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거리는 바람이 불 때,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황태처럼 바싹 메말랐을 때, 일상이 고달프고 지칠 때, 읽으면 곤란한 문장들이 여기 있다. 여행자의 등을 떠미는 글귀이자 가슴에 불을 지펴줄 단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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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나는 어느 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것은 여행을 떠날 이유로는 이상적인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간단하면서도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관광과 여행, 모험은 뭐가 다를까. 대상의 거죽을 스쳐 지나는 것과 거죽 속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자신의 거죽을 열고 세포 속의 물질을 대상과 뒤섞는 것의 차이? 결국 여행을 하고 모험을 겪고 나면 그 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는 거지.” – <도시와 나> 중 ‘사냥꾼의 지도’, 성석제

“얼마나 많은 길들이 내 앞에 놓여 있었던가. 얼마나 많은 길들을 내가 걸어갈 수 있다고 믿었던가. 얼마나 많은 길들을 결국 밟아보지 못하고 잊어버렸던가.” – <길에서 만나다>, 조병준

“관점은 여행을 떠나야 비로소 변화한다. 길이 아주 갑자기, 전혀 예상치 못하게, 변명의 여지도 없이 아주 단호하게 방향을 틀거나 급경사로 바뀔 때, 비로소 우리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 모든 것들을 보게 된다.” – <산 위에 가서 말하라>, 제임스 볼드윈

“거듭 말하거니와 나는 모국어의 여러 글자들 중에서 ‘숲’을 편애한다. ‘수풀’도 좋지만 ‘숲’의 어감은 깊고 서늘한데, 이 서늘함 속에는 향기와 습기가 번져 있다. ‘숲’의 어감 속에는 말라서 바스락거리는 건조감이 들어 있고, 젖어서 편안한 습기도 느껴진다. ‘숲’은 마른 글자인가 젖은 글자인가. 이 글자 속에서는 나무를 흔드는 바람 소리가 들리고, 골짜기를 휩쓸며 치솟는 눈보라 소리가 들리고 떡갈나무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린다.” – <자전거 여행>, 김훈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홀로 도착하는 것. 유령처럼, 해질녘 낯선 지방에, 불이 훤한 중심지 대신에 뒷문으로, 대도시에서 수백 마일 떨어진 나무가 울창한 시골에, 주민들이 이방인을 본 적이 없지만 친절히 맞이해주는 곳에, 그러나 주민들이 방문객을 다리 달린 돈으로 보지 않는 곳에 도착하는 것이다.” – <동방의 별로 가는 유령 기차>, 폴 서루

“그러나 진정한 여행자들은 오직 떠나기 위해 떠나는 자들. 마음은 풍선처럼 가볍게 숙명은 결코 떨치지 못한 채 그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늘 ‘가자’라고만 말하네.” – 시인,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두 사람은 그렇게 침묵 속에 사원 앞에 서서 구름과 태양과 바람이 한순간 산들과 어울려 노니는 것을 바라보았다. 꾸뻬는 이것이 지금까지의 그 어떤 것보다 새로운 배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생각을 멈추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 <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클로르

“불편하고 낯선 잠자리, 점쟁이가 된 심정으로 메뉴판을 찍어 나온 해괴한 요리, 이국의 언어와 알 수 없는 거리, 세포 하나하나까지 긴장하고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것 같은 기분. 젠장, 괜히 떠났어 하고 후회해도 코끝에 바람이 살랑살랑 불면 궁둥이가 씰룩거리기 시작한다. 마법에 홀려 있기 때문이다. 여행의 모든 순간은, 내게 마법이다.” – <어떤 날> 중 ‘여행, 그것은 마법의 순간’, 최상희

“집을 떠나 있을 때 그리워지는 게 뭔지 생각해보면 재미있지 않나요. 나는 커피 향하고, 아침에 맡는 베이컨 굽는 냄새가 그립다오.” –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패니 플래그

“그렇게 온탕과 냉탕에 번갈아 뛰어드는 것처럼 일상과 여행을 오갔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살다가 ‘아, 너무 뜨겁다. 더 이상은 못 참겠는걸.’ 신호가 오면 어렵사리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냉탕으로 퐁당 빠져들었다. 둘 사이의 온도 차가 때론 괴로웠지만, 한순간도 여행이 일상보다 우월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지리멸렬한 일상을 한순간 한순간 잘 견뎌냈기에 여행을 위한 돈과 시간, 동기를 가질 수 있었으니까.” – <그때는 누구나 서툰 여행>, 최혜진

“무언가를 발견하는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으려는 여행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가지려는 여행이다.” –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

“여행은 도시와 시간을 이어주는 일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아름답고 철학적인 여행은 그렇게 머무는 사이 생겨나는 틈에 있다.” – 시인, 폴 발레리

