판매되느냐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브랜드일 경우, 백화점 매출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자연스레 그에 비례해서 판매량이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슷한 제형이나 기능, 컬러의 제품이 현재 한국 시장에서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최근 관건은 그 제품에 마케팅 비용을 얼마나 투자하느냐이다. 인기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하고, 그 제품을 드라마나 방송 PPL에 등장시킬 경우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투자 홍보 비용과 판매량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홍보에 집중할수록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유사 제품의 판매 추이, 유통 채널별 마켓 성장률, 현재 트렌드, 제품에 대한 마케팅 투자 비용 등을 모두 고려하여 수입 물량을 정하지만, 이 중 수치화할 수 있는 건 제품 판매 추이나 마켓 성장률밖에 없죠. 나머지는 말 그대로 ‘예측’ 에 불과해요. 그만큼 ‘감’이 중요한 셈이죠.” 때문에 제품 교육팀, 영업팀, 비주얼 머천다이저(매장 디스플레이 관리자)의 의견을 모두 반영해 적정 수량을 예측하지만 이 역시 언제나 정확할 수는 없다는 것이 한 마케팅 담당자의 얘기였다.

예상보다 너무 잘 팔려도 문제지만, 이미 수입해왔는데 판매가 부진하다면 그 재고는 어떻게 처리할까. 화장품은 유통기한이 짧기 때문에 재고를 무작정 떠안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럴 경우 세일 등으로 재고를 소진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브랜드 이미지상 세일 판매가 불가능할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 브랜드 마케팅 담당자들이 귀띔해준 바에 의하면 일단 해당 제품이 잘 팔리는 나라에 되파는 방식을 택한다. 그것도 어렵다면 직원 대상 내부 세일 등으로 재고를 덜어낸다. 이럴 경우, 이미 수입 비용은 지불한 상태이기 때문에 브랜드 수익 구조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수입 브랜드 마케터의 가장 중요한 업무가 수입 물량을 얼마나 제대로 예측하느냐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자, 여기까지 읽었다면 품절도, 판매 부진도 결국 브랜드에는 다 문제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입소문을 일으키기 위해 일부러 품절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지만, 브랜드의 품절 소식이 마냥 좋은 뉴스만은 아닌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