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는 웹툰 데뷔작인 <연애혁명>으로 네이버 웹툰 최고의 인기 작가로 등극했다. 동생이 사둔 태블릿으로 새벽에 몰래 만화를 그리기 시작해서 인터넷에 올리던 것은 스무 살을 조금 넘겼을 때의 일. 고등학생인 주인공들의 연애와 우정, 고민을 그리는 <연애혁명>은 지금의 교실 풍경을 본 적 없는 감성으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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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글라스는 알로(Alo).

네이버 목요웹툰 1위인 <연애혁명>의 작품 소개글은 다음과 같다. ‘로맨스? 그런 건 우리에게 있을 수 없어!’ 하지만 <연애혁명>은 고등학생인 공주영이 같은 학교의 여학생 왕자림에게 반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자림이를 향한 공주영의 구애는 꽤 살뜰하지만 애틋하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진지해지는가 싶으면 곧 ‘드립’이나 ‘짤방’ 패러디가 나오는 이 만화에서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은, <연애혁명>의 그림처럼 굴곡 없이 이어진다. 마치 작가가 ‘여기까지만!’이라고 제동을 거는 것 같달까?
“제가 원래 오글대는 걸 못 견뎌요. 만화에 태클 넣듯이 온갖 드립을 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몰입할 뻔했는데 이게 뭐냐’는 독자들도 있는데 저는 그런 반응도 즐겨요. 밑밥도 종종 깔아요. 다음화 예고를 보여주는 컷에서 심각한 장면들만 배치해뒀는데 막상 그 다음 이야기를 보면 별 의미 없는 장면이죠.” 173cm의 큰 키, 탈색한 금발 머리, 검은색 티셔츠와 반바지에 맞춰 나이키 모자와 발목까지 오는 아디다스 양말을 신은 작가를 직접 만나면 딱 귀여운 스물네 살 같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만나자마자 웃음을 터뜨리고, 사진 촬영을 하는 내내 잘 포즈를 취하다가도 ‘포샵 많이 해주시는 거죠?’ ‘앞머리 괜찮아요?’를 몇 번이고 체크하던 그는 밝고 씩씩하다. 마치 <연애혁명> 속 여자 캐릭터처럼 말이다.
으레 남자 주인공들에게 부여되던 ‘카리스마 있고 외모도 출중한’ 캐릭터 설정은 <연애혁명>에서는 여자 주인공 왕자림의 몫이다. 씩씩한 건 자림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입은 거칠고, 때로는 남자애들보다 힘이 세며, 내숭 따윈 없다. 많은 미디어가 교복 입은 10대 소녀들을 수줍고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하지만 사실 중고등학교 시절 여자애들의 에너지는 남학생 못지않다. “에이 10대 여자애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니 말도 안 돼요. 음흉하고 계산적인 애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털털하다는 자림이와 친구들 말투는 저와 제 친구들의 말투를 그대로 가져온 거예요. 남자애들 말투도 비슷하죠.” 10대의 삶을 밀착해서 묘사하는 것은 <연애혁명>의 장점이지만 그렇다고 이 만화가 얄팍한 드립과 캐릭터의 매력에 기댄 만화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현재와 중학교 시절을 오가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비롯, 관계에 있어 수많은 ‘떡밥’이 촘촘하게 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면 독자들이 깜짝 놀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아직도 메인 스토리가 안 나왔어요. 그동안의 떡밥을 한 번에 회수할 거라 메인 스토리가 나오는 순간 완결이 날 수밖에 없어요. 결말에 대해서는 독자분들도 좋아할 거라고 자신해요!” <연애혁명> 에피소드 하나에 달리는 댓글 수는 보통 1만5천~2만 개, 많을 때는 5만여 개가 달리기도 한다. 작품을 올리는 순간 반응을 즉각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창작자에게 꽤 부담스러운 일 아닐까? 다행히 232 작가는 갖가지 반응을 즐기는 편이다. “어떤 댓글이 달릴지 거의 예상이 되긴 해요. 과거 장면을 그릴 때는 어떻게 전개해야 독자들이 덜 지루하면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을까, 표현방식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고요. ‘왜 이렇게 질질 끄냐’는 반응이 오면 좀 속상하긴 하죠.” 주 독자층이 10대인 만큼 잠깐 등장하는 등장인물의 이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노승희라는 캐릭터를 등장시키면서 ‘노답이라 노승희’라는 대사를 쓴 적이 있는데, 실제로 이름이 노승희인 독자가 학교에서 놀림을 당했다고 쓴 글을 봤어요. 그래서 악역, 혹은 비호감 캐릭터의 이름을 정할 때면 조심스러워요.” 이처럼 10대들의 세계에는 어른들이 보기엔 별것 아닌 일들조차 온갖 의미와 무게를 갖는다. 이제 20대 중반 진입을 앞둔 작가는 어떻게 지금 그때를 기억해서 그려내고, 이해하고 있는 걸까?
