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여성 인권이 발전했다고 믿는 21세기, 왜 페미니즘이 다시 주목받게 된 걸까? 그건 여전히 성범죄 피해자의 90% 이상이 여성이고, 여전히 여성이 남성이 받는 임금의 75% 정도밖에 받지 못하며, 여전히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고 재단하는 말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최근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는 페미니즘 서적을 모았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니까.

 

나쁜 페미니스트 (1)

<나쁜 페미니스트>, 록산 게이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기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Bad Feminist)가 되는 것을 택하겠습니다.” 록산 게이의 선언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이후 이 책이 세운 기록은 고무적이다. 페미니즘 서적임에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아마존은 올해의 책으로 <나쁜 페미니스트>를 선정했으며, 국내에서도 지난 3월 출간된 이후 사회과학 분야 5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록산 게이의 에세이가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얻게 된 이유는 뭘까? 많은 사람이 페미니스트라고 불리기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인지하고, 그럼에도 왜 우리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위트 있게 자기고백적으로 풀어나간 록산 게이의 재능 덕분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재미있다!

그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때 수십 번, 수백 번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을 살펴야 하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라고 말한다. ‘페미니즘 이론에 정통하지도 않고, 때로는 여성을 끔찍하게 표현하는 노래에 몸을 흔들기도 해요’라고 고백하며, ‘외모에 관심을 가져도, 분홍색을 좋아해도, 전업주부여도, 소신이 있다면 페미니스가 될 수 있다’ 라고 북돋운다.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완벽한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한 게 아니라 우리가 누구이고, 어떻게 이 세상을 헤쳐나가야 하는지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편에 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책은 아이티계 미국인, 뚱뚱한 몸을 가진 흑인 여성으로서 평생을 살아온 록산 게이가 그녀 본인의 당당함이나 성격과는 관계없이 살면서 겪고 마주해야 했던 촘촘한 차별과 부조리함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성폭력을 바라보는 태도, 뚱뚱한 사람들이 사는 법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건을 낄낄대며 읽어 내려가다 보면 결국 이런 생각이 들게 된다. ‘어 그런데 이건 잘못된 거잖아!’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1)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남성과 여성을 모두 성별 프레임에서 자유롭게 하는 페미니즘이, 결국에는 남녀 모두를 위한 학문이라는 사실을 안내해주는 최고의 입문서. 저자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소설가로 지난해 <타임>지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꼽혔으며, 책의 근간이 된 그의 TED 강연은 유튜브에서 250만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했다.

페미니즘은 여성 인권과 관련된 문제만이 아니다. ‘남자가 힘을 이것밖에 못 써?’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우는 거야’. 이런 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남자든 여자든 지금의 젠더상에는 문제가 있다면, 누구나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책의 주요 이야기다. 전통적인 성 역할에 고착된 사고방식이 남녀 모두를 짓누르고 있다고 말하는 이 책은 스웨덴에서 출간되자마자 시민단체의 후원을 통해 16세 학생들에게 선물로 증정되기도 했다. 학생들 사이에 젠더에 대한 긍정적인 토론이 오가길 바란다는 취지였다. 실제로 많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 역시 두려움, 나약함, 결점을 내보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사회가 정의한 남성성 때문에 자신의 자아를 감추며 산다. “우리가 남자들에게 저지르는 일 중 가장 나쁜 짓은, 남자는 강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들의 자아를 아주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느껴질수록 그 자아는 더 취약해집니다. 그리고 여자아이들에게는 남자의 취약해진 자아에 요령껏 맞춰주라고 가르치지요.” 치마만다의 말이다. 비욘세는 지난해 발표한 자신의 신곡 ‘Flawless’의 뮤직비디오에 치마만다의 강연 일부를 내레이션으로 넣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야망을 품는 것은 괜찮지만 너무 크게 품으면 안 돼. 성공을 목표로 삼아도 괜찮지만 너무 성공해서는 안 돼. 그러면 남자들이 위협을 느낄 테니까’. 이 표현에 공감한다면 지금 당장 이 책을 펼치자. 100페이지도 채 되지 않으니 순식간에 읽어내려 갈 수 있을 거다.

