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찢어진 슬릿 사이로 탄탄한 허벅지가 드러난다. 은은한 관능미로 여성의 몸을 더욱 매력적이고 과감해 보이게 만드는 슬릿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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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지 하디드가 선보인 과감한 슬릿 드레스 룩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어느 날 약혼녀에게 한 장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여인에게 “당신이 길을 건널 때 치마를 들어 올려 사람들이 당신의 발목을 쳐다본다”라고 불평했다. 19세기 초만 해도 여자로서 몸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 것은 관습이며 규율이었다. 하지만 1920년대에 코코 샤넬은 여자들의 활동성을 높이기 위해 미디스커트를 만들었고, 옷자락 속에 감춰져 있던 종아리는 노출의 시대를 맞이했다. 1955년 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서 마릴린 먼로가 펄럭이는 치맛자락과 함께 관능적인 허벅지를 드러냈고, 1963년에 디자이너 메리 퀀트는 미니스커트를 세상에 선보였으며,  1992년에 샤론 스톤은 <원초적 본능>에서 다리를 꼬며 남자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그렇다면 2016년 여름에는? 디자이너들은 작정하고 드러내는 대신 은밀하게 드러내기를 요구한다. 아슬아슬한 슬릿 사이로!

이번 봄/여름 컬렉션에서 슬릿 장식에 집중한 디자이너들은 전부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일단 대표적인 디자이너만 보자면 이들이다. 3.1 필립 림은 핀 스트라이프의 톱과 슬릿 스커트를 매치해 한 벌 차림의 룩을 제안했고, 마이클 코어스는 슬릿을 군데군데 넣어 세차장의 커튼처럼 벌어지는, 일명 ‘카 워시 스커트’를 선보였다. 프링글 오브 스코틀랜드는 무릎까지 오는 긴 스웨트 셔츠를, 세드릭 샤를리에는 슬릿 스커트의 짝꿍인 펌프스 대신 글래디에이터 샌들을 매치해 슬릿의 관능미를 완화시켰다. 그 중에서도 제일은 알투자라이다. 그는 첫 번째 컬렉션을 선보인 2009년 가을부터 이번 시즌까지 무려 172벌의 슬릿 룩을 런웨이에 내보냈다 .이상적인 오피스 스커트 룩을 선보이는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를 스타일 뮤즈로 꼽는 걸 보면 그의 디자인 철학은 소녀적인 취향보다는 성숙한 여인에 가깝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의 몸을 매혹적으로 만드는 슬릿은 훌륭한 디자인 재료였을 것이다. 그는 이번 시즌에도 슬릿 룩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셔츠 드레스의 밑단 쪽 단추를 열어두어 의도적으로 슬릿 장식을 만들거나, 슬릿 스커트와 매치하는 아이템을 응용해 드레시한 매력을 배가시켰다. 앞단추를 풀어 쇄골 라인이 보이도록 뒤로 젖혀 연출한 셔츠 룩이 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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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알투자라가 있다면, 파리에는 안토니 바카렐로가 슬릿의 매력을 알린다. 그 역시 슬릿의 대가라 불릴 만큼 매 시즌 과감한 슬릿 룩을 선보이는 디자이너다. 지난 2012년에는 슬릿 드레스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2012년 멧 갈라에서 모델 안야 루빅이 골반뼈가 드러나는 아슬아슬한 슬릿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속옷의 존재 유무를 상상하게 했던 그 드레스는 안토니 바카렐로의 작품이었다. 논란을 남기긴 했지만 여성의 몸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디자인이었다. 이런 그가 에디 슬리먼의 뒤를 이어 생 로랑의 수장이 되었으니 그의 장기가 어떤 식으로 드러날지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에디 슬리먼 표의 쿨한 감성이 환호를 받은 것처럼 안토니 바카렐로식의 관능적인 슬릿 룩이 여자들의 필수품이 될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현재, 슬릿 룩을 가장 잘 소화하고 있는 셀러브리티는 누구일까? 베이비 페이스에 섹시하기까지 한 지지 하디드가 대표적이다. 지난 7월에는 몸매가 드러나는 슬릿 드레스로 아슬아슬한 매력을 살리고, 지난 12월에는 슬릿 스커트에 사이하이 부츠를 매치해 허벅지만 의도적으로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작년에 열린 코첼라 페스티벌장에서는 몸을 따라 흐르는 슬릿 원피스로 잔디 위에서 뛰노는 보헤미안풍의 슬릿 룩을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탐나는 꿀벅지와 함께!

이렇듯 슬릿 룩은 은밀한 노출 속에 에로티즘을 담는다. 이 매력을 십분 끌어내고 싶다면 슬릿 의상을 고르는 방법도 세심해야 한다. 안감을 살펴보는 자세는 좋은 습관이다. 걸을 때마다 슬릿 사이로 안감이 보이기 때문에 안감이 견고하게 재봉됐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고급스러움이란 한끗 차이로 결정되니까. 입는 사람에 따라 슬릿 지점이 달라지므로 슬릿의 시작점이 어디인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만약 과감하게 찢어져 있다면 원피스 위에 랩 스커트처럼 연출하는 것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