“학교 만화는 <연애혁명>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연애나 장래에 대한 고민, 탈선 등 10대 시절 경험할 수 있는 걸 지금 다 그리려고 하죠. 친구들과 저는 아직도 10대 때 감성에서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거든요.” 독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작가는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냐는 거다.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않았다는 것, 고향을 떠나고등학교 시절 자취를 했다는 이미 알려진 사실을 두고 ‘작가도 놀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반응도 실제로 많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 따돌림을 당했어요. 전교생이 100명도 되지 않는 학교였는데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실수를 했거든요. 그래서 다른 지역의 학교로 잠시 전학하기도 했죠. 지금은 키가 크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만 해도 143cm가 되지 않았고 통통했어요. 중학교에 올라가니 갑자기 살이 다 키로 가더라고요. 난생처음 친구들이 많이 생겼죠.” 역시나 10대들의 세계는 냉혹한 구석이 있다.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SNS 같은 각종 미디어 등을 보고 자라니까 다 거기에서 배울 수밖에 없어요.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요즘 음담패설 수준은 저 때와도 비교가 안 되는 것 같더라고요.” 주요 캐릭터 중 하나인 이경우의 과거를 그리면서 일진들의 세계가 상세히 묘사되자 불편함을 느끼는 독자도 많았다. 에피소드 내내 비판적으로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걸 굳이 보여주냐’는 반발도 꽤 접했다. 만화 속 캐릭터임에도 ‘인성’에 대한 이야기나 ‘실망이다’라는 댓글도 줄줄이 달렸다. 최근 아이돌의 과거와 인성 논란이 10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자신도 10대지만 <연애혁명> 속 이야기는 판타지 같다는 반응도 있다.“ 인문계와 실업계 고등학교의 환경이 많이 다른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자림이와 주영이도 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시험 기간 에피소드를 그릴 때는 리얼리티를 더하기 위해 주변에서 고등학교 시험지를 구하고 범위를 확인하면서 문제를 직접 만들고 풀기도 했고요. 그런데 사촌동생들 중 몇몇은 제 만화를 아예 보지 않아요. <치즈인더트랩> 처럼 명문대에 진학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더 선호하는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한국처럼 ‘길’이 거의 정해진 사회에서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을 별의심 없이 걸어간 것은 충분히 대단한 일이다“.저 는 불안하진 않았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일을 시작했고, 계속 돈을 벌어서 가게를 내야겠다고 생각했죠. 제게 메일로 고민을 털어놓거나 상담을 원하는 독자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한테는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자기 주관을 갖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는 수밖에 없어요. 아, 좋아하는 걸 계속하고 싶으면 그걸 정말 좋아해야 한다는 말도요. 저도 만화를 그리는 건 재미 있지만 몸은 정말 힘들거든요.” ‘왜 이게 1위야?’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보니 일주일에 3일은 잠을 거의 자지 못한다. 1.5였던 시력은 0.8까지 떨어졌고, 오른손이 아파서 예전처럼 많은 분량을 그리는 것도 힘들다. “정신은 정말 파이팅 넘쳐요! 몸이 따라주지 않을 뿐이죠. 그런데 이런 건 너무 많이 쓰지 말아주세요. 오케?” 헤어지면서 악수를 했다. 평소 습관대로 손에 힘을 쥐었다가 작고 가냘픈 오른손의 촉감에 깜짝 놀라서 황급히 손을 뗐다. “하하, 사차원이시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기다란 팔을 흔들면서 소녀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