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하게 부풀린 헤어스타일, 강한 눈매와 천연색의 입술.  매력적인 80년대가 되돌아왔다. 선택과 집중의 미학으로 80년대를 세련되게 재해석한 이번 가을/겨울 시즌 속으로.

 

Jeremy Scott Womenswear Backstage, New York, Autumn/Winter 2016. Copyright James Cochrane February 2016. Tel +44 (0)7715169650 james@jamescochrane.net

높게 세운 앞머리와 탱글탱글 탄력 있는 파마 머리를 한 예쁘장한 소녀들이 런웨이로 걸어 나왔다. 소싯적 댄스 클럽에 입고 갔을 법한 반짝이는 가죽 스커트와 발목까지 닿는 긴 오버사이즈 모직 코트를 걸친 채로! 난데없이 등장한 80년대의 무드에 내가 어느 시대에 와 있는지 잠시 헷갈려 어리둥절했지만 분명 이곳은 이자벨 마랑의 2016년 가을/겨울 컬렉션이 열리는 파리의 콜레트다. 지금이 2016년도임을 실감케 하는 것은 일체의 컬러감을 걷어내 시크함을 잃지 않은 모델들의 얼굴뿐. 만약 그녀들이 진한 눈화장에 원색의 입술색까지 더했다면, 영화 <싱스트리트>의 첫사랑 소녀 라피나와 완벽히 닮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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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이자벨 마랑은 지난 몇 시즌간 패션계를 지배한 90년대 무드 대신, 화려하고 낭만이 넘치는 80년대를 소환했다고 말했다. 복고풍 혹은 촌스러움의 대명사로 치부되던 80년대가 이번 시즌 유난히 많은 러브콜을 받게 된 이유는 뭘까. 물론 80년대의 스타일을 몇 가지 단어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기성 세대에 대한 반항으로 가득 찬 펑크 무드가 전성기를 맞이했고, 디스코의 유행 덕분에 얼굴 위에 펄과 컬러가 가장 풍요롭게 사용되었다.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가 스타일의 아이콘으로 군림했으며 신디 크로포드나 나오미 캠벌과 같이 화려한 이목구비와 풍만한 몸매를 자랑하는 슈퍼 모델의 시대가 열렸다. 눈과 입술에 모두 색을 얹은 진한 화장과 과장되게 부풀린 헤어 스타일이 미의 상징이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남성적인 요소와 여성적인 요소가 혼합되는 앤드로지너스 룩이 등장하는가 하면, 80년대 후반에는 오존층의 파괴가 이슈화되면서 색조 화장이 아니라 피부 보호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잔뜩 멋을 낸 과장된 스타일이 디자이너들에게 재미있는 영감을 준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 가을/겨울 시즌 가장 충실하게 80년대를 받아들인 것은 역시 헤어 스타일이다. 물론 21세기의 모던함을 충분히 가미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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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모스키노 쇼의 헤어 아티스트 폴 핸런은 펑키한 80년대 슈퍼 모델의 헤어 스타일을 재현했다. 머리카락을 무스와 스프레이로 충분히 부풀려서 말이다. 폴 핸런은 당대의 슈퍼 모델 신디 크로포드의 헤어 스타일을 참조했다고 말했다. “80년대 스타일의 웨이브에 부스스한 헤어 질감을 더했어요.” 촌스러움과 세련됨을 결정짓는 한 끗 차이는 바로 이 사소한 질감 차이가 아닐까. 쇼에 80년대 무드를 더욱 짙게 더한 것은 바로 메이크업 아티스트 톰 페슈가 젤 아이라이너와 립스틱을 섞어 연출한 검고 기름진 눈매였다. 단, 선택과 집중의 미학을 아는 2 1세기답게 입술에는 컬러를 걷어내 시크함을 유지했다. 탑샵 쇼의 모델들은 높게 부풀린 앞머리, 과장되게 한쪽으로 쓸어 넘긴 헤어 스타일로 등장했는데, 날렵하게 올려 그린 검은 아이라인과 마젠타 컬러의 입술이 함께 어우러져 80년대 로큰롤 무드가 모던하게 표현되었다. 제레미 스캇 쇼의 모델들은 80년대의 아이콘인 다이애너비처럼 둥글게 부푼 헤어 스타일을 선보였으며, 랑방 쇼에서는 가르마를 한쪽으로 치우치게 탄 다음 옆부분의 머리카락을 부풀려 고정한 스타일을, 구찌 쇼에서는 앞머리를 앞으로 말아 고정한 복고풍 스타일을 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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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루나의 런웨이 크림 립스틱 핑크어워드. 3.5g 2만원. 2, 11 랑콤의 압솔뤼 루즈 릴리 로즈. 3.4g 4만2천원대. 3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루즈 아르마니 벨루아. 4g 4만2천원대. 4,9 메이블린의 아이스튜디오 라스팅 드라마 젤라이너 블랙. 2.5g 1만5천원대. 5 베네피트의 데아 리얼 푸쉬 업 라이너. 1.4g 3만3천원. 6 클리오의 프로 싱글 페이스 크림 핑크. 4g 1만4천원 7 에스티 로더의 빅토리아 베컴 x 에스티 로더 컬렉션 아이 느와르 번트 블랙. 1.2g 2만8천원대. 8 디올의 디올쇼 모노 러스트러스 스모키 그래비티. 1.8g 4만4천원. 10 나스의 벨벳 립 글라이드 르 팔라스. 5.7ml 3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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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바닐라코의 프라임 프라이머 팩트. 5g 2만2천원. 13 아모레퍼시픽의 퍼펙션 블룸 내츄럴 피니쉬 파운데이션. 30ml 9만원대. 14 맥의 프로 롱웨어 블러쉬 스테이 프리티. 6g 3만5천원. 15 르네 휘테르의 베지탈 스컬팅 젤. 150ml 2만4천원. 16 알엠케이의 트랜스루센트 페이스 파우더. 8.0g 5만8천원. 17 메이블린의 아이스튜디오 다이아몬드 글로우 섀도우 그레이 핑크. 2.5g 1만5천원대.

