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베어스의 타자 박건우는 90년생이다. 2009년 함께 입단한 동기들이 활약하는 동안 묵묵히 타석에 오를 순간을 기다렸던 박건우는 드디어‘ 한 방’을 날리는 중이다. 이 단단한 선수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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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눈질로 짐작하기에도 야구는 꽤 혹독한 스포츠다. 봄에 시작해 가을까지 계속되는 야구 시즌은 기나길고, 경기는 거의 매일 열린다. 만화같은 역전 드라마가 펼쳐지는가 하면, 미지근한 맥주만큼이나 김빠진 경기도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선수들이 있다. 매일 수천 명의 관중 앞에 올라 환호의 주인공이 되거나 야유의 중심에 놓이기도 하는 사람들. 박건우는 좋은 선수들이 계속 발굴된다는 의미에서 ‘화수분 야구’라고 불리는 두산베어스에서 지금 가장 애정 어린 시선을 받고 있는 선수다. 2009년 입단 이후,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한 선수의 커리어는 2 015년 코리안 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여세를 몰아 이번 시즌도 위1 자리를 지키고 있는 팀의 상승세와 맞물려 있다. 십수 년 만에 우승한 팀과, 입단 8년 만에 빛을 보고 있는 젊은 선수의 합작. 야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듣기에도 꽤 흥미진진하지 않나?

박건우를 만난 날은 장맛비가 잦아들고 며칠 만에 시합이 열리는 날이었다. 남색 유니폼에 모자를 쓰고 들어선 선수의 얼굴은 텔레비전 화면에서보다 훨씬 희고 어렸다. ‘만나면 매일 훈련을 하는데도 왜 그렇게 하얗냐고 물어봐줘!’라던 두산베어스의 팬인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역삼초등학교 야구부에서 야구를 시작한 박건우는 서울 토박이다. “<응답하라 1994>에 나온 유연석(칠봉이) 같아요!”라고 하고 싶은 맘을 억누르고 가장 먼저 건넨 말은 이거였다. “며칠 만의 경기인데 휴가 끝나고 마지못해 출근하는 회사원 같은 기분이 들진 않아요?” 박건우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장마철마다 있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야구는 그날 쉰다고 경기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뒤로 밀리는 것일 뿐이잖아요. 빨리빨리 하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해요.” 첫 질문에서부터 들통 난 김에, 그냥 솔직히 말했다. 사실은 야구를 잘 모른다고. 하지만 주변 사람들한테 당신을 만나러 간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 어떤 연예인을 인터뷰하러 갈 때보다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고 말이다. 개인 응원가는 마음에 드는지, 메이저 리그로 간 김현수 선수와는 지금도 매일 연락하는지, 올스타전에 선발되지 않은 심정은 어떤지 같은 질문에, 박건우는 차근차근 답했다.

“응원가는 최근에 한 번 바뀌었는데 예전 노래가 더 좋다는 게 팬들 반응이에요. 그런데 타석에 있으면 응원가는 잘 들리지 않아요. 욕이나 야유요? 그건 잘 들리죠. 현수 형과는 작년에 룸메이트였어요. 제가 같이 방 써주시면 안 되냐고 부탁했죠. 형은 정신력이 정말 강한데, 지난해 제가 경기를 못하고 의기소침해하면 맛있는 걸 하도 사줘서 95kg까지 쪘어요. 뭘 사줬냐고요? 햄버거, 치킨, 라면 등등. 진짜 많이 먹었어요. 연락은 매일은 아니지만 꾸준히 하고 있고요. ” 인터뷰 당일은 마침 올스타전 선수 발표가 끝난 상태였다. 팬 투표에서 2위를 한 박건우는 결국 탈락했다. “올해 사이클링 히트를 하고 만루홈런을 치면서 팬들 표를 많이 받았어요. 올스타전에 출전하게 되면 열심히 하는 거고, 안 되면 쉬면 되는 거니까 뭐, 이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야구는 흔히들 ‘정신력 싸움’이라고 말한다. 박건우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전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멘탈 조절이 아직도 잘 안 돼요. 그래서 주위 사람이나 선배들의 도움을 많이 받죠. 올해도 계속 좋다가 지금 또 페이스가 살짝 떨어진 상태인데 연습량도 늘리고 꾸준히 하다 보면 다시 잘될 거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어요.” 1군에서 2군이 될지도 모른다는 압박, 입단 동기인 정수빈과 허경민이 먼저 주목받는 시간을 묵묵히 견딘 사람이 멘탈이 약하다고? “수빈이와 경민이가 한창 잘할 때 저는 손목 수술을 하고 2주 동안 입원을 했어요. 시합을 더 나가고 싶어 군대까지 미룬 상태에서 다쳤던 거라 정말 힘들었어요”. 자극이 되는 동기가 있고, 믿고 따를 수 있는 선배도 있다. 어쩌면 야구는 끈끈한 팀워크와 열정이 중심이 되는 스포츠 만화와 정말 닮은 게 아닐까?