 

남자들은 자꾸나를 가르치려 든다 (1)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레베카 솔닛
2010년 <뉴욕타임스>가 올해의 단어로 꼽은 ‘맨스플레인(Mansplain)’. 구글의 ‘맨스플레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특히 남성이 여성에게, 거들먹거리거나 잘난 체하는 태도로 설명하는 것을 가리키는 합성어’. ‘맨스플레인’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레베카 솔닛의 책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지난해 국내 서점가에 열풍을 일으켰다. 레베카 솔닛은 페미니즘 학자가 아니다. 1980년대부터 인권 운동, 기후변화 운동, 반핵 운동 등에 참여한 그는 예술과 생태, 정치 등에 관한 책을 꾸준히 저술한 저널리스트다. 그런 그가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에 새로운 불씨를 지핀 ‘맨스플레인’이라는 개념에 대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했다. 2008년에 참석한 한 파티에서 솔닛은 ‘아주 중요한 책’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는 남자를 만난다. 그 책에 대한 솔닛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말하던 남자와의 대화를 끝마치기 위해 솔닛은 최후의 수단을 쓴다. 그 남자가 말하는 그 ‘중요한 책’의 저자가 바로 자신임을 밝힌 것이었다. 언뜻 ‘사이다스러운’ 결말이지만 실제로 여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모를 것이라는 전제 아래 가르치듯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솔닛은 말한다. 단순한 해프닝이든, 심각한 범죄든 여성과 관련된 문제든 여성의 존재를 말소하고 침묵시키려는 힘과의 싸움이라고 말이다. 가르쳐주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스포츠, 정치, 문학, 직업, 경제 등에서 여성의 지성을 얕보는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맨스플레인’을 소재로 가볍게 시작한 이야기는 왜 모든 사건에서 여성의 성별만이 부각되는지, 얼마나 많은 여성이 강간의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지 등 보다 심도 있는 주제로 자연스레 뻗어간다. 그리고 이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강간, 데이트 강간과 부부 강간, 가정폭력, 직장 내 성희롱 등을 범죄로 규정하려고 애써온 페미니즘의 투쟁에서의 핵심과제는 우선 여성을 신뢰할 만하고 경청할 만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맨스플레인은 일상의 차원에서부터 여성을 진실의 발언권을 가진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솔닛의 통찰처럼 일상 대화에서조차 동등함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보다 더 나은 것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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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해도 괜찮아>, 이은의
“네가 예민한 거 아니야?” “너도 잘못한 것 아니야?” 성희롱과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 전에 많은 피해자가 스스로 검열하기도 한다.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인 게 아닐까?’ ‘술을 많이 마신 나도 잘못한 게 아닐까?’. <예민해도 괜찮아>는 불편함을 느끼는 그 감정이, 그 예민함이 틀린 게 아니라는 것에 힘을 실어준다. 저자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로서 대기업 삼성을 상대로 싸워 이긴 최초의 여성이다. 졸업 후 ‘삼성맨’이 되어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지만 상사의 성희롱 문제로 삼성과 무려 4년을 싸웠다. 이 책은 이후 로스쿨에 진학한 그녀가 변호사가 된 이후 펴낸 책이다. 사내 성희롱을 당한 저자의 경험을 비롯해 <예민해도 괜찮아>에 실린 사례들은 일간지 사회면을 장식할 만큼 어마어마하게 ‘끔찍한’ 일들은 아니다. 출장 중 상사의 성추행, 지도교수의 강간, 데이트 폭력, 직장 내 외모 비하 발언 등 일상 속에 성추행이 이토록 흔하다는 것이 끔찍할 뿐, 개별적인 사건으로 봤을 때는 우리 주변에 비일비재한 일들이다. 그러나 피해자의 일상을 파괴할 만큼 강력한 일이기도 하다. 이은의 변호사 역시 회상한다. 성희롱 행동만 제외하고 보면, 가해자는 딱히 나쁜 상사가 아니었으며 인사 담당자든 책임자든 원칙대로 처리만 했다면 법원과 국가기관에 도움을 청할 만큼 커질 사안은 아니었다고.