“관광객들은 바라보기를 끔찍이 두려워한다. 카메라가 그들 대신 바라본다. 그들은 찰칵찰칵 찍어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여행의 충격을 가라앉힐 수 있다. 고이 간직하는 사진 더미는 자신이 어딘가 다녀왔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수료증이나 다름없다.” – 소설가, 장 뒤투르

“공항을 찾아가는 까닭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공항대합실에 서서 출발하는 항공편들의 목적지를 볼 때마다 그토록 심하게 가슴이 두근거리겠지. 망각, 망실, 혹은 망명을 향한 무의식적인 매혹. 하지만 그런 매혹에 사로잡힌 인간이 가장 먼저 지녀야만 하는 것이 바로 여권이라니. 그런 증명서란 구치소, 신병훈련소, 대입고사장에나 어울리는 것이지, 머나먼 익명의 공간을 꿈꾸는 자들에게는 어색한 문서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 공항의 우화는 이렇게 완성된다.” – <여행할 권리>, 김연수

“여행을 많이 하고 자신의 생각과 삶의 형태를 여러 번 바꿔본 사람보다 더 완전한 사람은 없다.” – 시인, 알퐁스 드 라마르틴

“체호프는 말했다. ‘고독이 두려우면, 결혼하지 마라.’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독이 두려우면 여행하지 마라.’” – <여행자의 책>, 폴 서루

“나는 기차 여행의 주된 매력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차는 우리를 목적지로 데려간다. 기차는 스쳐 지나가는 장면을 거의 방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그 지방의 차분함과 정적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리고 날듯이 달리는 차량들 안에 우리가 머물러 있는 동안, 사념은 기분이 내키는 대로 인적이 드문 정거장에서 내린다.” – <질서 잡힌 남쪽>,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진정한 여행>, 히크 메트

“여행은 편견, 완고함, 편협함에 치명타를 날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여행이 몹시 필요하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광범위하고 건전하며, 너그러운 견해를 일생 동안 지구의 한 작은 구석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으로는 얻을 수 없다.” – <마크 트웨인의 여행기>, 마크 트웨인

“여행은 문과 같다. 우리는 이 문을 통해 현실에서 나와 꿈처럼 보이는 다른 현실, 우리가 아직 탐험하지 않은 다른 현실 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것이다.” – 소설가, 기 드 모파상

“한 도시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비결이 뭔지 몰라요? 그건 거리에서 들리는 단어가 뭔지 알아내는 거예요.” 그는 영어와 이탈리어어, 그리고 손동작을 섞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든 도시에는 그 도시를 정의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단어가 존재하죠. 어떤 도시건 거리에서 당신을 스쳐가는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그들 대다수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생각, 그게 무엇이건 간에 그게 바로 그 도시의 단어예요. 만약 내 개인적 단어가 그 도시의 단어와 조화를 이룰 수 없다면 난 그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거죠.” “로마의 단어는 뭔데요?” “섹스.”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엘리자베스 길버트

“나이가 들어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건, 이미 살아온 삶에 대한 기억들 때문이다. 어제와 내일이 비슷하고, 올해와 내년의 사랑이, 10년 후 친구와 가족들이 변치 않으리란 뻔한 예측들. 성공의 기쁨과 실패의 절망을 알아가는 나이가 되면, 앞으로의 시간들은 새롭게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들로 ‘포개져’버린다. 그러니 시간은 점점 더 빨라질 수밖에. 늘 가는 식당, 늘 가는 회사, 늘 만나는 사람들과의 시간은 언제나 포개지며 반복되니까. 낯선 길이 두렵고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건, 익숙함에 대한 반작용 때문이다. 시간을 확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러므로 미지의 길을 걷고, 나와는 다른 억양을 쓰는 타인을 만나는 것뿐인지도 모른다. 어쩜 낯선 공기와 진한 향신료 냄새, 심하게 구불거리는 언어와 반대로 타는 운전석에 시간의 비밀이 있을지도. 여행이란 익숙한 시간을 깨끗한 물에 빨아 오후 두 시의 강렬한 태양 아래 걸어놓는 일인 것이다.” – <다른 남자>, 백영옥

“저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다녀온 여행을 좋아할 뿐입니다. –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크든 작든 두 힘 사이의 갈등이 존재한다. 하나는 은밀한 자유에 대한 갈망이고 다른 하나는 넓은 장소로 나아가려는 충동이다. 하나는 내향성, 다시 말해 왕성한 사고와 환상의 내면세계로 향한 관심이고 다른 하나는 외향성, 다시 말해 사람들과 구체적인 가치들이 존재하는 바깥 세계로 향한 관심이다.” –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향수병은 잘 알려진 고통스러운 느낌이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고통은 덜 알려진 것이다. 그것은 ‘타향병’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눈이 녹고 황새가 다시 찾아 들고 첫 증기선이 출발하면, 나는 여행의 충동에 시달린다.” – 동화작가, 안데르센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할 때만큼 멀리 갈 때는 없다.” –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