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언덕 위에 자리한 도시 리스본은 구불구불 반복되는 경사, 그 이상을 갖고 있다. 긍정적인 기운과 창의력 넘치는 발상이 만들어낸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가 리스본을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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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텔 발베르데의 뒤뜰. 2 거대한 문어 장식이 천장에 매달린 레스토랑 세비체리아. 3 포자다 드 리즈보아 호텔의 조각상. 4,5 호텔 발베르데에 놓인 의자와 벽지가 경쾌한 로비, 그리고 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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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호텔 발베르데에 놓인 의자와 벽지가 경쾌한 로비, 그리고 객실. 7 추억이 서린 물건을 판매하는 잡화점, 포르투갈의 생활에 놓인 장난감 비행기. 8 더 인디펜던트 호텔의 감각적인 장식. 9 16세기에 지어진 건물. 10 팔라시우 벨몬테 카페.

리스본은 빛난다. 이 도시를 걷는다는 건 빛 위를 걷는 것과 다름없다. 이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과학적인 사실이다. 도시가 둥지를 튼 일곱 개의 언덕은 자연스레 빛을 모으고 반사하는 거대한 원형 경기장 형태를 띠고 있다. 이 원형 경기장의 열린 한쪽 끝은 타구스(Tagus) 강 어귀와 만나며 빛을 반사하는 커다란 거울 역할을 한다. 노랑, 분홍, 황토색으로 칠해진 흐린 빛깔의 석조 건물들이 이 빛을 도시의 언덕 쪽으로 비추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창문은 그 빛을 골목 가장 깊숙한 곳까지 전달한다. 이 도시가 그림자조차 눈부신 이유다. 심지어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구름을 흩어놓은 덕분에 이 모든 풍경이 한층 또렷하게 느껴진다. 칼카다(Calcada)와 포르투게사(Portuguesa) 양식의 석회석으로 뒤덮인 도로 역시 수면에 비치는 빛만큼이나 많은 빛을 지면으로 비추는 데 일조한다. 지리적, 지형학적, 물질적, 거기에 기상학적 요건까지. 이렇게 다채로운 요소가 뒤섞인 결과, 리스본은 다른 유럽 도시와 구분되는, 비현실적인 빛을 얻게 된 것이다.

도시가 갖고 있는 태도 또한 다르다. 리스본에서는 베를린의 불안정함, 파리의 거만함, 로마의 허세 같은 것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과묵함과 소박함의 어떤 경계, 비애가 뒤섞인 조금 아쉬운 유머 감각이 존재한다. 리스본을 찾은 사람이라면 이런 정서를 사람들의 눈에서, 그리고 그들의 음악에서, 또는 시에서 감지할 수 있을 거다. 이러한 정서를 일컫는 사우다드(Saudade)를 대체할 만한 다른 언어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열망의 씁쓸함을 뜻하는 동시에 무언가를 잃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향한 향수, 고독과 그리움이 이 단어에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상실감은 실연과 같은 개인적인 감정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동떨어져 있다는 불안감이나 잃어버린 영광에 대한 그리움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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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유서깊은 호텔, 페스타나 팰리스의 바. 3 붉은 벽이 인상적인 카사 인디펜던트의 로비. 4 다양한 팝업스토어가 입점해 여행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쇼핑센터, 임바이샤다의 전시 공간에 놓인 장식.

이런 적절한 거리감과 과거의 영광은 포르투갈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다. 15세기부터 16세기에 이른 대항해 시대에 리스본에서 항해를 떠난 탐험가들은 위대한 선원들이었다. 리스본 출신의 시인 페르소아 페수아가 화려하게 표현했듯 ‘끝없는 바다는 모두 포르투갈의 것(O Mar Sem Fim e Portugues)’이었고, 바다가 허락하는 동안, 그것은 한동안 사실이기도 했다. 당시, 포르투갈 왕조가 거머쥐었던 엄청난 부로 무엇을 살 수 있었는지 호기심이 인다면 인도로 가는 길을 개척한 항해자 바스코 다 가마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마누엘 양식의 건물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나, 브라질의 사우 호키(Sao Roque)에 자리한 성 존 밥티스트 성당을 찾으면 된다. 대리석, 자수정, 반암과 라피스 라줄리 등 가장 고가의, 과시적으로까지 보일 수 있는 재료들로 쌓아 올린 성당은 바로크 양식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당시 포르투갈의 위상은 한마디로 추락하기에는 너무 높은 지점에 있었다. 그리고 리스본의 경우 그 추락은 한없이 끔찍했다. 1775년의 대지진은 도시의 80%를 돌무더기로 만들었고, 이 충격의 여파는 브라질에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지진으로 일어난 끔찍한 화재는 해일이 몰려온 뒤에야 가까스로 소진됐다. 사건 이후, 포르투갈의 왕은 성벽 안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천막에 거주하기 시작했고, 당시의 수상은 건축가들을 모아 지진에 대비해 도시를 새롭게 재건하는 데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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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발베르데의 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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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르카도 다 리비에라의 컬러풀한 계단. 2 팔라시우 벨몬테의 뮤직룸. 3 더 인디펜던트 호텔에 놓여 있는 빈티지 타자기. 4 빈티지 포스터와 소품들로 꾸며진 더 인디펜던트 호텔의 객실.

