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물건에 잠식되어가는 사무실 책상, 다리를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물건이 쌓여가는 자리에 앉아 있다 보면 뇌까지 잠식당하는 것만 같다. 그럴 때면 정리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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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한 지 4년. 한 번도 ‘자리가 깨끗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일년 전 구비한 서랍이 달린 모니터 받침대와 북스탠드조차 그 기능을 잃어갈 즈음, 인정했다. 나는 내 집 청소는 할 수 있지만, 사무실 자리 정리에는 무능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는 공간인 사무실, 지저분하고 정돈이 안 되어 있는 책상은 민폐다! 그렇게 정리 전문 컨설턴트에게 SOS를 보냈다. ‘제 사무실 책상을 구해주세요!’

 

업무를 위한 공간으로
정리 전문가를 만나기 30분 전부터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책상 서랍 속까지 사진을 촬영해 보낸 상태인데도, 숙제 검사받는 아이 같은 심정이었다. 버리기 아까워서 모아둔 제품 상자, 명함, 좋아하는 화보가 실린 잡지, 치우지 않은 여러 개의 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늘 문제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버려야 할지, 그 선을 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정리 전문가가 오더라도 내가 버릴 수 없는 것들만 ‘버리라’고 하면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집에 가져다 둘 물건은 없을까?

“사무실에 개인 물건과 업무용 물건의 비율은 3대7 정도로 유지해야 해요. 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개인 물건의 비율이 월등히 높네요.” 나영주 정리 전문가의 첫 마디다. 캐릭터 상품과 폴라로이드 사진, 일러스트가 3대7은커녕 80%를 차지하는 내 자리. 산만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 적은 없었다. “30%의 개인물품 중에서도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은 10% 정도면 충분해요. 일을 하는 데 영감을 주거나 도전 의식을 선사해주는 물건을 제외하고 나머지 20%의 용품은 서랍이나 수납장 등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 꺼내야죠. 이래서는 일할 때의 공간이 확보되지 않아요.” 갑자기 코를 훌쩍이며 말하는 그에게 휴지를 건네며 감기에 걸렸냐고 물었다.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본인들은 모르지만 저처럼 장소를 바꿔가며 정리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바이러스에 민감해요. 청소를 하다 보면 오래된 종이에서 정체 모를 미생물을 발견할 때가 많죠 .” 즉 정리가 되지 않은 환경은 건강에도 해가 된다는 말이었다. 지저분한 자리가 집중력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건 익히 알았지만 건강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다니? 게다가 대부분의 사무실은 제대로 환기를 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실제로 구석에 쌓아둔 물건을 꺼낼 때마다 점차 코가 막히고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옆자리에 앉은 동료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이런데도 키보드와 마우스, 전화기만 물티슈로 부지런히 닦았다니, 지난날의 행동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벽에 고정해둔 사진과 일러스트 엽서, 티켓, 팸플릿도 대폭 정리했다. 사람의 뇌는 무의식 중에 시각 정보를 처리하기 마련이라, 눈에 보이는 게 많을수록 업무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 때문이었다. “사무실 공간은 나라는 개인이 아닌, 일하는 나를 위한 공간이어야 해요.”

 

본격적인 청소에 돌입하다
정리를 시작하기에 앞서 쓰레기 봉투와 커다란 박스 두 개를 준비했다. 곧바로 버릴 쓰레기는 쓰레기 봉투로 직행, 상자 하나에는 ‘지금 책상 위에 둘 필요는 없지만 사무실에 필요한 물건’, 그리고 다른 상자 하나에는 ‘쓰레기는 아니지만 버릴 것’을 담을 거다. 나는 상자 하나를 더 준비했다. 이 상자의 이름은 ‘오늘 퇴근할 때 집으로 가져갈 물건’ 이다. 자리 정리는 우선 책상 위의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책상 위에 올려둔 수납함, 연필꽂이, 포스트잇, 서류와 다이어리 등을 정리 전문가가 하나하나 내게 건네면 어떤 상자에 담을지 곧바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다음은 책상 아래였다. 사무실에 가져다 놓은 구두, 과월호 잡지들이 쏟아졌다. 엄청난 먼지를 동반한 이 작업들을 완료하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 남짓. 순식간에 책상이 깨끗해졌다! “그래도 손은 매우 빠른 편이에요. 우유부단하지는 않은 것 같네요.” 정리 전문가로부터 칭찬 아닌 칭찬을 받았지만 사실 내가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이미 어떤 물건을 버려야 하는지, 어떤 쓸모 없는 물건이 내 자리에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리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정리의 기본은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불필요한 것의 기준은 다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언젠가 쓰려고 둔 것이다. “‘언젠가 쓰겠지’라는 말은 ‘언젠가 시간이 되면 치우겠지’와 같은 말이에요. 치우지 않으면 사용할 날도 오지 않습니다. 짐이고 먼지일 뿐인데 재산인 줄 알고 껴안고 있는 경우죠.” 그렇게 페이스롤러와 발을 지압해주는 롤러, 먹지도 않고 유통기한을 맞이한 홍삼액 등이 ‘버릴 것’ 상자에 들어갔다.

두 번째는 버리기 아까워서 둔 것이다. “물건을 잘 쓰면 ‘돈이 안 아깝다’고 하잖아요? 어떤 물건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면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아까운 거죠. 아깝다는 말은 안 쓴다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마지막으로 불필요한 물건은 추억이라서, 혹은 기념할 만한 것이어서 둔 물건들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항목이었는데 놀랍게도 정리를 하다 보니 내 책상에는 이 세 번째에 해당되는 물건이 가장 많았다. 한정판이라 버릴 수 없었던 화장품과 음료수, 인형, 누군가에게 받은 엽서와 함께 찍은 사진, 여행 기념품 등을 일부만 제외하고 정리하니 파티션과 수납장 위가 깔끔해졌다. “기념할 것과 추억을 꼭 잘 보이는 데 전시할 필요는 없죠. 오히려 같은 곳에 오래 두면 그 의미가 퇴색될 뿐이에요.” 정리 전문가의 말에 마음속으로 기립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정리는 계속된다
정리 전문가가 다녀가고 3일이 지난 뒤, 지금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내 발밑에는 커다란 상자만이 남아 있다. 집에 가져갈 물건은 이틀 전 모두 가져갔고, ‘쓰레기는 아니지만 버릴 것’을 담아둔 상자는 오전에 치웠다. 정리 당시 바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어도 크게 상관없을 물건이 대부분이었다. 집으로 가져간 물건들 역시 치우는 데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사무실에서는 갈 곳을 잃었던 물건들은 집에 도착한 순간 신발장, 화장대, 냉장고, 책꽂이 등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아갔다. 이제 내게 남은 건 발밑에 놓인 ‘사무실에 필요한 물건 상자’뿐이다. 이 상자가 숙제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여기에 담긴 물건 역시 하나하나 꺼내보면 금세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으니까. 내 몸에 전에 없던 새로운 근육이 늘어난 기분이다. 정리하는 법을 아는 근육이.