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을 새로 올리고, 다리를 새로 짓지 않아도 서울은 늘 변화 중이다. 오래된 한옥이 가게로 변모하고 있는 종로구 익선동과 동대문, 재개발 이슈와 새로운 것들 사이에서 빈틈을 모색 중인 서대문구 아현동 일대까지. 낯설고 생경한 서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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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변화하는 익선동의 골목을 짐작할 수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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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방치되어 있던 한옥의 형태를 살려 꾸민 공간,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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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편안한 분위기의 식당과 고깃집도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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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식물의 벽을 구성한 벽돌과 기와는 기존 한옥의 재료를 살린 것이다.

익선동
종로3가역은 서울에서 가장 붐비는 역 중 하나지만, 지하철역 4번 출구와 가까운 익선동에 처음 발 딛는 사람들은 대부분 깜짝 놀란다. “서울에 이런 데가 있었어?” 하고. 좁은 골목 양쪽으로 한옥을 비롯한 오래된 집들이 들어서 있는 익선동은 북촌과 서울을 제치고 면적 대비 서울에서 가장 높은 한옥 비율을 자랑한다. 이 비좁은 골목에 카페, 빈티지숍, 경양식집 등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2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 흐름의 맨 앞에는 ‘식물’이 있다. ‘식물’이라는 두 글자가 적힌 깃발을 제외하면 밖에서는 심심해 보이는 이 공간은 들어서는 순간 놀라운 경험을 제공한다. 네 채의 오래된 한옥을 이어 만든 공간은 각각의 집들이 갖고 있던 본래의 흔적을 살렸는데 어떤 곳은 바닥을, 어떤 곳은 문틀을, 어떤 곳은 오래된 유리창을 살린 식이다. “너무 낡아서 집주인도 수리할 엄두를 내지 못한 곳들이죠. 2년 전, 저희가 문을 열기 전까지는 반쯤은 버려진 곳이였다고나 할까요.” 그랬던 동네에 사람들이 가게를 낼 결심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식물’을 기획하고 완성한 루이스 대표는 자신의 공간을 갖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고 한다.

“카페 앤 바, 그리고 오픈 스페이스라고 공간을 소개하고 있지만 사실 표면적인 명칭일 뿐이에요. 손님이 얼마나 올지, 매출은 나올지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일단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런던에서 10년을 사는 동안 엄청나게 많은 공간을 다녔는데 제가 다시 찾고 싶은 곳은 커피가 맛있는 곳도, 엄청나게 맛있는 디저트가 있는 곳도 아닌 주인의 정체성이 느껴지는 공간이더라고요.” 그리고 ‘식물’ 또한 그런 공간이다. 익선동이라는 동네 자체가 가진 분위기도 그렇다.

“일종의 판타지가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이 동네는 뭐지? 여기에 왜 이런 게 있지?’ 하는 거요. ‘식물’이 경리단길에 있었다면 공간에 대한 인상 역시 달라졌겠죠.” 익선동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순식간에 늘어났다. 주말 저녁이면 몇몇 가게는 자리가 나기를 한참을 기다려야 할 정도다. 그 역시 변화가 이토록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익선포럼’ 모임에 참여하고 있어요. 외부 컨설팅, 서울시, 부동산 관계자, 가게 운영자, 주민 등이 고르게 참석하죠. 구도심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만큼 익선동은 지금 서울시에서도 예의 주시하는 곳이거든요. 우리가 외국에 갔을 때 신도시나 새로 개발된 곳을 찾지 않듯이 한국을 찾는 여행자들도 마찬가지예요. 심지어 서울 사람들도 강남에서 강북으로 눈을 돌리고 있잖아요. 어린 시절 본 것들, 익숙한 것들에서 추억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최근 종로, 을지로, 충무로에 재미있는 공간이 생기고 젊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는 건 당연한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심지어 익선동은 그냥 오래되기만 한 동네가 아니다. 인사동과 가까운 이곳에는 오래전부터 종로를 지킨 예술가들이 많이 산다. 한국 동성애자들의 삶을 그린 영화 <종로의 기적>에서의 ‘종로’도 이곳이다. “다채로움을 보여줄 수 있는 동네예요. 새로 생긴 가게들이 원래부터 있던 주택과 게이바, 포장마차와 뒤섞였죠. 플리마켓을 해도 다른 동네와 다를 거예요. 고미술품이 나올 수도 있을 테니까요.” 다행히 서울시는 일단 익선동에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서는 것은 규제하겠다고 약속했다. 주말과 저녁에는 손님들로 분주하지만 여전히 아침의 익선동은 주민들의 공간이다. 오랫동안 키운 화초와 화분이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동네 강아지들은 목줄도 매지 않은 채 주인 할머니의 뒤를 쫓아다닌다. 익선동은 오래된 서울이 보여주는 새로운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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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 장소로 인기 있는 수집 앤 빈티지 보니의 외관.

수집 앤 빈티지 보니 아기자기한 물건을 사랑한다면 소리를 지를 만한 공간. 핸드메이드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한곳에 판매하는 편집숍인 수집은 바로 옆의 빈티지 보니와 마당을 공유한다. 빈티지 보니는 빈티지 가구, 의류, 그릇을 취급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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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가맥집 콘셉트로 꾸민 거북이슈퍼.

거북이슈퍼 전주 ‘가맥집’ 콘셉트로 꾸민 영리한 맥줏집. 담배와 군것질 거리를 파는 매대, 각종 포를 구워주는 가맥집 분위기는 그대로지만 매우 세련된 맥주를 판매한다. 가장 인기 있는 병맥주는 대동강 페일 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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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조명이 편안한 바, 시집

시집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와인과 요리를 즐기기에 맞춤인 공간. 어두워서 한층 아늑한 공간은 벽에 걸린 액자 하나하나까지 예쁘다. 야외 테이블을 제외하면 실내의 좌석 수는 많지 않지만, 중앙에 큰 테이블이 있어 여럿이 찾기 좋다.

 

메이커스호텔

종로3가역 4번 출구 바로 앞에 자리한 메이커스 호텔의 외관.

메이커스 호텔 익선동 본격 탐방을 위한 거점으로 삼기에 좋은 부티크 호텔. 유럽 각국에서 공수한 빈티지 가구 및 소품, 그리고 벽돌을 이용해 중후하게 꾸민 이 근사한 호텔은 종로3가역 4번 출구 바로 앞에 자리해 있다. 조식도, 레스토랑도 없기에 호텔 밖 동네 구경에 집중할 수 있다.

이태리 총각 서촌의 이탤리언 레스토랑 이태리 총각이 지난 6월 익선동에 등장했다. 원목 소재를 활용한 실내는 자연광이 들어와 밝고 쾌적하다. 피자와 파스타, 샐러드 요리에 맥주를 곁들일 수 있는 캐주얼한 공간으로 틈틈이 전시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