리스본, 깨어나다
최근 포르투갈은 두 번째 대항해 시대에 접어들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전의 발걸음이 포르투갈에서 밖으로 향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전 세계 곳곳의 여행자들이 포르투갈, 특히 리스본을 탐험하기 위해 상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난생처음으로 리스본을 방문했던 10대 후반의 나를 반짝이는 도시의 빛만큼이나 사로잡은 것은 문자였다. 리스본은 타이포그래피의 박물관이자 타이포그래피의 사파리다. 그림에서, 네온사인에서, 조각된 유리와 돌에서, 간판과 트램에서, 한마디로 어디에서나 아름다운 서체를 발견할 수 있다. 독재 정치와 그에 이어진 파산 직전의 상황 등 02세기부터 21세기 초반까지 지속된 정치적,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거리의 풍경이 크게 상업적으로 바뀌지 않은 탓이다. 대다수의 글로벌 기업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리스본에 상륙하지 못했다. 리스본은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소위 브랜드화된 도시가 아닌 것이다. 이 도시에서는 몇 대를 이어오는 가족 사업 역시 여전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년, 50년, 때로는 100년 전 벽에 쓰여진 문구가 여전히 남아 있는 리스본에서 ‘읽는다’는 것은 시간을 보내는 즐거운 방법 중 하나다. 포르투갈어를 전혀 모르더라도 말이다!

게다가 리스본에서라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역사의 층층으로 빠져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런 감상은 어느 특정 지역이 아닌, 도시의 어느 곳을 향하더라도 느낄 수 있다.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좁고 어둑어둑한 분위기 있는 작은 가게에서 진지냐(Ginjinha)를 마시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아흔은 족히 되어 보이지만 여전히 정정한 바텐더가 문 앞에서 반겨주는 바에서 포르투갈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 전통주를 마셔보길. 한 샷에 1유로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60대는 애송이처럼 보이는 바에 앉아서 길 건너편을 흘깃 바라보면 세련된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나 스타트업 회사의 최신식 장비가 눈에 들어올 거다. 진지냐 빛깔을 닮은 돌 바닥을 넘어지지 않고 애쓰며 걷다 보면 거리는 끝나고, 시선은 호시우 광장(Rossio Square)으로 향하게 된다. 바로 돔 페드로 6세의 커다란 조각상이 세워진 곳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조각상이 돔 페드로 세6가 아닌 멕시코의 황제 막시밀리안을 표현한 것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페드로 6세와 닮은 것으로 알려진 막시밀리안은 이 조각상이 완성될 즈음 병사단에 의해 사살됐는데, 그로 인해 더 이상 조각상이 필요 없게 되자 리스본에 저렴한 가격에 팔려온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 조각상은 로마시대 성곽의 잔해 위에 세워진 무어 양식의 요새 옆 언덕에서 바라볼 수 있다. 3천 년도 전에 지어진 성곽은, 방금 전 진지냐를 따라준 나이 든 바텐더들의 조상인 켈트족이 정착하기 시작할 즈음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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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풍스러운 호텔 페스타나 팰리스의 스위트 객실. 2 다양한 물건을 진열한 잡화점, 포르투갈의 생활. 3 임바이샤다의 층계. 4 공장을 개조한 디자인 센터 LX 팩토리. 5 호텔 벨베르데의 나선형 계단.

리스본에서는 모든 게 이런 식이다. 1910년, 공화국이 된 뒤에도 두아르트 왕은 그 전까지 포르투갈을 다스렸던 브라간사 왕조의 깃발을 계속 내걸었다. 그의 자부심 넘치는 태도와 잘 다듬어진 콧수염 때문인지, 두아르트 왕을 생각하면 시인인 윌리엄 포크너가 떠오르곤 한다. 그는 왕조가 무너진 이후에도, 왕족으로서 국가에 예의 바르지만 단호한 태도를 보이며 살아갔다. 그리고 포크너는 특정한 장소에, 특정한 이들이 남아 있는 한 과거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며, 그것은 과거라고 부를 수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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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란 벽면이 파란 하늘과 대조를 이루는 리스본의 거리. 2 카사 인디펜던트의 실내. 3 LX팩토리의 위시 디자인 스토어. 4,5 더 인디펜던트의 다이닝 룸과 디자인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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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포르투갈의 생활에서 판매하는 빈티지 제품. 7 LX 팩토리에서 만난 그래피티. 8 위시 레스토랑. 9 카사 인디펜던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10 호텔 벨베르데의 레스토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본의 현재는 새로운 일들로 가득하다. 새로운 바, 레스토랑, 부티크, 클럽, 갤러리와 호텔이 늘어나는 속도는 머리가 아플 정도다. 10년 전에는 아무도 찾지 않았거나, 딱히 갈 이유가 없었던 곳조차 재정의되고, 재발견되고 있다. 그 누구도 리스본에 신경 쓰지 않았던 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풍경일 수밖에 없다. 지난여름, 가장 최근에 리스본을 찾았을 때 이런저런 옛 잡동사니를 판매하는 ‘포르투갈의 생활(A Vida Portuguesa)’이라는 이름의 가게에 들른 적이 있다. 내가 이 가게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언급하며, 외국인에게 특히 이 가게가 독특해 보인다고 넌지시 말하자 내 말을 듣고 있던 가게의 점원은 그렇지 않다고 정정했다. 종종 소문을 듣고 가게를 방문한 나이 든 포르투갈 사람들이 가게의 물건을 보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곤 한다는 것이다. 특정한 치약 제품이나 특정 방식으로 줄이 쳐진 연습장 같은 것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는 남아 있지만 이제는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한 물건을 발견했을 때 가지게 되는 감정. 바로 사우다드다.

지난 25여 년 동안 나는 리스본을 여러 번 찾았다. 사람들이 지금 어떤 도시를 원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리스본만큼 주목받을 자격이 있는 다른 도시를 떠올리지는 못하겠다. 리스본의 지금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사람들이 각자의 눈에 비친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기억하길. 그저 이 도시가 그들만의 겸손한 방식으로,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반짝임으로 이 기쁨을 오래도록 누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