이자벨 마랑 쇼의 헤어 아티스트 귀도 팔라우는 80년대 헤어 스타일의 집대성을 보여주었는데 작은 아이론으로 모근부터 끝까지 동일한 굵기로 웨이브를 만든 다음 손가락으로 빗질하여 부풀린 스타일, 머리가 이마 앞쪽으로 지나도록 깊게 탄 가르마가 바로 그것이다. 핵심은 컬링 아이론을 이용해 컬을 만든 다음에 스프레이를 아낌없이 사용하는 것! 그는 이 룩들이 보이시하지만 매력적인 스타일로 일상에서도 시도해볼 만하다고 추천한다. 이번 시즌, 그 누구보다 80년대를 가장 충실하게 받아들인 것은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일 것이다. 마치 무슈 생 로랑이 시대를 풍미한 그 시절을 찬양이라도 하듯 이번 가을/겨울 시즌 생 로랑 쇼에서 파워 숄더 드레스, 스모킹 슈트를 재해석해서 내놓았다. 여기에 메이크업 아티스트 애론 드메이가 토마토색의 입술과 진한 스모키 아이 메이크업을 더해 80년대 스타일의 정점을 찍었다. 세상을 떠난 메이크업 아티스트 케빈 어코인은 80년대를 이렇게 정의한 바 있다. 숱이 많은 머리, 진한 화장처럼 바비 인형과 같은 아름다움을 추구한 시대라고. 1980년대 시세이도의 아트 디렉터로 활동한 세르주 루텐은 80년대 메이크업의 기능을 어려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의 표정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분명 지금의 우리가 추구하는 미와 조금 다른 모습이긴 하지만, 이번 시즌 수많은 아티스트가 증명해 보였듯이 선택과 집중의 미학만 더한다면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스타일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