“정말 내 머리나 목덜미를 만지고 엉덩이를 툭 치고 지나간 상사는 아무 의도가 없었는데, 내가 예민해서 몇 년이나 공들여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존경하던 직장 선배들이 친근한 척 일일연애를 하자며 심각한 수위의 스킨십을 시도해오는 것에 경악하고, 이후 그들과 만나지 않게 된 내가 예민한 사람인 건지 혼란스러웠다.” 책 속에 털어놓은 그의 고백이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겪게 되는 일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으로 가득한 동시에 개념녀와 여성가족부 등 편견과 논란에 휩싸인 단어들에 대한 똑 부러진 시각도 제공한다. 페미니즘이 멀게만 느껴지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개정판 인쇄용 띠지무)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다 치즈코
‘여성 혐오(Misogyny)’의 의미를 제대로 알았더라면 ‘나는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친구도 있으니 여성 혐오자가 아니다’라는 어떤 밴드의 바보 같은 사과문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 재출간된,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의 책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는 ‘여성 혐오’의 정의에 대해 면밀하고 정확하게 파고든다. 여성 혐오는 ‘여성을 싫어한다(Hate Women)’는 의미가 아니다. 여성을 객체화하는 것, 여성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 남성성을 세상의 기준으로 두고 여성의 특성을 구분 짓는 것,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분류하고 숭배하거나 대상화하는 것 모두 여성 혐오에 포함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엄밀하게 ‘남성 혐오’라는 표현은 ‘여성 혐오’와 대등하게 존재할 수 없다. 여성에 비해 남성이 대상화되는 일은 극도로 적기 때문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여성 혐오가 남성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남성에게는 여성을 멸시하는 것으로, 여성에게는 자기 혐오로 발현될 뿐이다. 저자는 실생활에서 어떻게 여성 혐오가 작용하는지를 조목조목 짚는다. 아들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서열이 달라지는 일본 황실 문화에 대한 비판부터, 예술 작품 속의 여성 혐오적 시선, 성매매, 아동 성학대자를 통해 본 남성의 여성 혐오와 동성애 혐오, 위안부를 둘러싼 다각적 분석까지. 가부장적인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 구성원은 모두 여성 혐오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불편한 사실로 가득한 책이지만 통계와 연구, 그리고 역사적 근거가 뒷받침되기 때문에 명쾌한 기분으로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아무리 불쾌하다 하더라도 눈을 돌리면 안 되는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앎으로써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 책을 썼냐는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이다.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에멀린 팽크허스트
인터넷 서점 알라딘 여성학 분야의 도서판매는 2010년에 견줘 2.5배 증가했다. 여성참정권 쟁취 운동을 이끈 ‘서프러제트(Suffragette)’,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자서전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는 독자들이 출판 기금을 모금하는 북펀딩을 통해 출간됐다. 페미니즘 도서를 향한 열풍을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이다. 지난해 메릴 스트립, 캐리 멀리건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한 서프러제트의 활동은 상점가의 창문을 깨고, 불을 지르고, 그리고 국왕의 달리는 말 앞에 몸을 던지는 과격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는 그들이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길고 용기 있는 여정을 설명한다. 20세기 영국, 미혼모들과 빈민구호소의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여성참정권법안을 정치인들이 어떻게 무시했는지, 4년간의 비폭력 운동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폭력 진압과 수감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얼마나 용감하게 활약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여성들의 발언이나 문제는 언제나 과소평가되거나 감정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서프러제트가 정당 정치를 통한 여성참정권 획득에 대한 기대를 버린 것도 그 때문이다. 연설을 방해하는 남성에게는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니 들어봅시다”라고 말하면서, 여성에게는 “고양이들이 야옹거리는 데 관심을 두지 맙시다”라고 말하는 정치인에게 그들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1908년 여성사회정치연합은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영국 사상 최고의 대규모 정치 집회를 개최했고, ‘여성 가구주와 10파운드 이상의 집세를 내는 여성에게 의원 선거권을 부여해달라’는 정당한 요구를 했다. 이조차 끊임없이 무시받자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르는 쪽을 택한 것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쓴다. ‘남성들의 전투는 몇 세기 동안 세계를 피로 물들였다. 남성들은 이러한 공포와 파괴 행위에 대해 기념비와 위대한 노래와 서사시라는 보상을 받았다. 올바른 대의를 위해서 싸운 여성들은 자신들의 목숨 말고는 누구의 목숨도 해치지 않았다. 이 여성들이 어떤 보상을 받게 될지는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