“작년 초까지만 해도 저는 제가 봐도 야구를 너무 못했어요. 그때는 팀이 이기고 사람들이 환호해도 제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컨디션이 좋아지고 시합에 나가는 일이 많아지니까 시야가 넓어지더라고요. 팀 성적도 좋다 보니 저희끼리 오늘 안타 치는 사람이 먼저 간식 쏘자고 내기를 하기도 하고요. 얼마 전 보우덴이 노히트노런을 했는데, 팀원들이 다 제 일처럼 기뻐하는 것을 보며 새삼 끈끈함을 느꼈죠”. 팀 분위기가 좋은 것이 박건우의 상승세에 영향을 미쳤을까. “글쎄요. 올 초만 해도 스트레스로 3주 만에 14kg이 빠졌는걸요. ‘난 안 되는구나’ 자책할 때 감독님이 하신 말씀이 오히려 제게 도움이 됐어요”. 감독님의 한마디에 힘을 얻다니!

역시 야구는 실제로도 스포츠 만화인 것이 틀림없다. “지금 그 자리가 네 자리가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난 네게 기회를 준 것뿐이지 완전히 네 책임인 것은 아니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라는 뜻이었어요. 분명히 좋은 얘기는 아니죠.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래 다른 팀원도 있지, 싶으면서요.”

박건우가 생각하는 좋은 야구선수란 ‘야구를 잘하는 선수’다. 욕심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들, 후보 선수들도 한 타석에 나가기 위해 몇 백, 몇 천 개의 공을 쳐요. 경기가 맥이 빠진다고, 선수들이 설렁설렁 한다고 하죠. 맞아요. 어떨 땐 저도 경기가 늘어진다고 느껴요. 그런데 시합 중인 서너 시간 동안 선수들은 엄청나게 집중하거든요. 주전이 아닌 선수들에게도 애정을 갖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아직 스물여섯이지만 최근에는 꽤 잘 따르는 후배도 생겼다.

“요즘 류지혁 선수를 보면 현수 형을 대했을 때 제 모습이 생각나요. 아직 제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줄 처지는 아니지만 다가와주는 후배가 있으니까 형이 제게 해준 말들이라도 전하게 되더라고요”. 박건우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야구가 조금 좋아졌다. 그래서 물었다. 야구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고. 쓰고 있던 모자를 쓰윽 들며 박건우가 답했다. “야구는 구기 종목 중에 유일하게 모자를 쓰고 하는스포츠예요. 신사적이라는 거죠. 그런 반면에 허슬 플레이도 많아요. 흙먼지를 날리며, 치열하게 뛰고요. 그 차이가 보는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다시 태어나면 야구를 하고 싶지 않아요.” 정말일까? 왜? “진짜 힘들어요.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 뛰어다니는 건 많이 했으니까 회사원을 하고 싶어요. 남들 쉬는 주말에도 쉬고, 연차도 써보고요. 일년에 15일인가 연차가 나오는 회사도 있다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