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폭염경보에 휩싸였던 여름에도 끝은 있다. 유난히 더디게 찾아온 가을의 문턱에서 차 한잔과 함께 음미해도 좋을 영화들이 개봉을 기다린다. 아티스트의 삶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조명한 세 편의 영화이다.

 

<플로렌스>

<사랑에 미치다>

 

<플로렌스(Florence Foster Jenkins)>는 1%의 재능과 99%의 자신감, 1%의 냉정과 99%의 열정으로 똘똘 뭉친 천방지축 예술가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무대를 둘러싼 가수, 매니저, 연주자의 각기 다른 입장도 고루 묘사한다. 노래를 너무 사랑하는 소프라노 플로렌스의 유일한 단점은 자신이 음치인 줄 모른다는 것. 그녀의 노래에 쏟아지는 혹평을 감당하는 건 남편이자 매니저인 베이필드의 몫이다. 피아니스트 맥문은 플로렌스와 함께하면서 어느 순간 ‘음치 맞춤형 연주’에 최적화된 스스로를 발견한다. 플로렌스가 세계 최고의 무대인 카네기홀에서 공연하겠다고 선언한 뒤, 세 사람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한 불구덩이로 뛰어든다. 이야기의 바탕이 된 실화가 진짜 존재한다는 사실이 반전이다. 1868년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난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는 32년간 음치 소프라노로 활동했고, 심지어 그녀의 실제 카네기홀 공연은 매진을 기록했다. 할머니가 다 된 메릴 스트립의 사랑스러운 연기만큼은 ‘로튼 토마토’ 신선 지수 92%를 찍었다. 휴 그랜트, 사이몬 헬버그와의 찰떡 궁합도 묘미다.
어떤 영화는 예술가의 감정 과잉에 초점을 맞춘다. 예민하고 기복이 심해 평범한 하루하루를 사는 것도 녹록지 않은 시인 카를라와 마르코는 치료 시설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이 시에 대한 애정과 예술적 감수성을 나누며 영감을 주고받던 나날도 잠시, 악몽이 시작되고 광기가 분출된다. <사랑에 미치다(Touched with Fire)는 예술가가 몸 안에 품고 다니는 독에 관한 성찰이다. 예술, 사랑, 광기가 한데 엉켜 있는 독을 행여 뽑아내기라도 하면 시들어버리는, 한없이 격정적이고 유약한 존재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폴 달리오 감독이 자신의 조울증 경험을 반영했고, 케이티 홈즈와 <우리도 사랑일까>의 루크 커비가 열연했다.
다큐멘터리 <히치콕 트뤼포(Hitchcock/Truffaut)>는 한 권의 책에서 출발한다. 1962년, 청년 프랑수아 트뤼포는 흠모하던 대선배 감독인 알프레드 히치콕에게 편지를 쓴다. 일주일간 히치콕 영화들에 대해 토론에 가까운 심도 있는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40번째 장편 영화 <새> 촬영을 끝낸 63세의 히치콕은 필모그래피에 간신히 세 편의 영화를 올려둔 햇병아리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다. 나이, 성격, 취향, 경력, 배경, 모든 게 다른 누벨바그의 기수와 서스펜스의 대가는 영화사에 다시 없을 극적인 교감을 나눴다. 영화는 트뤼포가 그 대담을 정리해서 펴낸 인터뷰집을 따라가면서 히치콕에 대한 동시대 감독들의 코멘트와 히치콕 작품의 주요 장면들을 교차해 삽입한다. 마틴 스콜세지, 데이비드 핀처, 웨스 앤더슨 등 동시대 거장들이 떼로 몰려나와 히치콕의 영화와 트뤼포의 책을 논평한다.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를 인터뷰하고, 또 다른 예술가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완성한 화면 밖의 예술가가 존재하는, 그야말로 ‘예술적인’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